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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도 수련기 모음

[스크랩] 교통사고를 이겨낸 체험

작성자바람소리강영현|작성시간06.01.27|조회수135 목록 댓글 0
"국선도 하는 사람은 제 몸으로, 제 행동으로 이야기합니다"


1987년에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머리에 63바늘을 꾀매고 또 한쪽 팔은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아서 병원에서는 절단하라고까지 했는데,- 다시 정상인 같아질 수 있다는 건 꿈도 꾸지 않았지요.- 아무튼 그냥 봉합수술을 하고 말았습니다.당시에 저는 장애 3급판정을 받은 장애상태였습니다.

제 직업이 건축업입니다. 건축일 이라는 것이 다들 아시다시피 거칠잖습니까? 병원에서 나와서는 한 2년여는 집에서 꼼짝 못했습니다.몸이 안좋아지니까 사람이 못쓰게 되더라구요. 생계도 그렇고 몸이 좀 나아진다 싶어 다시 일을 시작했어요.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고 한참이 지났지요.내가 현장소장으로 있던 건축회사 사장이었던 이규석이란 분이 결정적인 국선도 안내자였어요. 한번은 그분 댁에를 찾아갔는데, 그 당시만해도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한쪽 팔(왼쪽팔)은 아예 몸에 칭칭 묶고, 내 몸이긴 하지만 붙어있기만 했지 신경이고 관절이고 뭐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닌 상태였으니까요.

그분이 그런 저를 보더니 팔은 왜 그러냐 묻더라구요.뭐 이래 저래 해서 이렇게 되었다.그랬더니 무슨 책을 한 권 주면서 읽어보래요.가만 보니까 밝돌법 뭐 그런 책이었어요.(밝받는 법이라는 책이었겠군요.) 예 <밝받는 법>이라는 책이었지요. 그 책을 주면서 또 단전호흡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봤냐는 겨예요. 나도 단전호흡이라는 말은 듣긴 들었지만 자세히 모르던 상태라 물었지요.

그게 뭡니까? 그분이 '단전으로 숨을 쉬는 것인데, 그러면 몸에 기운이 잘 흐르게 되어 아픈 데도 낫게 되고 좋아질 것이다. 건축일하는 사람이 팔이 그래서 어떻게 이 일을 계속 하느냐, 완전히 다 낫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많이 좋아질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선은 그 책을 잘 읽어보래요. '이 책은 청산선사라는 분이 단전호흡을 일반인들에게 보급하신 분인데, 그분 수련기도 있고 뭐', 하면서 자기 이야기를 해요.

그분이 애초에 당뇨에 합병이 와서 거의 인생을 포기했었다는 겨예요. 근데 누가 단전호흡이 좋다. 밑져야 분전이다. 한번 해봐라 그래 단전호흡을 시작했는데, 처음 방...뭐라는 분한테 배웠답니다.그러다 얼마되지 않아서부터 그분한테 배우지 않았답니다. 그 분 이야기로는 청산선사님 수련을 좀 바꾸고 그런 모양이예요. 그리고 종교나 뭐나 좀 맞지 않았었나 봐요.

저는 그때 우선 그 책을 읽기 시작했지요. 처음 책을 읽을 때는 조금 황당했어요. 그 수련기라는 내용이 소설같은데 실제 일어났던 일이라고 하고 또 그분이 생존해 계신다고 하고 사실 반쯤은 믿지 못했어요. 그런데 한번 더 읽었어요. 그런데, 한번 더 읽고 나니깐 내 몸이 사고 나기 이전으로 돌아가겠구나, 뭐 좋아지겠구나 그런 생각보다는 뭐랄까 도라고 해야하나요. 뭔가 살아가는 어떤 큰 기준을 세울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더라구요.

책 두 번 잘 읽고 그분한테 '이 수련은 어디 가서 해야 하느냐' 고 물었죠. 서면에 가면 있다는 거예요. 서울 종로3가 본원에서 하는 도장인데, 거기 가서 해보라는 거예요. 그래서 국선도 수련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가 94년 10월 8일이었습니다.

지금 생각이니까 그 날이 정말 내 인생에 한 전환점이 된 날입니다. 잊지 못할 날입니다. 큰 기대는 안했어요. 처음에는 '숨쉬기, 매일 쉬는건데 뭐 한 두달 배우면 되지 않겠느냐?' 생각했어요. 지금은 참 뭘 몰랐었지요. 처음 서면도장에 왔을 대 지도자가 박종구 사범인가 하는 분이 있었어요. 그분한테 '저는 몸은 이렇지만 회사에 계속 나가고 일이 바빠서 한 달만 배우겠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하겠습니다.'

처음 만나면서 했던 말이었지요.그분이 다른 말없이 그냥 한번 해보라고 하더라구요. 한 일주일정도 지났을까요. 배가 슬슬 아프기 시작하더니 변이 설사처럼 계속 나오는 거예요.거품 똥 말입니다. 사범님은 그런 일도 나타나고 하니 걱정말고 그냥 수련하라고만 하시지,나는 약을 먹은 것도 아니고 다른 특별한 원인이 있던 것도 아닌터라 걱정이 많았죠.그래도 반신반의 이왕 시작한 것 알려준 대로 수련만 계속했죠.그럭저럭 한 한달쯤 되었습니다

그때 중기전편 행공을 하던 땝니다. 아,준비.정리운동은, 그때 다른 회원들에게 미안할 정도였습니다.허리아래는 그 사고 때 다치진 않았지만 젊었을 대부터 관절염이 심해서 앉아서는 무릎을 제대로 쭉 펴지도 못하고 그냥 엉거주춤하게 앉아 팔은 제대로 바닥조차 짚을 수도 없지, 허리를 돌리거나 구부리지도 못하지 그저 남들 하는 것보고 따라서 몸통만 가까스로 틀어보는 정도였죠.생각해보세요. 장난치는 것같지 않았겠어요? 남 보기에는.

그래도 나는 진땀을 흘렸습니다. 누굴 업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고, 팔 뒤로 깍지 껴 잡는다는 것도 어디 마음이나 먹었겠습니까? 그래도 무리하려고는 하지 않았지만 워낙 몸이 굳어 있던 때라 흉내만 내는 것도 내게는 무리가 되곤 했죠.

한 달만 하겠다던 한 달이 지났습니다.그동안 그 배가 살살 아프고 수시로 나오던 거품 똥도 어느 샌지 사라졌습니다. 아, 한 달만 더 해보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그때 사범님이 웃으면서 한 달 더 해보라고 하시대요. 또 한 달이 지났어요.그런데 이제는 뭔가 내게 달라져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호흡을 하면,그때까지도 준비,정리운동은 아직 흉내 내는 수준 이었구요. 머리가 맑아지는 거예요. 사고 전부터 그랬지만 두통이 있었던 데가 사고 후 더 심해져서 그때는 두통약 사리돈을 가방이고 주머니고 한 주먹씩 가지고 다니면서 통증이 심해지면 두 알씩 세 알씩 먹고,그랬죠. 그런데,머리가 시원해지고 그러면서 두통이 없어진 거예요.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하고 몸무게가 줄어들기 시작 하더라고요. 제 키가 160cm 좀 못되는데 그 당시 몸무게는65kg 이었으니까 많이 나가는 편이었죠.몸 무게가 56~57kg으로 줄어들었어요. 그렇게 이제 3개월쯤 되었어요. 그때까지 담배를 참 많이 피웠어요. 처음 이야기할 때, 건축 일이 현장에서 뛰는 일이 거칠다고 했는데, 술 담배는 옆에 붙이고 사는 거 아닙니까? 그런 담배를 하루에 두 갑에서 세 갑까지 피웠는데, 담배를 피울 수가 없는거라,담배는 학교 다닐 때부터라 진이 박힐 대로 박힌 사람인데, 도저히 담배가 안 태워지는 겁니다.

쌩풀 냄새가 어찌나 나는지, 도저히 안돼, 심지어 찬물을 먹어가며 피워 볼려고 했는데, 기분도 영 이상하고 못피우겠 더라고요. 또 술은 제 얼굴이 술 좀 하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술 참 좋아했습니다.주량을 잘 모를 정도였으니까요. 근데, 술도 끊게 되었지, 일하는 사람들 고기 참 좋아하잖아요. 돼지고기 참 좋아했어요. 근데, 고기 먹은 다음날 새벽에 수련하고 있으면 끈끈하니 겨운 냄새가 올라오고 도저히 견딜 수 없는거라, 고기도 줄어들었어요.

근데 그즈음에 온몸이 아프기 시작하는거예요. 누구한테 흠씬 두들겨 맞은 것처럼 몸 구석구석이 심하게 통증이 오는 거예요. 아, 사고 말고 내가 앓았던 병들을 이야기할까요? 간염, 간염은 중동에 일하러 나가 있을 때부터 앓았고, 허리 디스크는 수술 후 계속 좋지 않았고, 폐결핵, 그리고 혈압이 선천적으로 있었고, 위장이 좋지 않았어요.

위염은 안고 살았으니까요. 거기다 사고까지 당했으니 어찌 해보질 못했던 거예요. 그런데, 뭐 이런 저런 변화들이 오는거예요. 그때 확신이 생긴겁니다. 인생의 한 기준점을 찾을 수 있겠구나. 제가 불교를 조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정신적인 면만 좀 기대를 했었는데, 이제는 몸도 좋아질 수 있겠구나, 그런 확신이 서는 거예요.

야, 밥은 안먹어도 행공은 빼먹지 말아야겠다.그렇게 결심했습니다. 그때부터 도장에서 수련 끝나면 집에 가서 하고, 제일이 계속 매달리며 하는 일은 아니었으니까 계속 수련하는 거예요. 하루 여덟시간 이상 수련했으니까요. 이제 맘먹고 수련하니 안되는 관절, 팔을 막 펼려고 하잖아요. 본격적으로 한다는데, 흉내만 내서야 되겠습니까?

그래 무리가 되는 겁니다. 아팠어요. 그래도 계속했지요.현장에 가서 그날 작업 지시하고 목욕탕에 갑니다. 뜨거운 물에 몸 담그고 나면 몸이 좀 풀리거든요. 근데 시간 지나면 또 맨 같아지는 거라. 그때가 내가 새벽 일찍 도장에 나오던 땝니다. 새벽 3시반쯤 도장에 일찍 나와서 수련하고 그 당시 진목법사님이 한번씩 내려와서 지도하고 그랬지요. 그 사범님이나 법사님한테 항의 비슷한 것도 많이 했지요. 숨 좀 쉬고 몸 좀 움직이는데 워 이리 아프냐구요. 근육 이런 게 그렇게 아프고, 입안도 붉히고 혓바닥이 하얗게 일어나고 겁이 안나겠어요. 국선도 수련하면 병이 낫는다는데 왜 나는 아프기만 하냐고 그래 그런걸 들어서 이야길해도 그냥 수련하라는 거예요. 그런 변화가 잇다는 거지요.

그럭저럭 6개월 가량이 지났어요. 몸이 조금씩 움직여 지는 거예요. 왼팔은 정말 조금씩 이지만 그래도 움직여지고 조금씩 펴지는 겁니다. 아까 도종사님 강의에서 호흡은 순리대로 하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때 중기 행공을 하면서 힘을 많이 줬어요. 어떡합니까? 몸이 순리대로 안되는데...

예, 그 6개월쯤에서 몸은 몸대로 아픈 것은 여전했지요. 엄청스레, 그때 저는 중기 전편 행공 이라고 해도 자세를 취할 수 없으니까 주로 누워서 호흡만 했지요. 앉거나 서서는 호흡이 안돼요.눕는 게 일이었으니까요. 근데 몸이 조금씩 펴지는 겁니다. 다리도 조금씩 벌어지고 엉거주춤 앉던 자세도 좀 바라지고 조금씩 앉아서 행공도 하고 그랬지요.

그래 하다가 9개월째 될 때였어요. 그때는 회원들 맨 뒤에서 행공 했어요. 앞에는 갈 엄두가 안났지요. 그때 내가 생애에서 느끼지 못하던 일인데, 몸이 확 풀렸어요. 갑자기 수련하다가 그랬지요. 아픈 것이 다 없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다리가 막 내 맘대로 벌어지고 몸이 내 맘대로 되는 겁니다. 그때 그 박 사범에게 그랬어요. '이기 무슨 이런 일이 있느냐고 이 희안한 일 아닙니까?

나는 막 기분이 좋아 죽는거라. 그때가 9개월째였어요. 박 사범도 열심히 하라고 했고 정말 신나서 열심히 했습니다. -한 1년 쯤 뒤에 박 사범은 그만 두었습니다. 여러 사정이 있었던 모양이예요. 근데, 저는(그 뒤로도 여러분들이 지도를 해주셨지만)지도자와 상관없이 누구 말을 들어도 대통령 아니라 누가 말해도 저는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겁니다. 국선도만 붙잡고 있었죠. 어떻게든지 계속 해야겠다. 마음 먹은 때가 바로 그 땝니다. 참 열심히 수련했습니다.

지금도 참 미안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겁니다. 내가 너무 일찍 수련장에 나와가지고 지도하는 분들께 방해를 많이 주지 않았나 하는 거예요. 그분들도 방해받지 않고 좀 편안하게 쉬어야 할 시간이었는데, 그게 지금도 참 미안하게 생각해요. 그런데 어떡합니까? 수련하는게 너무 좋았기 때문에 잠을 자는게 아까운 겁니다. 그렇게 수련을 했어요. 뭔지는 모르지만 그 뭔가를 이뤄보고 싶었던 것일까요. 밤낮 가리지 않고 장소도 가리지 않고 심지어 집사람도 아예 내놓을 정도였으니까요. 내 인생의 전부였다고 생각한 겁니다.

수련 시작한지 2년 쯤 지났을까. 그때는 새벽에 일어나 집에서 한 시간 수련하고 나올 때였습니다.중기 단법만 만 2년 반을 했으니까, 그때도 중기후편 동작 중에,서서 하는 동작을 할 때였죠. 몸이 그대로 튕겨 나간 거예요.용수철같이 튕겨 나가 문갑에 이마가 제대로 꽃혀 버린 겁니다. 뭐 상처가 생겨 대일 밴드를 붙이고 도장에 나왔습니다.(아직도 그 흉터가 좀 남긴 했지요)

수련하는 사람들이 밴드 붙은 걸 보더니 웃으면서 싸웠냐고 그래요. 그래 이차저차 이야기를 했더니 안믿는 겁니다. 어떡합니까? 사실이 그런 걸 할 수 없지요.

건곤 단법에 올라가면서부터 심정에 변화가 왔어요. 사회생활이 안되는 겁니다. 고민하다가 집사람에게 이야기를 했죠. 나 산에 가서 공부해야겠다. 우선 살아야 하겠고, 이 공부를 마치고싶다. 그랬더니 집사람은 가족들 살 길은 마련해놓고 산에 가든 뭘 하든 하는 거 아니냐는 거예요. 그래서 그 준비를 하는데 그즈음에 아내와 함께 절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아내 권유도 있었고 하여간 부처님 공부를 시작한 겁니다. 공부하다보니까, 저는 국선도와 불교를 한가지라고 생각하고 수련하고 공부하고 그렇습니다.

하여튼 그 생활의 방편으로 횟집을 차렸습니다.아내에게 맡기고 나는 범어사에 가서 앉아 있었죠. 그때가 97년이었는데, 아내 혼자 꾸려 나가는 장사가 잘 될 리 있습니까. 한 세달 버티다가 적자 폭이 너무 커져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그런 일을 치르고 아내가 수련하는 것을 말리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진이 빠질 대로 빠진 아내에게는 어쩔 수 없는 방법이었겠죠. 그때 한 10kg 빠졌으니 내가 보기에도 민망했고, 어쨌든 그 일을 계기로 아내에게 산에 갈 것을 포기한다고 했고, 일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건축일을 다시 시작한 겁니다.

건곤은 빨리 마쳤지요.97년도 말쯤 마쳤고, 원기 4번인가 할 때였는데, 온몸에서 끈끈한 액체가 나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옷은 말할 것 없고 침대 시트까지 누렇게 묻어 나고 냄새는 얼마나 지독한지 , 땀은 아닌데, 수련을 하고 있으면 그런 진액이 맺히거나 나오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줄줄 흘러 내리는 겁니다. 냄새 때문에 아내도 견디질 못하고 할 수 없이 딴 방을 쓰기까지 했으니까 상상이 가실런지...

소금물에 씻고 뭐 해봐도 그때 뿐이죠. 또 나오는 걸 어떡합니까. 그때 아내 성화도 그랬지만 나도 두려움반, 한 2달 쉬게 되었죠. 그게 지금은 한스럽기 그지없습니다.그 두달이 내 수련에 엄청난 후퇴를 가져왔습니다. 10년을 해도 다시 되돌리지 못할 그런 겁니다. 그때 그 일로 누구에게든 그래요. 국선도 수련은 쉬어선 안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무슨 이상한 변화가 생겨도 꾸준하게 절대로 쉬어서는 안된다.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누가 뭐래도 게을리 하면 안된다.

하루 쉬면 이틀은, 삼일은 더 해야지 된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수련해라. 나도 그래 일어나자마자 청산선사님,동서남북 또 부처님께 절을 올립니다.108 배를 합니다. 그리고 수련도장에 나오는 겁니다.감사하는 하나의 표현이고 그렇게 감사하는 마음을 하는데 게을러질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두 달을 쉬었지요. 수련을 쉬니까는 몸에서 냄새는 안나는데, 또 예전처럼 몸이 붓고 이상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아내에게 이야기하고 난 이거 해야한다. 봐라...

두 달만에 다시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회복하기 참 어려웠습니다. 얼마나 아쉬움이 많은지 국선도 수련인들은 시계바늘처럼 쉬지 않고 감사하고 하심하는 마음을 수련해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 말이 나왔으니 제 자랑하나 합니다. 통도사 포교원 안에 연화공양이라는 단체가 있어요. 실직자나 연로한 분들께 무료급식을 해드리는 단체예요. 제가 그 단체 회장입니다. 화요일마다 가서 봉사합니다.점심 한끼 봉사하는 것이지만 수련을 통해 알게 된 겁니다.수련을 해서 뭐 병이 나았다,건강해졌다, 새 삶을 살게 되었다, 정신적으로 건강해졌다,뭐 효과를 참 많이들 보았다는 사람들이 있지요.

그런데, 수련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밝음을 내 몸안에 받아 모셔 몸과 마음을 바로잡고 세상의 큰 이치를 알고, 그런데 여기까지는 시작이예요. 그리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 스스로 깨친 것을,안그렇습니까? 그것이 국선도 책에 나오는 구활창생이고,공욕지심을 드러내는 것이잖아요.

수련을 통해 배운 것 조금이고 작지만 주위를 살펴보면 할 일이 많은데, 좀 나눠주고 보살펴주는 거예요. 봉사를 많이 해야죠. 봉사도 직접 보면서 하는거예요. 무료급식하는데 가서 함께 이야기도 하고 그분들 모습을 지켜보는 겁니다.몸과 마음이 함께 가는 겁니다. 국선도 수련도 꼭 같아요. 수련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호흡이 어떻고, 뭐가 어떻고 말은 더 많잖아요? 체험을 해야죠. 어떻게 이야기 할 수 있습니까?

제가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이 안믿었어요. 근데, 몸이 이렇게 바뀌니까,말이 필요 없어요. 국선도 원기동작이 어려워도 못하는 동작이 거의 없어요. 얼마나 확실한 증거입니까? 밥은 굶어도 단전자리는 꼭 의식에 두고 삽니다. 그렇게 버릇이 들었습니다. 수련할 때만이 아니라 항상 그런 자세 그런 마음을 가지고 다니는 겁니다.

몸이 훈훈해요. 항상, 몸이 좀 안좋아질만 해서 수련에 몰두하면 또 단전자리에서부터 몸이 훈훈해지는 겁니다. 처음 수련할 때에는 몸이 좋아지는 기분이 좋아서라면, 지금은 그 훈훈해지는 그 느낌에 맛이 들었어요.항상 몸이 뜨뜻해요. 무슨 일을 해도 피곤하거나 싫증이 나지 않고 그저 훈훈해요. 마음을 그냥 툭 놓고 풀어 버리니까 모공이 열리는 것같아요. 느낌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런 훈훈한 느낌

10 시에 잠이 듭니다.술 담배는 일체 안하고,식사는 원체 소식이고 주로 채식위주예요. 고기를 먹을 경우에는 나 스스로 압니다.내일 수련할 때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하겠구나, 방귀가 그렇게 나와요.

얼마 전에 종합검진을 받았습니다.박형근 내과라는 병원인데,예전에 한 십년전이죠.수련 시작하기 전에 거기서 검사받을 때, 앞에서 이야기한 오만가지 병이 있다고 했었는데, 이번에 갔더니 병, 하나도 없답니다. 제가 예전에는 얼마나 민감했는지 나한테 감기가 오면 이제 계절이 바뀌는구나 하고 주변사람들이 이야기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감기에 자주 걸리는 체질이었는데, 감기가 어딨습니까? 아주 건강하대요. 그분 의사가 그래요.'뭘 했길래 그러냐'고 국선도라고 단전호흡을 해서라고 그랬죠. 기분 참 좋았답니다. 수련하러 가면서 나는 항상 그런 생각을 합니다. 보약 먹으러 간다고..

내가 지독한 사람이예요. 건축일도요,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했습니다. 한번도 한눈 안팔고요. 도장도 그래요, 다른 도장,가까운 도장에 갈 법도 한데, 아녜요. 계속입니다.그러니 국선도는 오죽합니까? 수련은...,앞으로 국선도 대학을 마치고 또 저 나름대로 국선도를 아직 모르는 사람들에게 할 일이 또 생기겠지요.

제 생각에는 수련에 있어서 한 3,4년 째가 가장 고비인 것 같습니다. 그때 그대로 밀어붙여야지요. 초심자의 마음으로 말입니다. 회원들 보면 답답할 때가 많아요. 몇 달 다니다 쉬고 또 몇 달 다니다 쉬고 아쉽고 답답해요. 백띠 매신 분들에게 적극적으로 해야지요. 청띠,홍띠,그분들은 뭐래도 합니다.내 버려둬도 잘 하는데,초심자들은 계속 살펴보고 지도해야지 않그렇습니까.

이번 우리 수자님 자랑 같아서는 한 3,4년 붙잡고 부산 여기 진구 서면전수장에서 함께 수련했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몸이 좋지 않아서 또 그 몸을 추스리느라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해도 다 이해해준 아내와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합니다.

...국선도 여름과 가을호에서 부산 김정두씨의 체험기...

(장세민의국선도 홈피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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