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심심할때 마다 보는 글이어요..
물계자
물계자는 신라 제 10세 내해왕 때 사람이다. 신라시대 많은 위인 중에서도 더욱 뛰어난 사람이었으나 사가의 기록은 너무 초초(草草)하다. 그것은 사가들의 잘못이라기보다 오히려 물계자의 인물이 엄청나게 비범했기 때문이다.
대체 역사상 인물로서 어떤 종류의 사람은 실력 이상으로 과장하는 수도 있고 어떤 종류의 사람은 실력보다 너무나 줄여져서 전해지는 수도 있다. 이를테면 백 근 드는 힘을 가진 사람이 백 근 짜리를 들 기회를 얻게 된다면 그 때 그 실력은 정당하게 발휘될 것이지만 천근을 들 수 있는 사람이 이백 근이나 삼백 근 혹은 칠백 근이나 팔백 근을 들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온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정당한 기회는 못되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백 근이나 이백 근을 들 수 있는 사람은 흔히 그 정당한 기회를 가질 수 있지만 천 근이나 이천 근을 들 수 있는 사람은 평생을 두고 그 온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수가 많다.
물계자는 그 힘이 천 근인지 이천 근인지 혹은 그 이상 몇 천 근인지 알기 쉬운 인물이 아니다. 그러나 물계자는 평생을 두고 자기 힘보다는 너무나 거리가 먼, 말하자면 백 근도 채 못되는 기회밖에는 얻지 못한 편이었다. 그러므로 역사의 기자(記者)가 그 실력은 기록할 길이 없고 그 든 바가 얼마 되지 않은 채 그대로 기록하게 되는 것인데 이런 궁금한 일은 물계자 뿐이 아니라 고금을 두고 그 수효가 적지 않을 것이다. 실상 물계자는 역사의 전면에 나타난 몸보다 그 배면(背面)에 숨은 몸이 무릇 몇 배나 될는지는 알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사람의 몸이란 그 어느 부분이든지 기실은 그 전체의 성격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니 이를테면 그 눈 하나도 그럴 수가 있다. 누구나 그 눈과 그 손을 자세히 살필 수만 있다면 그 전체의 성격을 아주 알 수 없는 것만도 아니다.
그런데 우리 물계자의 손이나 눈은 그나마 역사의 전면에 흐릿하게 나타났을 뿐이지만 그래도 우리들은 물계자의 자손이라 우리의 호흡과 혈맥은 이따금 물계자의 그윽한 회포를 느껴 아는 것이다.
물계자는 아무 이름도 없는 집사람이어서 그 교유하는 친구들도 무슨 세력이 있거나 유명한 사람은 그리 없었다. 그 식견은 비범하고 그 도술은 신기했지만 그리 배운 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평생에 좋아하는 것은 검술과 음악인데 그것 또한 별로 배운 데가 있었던 것이 아니며 그저 타고난 천분(天分)이 이런 것을 좋아했고 또 좋아하였으므로 부지런히 쉬지 않고 공부하는 도안 신기한 묘리를 두고두고 혼자서 깨쳤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을 좋아한 것도 무슨 특별한 기망(冀望)을 가졌던 것보다 첫째는 그냥 좋아서 한 것이고 그보다도 오히려 심심풀이로 했던 편이었다. 심심풀이란 말이 났으니 말이지 물계자처럼 심심한 사람도 많지 않았다. 물계자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모두가 물계자에게 배우려 하는 사람들이고 물계자를 알아 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물계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한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무도 자기를 몰라주는데 대한 불평이라곤 조금도 없었으며 오히려 누가 자기를 아는 체 하는 때는 차라리 그것을 옳게 여기는 기색이 아니었고 또 옳게 여기지 않는 것이 과연 옳았던 것이다. 이러고 보니 절로 심심한 때가 많았고 심심한 때면 의례 칼을 만지거나 혹은 거문고를 안고 앉는 것이 평생의 버릇이었다. 심심한 때만이 아니라 누구에게 마땅치 못한 말을 듣거나 세상에 걱정스러운 소문을 듣거나 하는 때는 칼을 가지고 숲 속으로 들어가서 칼춤을 추든지 그렇지 않으면 거문고를 끼고 시냇 물가로 가든지 하였으며 그래서 어떤 때는 낮에 나가면 밤에 들어오거나 밤에 나가면 아침에 들어오거나 하는 수가 한 두 번이 아니어서 물계자의 부인은 남편을 아끼는 마음으로,
"아무런 일이 있더라도 제 끼니나 잡숫고 잠이나 제대로 주무실 일이지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그러면 어디 속 타는 사람은 없나요?"
하고 은근히 나무란 적도 있었다. 그런 때는 평소에 말 없는 물계자인지라
"글쎄, 그 말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오."
할 뿐 별반 시원한 대답을 하려 들지 않았다.
이렇게 태연한 물계자이련만 그 젊은 때는 가다가 사나운 일도 있었다.
가까운 부락에 아주 불량한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는 힘이 장사요, 게다가 그 근처에서는 검술도 짝이 없었다. 그래서 어떠한 것을 하든지 그를 당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세상이 쉬운 것이라 생각한 이 어린 영웅은 못할 짓이 없어 사람을 쳐죽이기도 했고 좀 얼굴이나 예쁜 계집이면 그것이 누구의 아내거나 뭣이거나 그 남편이 보거나 말거나 불구하고 제 하고 싶은 짓은 끝끝내 다 해내고 말던 것이었다.
그때 물계자는 세상에 적수 없는 영웅을 찾아가서 처음에는 좋은 말로
"그 좋은 힘과 좋은 술법을 아껴두었다가 천하를 위해서 환란을 덜어주는 것이 장부의 할 일이 아니겠는가?"
하고 타이르기도 하였지만 그러나 그 사람에게 이러한 점잖은 말이 위에 들어갈 리가 없었다. 그래도 물계자는 다시 정색을 하고는
"옳은 말을 들을 귀가 없으면 허는 수 없이 다른 법으로 듣게 할 수밖에……."
하였다. 그러자 그 영웅은 크게 웃으면서 웃통을 벗고 주먹을 칼처럼 들고서는
"너 이거 아느냐?"
하고 물었다. 물계자는 오히려 몸을 뒤로 지쓱하게 버티며 되물었다.
"네가 그것을 아느냐?"
그러자 그 영웅은 두 눈에 불을 흘리면서 벼락같이 바른 편 주먹으로 물계자의 가슴을 쳤다. 그 때 누구나 보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물계자는 그 자리에서 부서져 해골이 남았으리라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그 주먹을 치던 영웅은 도리어 제 주먹이 탁 풀린 채 땅에 나가 거꾸러졌다. 그 때 물계자는 몸을 바로 잡으면서
"아까 처럼 주먹을 다시 들어! 들지 못하면 죽어!"
하였다. 팔목이 부러진 가여운 영웅은 이것이 과연 영웅의 말로(末路)라고 생각했는지 슬픈 목소리로,
"이대로 죽나?"
하였다. 그러나 팔목은 부러졌을망정 그래도 장사인지라 성한 두 다리를 믿었던지 무슨 생각을 하고는 힘차게 일어섰다. 일어서자마자 벼락을 치는 소리가 나면서 다시 자빠졌다. 그때 한 쪽 발목이 또 부러진 것이다. 바른 발목과 왼편 발목이 부러진 말로(末路)의 영웅은 그제서야 잔명(殘命)이나마 살려줍시사 하고 빌었다.
물계자는 자리를 고쳐 앉고는 점잖은 목소리로 이렇게 타일렀다.
"이 불쌍한 놈아! 약한 놈이면 약한 놈인 채 남의 집 머슴을 할 것이지. 이놈아. 글쎄 그 낙지발목 같은 뼈대를 가지고 분수 없이 덤벼! 그러나 너를 살려 줄 터이니 남은 한 팔과 한 다리로라도 가지고 죄 짓던 부락으로 가서 두고두고 죄 닦음을 해."
이런 일이 있은 뒤로 그 근처에는 불량한 사람이라고는 자취가 끊어졌을 뿐 아니라 모두가 물계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게 되었다. 시나위(향가(鄕歌))를 잘 부리기로, 거문고 잘 타기로, 춤 잘 추기로, 말 없기로는 유명했지만 이렇게 절인지력(絶人之力)이 있었던 줄은 아무도 몰랐던 만큼 모두 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놀란 나머지 이야기 거리가 안 될 수 없었다.
그 불량한 사람으로 해서 해를 입은 자는 부락 사람들 중에 이 일을 통쾌하게 감사하게 생각했던지 오새끼진 암탉을 두어 마리씩 묶어서 안고 오는 사람, 온 마리 돼지를 삶아 오는 사람, 고운 세목필을 끼고 오는 사람, 익은 홍시나 오툴이 알밤만을 한 짐씩 지고 오는 사람들이 문전에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물계자는 이러한 사람이 오는 족족 호령을 해서 쫓아버리는 것이었다.
그 불량한 사람을 처치하는데 그 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건만 그 뒤 간혹 병신된 자의 소식을 들을 적마다 물계자의 마음 한구석에는 오래 두고두고 오히려 심하게 했다 하는 한 가닥 뉘우침이 가시지 않았다.
언제나 말이 적고 누가 무슨 말을 하던지 별반 대답 없이 싱긋 웃어 버리고 마는 물계자이지만 그럴싸한 술이 있으면 누구나 권하는 대로 과히 사양 않고 얼마든지 마셨고, 또 술이 취하면 누가 과히 청할 것도 없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며 혹시 좋은 봄철이라 달 밝은 밤이라든지 한 때면 같이 취한 근처 사람들과 어우러져 의례히 앞장 서 활개를 벌리고 춤을 추는 것이었다. 이럴 때의 그는 자기가 지은 노래, 자기 작곡에 춤까지 끼워 선창을 대는 것인데 유별나게도 키 큰 물계자가 황새 춤으로 선창을 대면 여러 사람들이 일제히 뒤를 받는 것이었다. 그 노래는 "봄술"이라 하였다.
삼거리 주막에 나그네 오고,
삼거리 주막에 나그네 가네.
나그네 가는 날 나그네 오고,
나그네 오는 날 나그네 가네.
달 좋은 봄철이 몇 밤이뇨,
알뜰한 이 밤이 가단 말이.
얼씨구 놀잔다 벗님네요,
얼씨구 들씨구 놀다 가세.
접동새 비렁에 꽃이 피고,
접동새 비령에 꽃이 지네.
꽃 지는 가지에 꽃이 피고
꽃 피는 가지에 꽃이 지네
남자나 여자나 아이나 어른이나 그 누구 할 것도 없이 물계자가 나오면 반겨 인사를 했고, 술이 있으면 반드시 물계자를 청했다. 청하면 술만은 의례 사양 않고 응했으며 언제나 조금도 얼굴에 불평이 없이 누구에게든지 좋은 말만 하였다.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걱정 없는 물계자" 혹은 심히 말하는 사람이라면 "속 없는 물계자"라고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걱정 없는 물계자로 불려지는 그 속일수록 외롭고 심심하고 궁금한 것으로 꽉 차 있었다.
그래서 바람이 분다든지 비가 온다든지 할 적이면 흔히는 한 밤중에 혼자 일어나 앉아서 거문고를 만지는 것이었다. 그럴 때는 네 활개를 벌리고 "봄술 타령"을 선창을 하던 물계자와는 또 딴판이었다.
이러한 때의 그는 매양 그윽한 소리로 누가 엿듣는 것을 두려워나 하듯 목을 나직히 해서
"마누라"
하고 불렀고 또한 이것이 한 두 번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두고 익은 버릇임을 잘 아는 부인은 언제나 부드러운 목소리와 조용한 얼굴빛으로,
"예"
하고 순하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 그저께 그 집에서 얻어 온 막걸리 남지 않았소?"
부인이 의례 준비해 둔 술항아리를 옮겨다 주면 물계자는 몇 모금 목을 축이고 나서 자기가 작곡한 가락으로 우렁차게 거문고 줄을 울렸으며 이따금은 이 또한 자작의 사슬로써 혼자 병창(倂唱) 하기도 하였다.
바다가 울어 성낸 물결이
야흰 밤중에 왼땅이 뒤누어
미르가 짓나니 구비를 치나니
구비를 치나니 미르가 짓나니
벼락아 아느뇨, 사나이 가슴을
바람이 일어 세찬 바람이
천리를 부어 만리를 가자
자던 갈범이 으흐렁 으흐렁
쌍불이 철철철 바람을 달려라
벼락아 아느뇨 사나이 가슴을
그런데 이 곡조는 "벼락아 아느뇨"가 제목이었고 벼락이란 다름 아닌 자기 칼 이름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거문조 타기를 마치면 그는 한 밤중에 번개같은 칼을 빼들고는 가만히 두 눈을 칼날에 모아 아무리 술을 마셔도 술기도 없는 채 오랫동안 흙이나 돌로 만든 사람처럼 앉아 있는 버릇이 있었다.
처음에 부인이
"저렇게 앉아있으면 칼이 무슨 이야기나 하나요?"
하고 조롱하듯 물어본 적도 있었으나 나중에는 원 채 여러 해를 두고두고 익은 일이라 부인마저도 아랑곳하지 않고 옆에서 잠들던 것이었다.
남모르는 한숨과 함께 쉬지 않는 수련으로써 청년 시대를 지내보내고 그럭저럭 중년이 된 물계자는 어지러운 번민도 우둘우둘한 개기도 다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고 익을 대로 익어서 그 생각이나 말씨나 모든 행동이 조금도 어색한 데가 없었다. 그래서 번민을 품은 사람이나 무슨 걱정이나 있는 사람들이 물계자를 대하면 별반 신기한 말을 듣기도 전에 저절로 마음이 가라앉고 가슴이 부드러워졌다. 그런지 물계자가 주연이 되었을 때는 검술, 음악, 그리고 검(神靈)을 섬기는 묘리는 말할 것 없고 혹은 처세법, 혹은 정치, 혹은 군사를 물으려 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며 또 그의 초당(草堂)에는 언제나 몇 달 혹은 몇 해를 두고 전심으로 자기 지망대로 수련을 쌓고 있는 몇 사람의 청년들이 묵고 있었다.
물계자는 누가 무엇을 묻든지 그 말 따라 예사로 대답을 해주었다. 그러나 특별한 지망을 가지고 오랜 세월을 두고 수련을 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과목(科目) 수련의 준비 과정으로 정신의 수련부터 먼저 시켰다. 이를테면 검술을 배우러 온 사람에겐 먼저 음악을 가르치고 음악을 배우려 온 사람에게는 먼저 검술을 가르치는데 그것은 무엇이든지 도리란 두 가지 없다는 묘미를 깨쳐 얻은 물계자로서는 의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물계자는 제자들에게 항상 이런 말을 하였다.
"검술이나 음악이나 그밖에 무엇이나 열 가지고 백 가지고 간에 그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 꼭 바른 도리이기만 하다면 반드시 둘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를테면 거문고를 탈 때 만약 손으로 타는 것이라면 아무 손이라도 같은 거문고 소리를 낼 것이다.
그러나 거문고 소리는 누구든지 다 같지 않다. 같은 손으로 타는 거문고이건만 사람 사람에 따라 다 다른 것은 마침내 손이 타는 것이 아니라 손 말고 다른 무엇이 타는 까닭이다. 또 칼을 손이나 눈으로 쓴다면 것도 될 말이 아니다. 손으로 쓸 것 같으면 아무 손이나 칼을 쓸 수 있고 눈으로 쓰는 것이라면 그것 또한 그럴 수 있을 텐데 다 같은 손과 다 같은 눈으로써 칼을 쓸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쓰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것은 역시 칼을 손이나 눈으로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손이나 눈 말고 다른 그 무엇이 있는 것이니 그것은 칼을 쓰거나 거문고를 타거나 둘이 아닌 그 무엇, 쉽게 말하자면 그것을 사람의 '얼'이라고 해두자. 천 가지 만 가지 도리가 다 이 얼에서 생겨나는 것이니 얼을 떼어놓고 이것이니 저것이니 하는 것은 소 그림자를 붙들어다가 밭을 갈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허망한 소견이야."
그래서 늘 수련을 시킬 때 먼저 그 사람을 조용히 자리에 앉게 하고 의례 처음 묻는 말이
"너 숨 쉴 줄 아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안다든지 모른다든지 간에 이어서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숨이란 만들어서 쉬는 것이 아니라 절로 쉬는 것이야. 그러나 숨을 바쁘게 쉬는 사람도 있고 늘어지게 쉬는 사람도 있어. 숨도 저마다 꼭 고르게 쉬는 건 아니거든. 그러므로 숨을 고루는 것이 '얼'의 앉을 자리를 닦는 것이니 얼의 자리가 임의롭고 난 뒤에야 무슨 수행이든지 할 수 있는 거야. 그러나 먼저 말과 같이 숨을 고른다는 것과 숨을 만드는 것은 아주 딴판이란 말야. 모든 수행을 그냥 두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은 좀 섭섭한 일이긴 하나 큰 병신까지는 아니지만, 숨을 만들어 쉬는 것 같이 더 큰 병신은 없는 거야. 그러나 세상에는 숨을 만들어 쉬는 사람들이 적지도 않은 것이니, 너희들은 별수 없는 사람이 될지언정 병신은 되지 말아야 해. 숨을 고른다, 얼의 자리를 닦는다, 천만가지 일과 천만가지 이치가 여기서 시작되는 법이거든. 여기서 시작된 것이 아니면 참된 지경에 이를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설령 모르는 사람의 눈을 속여넘기는 수 있으랴 하고라도 검님이 그런 사람의 눈에 그물을 덮어 버리는 거야."
그리하여 칼을 배우러 온 사람에게 거문고를 가르치거나 거문고를 배우러 온 사람에게는 칼을 가르치거나 할 때 어떤 사람은 흔히
"선생님 저의 지망은 다르옵는데……."
하는 수가 있었는데 물계자는 한결같이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였다.
"글세 알아. 모르고 하는 일이 아니야. 천만 가지 일과 천만 가지 이치가 둘이 아닌 줄 꼭 알란 말이야. 얼의 앉을 자리만 닦아지면 아무 것이나 다 이룰 수 있는 법이야."
이러한 방법의 수련으로 얼마를 지내고 나서는 누구나 대선인(大仙人)의 신통한 교육법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항상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은 누구나 제 빛깔(자기본색)이 있는 법이어서 그것을 잃은 사람은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는 것이고 잘났거나 못났거나 이 제 빛깔을 그냥 지닌 사람만이 제 길수(자연의 묘리)를 찾게 되는 법이야. 보라! 꾀꼬리 소리 아름답고 까마귀 소리는 곱지 않다지만 그것이 다 제 빛깔이거든. 노루는 뛰기를 잘하고 솔개는 날기를 잘 하거니와 뛰는대로 나는대로 그것 역시 제 빛깔 제 길수야. 까마귀가 꾀꼬리 소리를 내는 체 하거나 노루가 나는 체 하거나 이것은 모두 다 제 빛깔을 잃은 것이니 백년을 가도 천년을 가도 제 길수를 얻지 못하는 법이야. 어린애 말씨는 말이 되지 않은 채 어른의 귀에 괴이지마는 철든 사람이 이런 흉내를 내다가는 웃음꺼리나 되고 말 것이니 이것이 다 제 빛깔 제 길수를 보이고 있는 것이거든. 그러나 제 빛깔이라는 것은 제 멋(자기 취향)과는 다른 것이야. 누구나 제 멋이 있어 하지만 제멋대로 논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맞는 것이 아니야. 아무에게나 맞는 제멋이 있고 한 사람에게도 맞지 않는 제 멋이 있으니, 아무에게나 맞을 수 있는 제멋은 먼저 제 빛깔을 지녀서 제 길수를 얻은 그 멋이고, 한 사람에게도 맞을 수 없는 제 멋이란 제 길수를 얻지 못한 그것이야. 말하자면 제 빛깔과 절로(자연)와가 한데 빚어서 함뿍 괴고 나면 제작(천인묘합)에 이르는 법인데, 이 '제작'이란 것은 사람의 생각이 검님(神)의 마음에 태이는(和合)것이요, 검님의 마음이 사람의 생각에 태이는 것이니 말하자면 사람의 무엇이나 이루었다고 하면 그것은 다른 게 아니라 이 제작에 이르렀다는 것이야."
이러한 가르침을 거친 물계자의 제자들인지라 그들은 모두 각기 전문은 다를망정 모두가 서로 생각과 말이 통하지 않는 게 없었다.
이러구러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에 저절로 물계자를 중심으로 한 한 개의 풍기(風氣)가 생겼다. 그 풍기란 물계자 문인(門人)이 치고는 빽빽하거나, 어색하거나, 멋지거나, 까불거나, 설넘치거나, 고리거나, 비리거리나, 얄밉게나, 젠체 하거나, 따분하거나, 악착한 사람은 아주 없는 것이었다. 누구나 척 대하기만 하면 물계자 문인인 줄 알만큼 풍기가 생겼으므로 세상 사람들은 물계자 문인들을 모두 멋(風流)쟁이라고 말하게 되었다. 아닌 게 아니라 문인들 자신도 모두 멋쟁이로 자처하고 그것을 당연히 받을 휘호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물계자도 이 말을 듣고는
"세상 사람들이 아주 모르기만 한 것은 아니야. 흥, 멋쟁이? 글쎄 딴 말이 있을 수도 없지.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멋(風流)이란 과연 그 무엇인지 알기나 하고 하는 말인지? 흥, 멋(風流), 하늘과 사람 사이에서 서로 통하는 것이 멋이야. 하늘에 통하지 아니 한 멋은 있을 수 없어. 만일 있다면 그야말로 설 멋(틀린 멋)이란 게야. 제가 멋이나 있는 체 할 때 벌써 하늘과 통하는 길이 막히는 법이거든."
멋이란 말을 할 때마다 물계자의 얼굴은 오히려 엄숙해졌었다. 그리고 가장 수련이 높은 제자를 향해,
"참 멋과 제작은 마침내 한 지경이니 너희들이 여기까지 알는지? 사우(調和)맞지 않는 멋은 없는 것이며, 터지지 않는 멋도 없는 것이니 사우맞지 않고 터지지 않은 제작이 있는가?"
하고 깊이 타이르기도 하였다.
이런 말을 들을 때 환희와 감격에 넘쳐서 눈물을 흘리면서 걸하는 제자도 있었다.
물계자는 칼을 쓸 적마다 언제든지 먼저 숨을 고루었다. 그리고는
"살려지이다."
라는 기도사를 몇 번이든지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정성을 다하여 기도를 올린 다음 의례히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면 이어 춤을 추었다. 그리하여 춤이 끝난 다음에 비로소 칼을 쓰는 것이 언제나 변함 없는 순서였기 때문에 물계자 문인들은 의례 대선인의 하는 순서대로 따랐다.
그래서 그네들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고, 노래하는 마음으로 춤을 추고, 기도와 노래와 춤추는 마음으로 칼을 썼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네들은 칼을 쓸 때 기도하는 경건과 노래 부르고 춤추는 화기(和氣)를 언제든지 틈 없이 지니고 있었다. 만약 칼을 쓸 적에 이러한 경건과 화기에 틈이 날 때는 칼을 땅에 높고 의례 하던 순서대로 다시 숨을 고르고 기도를 올리는 것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물계자의 사제들만 나서게 되면 천하에 어떠한 강적도 닥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였으며 또한 그들 자신도 이러한 것을 자허(自許)하고 있었다.
물계자는 비상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때를 기다리는 체 하지도 않아다.
그러나 세상일은 사람의 마음 같지 않은 것이 더 많은 동시에 가다가는 사람의 생각 이상으로 사람의 생각대로 가는 수도 있는 것이어서 물계자 자신은 때를 기다리든 말든 세상은 물계자 같은 큰 날개를 한번 날려 보지 않을 리 없었다. 그래서 이 큰 날개를 한 번 날치게 할 풍편(風便)은 마침내 불어왔던 것이다.
내해왕 17년 임진(壬辰)에 보라(保羅:고성(固城)) 사물(史勿:사천(泗川)) 등을 비롯하여 모두 요렇게 생긴 여덟 나라가 세력을 모아 신라를 침노해 들어왔다. 그때 관군은 왕자 날음(捺音)이 주장(主將)이 되어 이 여덟 나라 군사를 대항하게 되었는데 전세는 몹시 불리한 바 있었다. 이 소문을 들은 물계자는 갑주를 갖춘 다음 칼을 메고 한길에서 외쳤다.
"신라의 사나이들아 일어서라!"
물계자가 외치기도 전에 그 문인들은 이미 모두 무장을 하고 신들을 단단히 메고는 바쁘게 물계자를 향해서 달음박질을 치고 있었다. 물계자의 사제들이 아우성을 치면서 나서게 되니 신라의 청년들의 사기가 북돋우어진 것은 물론이고 그들은 스스로 기운을 뽐내면서 행여나 빠질 새라 물계자의 뒤를 쫓았다.
물계자는 주장 날음의 휘하에서 가서 고패를 드렸다. 그때 날음의 장졸이 얼마나 기뻐했는가는 더 말할 것 없을 것이다.
여러 날을 두고 시달리던 신라의 군사들이 물계자의 인솔한 군사가 오히려 앞장을 서서 싸우게 되자 다시 기운을 얻었다. 그래서 몇 시간도 되지 않아서 적국 군사들은 많이는 달아나고 남은 장졸들은 항복하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그 싸움에 수공이 물계자인 것은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주장 날음과 그 막사(幕士)들의 생각은 물계자를 수훈으로 받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물계자에게는 조그만 공훈도 표창하지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그만 두면 그만 두었지 조그마한 공훈을 표창한다는 것은 과연 어색한 일이었다.
물계자는 이때 약간의 고통이 없을 수 없었다. 그것은 물계자 자신에겐 고통도 아무것도 아니었으나 휘하의 눈치는 적지 않은 불평이 떠돌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휘하들의 아음을 어떻게 풀어놓느냐 하는 것이 잠깐 동안 고통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 물계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휘하들의 이러한 불평을 풀 수 있는 아무런 도리도 없었을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대선인 물계자인지라 그는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까지 처리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물계자는 휘하를 모아 세운 다음
"그대들은 숨을 쉴 줄 아는가?"
하고 물었다. 그 때 물계자의 문인들만은 일제히
"예"
하면서 머리를 숙이자 물계자는 이어 또 물었다.
"그대들은 노래를 부를 줄 아는가?"
"예"
"적군을 향해서 칼을 쓸 적에 노래를 부르고 춤추는 화기를 지녔던가?"
그때 비로소 군사들은 무슨 즐거운 일이나 생긴 것처럼 기쁜 목소리로 일제히
"예"
하고 아우성을 쳤다. 그것을 본 물계자는 눈을 아래로 내려 감고 입 속에서 중얼거리듯 가만히 기도사를 외었다.
"살려지이다."
그 소리는 그다지 크지도 않았건만 온 군중에 다 울린 것은 물론이고, 근처 산천까지 울리게 하였다. 물계자는 다시 눈을 크게 뜨고 힘차게 말을 이었다.
"신라의 남자들아. 우리는 분명 적을 물리쳤다. 적을 물리친 것은 분명히 신라 청년의 자랑이다. 이것으로써 우리들은 족하다."
그때 휘하 군사들은 모두가 물계자의 거룩한 태도와 우렁차고 씩씩한 거동에 도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돌아오는 길에 앞장 선 물계자를 따라 "봄술"을 노래 부르고 춤 추면서 조금도 원망하는 기색 없이 고향 땅을 밟았다. 그러나 고향에 있는 부형들은 관군의 처리에 다소 불평이 없지 않았다. 그 중에 물계자를 보고 이렇게 묻는 사람도 있었다.
"주장의 한 짓이 잘못 아닌가요?"
이런 말을 한 사람씩 와서 하는 적도 있었고 몇 사람이 떼를 지어 와서는 하는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물계자는 몹시 귀찮았으나 그렇다고 입을 다물고만 있을 수도 없어 그 사람들이 알아듣도록 몇 마디 말을 해주었다.
"공훈의 표창이란 나랏님의 하시는 일이야. 아무러하든 군소리 할 데는 없어."
이런 대답에 묻던 사람들이 만족하여 그냥 잠자코 있을리도 만무했다.
"나랏님께 삷아서라도 받을 상은 받아야 할거 아니요? 그냥 있으면 누가 알아주오?"
"내 공을 자랑하기 위해서 남의 허물을 말하는 것은 설 멋진 일이야. 더구나 우리는 신라의 사나이요, 그 중에도 세상 사람들 말과 같이 우리 멋쟁이들은 제 빛깔, 제 멋으로 사는 속이며 그저 승전을 했으니 검님이 고마울 뿐, 더욱 더욱 수련을 쌓아 또 다시 나라를 위해 우리의 멋을 풀어 보고 싶은 생각 뿐이야."
물계자의 이런 말에도 사람들의 의혹은 그리 상쾌하게 풀리지는 않았으나 그의 터지고 꺼림 없는 태도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계자의 문인들은 물계자의 감화로써 자기네 자신에 대한 불평만은 완전히 없어졌다. 그러나 주장의 처리가 부당하다는 생각은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유여한 실력들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관직에 나아가기를 기뻐하지 않았다. 그 때 물계자는 이것들을 이대로 두었다가는 한 개 불평의 당파가 이루어질 것을 염려하였다. 가실 그 문인들은 주장에 대한 불평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들의 물계자에 대한 숭배는 흥분할 정도로 더욱 높아져 갔다. 그러고 보니 물계자의 걱정 또한 문인들의 생각이 이러할수록 더 깊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하루는 문인들을 불러 놓고 차근차근히 타일렀다.
"실력이 없어 공명이 초조한 것은 천한 장부의 일이지만 그만한 재주들을 품고 세상을 방관하는 것도 반드시 사우맞는 일은 아니야. 그리고 또 수행이라는 것은 실세간에 들어가서 단련을 겪는 것도 역시 한 묘법임을 알아야 해. 그대들이 이 물계자를 참으로 아껴 주고 참으로 믿는다면 모두들 관직에 나아가서 나랏일을 돕는 것이 옳지 않은가?"
그래도 유예하는 수효가 적지도 않은 광경을 살핀 물계자는 다시 정색을 하고 조금 소리를 가다듬어
"내가 그대들에게 명령을 해도 좋지?"
하였는데 그 목소리는 자못 위엄에 찬 것이었다. 제자들은 모두 허리를 굽히면서 일제히 대답했다.
"새삼스러운 말씀을 다 하십니다."
"음 그러면 좋아. 오래두고 유예할 것도 없이 이 자리에서 모두들 관직에 나아가겠다는 다짐을 둬."
이 말에는 제자들 모두
"선생님의 가르치심이라 어기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말을 들은 물계자는 반겨하면서도 얼굴빛이 얼마간 풀어졌다.
"사람이 불평을 품기 시작하면 병 뿌리가 몸에 있는 것과 같아서 그것이 곧 사람을 비틀어지게 하는 큰 뿌리란 말이야. 자기 자신도 모르는 동안에 마침내 비틀어진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야. 그래 내가 언제나 숨을 고루라는 것을 그리 쉽게 알아서는 안돼. 내 숨이 고루어졌느냐, 얼의 앉을 자리가 발라졌느냐 하는 것을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단 말이야. 천지는 화기로써 언제나 사우가 맞아 있는 것이며, 사람도 이 화기를 잃을 때 그냥 사우가 어그러지는 법이니 사우가 어그러지면 마음과 몸이 함께 비틀어질 밖에……. 그런데 언제나 이 화기를 지니는 묘법이 숨을 고르는데 있는 것이다. 숨을 고룬다는 것은 코로만이 아닌 것을 잘 알아야 해. 내가 화기를 가질 때 천지의 화기가 곧 나의 화기라는 것을 증득할 때가 있어. 마침내 사람이 무엇을 하거나 천지의 화기로써 나의 화기를 삼게 하는 일만이 사람되어 난 멋이란 거야."
그리고는 물계자는 웃음을 머금고
"이 멋쟁이들아. 공연히 멋쟁이, 멋쟁이 하고 말만 멋쟁이라는 것은 역시 사우맞지 않은 일이야. 다들 잘 알았어?"
하였다. 물계자가 말을 다 마치자 그 자리의 공기는 그냥 봄바람이었다. 화기에 넘치는 사제들은 이내 함께 어울어져 술자리가 벌어졌다. 그들은 모임이 있을 때마다 언제나 하는 합창을 먼저 소리 높이 부르고 나서 노래하는 사람. 거문고 타는 사람. 춤 추는 사람들로 황홀한 잔치가 베풀어졌다. 그 합창의 작곡과 사슬(辭)은 물론 춤가락까지 모두가 역시 물계자의 솜씨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런 일이 있은 며칠 뒤에 다수의 문인들이 모두 관직에 나아가는 길을 떠났다.
물계자는 짝 없이 비범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은 언제나 평함한 처세를 하는 것이 가장 큰 길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남되도록 살고 남되도록 놀고 해서 이상한 것을 조금도 남에게 보이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화옹의 의장(意匠)은 사람의 생각 이상으로 교묘한 법이라 비상한 물계자를 지어낸 조화옹의 뜻은 물계자 자신이 아무리 평범하게 지내 버리겠다고 생각하더라도 그와는 달리 역시 물계자의 처세를 비범하도록만 몰고 가는 것이었다. 지낸 일만 해도 물계자 자신으로서는 모든 것이 평범한 처사라고 생각하였지만 남들이 보아서는 그것을 평범하다고 생각할 리도 만무했다. 그런데 조화옹은 역시 물계자의 종막을 가장 비범하게 하려는 고심이었던지 또 한 기회가 왔다.
물계자가 먼저 의병으로서 출전해서 승전하고 돌아온 뒤 무릇 몇 해 만이었던지 아마 좀 오랜 세월을 지낸 뒤 골포국(骨浦國:창원) 등 세 나라 임금들이 모두 군사를 거느리고 신라의 갈화성(竭火城:울산))을 침노해 들어왔다. 그 때 신라에서도 임금이 친히 대군을 거느리고 적군을 맞았는데 그 싸움 역시 물계자가 없었더라면 그리 쉽사리 적을 격퇴할 수가 없었다.
이때 물계자는 이미 백수를 휘날리는 노장, 아니 노장이라기 보다 한 점 먼지 끼도 없이 깨끗한 노선인이었다. 이 노선인은 이번엔 먼지처럼 많은 휘하를 거느리지 않고 필마단기로 표연히 군문(軍門)에 나타났던 것이었다. 그 때 그 풍도(風度)에 신라 군사보다도 적군들이 오히려 더 감탄했다.
노선인은 싸움을 싸운다기보다는 차라리 긴 칼을 휘두르면서도 학처럼 춤을 추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몸은 가볍고 날쌔어서 나는 듯 하였다. 이 춤인즉, 곧 칼쓰는 묘법인지라 칼 빛이 번쩍이는 곳마다 적군은 바람에 밀리듯 나자빠졌다.
이리해서 쉽사리 적군을 물리치고 돌아온 물계자는 약간의 땀을 닦으면서
"뭐니뭐니 해도 사람은 역시 나이 먹으면 늙는 거야. 웬 땀이 다 났어……."
하고 빙그레 웃었다.
그 때도 아니 먼저 싸울 때보다도 더하게 물계자의 인물을 어려워하고 경계하는 것은 과연 신라 사람들 중에서도 멋 모르는 신라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의례 그러리라고 미리부터 짐작하고 있던 물계자는 조그마한 주막을 찾아 막걸리 몇 사발을 마시고는 아무 말 없이 말을 재쳐 자기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두 번째 출전에도 상쾌한 승전을 하고 돌아온 물계자느 언제나 그렇지만 역시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 태연한 태도로 이웃집 막걸리 대접이나 받고 돌아다니면서 놀았었다. 그러나 물계자 자신이 태연하면 태연할수록 그만치 사람들은 도리어 흥분하고 의분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도 그랬거니와 그 중에서도 물계자의 문인들은 거의 더 참을 수 없는 불평을 품었다. 먼저부터 군직에 있던 문인들도 이번 싸움에 전공으로써 영광스런 지위를 얻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들은 자기들의 지위가 다른 사람에게 영광스럽게 보일수록 자신의 마음 속에는 더욱 더 고통을 느꼈다. 그래서 마침내 그 중에서 물계자의 문인으로 가장 수행이 높은 두, 세 사람이 물계자를 찾았다. 그런데 그네들은 무시무시한 한 가지 결심을 품고 온 것이었다. 그 사람들은 물계자의 앞에 와서 공손히 절을 하고는 단정히 무릎을 꿇고 머뭇머뭇 말을 끄집어 냈다.
"선생님 기골은 그리 변하지 안 했습니다. 그러나……."
하고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그 장사들의 눈에는 일제히 굵은 눈물이 떨어졌다. 물계자는 말을 다 듣지 않아도 그들이 무슨 말을 하려는가를 잘 알고 있는 듯 더 이이서 듣고 싶지도 않은 모양으로 손을 저으며
"그만 둬. 글쎄 공부들이 아직 멀었어.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불렀고 내가 추고 싶은 춤을 추었을 뿐이야. 세상에 나만치 제 멋대로만 하는 사나이도 흔치 않을 거야. 내 마음대로 내 멋대로 흥청거린 나머지 그 나마 언짢은 일이 없었고 적이 물러가 백성이 편안해져, 게다가 나라의 힘이 자라게 되니 이거야말로 일거양득이 아닌가? 남았지 남아. 조금도 밑진 것이 없어. 그리고 언젠가도 내가 일렀지만 다시들 숨을 고르도록 해…….
무슨 말이든 언제나 듣기만 하던 물계자이건만 무엇을 생각했는지 이번에는 그냥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선생님"
그 목소리는 떨리고 살기를 띄었다.
"저희들을 죽게 해줍시사."
그때 손을 내저으면서 소리 높여
"이놈!"
하는 물계자의 눈에는 번개가 쳤다.
"못하는 거야. 백성을 위해서 못하는 거야. 누구든지 제 일로 해서 사람의 피는 더 말할 것 없고 개미 한 마리도 해치는 법이 아니야. 아니, 만민을 도탄에 들게 하는 괴변이나 있다면 그 때는 혹시 생각해 볼 수도 있어. 그러나 다른 일에 큰 허물이 없고 다만 내 한사람에게 대한 처리가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일삼는 것은 멋 모르는 놈의 일이야. 오히려 생각들이 모자라는 사람들을 깨우쳐 주기는커녕 무슨 거칠은 말버릇으로 죽네 사네 하고 야단이야!. 이 익지 못한 설 멋진 놈들."
이 말을 듣고 난 문인들은
"예. 알아 차렸습니다. 감히 어길 리 없습니다."
하고는 다시 더 말이 없었으나 그래도 어딘지 시원치 않은 구석이 남은 듯 그들이 처음에 생각한 바 있었던 것이 정리될 동안은 물계자의 초당에서 몇 날이고 묵고 있었다. 물계자 역시 시원치 않은 기색을 가지고 있는 그들의 고민을 모르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물계자의 간곡한 말에도 시원치 않던 그 장사들이 어느 날 물계자가 밖에 나간 사이에 물계자 부인에게서 어떤 이야기를 듣고 난 뒤로는 모두 태도가 달라졌다. 그 부인의 말은 이러했다.
-문인들이 와서 이야기한 사흘 뒤에 물계자는 칼과 창과 갑주를 모두 장에 넣어 잠그고 철판으로 장문을 봉해버리더니 언제나 치성드리는 신단 앞에 가서 얼마 동안 치성을 드린 뒤에 땀을 닦고 돌아나오면서 혼자말로
"검님은 내 원을 들어 주셨어."
하더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장사들은 무슨 일인지 명백히 알 수는 없었으나 몹시 두려운 생각이 나서 물계자로부터 자기네들에게 무슨 이야기가 다시 있기를 기다렸다.
물계자가 어느 하루 마침내 그 사람들을 신단 앞으로 데리고 가서 치성을 드리게 하고는 자기 방으로 불러 들여앉혔다. 그리고 그는 한참 동안 잠자코 무엇을 생각하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언제나 하던 말이지만 칼이란 본디 죽이는 것이 칼이 아니라 살리는 것이 칼인 줄 알아야 해. 나는 이 일은 조금도 염려말고 그대들의 수행이 아직 멀었으니 오래 두고 힘을 쓰면 내 하는 일이 그대들의 생각에 멀지 않을 거야……. 아직도 그대들의 화기가 돌려지지 않았다. 숨이 고르게 되어질 동안까지 내 곁에서 머물러 있는 게 좋을 줄 알아……."
물계자는 말을 잠시 멈추고는 문인들의 얼굴들을 쭉 훑어보고는 다시 말을 떼었다.
"두 번이나 싸움에 나가서 나 멋대로 놀았고 게다가 싸움에 이겼을 뿐 아니라 아무데도 상처 한 군데 없이 성한 몸뚱이 그냥 남았으니 얼마나 복스러운 일이야. 이로부터 남은 세월은 참으로 거칠 데 없는 노름이란 말이거든. 그리고 앞으로는 칼쓸 일도 그리 없을 거야."
이날부터 며칠이 안가 그 장사들의 갑갑한 가슴은 도로 부드럽게 풀어지면서 과연 숨도 고르게 되고 화기도 돌아졌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돌아간 뒤에도 거의 비는 날 없이 비슷비슷한 말을 와서 묻는 사람이 많았다.
이런 날마다 물계자는 그 사람들이 알아듣도록 말을 해서 보내기는 하나 당할 때마다 근지럽고 귀찮은 일이었다. 그래서 하루는 그 부인을 보고 은근히 물었다.
"여보, 언제든지 마누라가 가서 캐 온 산채, 그 나물이 사치산 것이라고 하지 않았소?"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 때 엉개(해동엽(海桐葉))랑 두룹(대두엽(大頭葉))이랑 더구나 그 중에서도 더덕을 유난스럽게 맛나게 잡수셨지요. 그런데 지금 새삼스럽게 그것 왜 물으신담……?"
하고 의아스러운 낯을 지어 보이니까, 물계자는 난데없는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이었다.
"내가 벌써 삼사십년 전 한 스무나무살 적에 사람 다치는 호랑이가 그 근처에 있다고 해서 창을 가지고 호랑이를 쫓아 사치 고개를 지나가는데 어느 골짜기던가 그 골짜기 이름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거기 물 맛이란 어디 무슨 맛도 비할 수가 없었더란 말이오. 이젠 세상에 난리도 별로 가까이 있지 않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대체 찾아오는 사람 말 대접을 해주기가 귀찮아……. 내가 보이지 않으면 그 사람들도 생각들을 돌리기가 쉬울 터이니 오래 주저할 것 없이 사치산으로 들어갑시다.
언제나 평생을 두고 한 번도 항거라고는 한 일이 없는 부인인지라 남편의 이 말에도 별로 놀라는 빛을 보이지 않았다.
"글쎄 아무 데를 가시든지 나는 의례히 따라만 다니는 그림자 밖에 아닌걸……."
이리하여 그리 무거울 리 없는 이사짐을 묶어 메기도 하고 이기도 해서 두 양주는 사치산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모든 일을 쉬 처리하는 물계자라 할지라도 집도 없는 사치산으로 요량없이 들어갈 리는 없었다. 기실은 부인에게 이야기하기 전에 벌써 며칠 동안 혼자 사치산에 들어가서 양지 바르고 물 길 가까운 언덕 밑에 비·바람 피할 만치 초막을 얽어 두고 왔던 것이다. 그는 산으로 들어가면서 자기가 지은 "사치산 가락"을 맑은 목청을 다 돋구어 힘차게 불렀다.
구름이 피어
구름이 나부껴
거듭에 더한 거듭
열두 거듭 흰 구름이 일어
사치산은 깊어 또 깊어라
물이 맑어
물이 흘러
샘풀은 골을 울려
시냇물은 구비를 들어
사치산은 깊고 또 깊어라
소나무 잣나무
벚나무 도토리나무
어흐럼 머루 다래
얼키 설키 한 덩쿨이
사치산은 깊고 또 깊어라
삼주 아기풀
주대뿌리 은초롱
사재발 겨우살이
임자 없는 불로초를
사치산은 깊어 또 깊어라
엉개 두릅
두라지 더덕
고비 고사리
원추리 참나물
사치산은 깊어 또 깊어라
꾀꼬리 접동새
뻐구기 부흥이
사슴이 국찌기
갈범 멧돼지
사치산은 깊어 또 깊어라
이런 꽃 저런 꽃
풀엔 풀꽃 나무엔 나무꽃
피는 꽃 지는 꽃
이름 없이 좋은 꽃을
사치산은 깊어 또 깊어라
개인 날 흐린 날
바람 불고 비오는 채
날마다 그럴 듯
거문고 소리 그윽할 때
사치산은 깊어 또 깊어라
물계자는 산에 들어간 뒤에 날 좋은 때면 매일 언제나 약 다래끼를 메고 집을 나서선 대개 저물어서 돌아왔다. 그리고 김치 국은 팔밭(火田)무가 좋다고 해서 그 근지에 조그마한 또야기 팔밭을 일으켰다. 팔밭을 일으키거나 갈고 심을 때는 흥겨워 일을 하는 물계자도 매고 가꾸고 거두는 일은 거의 마누라에게 맡겨 버리고 돌보려 하지 않았다. 그는 또한 대개 약초 술을 빚게 하여 술이 좋으면 지나치게 취하는 때도 있었다. 게다가 어디론지 나갔다. 남편이 가끔 그런 짓을 하니까 수상하게 생각한 마누라는 어느 날 뒤따라가 보았다.
물계자는 얼마 동안 숲 속을 해치며 가다가 조망이 좋고 양지 바른 산등성이에 자리를 잡더니 술상을 체모 있게 차려 놓은 다음 누구에게 권하는 것인지 술을 한 잔씩 땅에 비우고 또 자기가 한잔 마시고는 하는데 한 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그러니까 부인도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대개 짐작이 갔다. 그리고 그렇게 잔을 땅에 비우면서 물계자가 혼자 중얼거리는 말도 자세히 엿들으니 예전에 같이 술 먹던 사람들 이름을 부르는데 그 중에는 아직 살아있는 사람도 있었으나 모두가 죽은 사람 이름이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는 부인도 알 수 있었지만 모를 일은 먼저 두 번 싸움에서 죽은 적군들 혼백을 부르면서
"한잔 받아라"
하고는 큰 잔에 술을 부어 땅에 비우는 것이었다. 그것은 물계자가 적군들의 넋을 위로하는 것으로 그럴 때는 반드시 자기 목청을 다 뽑아서 아주 좋은 시나위 가락을 내어 특별히 적군의 전망장졸들의 넋을 불렀다.
또한 물계자는 가다가 집안에서 할 일이 없어 어중간할 때면 거문고를 끼고 흰 구름이 감도는 제일 높은 산봉우리 반석 위로 올라가서 하루 해를 보냈다. 부인이 집안에서 들으면 구름 위에서 물계자가 타는 거문고 소리가 내려오는데 하늬바람을 쫓아 그 거문고 소리가 온 사치산 골을 우리는 것이었다.
물계자의 부인은 평생을 두고 같이 지낸 자기 남편이건만 자기 남편이란 생각보다 오히려 사람하고는 다른 하늘 위의 신선이 내려온 듯한 느낌이 갈수록 깊어졌다.
사람은 언제나 처음보고 들을 때는 신기하여 여기지만 자주 보고 자주 들으면 별로 신기해 하지 않는 것이 세상에는 의례 있는 일이다. 그런데 물계자에 대한 부인의 생각은 세월이 지내 갈수록 더욱 신기하게만 느껴지는 것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물계자의 풍신(風神)은 세월이 흘러 늙으면 늙을수록 오히려 깨끗해져 갔는데 이러한 물계자를 조석으로 대하는 부인 자신도 웬 셈인지 사철이 해마다 바뀌어 나이는 제대로 먹어 가는데도 불구하고 도리어 몸이 가벼워지는 것이 이상스러웠다. 그 부인은 언제나 구름 밖에서 흘러내리는 "사치산 가락"에 귀 기울이며 늙는 줄 모르는 세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