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도는 경천사상(敬天思想)과 태양숭배사상(太陽崇拜思想)을 가진 우리 선조들이 하늘의 기운을 받아들이려고 보다 하늘과 가까운 높은 산에 올라가 깊은 숨쉬기를 하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며, 이렇게 수행을 하던 사람을 선인(仙人, 人) 또는 道人이라 하였습니다.
이러한 수련법은 삼국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보편화 되어 있었고, 명산대천을 순례하고 호연지기를 기르던 화랑도들의 수련법이 국선도입니다. 최치원 선생께서 쓰신 난랑비 서문에서 "우리민족에게는 고유한 현묘한 도가 있다. 그 도는 유, 불, 선의 사상을 모두 포함한 도이다" 하는 구절이 있는데 玄妙之道, 花郞道, 風流道, 國仙道가 모두 國선道의 옛명칭입니다.
국선도는 우리민족 고유의 道法으로서 이 道가 흥왕하던 고조선, 고구려등 상고시대에는 우리민족이 가장 강성하던 시대였으나 이 玄妙之道가 쇄퇴했던 고려, 조선시대 이후에는 불교와 유교의 事大사상에 빠져 주체성을 잃고 국운도 쇄퇴하던 시기이며, 孔子께서 君子가 사는 나라라 하여 경외하고 중국인들이 "군자불사지국"이라 하고 "해동성국"이라 칭하여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東夷族이 흥왕하던 시대에는 국선도(민족고유의 도)가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仙家書나 중국 선가서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광성자(廣成子)라는 仙人이 있다. 광성자는 上古의 선인입니다. 선가서 『靑鶴集』은 仙道의 始原이 광성자라고 밝혔다. 광성자가 언제 어디 사람이며 어떻게 선도를 닦아 선인이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다만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황제(黃帝)가 靑丘땅에서 광성자로부터 선도법을 전수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황제는 비록 중국 역사에 등장하지만, 실은 우리겨레인 東夷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황제가 선도법을 전수받은 청구땅도 동이사람들이 살던 곳이며, 광성자 역시 동이사람이었다고 여겨집니다. 광성자가 전했다는 선도법은 오늘날까지 면면하게 이어져 내려왔으며, 청산선사는 선도법의 원형이 『밝돌법』이며, 우리나라의 옛 성인들께서는 모두 『밝돌법』을 닦으셨다고 밝혔습니다.
선가서 『靑鶴集』에는 금선자(金蟬子)라는 선인이 등장하는데, 금선자는 卞沚가 쓴 『記壽四聞錄』이란 글을 인용하여 우리나라 선맥에 관해서 이런 얘길 전했습니다. " 아득한 옛날에 광성자란 선인이 있었다. 명유(明由)가 광성자한테서 선도를 전수받았다. 桓仁眞人(桓因天帝)은 명유의 제자다. 환인진인은 아들 桓雄天王한테 선도를 전했다. 환웅천왕은 세상에 나가 동방의 백성들을 교화했다. 그는 風雨와 五穀 등 인간사 3백 60여가지 일을 주관했다".
檀君은 환웅천왕의 아들이며, 단군이 아버지를 이어받아 백성을 교화하자, 九夷 백성이 모두 단군을 천왕으로 모셨습니다. 단군께서는 후에 아사달산으로 들어가 선인이 되셨다하였습니다. 상고의 三聖(桓因천제, 桓雄천왕, 단군성조)은 우리 고유의 선도법으로 백성을 교화하셨을 것입니다. 단군성조의 건국정신인 『홍익인간사상』도 이 선도법에서 탄생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국선도는 단군시대와 그 맥이 닿아있고 우리민족 고유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인지 민족의 수난기에, 예컨데 고려의 몽고침입기라든지 구한말 일제식민통치기에 맹렬히 부활하곤 했습다. 불행하게도 선도는 일찍이 선불습합(仙佛褶合) 과정에서 사찰의 산신각(山神閣)으로 포함되어 버렸으며 이에 앞서 선무습합(仙巫褶合) 과정에서 무교(巫敎)에 편입되어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