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종주기 (2008년 8월 11일~13일)
지난 겨울 설악산 종주를 마치고 나서 언젠가는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지리산 종주 산행을 이제야 하는구나 하는 기대를 안고 출발 준비를 마쳤다. 미리 예약해 놓은 무궁화호 열차를 용산에서 타기 위해서는 2시간 전에는 집에서 나서야 하는데 올림픽 게임이 발목을 잡는다. 하나만 더 보고 하나만 더 하다가 그만 바쁘게 서두르지 않으면 차를 타지 못할 판이다.
비도 온다고 하고 혼자 간다니 아내가 퉁퉁거린다. 한 마디 쏘아붙였다가 돌아올 때까지 속끓이고 있을 것같아 입맞춤으로 달래주고 길을 나섰다. 슈퍼에 들러 행동식과 건전지를 사서 지하철을 탔다. 환승역에서는 정신없이 뛰어서 출발 2분 남기고 간신히 구례구행 열차를 탈 수 있었다. 새벽 3시20분에 도착한다니 자리에 앉자마자 비가 오지 않기를 빌며 잠을 청한다. 전주를 지나며 뿌리기 시작하던 비가 구례구에 도착하니 장대비가 되었다. 이런 비에도 종주하려는 등산객이 시내버스를 다 채우고, 서서 가는 이도 있을 만큼 많다. 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타고 구례터미널에 경유하여 아침용 김밥 두 줄을 사서 성삼재에 도착하니 새벽 4시30분. 비는 여전히 세차게 퍼붓고 있다. 배낭커버를 씌우고 우의를 입고 랜턴을 켜고 스틱을 잡고 출발한다.
노고단 대피소<아침을 준비하는 숙박자들>
노고단의 천왕봉 방향 이정표
비를 뿌리는 노고단 대피소
1시간을 걸어 노고단대피소에 도착하니 비는 좀 잦아들고 불빛이 간간히 보인다. 처마 밑에 앉아 비를 피하며 김밥 두 줄을 물과 함께 밀어 넣었다. 제발 등산화에 물이 천천히 찼으면, 무릎이 잘 견디어 줬으면 하는 바람을 간절히 가지며 컨디션이 좋으면 대원사를, 체력이 도와주시 않으면 중산리를 날머리로 잡고 일차 목표 임걸령을 향한다. 등산로 곳곳이 물웅덩이어서 스틱을 이용해 징검다리 건너듯 껑충껑충 뛸 수밖에 없다. 배낭 무게는 30Kg이 넘어 어깨를 짓누르니 무릎이 걱정된다. 다른 무게를 최대한 줄였어도 대피소를 예약을 못해 혹시나 해서 텐트를 가지고 왔는데 그게 배낭무게를 더하게 했나보다. 오늘은 세석대피소까지 가서 1박할 계획을 잡고 출발했는데 바위는 미끄럽고 비는 얼굴을 때리고 여러 가지로 악조건이다. 계획을 수정하여 벽소령대피소에서 1박하는 것으로 수정할까 생각도 해 보았다. 임걸령을 지나 삼도봉까지 4시간 가까이 걸렸다. 미처 시계를 못 가지고 와서 어림짐작으로 시간을 생각하기도 하고 동행자들에게 물어가면서 걷는다.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를 가르는 삼도봉 삼각뿔을 한 번 어루만져보고는 다시 길을 재촉한다. 이미 온몸은 다 젖어서 무게는 더 무겁게 느껴진다. 빗물과 땀이 범벅이 되어 눈썹에서 떨어져 입으로 타고 든다. 차라리 갈증을 달랠 수가 있어 다행이라 생각하고 걸어보지만 슬슬 후회가 되기 시작한다. 하필 오늘을 택할게 뭐야. 일단 연하천 대피소에 가서 점심을 해 먹기로 하고 화개재, 토끼봉을 지나니 600계단이 나온다. 내려가는 길이니 다행이지 반대로 온다면 이건 죽음이다. 잠시도 비가 그치지 않으니 배낭을 내려놓을 수도 없다. 다행히 신발에 물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조금씩 어깨가 결리지만 무릎도 잘 견뎌주고 있다. 카메라를 가져왔지만 노고단에서 한두 컷 찍은 후에는 꺼낼 생각도 못한다. 지리산의 장엄한 파노라마는 고사하고 시야라도 좋았으면 좋겠다.
자연스럽게 앞서거니 뒷서거니 동행자들이 생겼다. 장인과 사위가 온 팀, 부부와 아들이 온 팀, 아버지와 어린 두 아들, 교회 수련회 온 초등학생들도 있다. 어린이들이 불평도 없이 지도교사를 잘도 따른다. 대견하여 절로 미소를 짓는다. 조급하게 마음 먹지 말고 내 페이스대로 걷자고 마음먹었지만 앞서가는 사람이 생기니 점점 발걸음이 빨라진다. 국립공원에서는 캠핑은 입구 야영장에서만 허용되고 취사도 대피소 취사장에서만 허용되고 전구역이 금지란다. 알고는 왔지만 벌금이 50만원이라고 겁을 주는 사람이 많다. 세석 직전에 또 긴 계단이 있다. 이번에는 오르막 계단이다.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 간절하다. 허기가 느껴질 즈음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해보니 비가 오는 관계로 좁은 취사장이 아수라장이다. 습기와 수증기가 가득찬 취사장 틈서리에 끼어 체력 유지를 위해 라면보다는 햇반과 국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잠시 숨을 돌리고 벽소령까지 가서 쉬기로 하고 출발한다. 벽소령까지는 점심을 먹은 후라 그럭저럭 무리없이 갈 수 있었지만 벽소령 대피소부터가 문제였다. 6Km 정도의 거리지만 체력이 완전히 고갈되어 발을 옮기기가 힘들다. 숨이 턱에 차오르고 땀과 빗물에 이제는 눈물까지 더하려 한다. 스틱의 고마움을 하루 종일 느끼고 무릎과 신발도 더없이 고맙지만 그냥 하산하고 싶은 맘이 굴뚝같은데 어쨌든 세석까지는 가야 하산로가 있다. 발바닥이 따끔거리고 어깨는 스슬려 따가워 온다. 다른 사람들은 세석에 예약을 해 놓았단다. 도착해도 지친 몸을 누일 자리가 없다는 것이 더 절망적으로 힘 빠지게 만든다. 영신봉을 오르는 철계단은 절망 그 자체였다. 벽소령~세석 구간은 지리산 마(魔)의 구간이다. 이제는 젖은 신발 속에서 질척이는 소리가 나고 발바닥은 물집이 생겼다.
세석 대피소 전의 칠선봉
세석산장의 직전 영신봉
정말 더 이상 말도 안나오고 체력의 한계가 왔다 싶을 때 오아시스, 천당과 같이 반가운 세석에 도착했다. 문순태의 소설 철쭉제에 나오는 세석평전. 오늘 세석에서 1박하기로 한 곳이다. 약 22,4Km 13시간을 걸어 도착한 것이다. 빈 자리가 없는 줄은 알지만 대기 번호라도 적어 놓으려고 최대한 지치고 불쌍한 표정으로 대피소 창구에 가서 자리 있냐고 물어본다. 지금은 자리가 없고 일단 저녁을 먹고 7시까지 기다려 보란다. 자리가 없으면 옆에 텐트라도 치려고 작정을 하고 나니 땀이 식고 해가 져 점점 추워온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따뜻한 긴 옷도 가지고 않았는데... 보온을 위해 다시 우의를 뒤집어쓰고 기다린다. 늦게 도착하는 사람들이 예약해 놓은 대피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너무나 부럽다. 다행히 우천관계로 예약했던 많은 등산객들이 무더기로 오지 않았단다. 너무나 다행이었다. 설악산처럼 대기 접수순이 아니라 노약자들이 먼저 배정되고 그다음 나이순으로 배정한단다. 난 언제쯤이나 배정될지 걱정하던 차에 오늘은 자리가 많이 비어 대기자 모두 배정된단다. 정말 다행이다. 배정받은 자리로 짐을 옮기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다행히 여러 겹으로 나누어 비닐 포장을 해 둔 관계로 배낭 안의 짐은 젖지 않았다. 비누나 치약을 사용할 수 없어 그냥 흐르는 물에 고양이 세수나 하고 말았다. 다소 불편하기는 하지만 우리 소중한 자연을 지키기 위해서는 감수해야 할 가치가 있다. 밥을 해 먹고 난 코펠도 그냥 휴지로 닦아 넣는다.
폭 90Cm밖에 되지 않는 내 자리에 침낭을 깔고 휴식을 취하며 주변의 산행객들과 얘기를 나누어 본다. 내 옆에 전라도 광주에서 왔다는 목포세무서에서 근무하는 50대 초반의 남자와 산에 대하여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단체 산행은 많이 하지 않았지만 네비게이션까지 모든 장비를 완벽히 갖추고 혼자 즐기는 등산객이었다. 인생 이야기, 가족 이야기, 직장이야기, 다른 사람은 어떤 삶을 사는지 배우기도 하고 반성하기도 하면서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소위 코드가 맞는 사람이라 오늘 저녁이 더욱 즐겁고 하루의 피로를 완전히 잊을 수 있었다. 다만 소주 한 잔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그 이는 완벽한 화대종주를 하고 있단다. 어제는 노고단에서 1박을 하고 오늘은 세석에서, 내일은 치밭목 대피소에서 3박을 하고 하산하려고 한단다. 일단 동행하기로 합의를 보고 지도를 펴고 시간 계산을 해본다.
오른쪽 옆에는 젊은이들인데 초보인지 산에 대하여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고 우리 둘은 아는 대로 자랑 섞어 가면 다소 전문가인 것처럼 설명해 주었다. 겨울에는 설악산 종주를 해 보라고 권해 주었다. 9시가 되니 모두 소등되었다. 내일은 비가 오지 않겠지 기대하며 스르르 눈을 감는다.
안개가 짙게 깔렸지만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는다. 어제 사귀었던 이와 아침을 해 먹고 짐을 꾸려 8시에 세석을 출발하였다. 장터목까지 3시간, 천왕봉까지 1시간이면 넉넉하리라 보고 쉬엄쉬엄 걷기로 하였다. 장터목이 아니면 점심 먹을 때가 없어 라면을 끓여 먹을까 하다가 그냥 행동식으로 대신하고 생각해보니 천왕봉에서 치밭목 대피소 거쳐 대원사까지 6시간은 잡아야 하겠다. 그럼 대원사에 저녁 7시에 도착. 이건 너무 늦다. 또 도로를 2Km 걸어 내려가 진주행 버스를 타야 하는데 그 시간에 진주를 간들 고속버스가 없을 것이다. 치밭목에서 1박을 더 할까 망설이다가, 체력이 소진된 것을 감안하면 무리한 일정인 것같아 계획을 변경한다. 일단 천왕봉을 오르고 장터목으로 빽해서 백무동으로 내려가기로 정했다.
세석평전 주변의 동자꽃이 비를 머금어 더욱 아름답습니다.
동자꽃과 흰색의 취나물꽃이 잘 어울려 있습니다. 보라색 꽃은 금강초롱 같기는 한데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천왕봉을 오르기 전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해 배낭을 내려놓고 한 컷!
배낭을 장터목에 두고 천왕봉을 향해 한참을 걸었는데 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몸은 젖어도 상관없지만 지갑과 핸드폰, 카메라가 있어서 고민하다가 우의를 가지러 다시 장터목으로 되돌아갔다가 한 시간 거리인 천왕봉에 도착하였다. 간간히 구름이 걷히고 하늘을 볼 수 있다. 때를 놓치지 않고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 있었다. 그나마 흔적이라도 남길 수 있어서 다행이다. 천왕봉에서 광주에서 온 동행인과 인사를 나누고 장터목으로 되돌아온다. 식수를 보충하고 백무동으로 내려온다. 4시 전까지는 내려와야 동서울터미널행 버스가 있단다. 한 시간 가량 내려 왔는데 남자 두 분이 거의 걷지를 못하고 다리를 끌고 내려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마음이 바빠 그냥 지나쳐 발걸음을 서두르다가 왠지 불편한 마음이 가시지 않아 되돌아가 준비해간 스프레이 파스를 뿌려주고 안전산행을 당부하고 늦은 만큼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드디어 천왕봉에 서다! 기념으로 울님 회장님과 총무님께 감사의 문자 전송
드디어 구름이 걷히고 마루금이 보이기 시작한다 반갑기 그지없다.
바위틈에 붙어선 주목들이 대견하다 가지가 북풍에 날려 남쪽으로만 자라고 있다.
외로운 고사목과 세석평전을 내려가는 한가로운 산행객들.....다행이 이정도의 아름다움이라도 감상하는 것에 감사한다.
날머리로 잡은 백무동 계곡이 아래로 내려다 보인다.
멀리 겹겹이 쌓인 산맥들이 보일려고 하니 또 먹구름이 몰려온다.
드디어 물소리가 나고 구름다리도 나온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약 3시간을 걸어 참샘 쯤에서야 해가 뜬다. 너무나 야속한 태양이다. 땀으로 젖은 몸을 식히기 위해 알탕할 자리를 물색하다가 등산로에서 보이지 않는 기막힌 자리를 잡았다. 시원한 계곡에 몸을 담그니 어제 씻지 못한 것까지 모든 피로가 다 날아간다. 이 맛은 힘들여 산행을 마친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달콤함이리라. 물속에 몸을 담그고 한숨 자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시간을 많이 지체했다.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야영장을 거쳐 가벼운 발걸음으로 하산했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종주 산행이었다. 총 36Km의 지리산 종주를 마감했다. 이번의 경험을 토대로 다시 한 번 화대종주를 하려고 생각한다. 뒷 지리산을 배경으로 사진 한 컷을 남기려 하다가 차표부터 끊어놓고 보자 생각하고 매표소로 가니 지금 동서울행 버스가 출발한단다. 그리고 다음 차는 6시에 있단다. 서둘러 매표를 하고 짐을 정리하려는데 출발 시간이 지났다고 빨리 타라고 보챈다. 경유지 함양에서 잔치국수로 허기를 채우고 피곤한 몸을 누이고 잠을 청하는데 창밖으로 비가 세차게 내린다. 산행 내내 괴롭혔던 참 지긋지긋한 비를 바라보며 눈을 감는다. 하산할 때 지친 걸음을 허위허위 걷다가 계단을 잘못 밟아 고꾸라졌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다. 스틱을 적절히 사용한 덕이다. 출발 때부터 걱정해준 울님들에게 감사드리고, 무사히 산행을 마친 것도 감사드린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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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해피통통 작성시간 08.08.19 회장님은 차별을 너무 하십니다~~~누군 짧게 한다고 뭐라고 하시드먼~~아무래도 영화배우 manager 인가 봅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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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푸른장미 작성시간 08.08.19 흑흑~~회장님은 영화배우만 좋아하시구~~ 내도 영화 배우 할까봐...행인1..아님 파출부1 욜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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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최규홍 작성시간 08.08.19 이효리 싸인하고 이영자 싸인하고 가터!!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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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호진 작성시간 08.08.21 역시 산울림의 대장님이네요.. 멋지십니다,부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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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섬마을 작성시간 08.08.27 참 곱다...........올 겨울에 꼭 가구싶다. 참곱고 포근한 품에 안기고 싶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