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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료

6.21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려 하신대(마3:1-17)

작성자김호정|작성시간26.06.18|조회수18 목록 댓글 0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위기가 찾아오는 이유는 결과주의에 매달려 있기 때문. 결과주의란 확인 가능한 것, 눈에 보이는 것에 매달린다는 것이다. 기도해도 응답이 당장 있어야 하고 사역해도 사역의 열매가 당장 보여야 한다는 결과를 구하기 때문이다.

사회에서도 결과주의가 팽배해 있지만 신앙에서도 결과주의에 매달려 있는 경우가 많다. 장기적으로 보지 못하고 눈앞에 있는 것만 보려고 하니까 가벼워진다. 크게 보면 다 이루어지는 것인데 눈앞에 있는 것만 보고 낙심하고 좌절한다. 그래서 신앙이라고 볼 수 없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증거다. 보이는 것을 누가 못 믿는가. 보이지 않는 것을 증거로 삼는 것이 진짜 믿음이다. 결과 신앙의 반대말이 과정의 신앙이다. 과정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과정을 하나님께 맡기기 때문에 우리가 전체를 다 못 보지만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을 붙들고 나아가는 것이다.

다람쥐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도토리. 다람쥐가 가을에 겨울을 준비하려고 도토리를 많이 모은다. 볼에 가득 넣고 옮겨다가 묻어 놓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서 약 10%만 찾는다고 한다. 쓸데없는 짓을 한 것 같이 보이지만 이게 하나님이 만드신 지혜다. 찾지 못하는 90% 도토리들이 참나무 숲을 이룬다. 그래서 실제로는 수천 배 더 많은 도토리를 얻게 된다.

뉴스를 보니까 80세 부부가 30년 전에 100만 원어치 종이로 된 주식을 샀는데 시간이 오래돼서 잊어버렸다. 그런데 요즘 휴면 증권 계좌를 찾아주는 프로그램으로 찾았더니 현재 3억이 되어 있더라.

우리 인생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찾으면 도토리에서 도토리로 끝나는 인생이다. 그런데 90% 찾지 못하는 것들이 풍성한 영적인 숲을 만드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우린 기도하고 헌신하면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렇지만 과정 전체가 하나님 앞에 의미가 있다. 내가 눈으로 체크할 수 있는 것은 10%도 안 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어서 그것이 일한다. 하나님이 그것을 통해서 수없이 많은 영혼과 생물들을 살리는 능력으로 사용해 주신다.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난 침례 요한은 활동도 예수님과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다. 요단강에서 침례를 주고 설교도 단순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내용이 전부다. 그러다가 헤롯에게 잡혀서 죽는다. 오랜 시간 동안을 준비하고 10%도 회수 못 한 것 같은 짧은 시간이다. 그런데 요한의 사역이 잃어버린 것 같이 보이지만 이것이 뿌리를 내려서 예수님의 사역과 연결되고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되었다. 광야에서 단순한 메시지를 전했음에도 이 사역이 예수님의 길을 예배하는 놀라운 사역이 되었다.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결과주의에 빠지지 말고 과정을 받아들이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내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다(1-4).

요한은 무슨 일을 하든지 신경 쓰지 않고 결과를 하나님께 맡겼다. 그런데 그 단순한 메시지에 사람들이 몰려와 회개하고 침례를 받았다. 사람들이 그를 좋아해서 몰려왔음에도 요한은 회개하라고 책망했다. 요한은 사람을 모으는 데 관심이 없었다. 침례란 씻음과 죽음이라는 뜻이 있다. 침례는 육체적으로 죽은 것이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영적으로 죽고 예수님이 내 주인 되시는 것이다. 침례 요한의 사역들이 예수님의 사역과 나중에 연결이 된다. 침례 요한의 제자들 가운데 예수님의 제자 된 사람들이 여럿 있다(5-12).

13절부터는 자신의 때와 예수님의 때가 연결된다. 신약 성경에 90번 정도 나오는데 '이 때에' 는 앞에 사건과 뒤의 사건을 연결할 때 쓰는 말이다. 요한의 사건이 독립적인 사건이 아니라 이 때에 예수님의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 예수님 사역과 연결돼서 엄청난 일들을 하더라는 것.

'예수님의 때' 에서 두 가지 질문을 할 수 있는데, 예수님이 왜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냐 하는 것.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기에 씻을 필요도 없고 죽으실 필요도 없는데 침례를 받으신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 여기서 십자가의 전조를 볼 수 있는데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죄인이 아니심에도 죄인의 자리에 서신 것이다. 온 인류의 죄를 끌어안고 죄와 예수님을 묶어 버리신 것. 유월절 어린 양이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죽는 것과 같이 대속하고 속죄하는 길을 가시겠다는 사인을 침례 사건에서 보여 주신 것이다(빌2:6-8). 그는 하나님이신데 죄인들과 같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침례 요한이 놀라서 ‘내가 당신에게서 침례를 받아야 하는데 예수님이 어떻게 침례를 받으려 하십니까? 할 때 예수님이, 허락하여 하나님의 의를 이루라 하신다. 이 의는 십자가의 의. 하나님과 화해를 이룰 수 있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13-15). 예수님은 철저하게 사명 중심으로 사셨다. 예수님이 죄인과 동일시하여 죄인과 묶여서 죄인들을 건져내신다. 그런데 우리는 몸이 아닌 머리로만 하려고 한다. 신앙의 파워는 몸으로 믿어야 나오는 것이다.

삭개오 사건을 우습게 여기지 마라(눅19). 그가 변화돼서 등쳐먹은 것은 네 배를 갚고 재산의 반을 가난한 자와 나누겠다 한다. 신앙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믿는 것이다. 실제로 나는 더 이상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고백이다. 예배도 기도도 증인된 삶도 현장에 나와서 몸으로 부딪쳐야 한다. 그래야 능력이 나타난다. 예수님이 개념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게 아니라 몸을 드리셨다. 그 시작이 침례다. 우리도 죄인과 나를 묶어 버려 같이 희생하고 죽을 수 있어야 열매를 거둔다.

예수님이 침례받으실 때 하늘이 열렸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하늘이 열려야 한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백하니 주님이 듣고 기뻐하시면서, [마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기도로 하늘을 열라는 것이다. 기도를 통해서 하늘이 열리면 하나님께서 능력과 은혜와 복을 주시고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우리가 무력하고 피폐하게 사는 이유가 기도가 없기 때문인데 기도는 천국 열쇠다.

하늘이 열리면 ‘사랑한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하늘을 닫아 놓고 이 땅에서 아등바등 살지 말고 기도라는 열쇠를 가지고 하늘의 문을 열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가지고 승리하자(16-17). 공생애의 시작부터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는 것이다.

* 결과 주의에 매달리지 말고 과정의 신앙을 가져야 한다. 과정이란 동행하시는 것과 맡기시는 것. 우리가 다 얻지 못해도 하나님께서 참나무 숲을 만들시기 위한 과정일 수 있다.

* 또 하나는 현장 속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헌심이 아니라 헌신이다. 머리로만 믿으려 하지 말고 몸으로 믿고 믿음과 삶이 일치하는 하나님의 종들이 되자.

* 그리고 기도로 하늘을 열자. 하나님께서 나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빛으로, 자녀로 보내셨다. 헌신하며 나아가면 사명자로 우리를 사용해 주실 것이다. 위로부터 그 능력을 받는 믿음의 종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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