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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그 어긋난 사랑

내 낡은 기타는 서러운 악보만을 기억하네

작성자hamartia|작성시간26.06.08|조회수18 목록 댓글 0

나 집시처럼 떠돌다 그대를 만났네

그대는 어느 먼 길을 걸어왔는지

바람이 깎아놓은 먼지조각처럼

길 위에 망연히 서 있었네

내 가슴의 푸른 샘물 한 줌으로

그대 메마른 입술 축여주고 싶었지만

아, 나는 집시처럼 떠돌다

어느 먼 옛날 가슴을 잃어버렸다네

가슴속 푸른 샘물도

내 눈물의 길을 따라

바다로 가버렸다네

나는 이제 너무 낡은 기타 하나만을 가졌네

내 낡은 기타는 서러운 악보만을 기억한다네

쏟아지는 햇살 아래서

기타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면

가응 가응, 나의 기타는

추억의 고양이 소리를 낸다네

떨리는 그 소리의 가여운 밀물로

그대 몸의 먼지들 날려버릴 수만 있다면

이 먼지 나는 길 위에서

그대는 한 잎의 푸른 음악으로

다시 돋아날 수도 있으련만

나 집시처럼 떠돌다 이제서야 그대를 만났네

그대는 어느 먼 길을 홀로 걸어왔는지

지금 내 앞에 망연히 서있네

서러운 악보처럼 펄럭이고 있네

 

 

.. 박정대 시집 <아무르 기타>(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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