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忠孝禮儀전통문화

[스크랩] 인의예지 · 수기치인(修己治人) / 이기동

작성자容王(禮山容40世)|작성시간10.02.10|조회수548 목록 댓글 0
   ▲ ‘仁義禮智(인의예지)’- 글. 이기동 (성균관대학교 유학 동양학부)


인의예지는 하나의 마음이지 네 개의 마음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은 본심과 욕심의 두 요소로 되어 있다.

본심은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변하지 않는 마음이고, 욕심은 살아가는
도중에 만들어진 변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본심을 잊어버리고
욕심에 따라서 사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욕심에 따라서 살 경우에는 후회할 일이 많아진다. 욕심은 늘
변하기 때문에, 욕심에 따라서 행동하면 그 욕심의 내용이 바뀐 뒤에는 늘 후회하게 된다. 욕심에 따라서 사는 사람은 언제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 이때 욕심을 못 채울 경우 욕구불만이 생겨 바로 고통을 받는다. 인간의 대부분의 고통은 욕구를 채우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그런데 욕심을 채웠을 경우에도 문제가 있다. 욕심을 채우는 순간 욕심이 더 커져 버리기 때문에 더 큰 욕구불만이 생기고 더 큰 고통을 받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욕심을 채우는 삶은 어떤 경우에도 고통으로 마감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욕심을 채우는 삶은 늘 남과 경쟁을 해야 하므로 긴장이 되고 피곤하다.

사람이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본심을 되찾아 본심에 따라서
사는 것뿐이다.     본심은 변하는 마음이 아니기 때문에 본심에 따라서
살면 후회할 일이 없다. 그런데 본심은 개인의 마음이면서 동시에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가지고 있는 마음이기 때문에 이를 ‘한마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본심에 따라서 살면 남을 나처럼 사랑하기 때문에 남과 경쟁하지 않고 조화를 이룬다. 다시 말하면 본심에 따라서 사는 사람은 늘
남과 조화를 이루면서 후회하지 않는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이 본심을 다시 찾아야 한다.

본심은 사람을 원만한 삶의 방향으로 유도하기 때문에
性(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性(성)은 心(심)과 生(생)이 합쳐진 글자로서 ‘살고자 하는 마음’이란 뜻이다. 맹자는 또 이 본심을 仁義禮智·인의예지
로 표현
하기도 했다. 이를 보면 성·性이 인의예지이고 인의예지가 성·性임을 알 수 있다.

인의예지(仁義禮智)는 하나의 마음이지 네 개의 마음이 아니다.
하나의 마음을 나타나는 성격에 따라 각각 다르게 이름을 붙인 것이다.
예를 들면 홍길동은 한사람인데, 키가 크다는 것을 보고 ‘키다리’로 부를 수도 있고, 꾀가 많다는 것을 보고 ‘꾀돌이’로 부를 수도 있는 것과 같다.

仁 (인) 은 사람의 본심, 즉 모든 사람이 동시에 가지고 있는 한마음과 그 한마음의 원초적 성격을 표현하여 붙인 말이다. 한마음에서 보면
남과 나의 구별이 없기 때문에 남을 나로 여기는 마음이 仁(인)으로
설명
된다. 공자는 자기가 서고 싶을 때 남을 세워주고 자기가 출세하고 싶을 때 남을 출세하게 해주는 마음을 인·仁이라 했고,
맹자는 조건 없이 남을 돕는 마음을 인·仁이라 했다. 사람의 마음은 인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본래 모습이기 때문에 본래의 상태가 또한 인으로 설명된다. 사람의 팔이 본래의 상태로 되어 있지 않은 경우, ‘팔이 불인하다.’라는 말로 표현한다. 욕심은 변하지만 한마음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한마음으로 살기만 하면 그의 삶의 내용은 영원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은 몸속에 들어있는 영원한 씨알이다. 복숭아씨를 桃仁(도인)이라 하고 살구의 씨를 杏仁(행인)이라 부르는 것이 이 때문이다.

義 (의) 는 미워하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다. 미워하고 부끄러워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이 다른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해치는 사람을 보면 미워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이를 보면 미워하는 마음은 사랑하는 마음의 한 표현방식임을 알 수 있다. 순박한 우리 민족을 못살게 구는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를 義士(의사)로 부르고, 침략자에 항거하여 일어난 병사를 義兵(의병)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음식을 먹는 것은 대부분 사랑스런 생명체를 먹는 것이기 때문에 음식을 먹을 때 부끄러운 마음이 생긴다. 이때의 부끄러운 마음 또한 의로운 마음이다. 욕심으로 사는 사람은 욕심을 채우기 위해 부정한 일을 저지르기 쉽지만, 본심으로 사는 사람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 부정을 저지르지 않는다. 이에서 부정을 저지르지 않는 정의로운 마음 또한 의로운 마음으로 정의된다. 욕심을 채우려는 사람은 윗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보고도 아부하거나 따르지만, 본심으로 사는 사람은 잘못하는 윗사람에 대해 저항을 한다. 이를 君臣有義(군신유의), 즉 임금과 신하 사이에 의가 있다는 말로 표현한다. 또 본래의 몸 상태가 아닌 사람이 본래의 몸 상태로 만드는 것을 또한 의로 설명한다. 본래의 팔 모양을 만들어 끼운 것을 義手(의수)라고 하고, 본래의 치아 모양을 만들어 끼운 것은 義齒(의치)라고 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또 형제가 있는 것이 사람의 본래
모습이므로, 형제가 없는 사람이 본래의 모습대로 형을 만들고 동생을 만든 것을 義兄(의형) 또는 義弟(의제)라 하는 것도 또한 이 때문이다.

禮 (예)는 사양하는 마음이다. 한마음에서 보면 모든 사람은 남이
아니다. 그러므로 몸이 불편한 사람이나 힘든 사람에게 자리나 순서를 양보하게 되는데, 이때의 마음을 禮(예)라 한다. 욕심은 혼란을 유발하지만, 한마음은 질서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질서 있는 방향으로 향하는 마음 또한 예라 한다. 이 외에도 예는 한마음에서 나타나는 구체적인
방식까지를 포함한다.

智 (지) 는 맹자에 의하면, 시비를 가리는 마음이다.
한마음은 원초적으로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며, 질서를 좋아하고
혼란을 싫어하게 되어 있으므로, 사람은 원래 선과 질서를 옳게 여기고,
악과 혼란을 싫어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를 특히 智(지)로 표현했다.
[자료: 성균 웹진 10월호]
▲ ‘修己治人(수기치인)’- 글. 이기동 교수 (성균관대학교 유학 동양학부)

자기 자신의 마음을 닦아 다른 사람을 다스린다


‘修己治人(수기치인)’. 유학의 전체 내용을 대변하는 말로,
자기 자신의 마음을 닦아 다른 사람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이다. ‘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우리 부모가 중요한 것도 ‘나’의 부모이기 때문이고, 가정이 중요한 것도 ‘나’의 가정이기 때문이며, 한국이 중요한 것도 ‘나’의 조국이기 때문이고, 지구가 중요한 것도 ‘나’의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목적은 ‘나’의 행복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학문은 ‘나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나’를 구성하는 것에는 마음과 몸이라는 두 요소가 있다.
이 중에서 어느 하나가 없으면 ‘나’는 존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의 온전한 삶은 이 두 요소가 원만하게 조화를 이룰 때 성립된다.
마음은 본래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하나의 마음이고, 몸은 각각 다른
개체로서 존재하는 것이지만, 마음은 보이지 않는 것이고 몸은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마음을 잃어버리고 몸만을 자기의 전부로 생각하고 몸을 위한 삶을 추구하기 쉽다. 몸은 남과 구별되는 것이므로 몸을 위한 삶에서는 남과 경쟁하려고 하는 욕심이 생겨난다. 그리고 일단
욕심이 생기고 난 뒤에는,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남과 경쟁을 하게 되고, 그 때문에 긴장하며 그래서 피곤해진다. 그러면서도
사람은 또 몸과 함께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불행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사람이 만약 이러한 불행을 직시한다면 이러한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이다. 이러한 불행은 잃어버린 본래의 마음을 되찾을 때
해결이 된다. 이 잃어버린 본래의 마음을 되찾는 것이 바로 수기(修己)이다. 맹자는 『맹자』에서 “학문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잃어버린 마음을 도로 찾는 것일 뿐이다.” 라고 했는데,
맹자가 말한 학문의 내용이 바로 수기(修己)이다.

수기(修己)를 해서 본래의 마음을 도로 찾으면 몸은 비록 남남으로 존재하지만 본래의 마음에서 남과 하나가 되기 때문에 서로 조화를 이룬다. 그렇게 되면 남과 경쟁을 하지 않고 여유를 가지게 되어 느긋해지므로 더 이상 피곤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몸은 비록 늙어가더라도 마음은
늙지 않는 것이고, 몸은 비록 죽더라도 마음은 죽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 마음의 입장에서 늙고 죽는 슬픔을 극복할 수 있다.

수기를 완성한 사람 자신에게는 아무 것도 문제될 것이 없지만 수기를 완성하는 순간 바로 새로운 문제가 나타난다. 본마음은 모든 사람이
다 같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마음이기 때문에 본마음을 회복하고 나면 남이 더 이상 남이 아니라 나로 바뀌기 때문에, 남의 불행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남는데, 그 과제가 바로 치인(治人)이다.
치인(治人)이란 ‘남을 다스린다.’는 뜻이므로 ‘남의 불행을 해결한다.’
는 뜻을 표현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그래서 공자는 『논어』에서,
“자기를 닦아서 남을 편안하게 한다.”고 하여, 안인(安人), 즉
‘남을 편안케 한다.’는 뜻으로 표현했다. 그러던 것이 순자(荀子)
이래로 뜻이 왜곡되어 치인(治人)으로 바뀌고 말았다.

유학의 전체 내용을 개괄적으로 서술한 서적이『대학』이란 책인데, 『대학』에서는 유학의 전체 내용을 삼강령(三綱領)과 팔조목(八條目)으로 설명하고 있다. 삼강령은 명명덕(明明德). 친민(親民). 지어지선
(至於至善) 이고, 팔조목은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
(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인데,
삼강령(三綱領)을 자세하게 설명한 것이 팔조목(八條目)이다.
삼강령(三綱領) 中에서 명명덕이 수기에 해당되고, 친민이 치인에
해당된다. 수기와 치인이 완성되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일체의
불행을 극복한 상태에서 도래하는 이상적인 상태를 맞이하는데
그것을 지어지선(至於至善)이라 했다.
또 팔조목(八條目) 中에서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이 수기에 해당하는데, 그 중에서 격물, 치지, 성의, 정심은 수기의 방법이다.
또 제가, 치국은 치인에 해당하고, 평천하는 수기와 치인이 완성되어
도래하는 이상세계를 말한다.

수기와 치인의 관계에서는 수기가 먼저이고 근본이다.
수기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치인이 될 수는 없다. 반대로 수기가 되면
치인은 저절로 된다. 현대인들은 서구에서 발달한 개인주의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삶의 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인들에게는 수기(修己)의 개념이 없다. 정치나 교육 및 경영관리의 측면에서도 사람을 어떻게 다스리고 교육할 것이며, 관리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논의하고 있을 뿐, 수기에 초점을 맞춘 논의는 일어나지 않는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위기적 상황은 표면적으로는 정책의 실패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사람들이 수기(修己)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만약 사람들이 수기를 통한 사람됨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현재 직면하고 있는 위기적 상황은 잠시 봉합되었다가 다시 터지고, 또 잠시 봉합되었다가 다시 터지는 것을 되풀이할 것이다. 그러면서 점점 더 악화되어 갈 것이다.

현재의 위기적 상황의 근본적인 해결은 사람들이 수기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수기를 통한 인간됨을 추구할 때만 가능할 것이다. 수기를 통한 참된 인간이 등장하여 정치를 하면 이상적인 정치가 될 것이고, 경영을 한다면 이상적인 경영이 될 것이며, 교육을 한다면 이상적인 교육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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