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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이란 대개 여성을 상대로 한 말이며, 우리말 표현으로는 아름다운 여인, 어여쁜 여인, 고운 여인 등으로 불린다.
아름답다, 예쁘다, 곱다, 세첩다 등의 고유어는 본래 작고 연약하다는 뜻에서 출발했으니, 그로 말미암아 연민의 정을 유발케 한다는 점을 앞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아름답지 못한, 곧 못생긴 여인은 고유어로 어떻게 표현하는가? 말하자면 앞에서 말한 어휘의 반의어가 되겠는데, 이에 해당하는 적절한 우리말이 쉽게 찾아지지 않는 데 문제가 있다.
흔히 쓰는 말로는 추녀라는 한자말이 고작이고 우리말로는 그저 못난 여자, 못생긴 여자와 같이 부정법을 써야 할 정도로 매우 빈약한 모습을 보인다.
추녀란 말도 일상적으로 쓰이는 말은 아니다. `가을에 온 여인'이라는 멋진 은어가 이를 대신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더러울 추는 피하고 싶은 모양이다. 한자 추는 귀신이 술에 취한 형상이니 고운 뜻을 지닐 리가 만무하다.
이처럼 한자말에는 못난 것에 대한 표현이 풍부하고 그 의미조차 가혹함에 비하여 우리말에는 그런 말조차 만들지 않았음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여인의 모습을 형용하는 경우만 해도 그렇다. 꽃 같은 자태의 붉은 입술이니, 그것은 달 아래 미인이니하여 그 아름다움을 찬탄하는 데는 입에 침이 말랐지만, 그러나 못생긴 얼굴에 대해서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만다.
간혹 고전에서 놀부 마누라나 뺑덕어멈 같은 추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메도우사와 같은 그런 지독한 추녀나 괴녀는 결코 아니었다. 호박, 박호순, 옥떨메, 주메순, 무허가 건축, 자유민주주의, 100미터 미인, 후지카, 으악카 등은 모두 고유어의 빈약한을 메우기 위한 임시방편적인 은어들이다.
"못생겨서 미안합니다" 라고 말한 어느 코미디언도 있었다. 뺑덕어멈이나 놀부 마누라의 형태처럼 그저 우스개 거리에 불과할 정도였으니, 아무튼 우리 조상들은 못생긴 용모에 대해서는 매우 관용적이었던 것 같다.
우리말 부정법에는 `아니(안)'와 `못'이란 부사가 쓰인다. 미혼의 여인이 말하는 `시집을 안 갔다'와 `시집을 못 갔다'는 사뭇 그 의미를 달리한다.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대개 `안갔다'쪽을 택하지만, 그러나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못 갔다'는 표현에 훨씬 호감이 간다. 그만큼 솔직하고 겸손한 태도이기도 하며, 또한 가고 싶어도 못 갔으니 언제든지 마땅한 사람을 만나면 즉시 갈 수 있다는 가능성도 있다.
`못'이란 부정 부사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가장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이상형을 상정하고 있다. 현실에서 완벽한 것은 구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그 기준에 가까운 것을 볼 때는 `근사하다'라고 탄성을 발한다. `못' 또는 `모ㄷ'은 바로 그 이상형에 미치지 못한, 곧 다소는 모자라는 상태를 말한다.
시집을 못 간 사람은 언젠가는 결혼의 상태에 미칠 수 있듯이 못 생긴 사람도 언젠가는 미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게 아닌가.
인간은 주어진 존재가 아니라 되어지는 존재다. `못된 놈'이니 `덜 된 놈'이라는 우리말 욕설이 있다. 영어의 `갓뎀'은 신이 저주했으니 그는 이미 `다 된 놈' 이자 끝난 놈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못되거나 덜 된 놈은 장차 이상적인 존재, 곧 됨됨이를 갖춘 바람직한 존재가 될 수 있다.
또한 되다란 말은 접미사 `-답다'와 그 뿌리를 같이한다. 되다는 본래 `?' 또는 `답'으로 이는 같거나 그와 비슷하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나쁜 놈, 더러운 놈이란 욕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쁘다는 낮다에 접미사 `-브다'가 결합된 말로서 일정한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나쁘다의 반대말인 `좋다'는 본래 됴하다>됴ㅎ다가 구개음으로 변한 말이다. 이 `좋다'는 자신이 바라는 기준보다 더 나은 상태를 말한다.
`더'란 본래 `그 위에 더'란 의미로서 자신이 소망하는 어떤 선에서 그 위에 올라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더럽다'란 말도 `됴ㅎ다'의 반대로 더함이 없다. 곧 그 기준선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에 다름이 아니다.
더럽다는 말은 또한 깨끗하지 않다는 뜻이며, 고대어에서 좋다는 바로 깨끗함을 지칭한 것이다. 미인이란 결코 클레오파트라나 양귀비만을 지칭하는 건 아니다. 아름다움이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되어지고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름다움이란 바로 아름답게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의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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