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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우리말

[스크랩] 족보를 잃고 유령처럼 떠도는 조폭식 언어

작성자容王(禮山容40世)|작성시간12.01.28|조회수401 목록 댓글 0

  조폭. 조직폭력배의 줄임말인 이 단어는 아시다시피 검은 양복을 폼나게 입고, 사시미칼을 휘두르는 ‘어깨’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요즘 ‘조폭신드롬’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 줄임말이 우리 시대의 사회문화적 지형도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요컨대 ‘조폭’은 뒷골목 깡패의 음침한 이미지를 벗어나 아이들이 닮고 싶어하는 남성적 의리의 세계로, 때로는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행니임-’하고 사투리를 애교있게 연발하는 개그의 세계로 변주된다. 말은 고정된 사전적 의미와는 별개로 사회 변화에 따라 그 이면적 의미가 달라진다는 점을 여기서 확인하게 된다.
소위 조폭 문화에서 탄생한 조폭식 언어가 우리 말글살이에 주목할 만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표적으로 변두리 언어로 치부되어 왔던 사투리가 중심에 진입한 사건을 들 수 있다. 영화 <친구>가 한국의 영화흥행사를 다시 쓰면서, 주인공들이 구사하던 부산 사투리는 전국민이 애용하는 언어가 되었다. 가령 ‘내가 니 시다바리가’, ‘나는 개안타’, ‘우리는 친구 아이가’와 같은 말들. 평소 같으면 서울내기들한테는 외국어나 다름없을 사투리들이 대화에 양념격으로 끼어든다. ‘야들아, 아그야’와 같은 전라도 사투리도 정겨운 애칭으로 입에 오르내린다.
끝이 ‘형님-’으로 끝나는 썰렁한 삼행시도 조폭식 언어의 무대다. 가령 ‘소:소주 한 잔 합시다. 형님-/ 세:세 잔씩만 합시다. 형님-/지:지나친 음주는 건강에 안 좋습니다. 형님-’, ‘불:불 났습니다. 형님- / 사:사람이 많이 죽었답니다. 형님-/파:파-(최불암 톤)’과 같은 삼행시는 허무하고 영양가 없는 웃음을 자아내면서 ‘형님’으로 대표되는 조폭의 위계화된 세계를 희화화한다. ‘형님’이라는 용어는 그야말로 과잉 소비되고 있다. CF광고에서 깍두기 머리를 한 덩치가
 

나와 ‘형니임-’하면서 애교를 부리는가 하면, 오락 프로그램이나 크쇼의 출연자들도 즐겨 사용한다.
조폭 세계에서 통용되는 비어나 속어, 은어가 (주로 10대들의) 일상 담화에서 여과없이 쓰이기도 한다. ‘직이삔다(죽여버린다)’, ‘후려 갈구다(쳐다보다)’, ‘사시미 뜬다’와 같이 간담을 서늘케 하는 말들은 안 그래도 외래어의 범람, 통신언어의 남용으로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우리말을 고사(枯死)시키고 있다.
사투리가 즐겨 사용되는 거야 긍정적으로 보자면 서울말, 표준어 중심의 권위적이고 획일화된 언어현상에 대한 반란으로 이해할 수 있으니 개탄만 할 일은 아니다. 우리는 사투리, 즉 토속어의 구사가 우리 말글의 결을 아름답고 풍부하게 살려주는 예를 여러 문학작품에서 확인한 바도 있다. 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사투리는 ‘특정 지역의 언어=조폭 언어’라는 등식을 낳아, 그 지역 언어에 대한 오해를 야기할 만한 측면이 없지 않다.
삼행시가 원래 지녔던 사회비판적 의미가 사라진 것을 아쉬워할 수도 없다. 요즘의 삼행시는 가능한 한 ‘썰렁’하게 하기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썰렁한 삼행시의 목록에 조폭식 언어가 추가되면서 빚어질 부작용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자칫 언어 문화에서 느껴지는 친근감이 ‘피도 눈물도 없는’ 조폭의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조폭마누라>가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한다. 얼마 안 있어 조폭식 언어에 ‘누님 -’ 혹은 ‘언니-’와 같은 말이 추가될지도 모를 일이다. 형님 혹은 누님. 장유유서라는 유교적 원리에서 탄생한 말들이 족보를 잃고 유령처럼 떠돌아다니는 형국이다.

김양선___한림대학교 교양교육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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