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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를 아시나요

[스크랩] `문지방`에 얽힌 사연

작성자容王(禮山容40世)|작성시간09.03.03|조회수121 목록 댓글 0

'문지방'에 얽힌 사연

‘문지방(門地枋)’이란 문 밑의 문설주 위에 가로놓인 나무를 말하는데, 표준어로는 ‘문-턱’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구체적으로는 ‘문턱’은 ‘문지방’의 위쪽이 된다. 다시 말하면 방의 출입문이나 대문에서 문 밑 부분의 ‘문중방(門中枋)’ 위에 덧대어 수평으로 놓은 인방(引枋)으로, 개구부(開口部)를 갖고 있어 공간의 경계선 또는 칸막이 역할을 하며 문의 상징적인 부재(副材)이기도 하다.

문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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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이라 문짝에는 문종이를 떼내고 모기장을 붙였다)

‘문지방’에는 문짝이 잘 걸리거나 서 있도록 턱을 만들고 여닫이문짝의 경우는 문이 잘 열리고 서 있도록 골을 판다. 여닫이문의 경우 ‘문중방’의 사면을 ‘문지방’과 같이 골을 파서 틈새를 없애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재래식(在來式) 전통건축에서는 ‘문지방’의 높이가 일정하지 않으며, 그 구조형식(構造型式)이 다양하다. 흙바닥, 마루바닥, 온돌바닥의 방들이 흔히 한 집에 있으므로 바닥의 차이에 따라 ‘문지방’을 동자(童子), 착고(着固), 중방(中枋) 등으로 높이를 적당히 조절한다.


그리고 다른 나라의 가옥(家屋)에서는 방을 드나드는 문에 '문지방'이 별도로 없지만, 우리나라 전통가옥(傳統家屋)은 문을 드나들 때마다 ‘문지방’을 타넘어 다닌다. 그러면 왜 우리나라의 집에만 유독 문턱이 높은 '문지방'을 만들까. 출입을 불편하게 하는 장애물 노릇을 하면서 말이다. 우리나라가 권위주의(權威主義) 사회인 까닭일까. 아니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폐쇄적이어서 일까.

문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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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그렇지는 않다. 지구상(地球上)에서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이웃 간에 울도 담도 없이 개방적으로 지내는 민족도 흔하지 않다. 물론 옆방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지금의 도시(都市) 사람들이 아닌 물 맑고, 인심 좋은 시골마을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 시골마을 사람들은 이웃을 '이웃사촌'이라 하여 가까운 혈연(血緣) 이상으로 친하게 지내기 때문에 이웃 간에 사생활(私生活)의 비밀이라는 것도 거의 없을 정도다.


때문에 이웃집 방문을 드나들 때에도 문을 두드리며 들어가도 좋은가를 물어보는 '노크' 같은 것은 없다. 문 안팎에서 인기척으로 서로 의사소통(意思疏通)을 하며 자연스럽게 방안을 드나들곤 했었다.


주인이 들어오라는 신호(信號)가 있을 때까지 문 밖에서 멈추어 서서 기다리는 법이 없는 것만 봐도, 우리나라의 '문지방'은 사람의 출입을 통제(統制)하거나 대화를 막기 위한 장치가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그것은 다만 안과 밖, 방과 마당의 영역(領域)을 구분하기 위한 경계표지(警戒標識)일 뿐 사람의 자유로운 출입을 제한하기 위한 장애물(障碍物)의 설치는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방에 들어가는 데에는 ‘문지방’만 넘는 것이 아니다. 마당에서부터 여러 단계의 통과물(通過物)을 거쳐야 한다. 우선 마당에서 '댓돌' 위에 올라가서 다시 '축두막' 또는 '죽담', '처막'이라고 하는 집의 기단부(基壇部)에 올라서고, 거기서 신발을 벗어 둔 뒤에 다시 툇마루로 올라간다.

그러고 나서 마침내 ‘문지방’을 넘어 방 안으로 들어간다. 두 단계(段階) 올라가서 신발을 벗고 다시 두 단계를 거쳐 모두 네 단계를 거쳐야 방 안에 이르는 것이다. 툇마루가 없는 경우에는 마당에서 ‘죽담’에 올라가 신발을 벗어두고 댓돌을 밟고 ‘문지방’을 넘어 방 안에 들어간다. 이때도 최소한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

죽담에서 빨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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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서구식(西歐式) 가옥이나 중국식(中國式) 가옥에는 툇마루나 댓돌이 없으며 ‘문지방’도 없다. 자연히 신발을 벗을 필요도 없다. 신발을 신은 채로 곧바로 실내로 들어간다. 마당과 실내가 공간적(空間的)으로 이어져 있어 ‘문지방’ 같은 것으로 애써 경계(境界)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지방’은 실내에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가, 벗고 들어가는가 하는 문제와 연관(聯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간단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이들 연관성(聯關性)은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 있다.

문지방과 툇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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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에서 신을 신고 벗는 것은 방 안에서 좌식생활(坐食生活)을 하는가, 입식생활(立式生活)을 하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으며, 입식 또는 좌식생활 여부는 온돌방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나라의 집 ‘문지방’이 높은 까닭은 온돌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지방’을 높게 만드는 까닭은 ‘문지방’이 단순히 안팎을 구분하고 바깥의 흙먼지를 차단(遮斷)하는 구실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있다. 높은 ‘문지방’은 마당에서 방안의 모습을 쉽게 들여다볼 수 없도록 하는 시각적(視覺的) 가리개 구실과 몸을 의지할 수 있는 버팀대 구실도 한다.


여름철에 문을 열어두고 누워 자더라도, 마당에서는 누워 있는 모습을 볼 수 없을 만큼 ‘문지방’ 높이를 가늠해서 만들어 두었을 뿐 아니라, 방 안에 앉아서 바깥을 내다볼 때 ‘문지방’에 겨드랑이를 의지(依支)하고 편안하게 내다볼 수 있도록 그 높이를 대중 잡아 ‘문지방’을 설치(設置)하고 있다. 황병권의 ‘문지방과 나그네’를 음미한다.

문지방 괴고 있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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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또 ‘문지방’과 관련한 금기사항(禁忌事項)이 많은 편이다. 우리나라에서의 ‘문지방’에 대한 금기는 대체로 ‘문지방을 밟지 말아라’, ‘그곳에 앉으면 안된다’, 더욱이 ‘여자가 앉으면 안된다’, ‘문지방에 칼을 두지 말라’, 또는 ‘문지방을 베고 자면 입이 비뚤어진다’는 등의 금기사항들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금기사항(禁忌事項)의 배경에는 다소 과학적(科學的)인 원인과 주술적(呪術的) 이유들이 서려 있기도 하다. 우선 ‘여자가 문지방에 앉으면 안 된다’거나, ‘문지방을 베고 자면 입이 비뚤어진다’는 금기는 ‘문지방’이 집안의 공간 중에서 가장 차가운 위치라는 데에 원인이 있다. ‘문지방’의 바깥쪽은 바깥공기로 인해 차갑고 안쪽은 방안의 온기(溫氣)로 인해 따뜻하다.

문지방에 엎드려 머리감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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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곳에 앉으면 기의 균형(均衡)이 깨지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임신부(姙娠婦)에게는 본인은 물론 뱃속의 어린아이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에 ‘문지방’에 앉지 말라는 금기(禁忌)가 생긴 것이며, 또한 그곳을 베고 자면 우리가 찬 바닥에 얼굴을 대고 자는 것과 마찬가지로 안면(顔面)에 마비(痲痺)가 올 수도 있기 때문에 생긴 금기로 추정할 수 있다.


비슷한 금기(禁忌)로 ‘다듬잇돌을 베고 자면 일찍 죽는다’라는 금기도 있다. ‘다듬잇돌’이 그만큼 차기 때문이다. 특히 안방의 ‘문지방’을 높게 한 것은 아이들이 마당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배려(配慮)한 점도 있다.


다음은 주술적(呪術的) 이유를 들어본다. ‘삿자리’를 깔고 사는 서민들의 초가삼간의 경우 그 삿자리를 들고 방을 쓸어낼 정도로 ‘문지방’이 있는 듯 없는 듯 했지만, 양반집에서는 지위(地位)가 높으면 높을수록 ‘문지방’이 높고, ‘문지방’을 밟는 것은 그 집의 조상(祖上)들의 머리를 밟는 것과 마찬가지로 취급을 했을 정도로 신령(神靈)한 공간으로 떠받들었다.


이러한 이유에서도 ‘문지방’을 밟거나 ‘문지방’을 베고 자면 안된다는 금기사항(禁忌事項)이 생겨났다. ‘문지방’을 밟으면 안된다는 의미는 또 ‘문지방’이 이승과 저승사이 또는 인간의 세계와 귀신세계(鬼神世界)의 경계를 의미한다는 데서 연유(緣由)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옛사람들은 ‘문지방’을 밟으면 그 경계(境界)를 무너뜨림으로써 그로 인해 못된 악귀(惡鬼)들이 방안으로 들어온다고 믿었다.

문지방을 기어 넘는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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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문지방’은 방의 안과 밖을 나누고, 마루와 현관(玄關)을 나누고, 집과 집밖을 나눈다. 그리고 이런 일상적(日常的)인 경계선에 의미가 확장(擴張)된 개념이 바로 사람과 귀신을 나누는 경계로 인식(認識)되어졌다.


따라서 바깥은 영혼(靈魂)과 귀신이 사람과 공존 할 수 있지만, 원칙적(原則的)으로 집안엔 들어 올 수는 없다. 혹 운 좋게 들어 왔더라도 내실(內室)인 방은 산사람들을 위한 공간(空間)이기 때문에 더 이상 들어와서는 안되고, 이를 막아서는 마지막 경계가 ‘문지방’이라는 것이다.


옛적 우리들의 선대(先代)들은 ‘문지방’을 밟고 있거나 머리로 베고 있으면, 귀신이나 혼백(魂帛)이 사람의 몸을 타고 ‘문지방’을 넘는 다고 본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귀신(鬼神)과 같이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래서 옛적 어른들은 언제나 어린이들을 향해 ‘문지방’을 밟지 말라고 하셨다.

문지방을 베고 자는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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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이러면 안되는데, 개가 문지방을 베고 잠을 자고 있다)

필자들의 경우 어릴 적에 ‘문지방’에 앉거나 그 위를 밟으면 어머니한테 혼찌검이 나곤 했었다. 그때마다 어머니께서는 '에미 죽는 거 볼라카나?'라고 힐책(詰責)을 하시곤 했다. ‘문지방을 밟으면 집안에 누가 죽는다’는 속신(俗信)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조금 억울하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무서워서 ‘문지방’을 스치지도 않으려고 조심을 하곤 했었다. 어린 마음에 어머니가 돌아가신다는데 이것보다 더 무서운 말이 어디에 있었던가..

세월이 흘러 지금이 되어서도 가끔 ‘문지방’이 있는 집에 들르면 그 ‘문지방’에 발을 디디는 것을 의식적(意識的)으로 피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린 시절 그저 그런 속설(俗說)에 불과했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도 뇌(腦) 한켠에 '문지방'이란 단어와 '죽음'이란 단어가 연결고리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당시에는 사람이 드나드는 ‘문지방’에는 귀신(鬼神)들도 드나든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런 ‘문지방’을 밟을 때 운이 없으면 귀신들과 부딪혀서 병이 들거나 안 좋은 영향(影響)을 끼쳐서 죽는다고 하는데서 갖가지 금기사항(禁忌事項)이 유래 되었다.


그래서 옛날 시골집에 가보거나, 무당(巫堂) 집 등을 살펴보면 대부분 사람이 지나다니는 문이나 문 위쪽, 문설주에 부적을 붙여놓고 귀신(鬼神)과 충돌하지 않도록 여러 가지 주술적(呪術的) 처방을 하곤 했었다.


그리고 이러한 주술신앙(呪術信仰)으로 당시에는 부모형제가 죽어도 그 죽은 혼백이 다시 방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주술적 조치를 취했다. 사람이 운명한 후 사흘째가 되는 날은 발인(發靷)이라 하여 출상(出喪)하기 전에 마당에서 제사(祭祀)를 지낸다. 이를 위해 죽은 사람의 관(棺)을 상여(喪輿)에 싣기 위해 방에서 들고 나오게 되는데, 이때 바가지를 ‘문지방’에 엎어 놓았다가 맨 앞에 나오는 사람이 발로 밟아 깨뜨리거나 도끼로 ‘문지방’을 한번 찍어 표시가 나도록 하기도 한다.


이때 바가지를 깨는 것은 자신의 부모형제의 혼백(魂帛)이 바가지 깨지는 소리에 놀라 방안에 머물지 않고, 시신을 따라 밖으로 나가게 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온 주술(呪術)이다. 야속하지만 아무리 부모형제라도 죽은 혼백과는 같이 살 수 없다는 의미에서였다.


이렇듯 필자들이 어린 시절에는 지켜야할 금기사항(禁忌事項)이 너무도 많았다. 주로 할머니와 어머니께서 금기사항을 주지(周知)시키곤 하셨는데, 이러한 금기사항은 과거부터 어른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것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금기사항(禁忌事項)을 만든 이유는 속신(俗信)을 믿는 미신적(迷信的) 사고(思考)가 주된 원인이었지만, 아이들의 나쁜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거나, 아이들이 하는 행동이 어른들에게는 성가시니까 이를 금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것도 상당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래서 당시의 대다수 어린이들은 초등학교(初等學校)를 마칠 무렵에는 이러한 금기사항들이 오직 어른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고, 일부러 어기던 일도 자주 있었다.


그러나 이들 금기사항(禁忌事項) 중에는 이를 어기게 되면 엄청난 결과가 나타날 것으로 알고, 특별히 조심을 하곤 했었다. ‘문지방’에 앉거나 그 위를 밟으면 어머니께서 돌아가신다는 말은 이만저만 섬뜩한 일이 아니었고, ‘문지방에 앉으면 ‘나락(벼)’이 거꾸로 핀다.’는 말은 이를 어기면 당장 굶기라도 하는 양 조심에 조심을 더했다. 벼가 거꾸로 피면 쌀을 수확(收穫)할 수 없게 되고, 수확을 못하면 쌀밥을 먹지 못하게 되니 그 이상 무서운 금기사항(禁忌事項)이 어디에 있었겠는가. 1년에 몇 번밖에 못 먹는 쌀밥이었지만, 그나마 먹을 수 없다는 것은 이만저만 불행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지방’에 대한 금기(禁忌)는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일찍이 로마인들은 집으로 들어가는 문을 세 명의 신(神)이 보호한다고 믿었고, ‘문지방’에 왼발을 먼저 들여놓는 것은 재수 없음을 뜻했다. 이슬람 문화권(文化圈) 또는 기타 여러 나라에도 ‘문지방’에 신령(神靈)이 깃들어 있다는 풍습이 있다.


인도(印度)의 ‘쿠르미’족은 ‘문지방’을 부귀의 여신 ‘라크슈미’의 좌석이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문지방’에 사람이 앉는다는 것은 그 여신(女神)에 대한 모독(冒瀆)이라고 생각하였다. 러시아인들도 집안의 신령(神靈)들이 ‘문지방’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으로 믿었다. 뿐만 아니라 이슬람 사원(寺院)의 출입문에는 굵은 ‘문지방’이 낮게 가로질러서 고정되어 있는데, 거기를 드나드는 모든 이들은 그 ‘문지방’을 조심스럽게 성큼 넘어서 지나가야 한다. ‘문지방’에 거룩한 존재가 살고 있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외국 가옥의 문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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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방’, 그 곳은 당시의 우리들 어린세계의 외경(畏敬)의 산실이기도 했지만, 무심코 걸터앉거나, 밟고 넘어 다니다가 어머니로부터 호된 질타(叱咤)를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매운 손바닥으로 등줄기를 두들겨 맞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산간벽지(山間僻地)에서까지 ‘문지방’이 있는 집은 거의가 사라졌고, 등줄기를 두들겨 주시던 어머니들도 자취를 감추셨다.


그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 손 떼 매우신 어머니로부터 다시 한 번 등줄기라도 맞아 봤으면 하지만, 천국(天國)가신 어머니와 흘러간 그 세월(歲月)이 다시 돌아올 수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느티나무 고목(枯木) 옆으로 햇살이 기울면 보리 새싹 파릇한 마당에 까마귀 떼 무리지어 날고, 멀리서 부산행(釜山行) 기차의 기적(汽笛)소리가 바람 따라 흘러들던 고향 집, ‘문지방’에 턱 괴고 앉아 붉게 타는 저녁노을 보내며 들축나무 가지마다 깃드는 뱁새 떼 세어보던 그 시절, 어슴프레 해 져가는 하늘 가로 기러기 줄지어 날으면, 성냥 그어 호롱에 불붙이던 그 시절이 너무나 그리워진다. 언젠가 향리(鄕里)에 다시 돌아가면 문턱 높은 초가집 다시 지어 그 시절 그 추억 오래오래 되새겨 봤으면 한다. 이상번의 ‘하늬바람아’를 음미하며 파일을 접는다.

 

 

 

하늬바람아

 

이상번

 

 

새벽바람이 문지방을 넘어와

내 그리움을 깨울 때

내 마음은 어느새 구름이 된다.

구름은 어느새 비로 내린다.

가슴 아린 사랑의 종지부를 찍고

떠나버린 내 사랑은

지금은 어디에서 둥지를 틀었나.

행복의 꿈을 꾸고 있나

하늬바람아 마음대로 불어라

오늘은 너 맘대로 불어라

 

새벽바람이 문지방을 넘어와

내 그리움을 깨울 때

내 마음은 어느새 구름이 된다.

구름은 어느새 비로 내린다.

가슴 아린 사랑의 종지부를 찍고

떠나버린 내 사랑은

지금은 어디에서 둥지를 틀었나.

행복의 꿈을 꾸고 있나.

하늬바람아 마음대로 불어라

오늘은 너 맘대로 불어라

 

 

하늬바람아 마음대로 불어라

오늘은 너 멋대로 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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