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줄’은 된장과 고추장, 간장을 담근 장독대에도 치지만, 출산(出産)을 했을 때나 심지어 술을 담글 때에도 사용한다. 장독대와 술독에는 고추나 한지(韓紙), 숯을 새끼줄에 끼우고, 출산 때는 숯, 청솔가지(푸른 잎이 아직 마르지 않은 솔가지), 붉은 고추 등을 매단다.
장독대에 친 금줄

출산(出産)한 가정에서 사립문과 대문에 내거는 새끼줄과 장식품들은 ‘이곳은 아기를 갓 출산(出産)한 집이니 출입을 삼가 달라’ 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빈부격차(貧富隔差), 신분고하(身分高下), 지방차이(地方差異)를 막론하고 빨간 고추가 걸리면 아들이었고, 솔가지만 걸리면 딸이었다.
아들 낳은 집의 금줄

딸 낳은 집의 금줄

금줄을 짚으로 만드는 것과 백지(白紙)와 솔가지, 푸른 대나무와 고추, 숯을 매다는 데는 나름대로 심오(深奧)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 먼저 금줄을 짚으로 만드는 이유는 짚은 쌀을 결실(結實) 시키는 줄기이므로 힘이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그리고 금줄에 화폐(貨幣) 대신 사용된 백포(白布)나 백지(白紙)는 물건을 살 수 있는 힘이 있는 화폐의 마력(魔力)을 신(神)에게 바치는 공물(供物)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금줄에 꽂은 솔가지는 바늘잎, 늘푸름, 동방색(東方色 ; 일반적으로 청색(靑色)을 말함), 생생상징(生生象徵)인 것 등에서 그 힘을 인정한 것이며, 푸른 대나무 가지도 솔가지와 거의 같은 뜻으로 추운 겨울에도 꺾이지 않는 절조(節操 ; 절개와 지조)와 그 잎의 검상(劍象 : 칼과 같은 형상)을 중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고추는 그 모양이 양구(梁丘 ; 무릎 위 두 치 정도 위에 있는 두 힘줄사이에 있는 경혈)와 비슷하여 분출하는 힘을 상징하고, 붉은 빛은 벽사(?邪 ; 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치는 것)의 색이며, 매운맛은 가혹하고 맹렬하게 귀신(鬼神)을 쫓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숯은 땅 속에서 썩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귀신이 가장 무서워하는 불을 나타낸다는 점, 그리고 고래(古來)로부터 귀신의 빙의물(憑依物)로 사용되어 온 점을 감안하여 이를 매달면 귀신을 매단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는 점도 고려되었다.
아울러 ‘금줄’은 신생아(新生兒)의 상징과 기호(記號) 그 자체였다. ‘인줄’(부정(不淨)을 꺼리어 사람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문이나 길 어귀에 건너질러 매는 줄), ‘검줄’(‘금줄’과 같은 뜻으로 ‘신성하고 거룩하다는 의미’ 를 담고 있음)이라고도 불리던 이 ‘금줄’이 걸린 집은 삼칠일(21일) 동안 출입통제구역(出入統制區域)이 된다. 아무리 가까운 친인척(親姻戚)도 예외가 없었다.
저항력이 약한 신생아와 산모(産母)가 외부의 질병에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하려는 과학적 인식이 그 바탕에 깔려 있었다. 때문에 ‘금줄’은 닫힘과 열림, 성역(聖域)과 속계(俗界 ; 속인(俗人)이 사는 세계)의 경계선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이 ‘금줄’은 여느 줄이 아니다. ‘새끼’는 보통 오른쪽으로 꼬는데 ‘금줄’은 반드시 왼쪽으로 꼰 ‘왼새끼’를 사용하는데, 여기에 깊은 뜻이 내재(內在)되어 있다.
왼쪽과 오른쪽, 둘 중 정상(正常)은 늘 오른쪽이다. 따라서 ‘왼새끼’로 ‘금줄’이 처져 있다면 ‘금줄’ 안쪽의 상태(狀態)가 정상(正常)이 아니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으로 평상시(平常時)의 출입이나 근접(近接)을 금하라는 경고적(警告的)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필자도 다섯째 동생 이후의 동생들이 태어났을 때는 ‘왼새끼’를 꼬아 금줄을 만들어 사립문에 친일이 있다.
‘금줄’은 또 마을의 당집(민간신앙에서 신을 모셔 놓은 집), 당나무, 대동(大洞)우물(자연부락의 주민 전부가 큰 우물을 파서 함께 먹는 우물)에도 사용된다.
지금도 시골마을의 당산제(堂山祭 ;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신에게 마을의 풍요와 평안을 기원하는 지역공동체의 의례)때는 제관(祭官 ; 제사를 맡아보는 관원)의 집은 물론이고, 마을로 들어오는 동구(洞口) 밖 곳곳에 ‘금줄’을 둘러놓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동구입구 당산나무에 친 금줄

당산제를 올리기까지 외부인(外部人)의 출입을 금하려는 것이다. 이 경우는 당산(堂山 ; 토지나 마을의 수호신이 있다는 산이나 언덕)의 소나무에도 ‘금줄’이 쳐진다.
‘이름 있는 날’ 가정에서 성주(城主 ; 가정의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가신(家神)으로 성조신(成造神)이라고도 함), 칠성(七星 ; 북두칠성) 따위의 집안고사를 올릴 때도 ‘금줄’은 빠지지 않았다.
함경도(咸鏡道)에서는 물건을 버릴 때 ‘왼새끼’에 매어서 던지는 관습(慣習)이 있었다고도 한다. ‘금줄’은 멀리 북방의 시베리아로부터 몽고(蒙古), 중국과 만주(滿洲)를 거쳐 일본(日本)과 ‘오키나와’, 대만(臺灣)에 이르기까지 널리 발견된다.
시베리아 사하(Saha)공화국(러시아 연방 내 자치공화국으로 동시베리아에 인접해 있음)의 ‘금줄’은 말총(말의 갈기나 꼬리의 털)으로 만든 줄에 울긋불긋 서낭당(‘서낭신’에게 제사하기 위한 제단)처럼 오색천을 붙들어 매놓는다.
유목민족(遊牧民族)인 탓이다. 반면에 ‘오키나와’ 같은 남방(南方)에서는 우리처럼 짚으로 ‘금줄’을 만든다. 우리와 같은 농경민족(農耕民族)이기 때문이다.
민족의 흥망성쇠(興亡盛衰)와 상관없이 면면히 이어져 온 이 ‘금줄’도 이제는 우리 주위에서 거의 사라지고 없다. 아파트 같은 공동주거문화(共同住居文化)의 확산으로 ‘금줄’을 걸 만한 사립문과 대문 자체가 없어졌고, 금줄 자체를 하나의 미신(迷信)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출생지(出生地)가 자기 집이 아니고, 병원인 지금의 청소년세대(靑少年世代)들은 ‘금줄’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
심오(深奧)한 ‘금줄’의 오랜 역사가 제대로 알려진 게 없다는 것은 학문상(學文上)으로는 다소 아쉬운 대목이라 아니할 수 없다. 문자를 독점했던 지배계급(支配階級)이 어느 누구도 ‘금줄’ 따위를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줄’의 명맥(命脈)이 지금까지 이 정도나마 알려져 이어지고 있는 것은 ‘금줄’을 신성시(神聖視)한 서민들의 집단적 무의식(巫意識)이 알게 모르게 작동한 덕분일 것이다. [이용우님글 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