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평화를 세상에 행복을
우리 나라 3대 관세음보살 성지 중의 한 곳인 보리암
꿈만 같던 지리산 무박 종주를 마치고 구례읍내로 나와 늦은 시각에 저녁 식사를 하면서 숙소를 알아보니 적당한 곳이 없었다. 만약에 구례읍내에서 숙박을 했다면 체력의 한계가 어떨지 모르지만 대한민국 100대 명산의 하나인 전남 광양 소재 '백운산' 산행을 이어갔을지도 몰랐다.
부득이 진주시내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고, 불기 2556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우리 나라 3대 관음성지(양양 낙산사 홍련암 / 강화 낙가산 보문사 / 남해 금산 보리암) 중 한 곳인 금산과 보리암, 그리고 한려해상국립공원을 찾아감도 뜻있는 일이라 생각하였다.
5월 27일 01:30경의 잠자리는 08:00에 출발 채비를 갖추고 사천시로 이동해 부산 거주 군동기인 최인권 사장의 형님께서 경영하는 풍정추어탕에 도착해 정성스레 마련한 식사를 대접받고 삼천포대교를 거쳐 남해 금산을 찾아갔다.
삼천포대교를 배경으로 - 왼쪽으로부터 산길나그네님/달산님/아트님/문주란님
지난 2011년 2월 14일, 부산~경남 일대에 폭설 경보가 내린 날에 산길나그네님의 안내로 찾아갔던 기억을 되살리며, 또 다시 산길나그네님의 안내는 우연의 일치가 아닌 계획된 여정이었기에 발길은 한결 가벼웠다. 금산주차장 약 2km 전부터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겨우 주차장에 이르렀고 예전처럼 마을버스로 갈아타 보리암 주차장에 도착했다.
남해 금산(보리암)은 한려해상국립공원에도 속한다.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함에 참배객은 대만원을 이루었다. 산행은 '제1주장장(11:13)~매표소~정상(11:55)~단군성전~헬기장~상사바위(12:28)~좌선대~제석봉~쌍홍문~보리암(13:14)~매표소~제1주차장(13:58)'을 선택했고, 2시간 45분이 소요되었다.
남해 금산 정상석 이름 없는 바위에 앉아 한 컷~ 대한민국 명승 제39호를 알리는 남해 금산 인증샷 정상부의 암석 단군성전 전경 양심거울 앞에서 산행 안내도 자연의 조각품 금산 안내문 상사바위에서 정상 쪽을 향해 상사바위에서 바다쪽을 향해 상사바위 부근에서 문주란님(왼쪽)과 산길나그네님 등산로에 세워진 이정목 쌍홍문 전경 쌍홍문 입구 쪽
보리암 3층 석탑 보광사의 연등
* 더보기 : 보리암(菩提庵)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雙磎寺)의 말사이다. 683년(신문왕 3)에 원효(元曉)가 이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 산 이름을 보광산(普光山)이라 하고 초암의 이름을 보광사(普光寺)라 하였다. 그 뒤 이성계(李成桂)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왕조를 연 것을 감사하는 뜻에서 금산이라 하였고, 1660년(현종 1)에는 현종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願堂)으로 삼고 보리암이라 개액(改額)하였다. 그 뒤 1901년에 낙서(樂西)와 신욱(信昱)이 중수하였고, 1954년에 동파(東波)가 중수하였으며, 1969년에는 주지 양소황(梁素滉)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광전(普光殿)을 비롯하여 간성각(看星閣)·산신각·범종각·요사채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큰 대나무 조각을 배경으로 좌정하고 있는 향나무 관세음보살상이 있다. 이 관세음보살상은 왼쪽에는 남순동자(南旬童子), 오른쪽에는 해상용왕을 거느리고 있는데, 김수로왕의 부인인 허씨가 인도에서 모셔왔다고 하나 신빙성이 없다. 삼층석탑은 신라석탑의 양식을 보이고 있어 신라석탑이라 부르고 있으나,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감정되고 있다. 보리암 앞 바위 끝에 세운 높이 165㎝의 이 탑은 상륜부에 보주(寶珠)만 놓여 있다. 이 밖에도 보리암 주위에는 원효가 좌선하였다는 좌선대를 비롯하여 쌍홍문(雙虹門) 등 38경의 경승지가 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옮김
그 언젠가 이 곳 남해 금산 보리암을 다시 올 것을 기약하면서~ (2012. 0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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