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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

작성자지미|작성시간11.01.24|조회수85 목록 댓글 0

 

채만식 [蔡萬植, 1902.~1950.] 

http://chae.gunsa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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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는 백릉(白菱), 채옹(采翁). 1902년 6월 17일 전북 옥구군 임피면 읍내리에서 채규섭(蔡奎燮)의 5남으로 출생. 중앙고보를 거쳐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예과에서 수학했다.

사립학교 교원과 『동아일보』 기자로 근무하다가 퇴사하여 향리에 머무르기도 했다 1929년 말부터 개벽사에 입사하여 잡지 『별건곤』, 『혜성』, 『제일선』 등의 편집을 맡았다. 이후 『조선일보』로 잠시 옮겼다가 사직하고, 1936년부터 전업작가로 활약했다. 1924년 『조선문단』에 발표된 단편 「세 길로」로 문단에 등단하였다. 초기작으로 단편 「불효자식」(1925)과 중편 「과도기」(문학사상, 1973)를 남겨 놓고 있으며, 그 밖에 향리 시절에 쓴 「가죽버선」(문학사상, 1973), 「생명의 유희[유고]」(1928), 개벽사 입사 이후에 쓴 「낙일」(1930), 「사라지는 그림자」(1931), 「화물 자동차」(1931), 「부촌」(1932) 등의 소설‧희곡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이 시기까지를 작가의 수업시대로 볼 수 있다. 1933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장편 「인형의 집을 찾아서」부터 작가로서의 입신을 향한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하였다.

탐정소설 「염마」(1934)를 연재하기도 했으나, 성과는 미지수였다고 할 수 있고, 단편 「레디메이드 인생」(1934)으로 독특한 풍자 작가로서의 면모를 획득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카프 제2차 검거사건이 발생함으로써 약 2년간 문필활동을 중단하였고, 결국 1936년 단편 「보리방아」와 희곡 「제향날」 등을 발표함으로써 작가로서의 본격적인 재입신을 꾀하게 된다. 「치숙」(1938), 「탁류」(1937~1938), 「태평천하」(1938) 등 그의 대표작들이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산출된다. 이로부터 태평양전쟁 말기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고 작가적 존재 방식을 추구해갔던 채만식은 그런 만큼 많은 소설적 결실과 함께 친일부역작가라는 오명을 씻을 수 없게 되며 이러한 궤적은 「민족의 죄인」(1948)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채만식은 1930년대와 1940년대에 걸쳐, 다시 말해 한국전쟁 직전에 타계하기까지 ‘작품으로 말하기’라는 작가 윤리를 자신의 생애 윤리로서 실천하였다. 그는 처음부터 지식인의 자의식을 날카롭게 투시한, 예컨대 지식인소설 유형으로 독자적인 면모를 획득하였으며, 지식계급으로서의 자의식이 민중적 현실과 폭넓게 접촉하였을 때는 비극적 리얼리즘의 창작방법을, 그렇지 않고 대상에 대한 통렬한 풍자‧희화화의 정신이 현실 가공의 미학적 정신을 철저하게 지배하게 되었을 때는 강렬한 풍자적 리얼리즘의 소설세계를 이루었다. 계급적 관념의 현실 인식 감각과 전래의 구전문학 형식을 오늘에 되살리는 특유한 진술 형식 창조는 그의 소설을 특징짓는 또 다른 요소이다. 소위 동반자작가로서의 의식적 출발을 마련하고, 이로부터 벗어나는 과정 역시 1930년대 지성사의 맥락에서 정신의 한 보편 굴절 양상을 살피게 하는 유력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의 동향에 민감했던 것 역시 그의 문학적 특징의 하나로 간주될 수 있는데, 소설을 통한 정치적 민감성이 일제말과 해방공간 전 기간을 통해서 우리 소설사의 공백을 메워준 유력한 언술체 생산의 한 기저동력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소설 양식뿐만 아니라, 희곡 양식 창작을 겸비하였다는 점에서 그는 예의 검토될 만한 작가이며, 무엇보다 광복의 현실로부터 분단, 그리고 전쟁으로 가는 1940년대 후반기 우리 역사의 굴절을 냉정한 묘사가의 시선으로 그려낸 여러 소설작품을 남기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우리 소설사에 한 예외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채만식 전집』(1989) 10권으로 그의 모든 문학적 언술들이 집성되어 있는 바, 질과 양의 면에서 한국 근대소설을 대표하는 작가의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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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감상

 

1. 태평천하 

총 15장으로 구성되었으며, 최초의 제목은 《천하태평춘》이었다가 1940년 《삼인장편집》에 수록되었고, 1948년 《태평천하》라고 이름을 바꾸어 동지사(同志社)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발표시기가 대체로 겹쳤던 《탁류》(1937~1938)와 함께 채만식의 2대 장편으로 분류된다.


이 작품에서는 몰락한 주지가 중요한 주제적 동력학을 이루나, 여기서의 '몰락'은 《탁류》와 다르게 지주 계급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민중적 소망을 반영한다. 부르주아 계급의 몰락이라는 역사적 필연성의 관념적 세계관을 반영하는 작품으로는 《낙일》(1930)이 있다. 미학적으로도 이 작품은 상당한 연구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은 《치숙》(1938)과 흡사하면서도 그와는 다르게 작가와 화자의 구어체 간접화법의 진술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바로 이 점이 판소리 사설투의 연희전달, 극적 묘사 효과를 드높이는 미학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호남지방의 살아있는 구어가 풍부하게 수용되는 것도 이 점과 연관되며, 화자의 능청스러움이 《치숙》 못지않은 반어적 풍자 효과를 낳고 있는 것도 이같은 구어체 간접진술 방식의 채택과 관계 깊다.


문체는 판소리 또는 탈춤 사설의 어투를 계승하고 있는데, '~입니다'와 같은 경어체 문장이나, '~겠다요'와 같은 경박한 어투를 빌어서 작중 인물의 행위를 조롱하고 경멸하고 있다. 이는 바로 〈춘향가〉의 방자(房子)나 〈봉산탈춤〉의 말뚝이 같은 인물이 양반 사대부의 면전에서는 공경스러운 태도를 짓다가도 뒤에 가서 느닷없이 조롱하고 경멸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본딴 것이라 할 수 있다.


구성상으로도 이 작품은 《탁류》에 버금가는 날카로운 극적 긴장을 획득하고 있는데, 극적 '아이러니'라는 풍자극의 구조로서 '윤직원' 일가에 일어난 하루 동안의 일상사를 중심으로 작품이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리얼리즘적 척도에서도 이 작품은 중요하게 평가된다. 윤직원과 윤두수는 당시 신흥지주계급으로 떠오르고 있었던 상민 혹은 서민 출신의 부패지주의 전형이라 할 수 있으며, 이 계급이 식민지 지배당국과 결탁하여 이른바 '식민지 지주제'라는 독특한 반봉건의 지주적 현실을 만들어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이 부조리한 사회적 현실 속에서 성장한 계급이기에 그 일가의 일상적 삶은 윤리적으로 타락을 면치 못한다.


비록 하루 동안의 일상적 사태 전개 안에서나마 이 집안의 가계와 그 현재적 풍모가 고스란히 서술됨으로써 염상섭(廉想涉)의 《삼대》에 버금가는 일제하 대가족 윤리의 붕괴상을 명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 왜곡된 계급의 사회적 운명이 몰락으로 향하고 있음을 암시하기 위하여 작품의 마지막에서 집안의 기둥인 '종학'이 사회주의자로서 자신의 피검 소식을 전보로 알리고 사라진다. 이처럼 타락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진실을 알리고 사라져버리는 미학적 존재의 성격을 우리는 '숨은 신'의 개념으로 조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이 이룩하고 있는 이같은 풍자적·극적 아이러니의 미학적 달성이란 연극적 전통이 박약한 한국에서는 유일한 소설적 달성이라 할 수 있으며, 여기에 이르기까지 마르크스주의적 풍자극의 관념이 그의 의식 속에서 뿌리깊게 형성되어 왔음을 《낙일》을 위시한 그의 초기 작품들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출처] 태평천하 [太平天下 ] | 네이버 백과사전

 

핵심정리
▶ 갈래 : 중편소설, 사회 소설, 풍자 소설
▶ 배경 : 시간 - 1930년대 , 공간 - 서울. 한 평민 출신의 대지주 집안
▶ 경향 : 사실주의
▶ 시점 :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 성격 : 가족사 소설, 사회 소설, 풍자 소설
▶ 의의 : 1930년대 사회 현실의 격심한 퇴폐성을 비판적으로 풍자.
▶ 문체 : 판소리 사설의 원용(援用)
▶ 어조 : 부정적 인물을 비판하는 풍자적 어조가 두드러짐.
▶ 수법
① 풍자적 수법 : 부정적 인물(윤직원 영감)을 내세운 반어적 풍자.
② 판소리 사설의 문체
③ 반어와 희화(戱畵)를 통한 풍자적, 해학적 어조.
④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던지는 말투 및 경어체의 문체
* 경어체의 문체 : 독자와 서술자의 거리를 가깝게 하고, 한편으로 등장 인물에 대한 비판적 거리를취하게 된다. ( ~입니다. ~옵니다요. 등)
⑤ 현재형 서술
주제 : 개화기에서 일제 시대에 이르는 윤 직원 일가의 타락한 삶과 몰락 과정.

-  줄거리 -
1930년대 후반의 어느 늦가을. 서울 계동의 만석꾼 부자 윤직원 영감 은 명창대회를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다. 소작료와 수형 장사로 1년에 십 수만 원을 챙기는 이 거부 윤직원 영감은 타고 온 인력거에서 내리자마자 인력거꾼과 요금 시비를 벌인다. 30전은 주어야겠다는 인력거꾼과 15전밖에 못 주겠다며 옥신각신하다가 마침내 25전으로 낙착을 보자 거만의 갑부 윤직원은 몹시 속이 상해서 집으로 들어간다. 매년 십 수만을 버는 윤직원 영감이지만 밖으로 나가는 돈은 이처럼 절치부심, 아까워하는 것이다. 치재의 비결이 워낙 이러한지라 윤직원 영감은 버스를 타더라도 짐짓 큰돈을 내밀어 거스름돈을 받지 못한다는 핑계로 무임승차를 즐기는 터이기도 하다.

거만의 부를 움켜쥐고 있는 윤직원이지만 그에게도 비참한 역사는 있다. 노름꾼이던 그의 아비 윤용규가 어찌어찌 한몫을 잡아 가산이 일게 되면서부터 윤두섭(윤직원의 본명) 부자는 화적떼로부터 무수한 약탈을 당했는데, 급기야는 어느날 밤 들이닥친 화적떼에게 윤용규가 무참히 살해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때 고의춤도 여미지 못한채 달아나 명을 보전한 윤두섭은 화적들이 물러간 뒤 돌아와 참경을 목도하고 비장하게 외친 바 있다. "오오냐,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 화적떼에게 뺏기고 관리들에게 수탈당하던 두꺼비 윤두섭이 세상에 외친 위대한 선언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연고를 겪으면서 모은 거만의 재산이니 그가 한푼의 돈을 쓰는 것에도 벌벌 떠는 것이 무리가 아니라 하겠지만, 그는 착취니 뭣이니 하는 말에도 펄쩍 뛰는 무치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이만큼 돈을 번 것은 자신의 치재 수단이 좋았고 시운이 따라 가능했던 것이지 절대로 남의 것을 뺏은 것은 아니라는 탄탄한 소신이 그에게 내장되어 있는 탓이다. 시골 치안의 허술함과 후손 교육을 기회삼아 서울로 올라온 윤직원 영감에겐 지금이야말로 '태평천하'이다. 든든한 경찰이 있어 도둑 걱정없고 자신의 고리대금업은 날로 번창하고 있으니 이런 좋은 세상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이러니만큼 현재의 그에게는 사회주의 운동 운운하는 자들이야말로 가장 경멸스럽고 두려운 인물들이다.

그러나 현실적 위협이 없으니 그것도 피안의 불일 따름, 윤직원 영감에게 절박한 위협이 없으니 그것도 피안의 불일 따름, 윤직원 영감에게 절박한 근심은 없다. 단지 남은 소원이 있다면 그의 두 손자 - 종수와 종학이 각각 하나는 군수, 하나는 경찰서장이 되어 집안에 지위와 명성을 보태어주는 것뿐이다. 돈이 있으니만큼 이러한 자리 욕심이 생긴 터인데, 사실 직원이라는 그의 직함도 시골에 있을 무렵, 향교의 수장자리를 돈주고 사들인 것이다.

자신의 만수무강과 후손의 영화를 위해 자신의 소변으로 눈을 씻고 어린아이의 소변을 사서 매일 아침 장복하는 등 갖은 양생법을 실천하는 윤직원 영감이지만 실인즉 그의 집안 사정은 난맥상을 드러내가고 있다. 그의 외아들 창식은 진작 첩살림을 차려나가 하는 일이라곤 노름에 계집질뿐으로 주색잡기에 수천금을 뿌리고 있으며, 맏손자인 종수는 군수가 되리라는 명목으로 시골 군청의 고원으로 취직해 있으면서 역시 첩살림에 갖은 주색잡기로 수만의 가산을 탕진하고 있는 판이다. 둘째 손자 종학은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어 윤직원이 가장 기대하고 있는 터이지만 이도 서울집에 있는 본부인과 이혼하겠다며 성화를 피우고 있다.

또 윤직원 영감은 회춘을 하려고 여러 차례 동기를 바꾸어 가며 동접(童接)을 기도하나, 이번에는 열다섯살짜리 동기(童妓) 춘심이년이 애간장을 태우게 한다. 실은 춘심이는 윤직원의 증손자 경손이와 눈이 맞아 연애를 즐기는 중이었다.

이런 신선놀음을 하고 있는 윤직원 영감에게 비보가 날아든다. 맏아들 창식이 동경으로부터 온 전보를 윤직원에게 전해주는 바, 거기에는 '종학, 사상관계로 피검' 이란 활자가 선연히 찍혀있다. 윤직원의 차손 종학이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가장 증오하고 두려워 해 마지않는 사회주의에, 가장 큰 희망이요 보람이었던 경찰서장감 종학이 연루되었다는 것을 안 윤직원은 격노하여 비틀거리며 소리지른다. 왜 태평천하에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는 사랑으로 사라진다.

-소설의 사회적배경-
이 작품은 5대에 걸친 가족의 이야기로서 소위 '가족사 소설'의 전형에 드는 작품이다. 또한 성격을 자세히 묘사하고 사회 전체의 실상을 암시하려는 성격소설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1930년대는 20여 년이 넘는 총독부 정치가 완전한 식민 체계를 갖추면서 조선에 대한 수탈책이 절정에 이른 시기이다.

일본은 자국의 식량 위기를 벗어나기 위하여 조선에 산미 증산 계획을 실시하여, 조선에서는 증산된 쌀을 빼앗기고 만주에서 조를 수입하여 연명해 나갔다. 더욱이 세계적인 경제 공황에 휩쓸린 조선은 쌀이 모자라는데도 쌀값은 떨어지고 수리 시설을 했음에도 땅값은 떨어져 급격한 이농현상이 일어나고 실업자가 급증했다. 더불어 이 시기는 일제가 3.1운동 이후 일시적으로 보였던 기만적 문화 정치에서 벗어나, 만주 사변과 중일 전쟁 이후 대륙 진출의 야욕을 노골화하면서 사상범에 대한 검문,구속을 강화하는 등, 식민지 영구화 작업 (30년대 말 국어의 말살, 창씨 개명 등으로 어어지게 됨)에 박차를 가하던 가장 악랄한 시기였다.

윤직원은 놀부형 인물로서 포악하고 비열한 일제에 빌붙어서 자신의 부를 늘린 대표적인 인물이다. 작가는 전면에 윤직원을 내세워 왜곡된 사회와 그 속의 부정적 인물을 조롱하고 있다. 즉, 일제 강점하의 현실을 태평천하라고 믿는 주인공의 시국관을 풍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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