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 [蔡萬植, 1902.~1950.] --------------------------------------------------------------
호는 백릉(白菱), 채옹(采翁). 1902년 6월 17일 전북 옥구군 임피면 읍내리에서 채규섭(蔡奎燮)의 5남으로 출생. 중앙고보를 거쳐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예과에서 수학했다. 사립학교 교원과 『동아일보』 기자로 근무하다가 퇴사하여 향리에 머무르기도 했다 1929년 말부터 개벽사에 입사하여 잡지 『별건곤』, 『혜성』, 『제일선』 등의 편집을 맡았다. 이후 『조선일보』로 잠시 옮겼다가 사직하고, 1936년부터 전업작가로 활약했다. 1924년 『조선문단』에 발표된 단편 「세 길로」로 문단에 등단하였다. 초기작으로 단편 「불효자식」(1925)과 중편 「과도기」(문학사상, 1973)를 남겨 놓고 있으며, 그 밖에 향리 시절에 쓴 「가죽버선」(문학사상, 1973), 「생명의 유희[유고]」(1928), 개벽사 입사 이후에 쓴 「낙일」(1930), 「사라지는 그림자」(1931), 「화물 자동차」(1931), 「부촌」(1932) 등의 소설‧희곡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이 시기까지를 작가의 수업시대로 볼 수 있다. 1933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장편 「인형의 집을 찾아서」부터 작가로서의 입신을 향한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하였다. 탐정소설 「염마」(1934)를 연재하기도 했으나, 성과는 미지수였다고 할 수 있고, 단편 「레디메이드 인생」(1934)으로 독특한 풍자 작가로서의 면모를 획득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카프 제2차 검거사건이 발생함으로써 약 2년간 문필활동을 중단하였고, 결국 1936년 단편 「보리방아」와 희곡 「제향날」 등을 발표함으로써 작가로서의 본격적인 재입신을 꾀하게 된다. 「치숙」(1938), 「탁류」(1937~1938), 「태평천하」(1938) 등 그의 대표작들이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산출된다. 이로부터 태평양전쟁 말기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고 작가적 존재 방식을 추구해갔던 채만식은 그런 만큼 많은 소설적 결실과 함께 친일부역작가라는 오명을 씻을 수 없게 되며 이러한 궤적은 「민족의 죄인」(1948)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채만식은 1930년대와 1940년대에 걸쳐, 다시 말해 한국전쟁 직전에 타계하기까지 ‘작품으로 말하기’라는 작가 윤리를 자신의 생애 윤리로서 실천하였다. 그는 처음부터 지식인의 자의식을 날카롭게 투시한, 예컨대 지식인소설 유형으로 독자적인 면모를 획득하였으며, 지식계급으로서의 자의식이 민중적 현실과 폭넓게 접촉하였을 때는 비극적 리얼리즘의 창작방법을, 그렇지 않고 대상에 대한 통렬한 풍자‧희화화의 정신이 현실 가공의 미학적 정신을 철저하게 지배하게 되었을 때는 강렬한 풍자적 리얼리즘의 소설세계를 이루었다. 계급적 관념의 현실 인식 감각과 전래의 구전문학 형식을 오늘에 되살리는 특유한 진술 형식 창조는 그의 소설을 특징짓는 또 다른 요소이다. 소위 동반자작가로서의 의식적 출발을 마련하고, 이로부터 벗어나는 과정 역시 1930년대 지성사의 맥락에서 정신의 한 보편 굴절 양상을 살피게 하는 유력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의 동향에 민감했던 것 역시 그의 문학적 특징의 하나로 간주될 수 있는데, 소설을 통한 정치적 민감성이 일제말과 해방공간 전 기간을 통해서 우리 소설사의 공백을 메워준 유력한 언술체 생산의 한 기저동력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소설 양식뿐만 아니라, 희곡 양식 창작을 겸비하였다는 점에서 그는 예의 검토될 만한 작가이며, 무엇보다 광복의 현실로부터 분단, 그리고 전쟁으로 가는 1940년대 후반기 우리 역사의 굴절을 냉정한 묘사가의 시선으로 그려낸 여러 소설작품을 남기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우리 소설사에 한 예외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채만식 전집』(1989) 10권으로 그의 모든 문학적 언술들이 집성되어 있는 바, 질과 양의 면에서 한국 근대소설을 대표하는 작가의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 작품 감상
1. 태평천하 총 15장으로 구성되었으며, 최초의 제목은 《천하태평춘》이었다가 1940년 《삼인장편집》에 수록되었고, 1948년 《태평천하》라고 이름을 바꾸어 동지사(同志社)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발표시기가 대체로 겹쳤던 《탁류》(1937~1938)와 함께 채만식의 2대 장편으로 분류된다. 이 작품에서는 몰락한 주지가 중요한 주제적 동력학을 이루나, 여기서의 '몰락'은 《탁류》와 다르게 지주 계급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민중적 소망을 반영한다. 부르주아 계급의 몰락이라는 역사적 필연성의 관념적 세계관을 반영하는 작품으로는 《낙일》(1930)이 있다. 미학적으로도 이 작품은 상당한 연구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은 《치숙》(1938)과 흡사하면서도 그와는 다르게 작가와 화자의 구어체 간접화법의 진술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바로 이 점이 판소리 사설투의 연희전달, 극적 묘사 효과를 드높이는 미학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호남지방의 살아있는 구어가 풍부하게 수용되는 것도 이 점과 연관되며, 화자의 능청스러움이 《치숙》 못지않은 반어적 풍자 효과를 낳고 있는 것도 이같은 구어체 간접진술 방식의 채택과 관계 깊다. 문체는 판소리 또는 탈춤 사설의 어투를 계승하고 있는데, '~입니다'와 같은 경어체 문장이나, '~겠다요'와 같은 경박한 어투를 빌어서 작중 인물의 행위를 조롱하고 경멸하고 있다. 이는 바로 〈춘향가〉의 방자(房子)나 〈봉산탈춤〉의 말뚝이 같은 인물이 양반 사대부의 면전에서는 공경스러운 태도를 짓다가도 뒤에 가서 느닷없이 조롱하고 경멸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본딴 것이라 할 수 있다. 구성상으로도 이 작품은 《탁류》에 버금가는 날카로운 극적 긴장을 획득하고 있는데, 극적 '아이러니'라는 풍자극의 구조로서 '윤직원' 일가에 일어난 하루 동안의 일상사를 중심으로 작품이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리얼리즘적 척도에서도 이 작품은 중요하게 평가된다. 윤직원과 윤두수는 당시 신흥지주계급으로 떠오르고 있었던 상민 혹은 서민 출신의 부패지주의 전형이라 할 수 있으며, 이 계급이 식민지 지배당국과 결탁하여 이른바 '식민지 지주제'라는 독특한 반봉건의 지주적 현실을 만들어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이 부조리한 사회적 현실 속에서 성장한 계급이기에 그 일가의 일상적 삶은 윤리적으로 타락을 면치 못한다. 비록 하루 동안의 일상적 사태 전개 안에서나마 이 집안의 가계와 그 현재적 풍모가 고스란히 서술됨으로써 염상섭(廉想涉)의 《삼대》에 버금가는 일제하 대가족 윤리의 붕괴상을 명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 왜곡된 계급의 사회적 운명이 몰락으로 향하고 있음을 암시하기 위하여 작품의 마지막에서 집안의 기둥인 '종학'이 사회주의자로서 자신의 피검 소식을 전보로 알리고 사라진다. 이처럼 타락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진실을 알리고 사라져버리는 미학적 존재의 성격을 우리는 '숨은 신'의 개념으로 조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이 이룩하고 있는 이같은 풍자적·극적 아이러니의 미학적 달성이란 연극적 전통이 박약한 한국에서는 유일한 소설적 달성이라 할 수 있으며, 여기에 이르기까지 마르크스주의적 풍자극의 관념이 그의 의식 속에서 뿌리깊게 형성되어 왔음을 《낙일》을 위시한 그의 초기 작품들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출처] 태평천하 [太平天下 ] | 네이버 백과사전
핵심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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