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 Chosun.com 입력 : 2010.07.17 03:01
女기자, 女軍되다… 對테러 '독거미 부대' 체험
11m 구조물 위에서 '부들부들' 완전군장 행군에 식은땀 '뻘뻘'
2004년 2월 19일 전남 완도해양서 운동장에 1500명이 모였다. 교통사고로 숨진 고(故) 김형수 완도해경서장과 조경창 경위의 합동영결식을 위해서였다. 그때 고 김 서장의 딸 유진(23)은 고 3이었다. 6년이 흐른 지금, 딸은 수도방위사령부 '독거미부대'인 35특공대대 여군 특임중대 하사가 돼 있다. 딸이 군문(軍門)에 들어선 것은 생전에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 때문이었다. "너도 나라를 위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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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일 오후 레펠훈련을 마치고 독거미부대의 가장 후임인 본지 한경진 기자(맨 왼쪽)와 이은혜 하사(맨 오른쪽)가 로프를 짊어지고 내려오고 있다. 이 하사가“우리는 밍크 목도리 대신 로프를 두른다”고 말하자, 중대장과 부대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2007년 8월 김유진은 한서대 3학년을 다니다 육군부사관학교에 입대했다. 아버지를 닮아 힘과 지구력이 좋은 그가 임관할 무렵, 수방사(首防司) 35특공대대 주임원사와 행정보급관이 찾아와 '독거미부대' 이야길 했다.
이때 김유진과 함께 뽑힌 동기는 셋이다. 속초 보습학원 강사였던 유경아(27), 태권도 2단·유도와 합기도 초단으로 무술에 능한 강희영(26), 군인 아버지 밑에서 군인들과 함께 자랐다는 이시영(22)이다.
국내 최정예 여군 특수중대는 두 곳이 있다. 수방사 35특공대대 특임중대와 특수전사령부 대(對) 테러부대 여군중대다. 김유진이 속한 수방사 '독거미부대' 특임중대는 육군 전체에서 여군 10여명만 선발해 집중 훈련하는 곳이다.
'독거미부대'는 서울에 테러가 일어나면 즉시 출동한다. 특임중대원 중 일부는 실력이 남자보다 낫다. 분기별 '방패 특급전투요원' 선발대회에서 김유진은 동장을, 유나영(27) 중사는 금장 2번에 은장·동장 하나씩을 획득했다.
'독거미부대' 특임중대는 현재 중대장 1명과 중사·하사 6명이 훈련 중이다. 기자는 이틀간 서울 남태령 수방사에서 함께 훈련했다. 12일 오전 7시 50분, 부대원들이 기초체력단련을 시작했다.
요즘 날씨에 특수부대 특유의 검은 작전복(흑복·黑服)을 입고 6~9㎞씩을 뛰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구호에 맞춰 걷다가 언덕길을 '물새가''멋진 사나이''독사가' 같은 군가를 부르며 달렸다.
남태령 수방사 부지에는 35특공대대 말고도 수백명의 군인이 있다. 유일한 '여군 중대'이다 보니 훈련장면을 힐끔거리는 병사들도 많다. 2㎞쯤 뛰자 기자의 옷은 땀에 푹 절었는데 독거미부대원들은 뽀송뽀송하고 멀쩡했다.
'독거미부대' 여군의 평균 신장은 165㎝, 몸무게는 55㎏이다. 차보람(26) 중대장은 "특수요원이라고 하면 덩치 크고 우락부락한 모습을 기대하다가 우리의 평범한 외모를 보고 놀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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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날 따라해봐, 이렇게Ԃ¢ 독거미부대원의 레펠 훈련 장면. 훈련 목표는 더 빠르고 매끄럽게 내려가는 것이다. 김유진 하사는“처음 연습할 땐 얼굴을 땅에 들이받진 않을까 두려웠다”고 했다. / 이준헌 객원기자
오전 10시 30분 체력단련장으로 옮겼다. 가장 체력이 좋다는 이시영 하사가 날렵하게 수평봉에 매달려 전진했다. 이 하사의 양손바닥은 뜨겁게 달궈진 수평봉 때문에 화상을 입어 홀랑 벗겨졌다. 그는 금세 치료를 받고 돌아왔다.
부대원들은 7m 정도 되는 외줄도 가뿐하게 올랐다. 기자는 시계추처럼 매달려 용을 쓰다 내려왔다. 오후 훈련은 레펠 훈련을 시행했다. 이들은 일주일 단위로 레펠·사격·위장술·미행감시·중요지역연구 등의 과목을 훈련한다.
여군 특수요원들은 비상시 민간인으로 위장해 첩보를 입수하기 때문에 '암호'나 '대화·협상술'도 배운다. 어떤 모습의 용의자가 무슨 무기를 가졌는지 일상 대화 속 암호로 녹여내는 것이다.
이은혜(23) 하사가 말했다. "간호사·배달원·30대 여성 등으로 위장하기 때문에 화장품에도 관심이 많다. 그런데 치마를 입어도 어딘가 모르게 티가 난다. '아미라인(army line)' 때문인 것 같다." '아미라인'은 군복 때문에 목과 얼굴, 팔꿈치에 생긴 선을 말한다. 게다가 훈련으로 다져진 근육도 숨기기 힘들다.
기자가 11m 구조물에서 뛰어내리지 못해 부들부들 떨자 유나영 중사가 "지시에만 따르면 안전하다"고 거듭 말했다. 하지만 한동안 거미줄에 걸린 풍뎅이 같은 신세로 거꾸로 매달려 있어야 했다. 김유진 하사가 말했다.
"처음엔 나도 무서워 선임이 뛰라고 할 때 '지금 말입니까?' '저 말씀이십니까'하며 망설였다. 그때 선임이 '여기 여자로 왔냐? 그냥 나가라'고 했다. 그 소리에 오기가 생겨 다음 차례가 왔을 때 바로 뛰었다."
이시영 하사는 "우린 남자보다 다리도, 몸집도 작아 장애물을 극복할 때에도 배 이상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각자 임무가 따로 있어 남녀의 전투력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지만 훈련할 땐 같은 조건을 이겨내려 한다."
이렇다 보니 극심한 체력 소모로 생리주기가 길어지거나 한 달에 여러 번 찾아오는 일도 있다. 차 중대장은 "7~8년 정도 독거미부대 생활을 하면 무릎이나 허리가 안 좋아져 한계가 찾아온다"고 했다.
독거미부대원들은 30세를 전후로 보직을 옮기거나 일부는 전역한다. 여군 특수요원은 가장 아름다울 20대 때에만 할 수 있는 일인 셈이다. 1991년 중대가 생긴 이후 지금까지 총 73명의 대원이 거쳐 갔다.
이들은 '국가에서 선택받은 사람'이란 자부심으로 가득하다. 유경아 하사가 말했다. "시내 근처를 완전 군장하고 걷는데 멋지게 차려입은 또래 남녀가 지나갔다. '내가 지켜주고 있어 저들이 즐겁게 보내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이튿날 오전 부대원들은 '전투준비태세' 상황 훈련을 치른 뒤 오후에 군장을 메고 영내를 두 시간 동안 행군했다. 산기슭을 기어가듯 쫓아 올라가다 뒤를 돌자 서울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부대원들은 "경치 좋다. 그 넓은 서울 땅 중에 왜 우리는 지금 이 계단을 오르고 있을까?"라며 웃었다. 오후 5시쯤 산에서 내려온 부대원들은 땀 맺힌 얼굴로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쥐어짜며 노래했다.
"멋있게 살다가 깡다구로 죽으리라~ 으아아아~!" 아마 부근에 독거미가 있었다면 놀라 달아났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권혁순(55) 수방사령관은 "독거미부대가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도 큰 활약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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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군(女軍) 최정예 수방사 '독거미 부대'
22일 오후 1시쯤 서울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역 부근에 있는 수도방위사령부 래펠(rappel) 훈련장. 35특공대대 여군 특임(특수임무) 중대 김원희(29) 중사와 유경아(27) 하사가 높이 11m 탑 꼭대기에서 밧줄에 몸을 맡기고 까마득한 땅 아래를 바라보며 비스듬히 섰다.
인간이 공포를 느끼기 시작한다는 높이. 꼭대기 난간 끝에 발을 걸친 채 이들은 "중사 김원희, 하사 유경아 하강 준비 끝"이라고 외친 뒤 밧줄을 타고 몸을 날렸다. 착지(着地)까지는 1.5초. 이들은 거리낌이 없었다. 함께 온 다른 대원 8명도 차례로 건물 5층 높이에서 뛰어내렸다. 유 하사는 "처음엔 조금 무서웠지만 이제는 즐겁다"고 했다.
이들은 이에 앞서 오전 11시쯤 가진 사격훈련에서 15m 떨어진 과녁에 인질을 잡고 있는 테러범 그림을 걸어놓고 인질이 다치지 않게 테러범 얼굴을 정확히 맞히는 훈련을 마쳤다.
유나영(26) 중사가 쏜 38구경 총알 9발은 정확히 테러범 얼굴에 손바닥만한 넓이 탄착군을 이루며 관통했다. 유 중사는 올 1분기 '방패'(수방사 부대 이름) 특급전투원 선발대회에서 전체 경쟁자 120명 중 '금장(金章)'을 받은 7명 중 한 명이다.
이들은 이른바 '독거미 부대' 대원들로 특수전사령부 707특임대대 여군 중대와 함께 한국 여군의 최정예 부대로 꼽히는 전사(戰士)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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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관악구 남현동에 있는 수방사 훈련장에서‘독거미 부대’로 불리는 35특공대대 여군특임중대 여군들이 11m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래펠 훈련을 하고 있다./손민석 객원기자 kodef@chosun.com
평시(平時)에는 테러 진압이나 요인 경호 등을 주로 맡지만, 전시(戰時)에는 간호사나 사무실 여직원 등으로 변장, 적진 깊숙이 침투해 정보를 빼내는 스파이로 변신하는 특수요원들이다.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특공무술, 권총 저격, 헬기 낙하, 잠금장치 해체술, 변장술, 간호술 등 다양한 훈련을 소화한다.
부대원 10명 무술 단수를 다 합하면 33단. 전원이 태권도와 유도, 합기도 등을 몸에 익혀 육박전에서도 남자 서넛은 거뜬히 제압한다는 게 대대장 박진용(42) 중령의 자랑이다.
매년 갖는 특공무술 시범 때 맥주병 5개를 고정해 놓고 뚜껑 부분을 손날로 쳐 깨는 묘기도 선보인다. 정예 특수 요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대장과 중대장이 여군 부사관학교를 직접 찾아가 면접과 체력 측정, 훈련 점수 등을 통해 대원들을 뽑는다.
여군 특임 중대는 1991년 3월 수도권 대테러 작전을 위해 35특공대대가 창설된 뒤 3개월 후 "여군을 투입해야 할 상황이 있다"는 필요 아래 결성됐다. 당시 전 군에서 전투력이 높다고 평가받는 여군 13명을 뽑아 집중 조련했다. 대원들은 전원 미혼. 결혼하고 아이를 갖게 되면 아무래도 부대 생활이 부담스러워져 자연스레 생긴 전통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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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전사령부 특전여군단결~!
근무신고가 좀 늦었습니다.
저대신 제주오름님 께서 수고를 해주셨군요...감사합니다~!
오늘 손님 접대가 좀 있어서...^^;;
참...먹고사는 것이 힘이 드는군요ㅜ.ㅜ
그래도 군시절 어려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힘내며 살고있습니다
사진은 특전여군사진 입니다
요즘에는 타군에도 여군들이 많지만,
특전사여군들 참 대단합니다
남자들도 힘든 군생활 잘 이겨내며
또...욕 잘하고 깡좋고...ㅋㅋ
즐거운 밤보내십시오~!
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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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바논 유엔 평화유지군(UNIFIL)으로 활동 중인 동명부대에서 경리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최혜은 대위(34.여군 46기). / 연합뉴스
“도울 수 있어 보람”..6살아들.남편 “눈에 밟혀”
레바논 유엔 평화유지군(UNIFIL)으로 활동 중인 동명부대에서 경리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장교는 최혜은 대위(34.여군 46기)이다.
6살짜리 유치원생 아들을 둔 엄마인 최 대위는 지난 2월 동명부대 6진 350여 명의 일원으로 레바논 남부 티르 지역에 도착한 이후 4개월여 동안 주민을 위한 민사작전 등에 사용되는 예산 집행을 담당하고 있다.
최 대위는 “동명부대의 작전 관할 지역 내 어린이 환자들을 선별해 치료를 돕는 민사작전 예산 등이 저를 통해서 나간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낀다”며 활짝 웃었다.
군 생활 10년째인 최 대위는 또 전 부대원들에게 매월 해외파병 수당 등을 전달할 때 장병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덩달아 마음이 즐겁다며 ‘부대 살림꾼’의 속마음을 솔직히 드러냈다.
‘파병 생활이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최 대위는 “가족이 보고 싶다는 것을 빼면 주둔지에서 장기간 고립된 생활을 하는 게 특별히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최 대위의 남편은 73사단 경리참모로 복무 중인 최락선 대위(육사 56기). 이들 장교 부부는 2001년 임관 후 종합행정학교 ‘경리 초군반’ 과정 때 만나 2년 뒤 백년가약을 맺었다.
해외파병 경험을 쌓고 싶어하던 최 대위가 동명부대에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을 때 시부모와 친정부모는 적극적으로 지지했으나 남편은 유치원생 아들의 양육 문제를 들어 선뜻 찬성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친정에서 아들을 맡아주겠다고 나서 최 대위는 6대 1의 경쟁을 뚫고 동명부대 경리장교로 선발되어 레바논에 오게 됐고, 지금은 남편도 건강하게 돌아오라며 최 대위를 격려해주고 있다.
남편과 아들하고는 매일 안부전화를 한다는 최 대위는 “유치원 선생님이 아들 수혁이가 레바논에서 복무하고 있는 엄마를 매우 자랑스러워 한다는 내용을 적은 편지를 보내줬을 때 너무 기뻤다”고 말했다.
최 대위는 대학 졸업 후 2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신문에서 여군장교 모집공고를 보고 군인의 길을 선택했다.
최 대위는 “여군 장교의 길을 선택한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며 “군에서는 정확하게 주어진 임무가 있고 성과도 나타나고, 오히려 군에서 남녀차별이 더 없는 것 같다”면서 군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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