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대제사장
히 8:1-6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친밀한 관계라고 하기에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너무나 엄청난 신분 차이가 있습니다.
그 무한한 존재의 간격을 뛰어넘게 했던 근거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6-17)는 말씀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대표인 아담에게 공적으로 약속하시고 아담이 수용했던 언약입니다.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피조물의 왕이 되시고 아담은 왕의 말씀대로 만물을 관리하는 그분 백성이 되는 하나님 나라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과 아담이 함께 거닐며 교제하는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아담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그분께 직접 말할 수 있었으며(창 3:8), 육체와 정신을 모두 만족스럽게 하는 풍성한 복을 거저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의 첫 범죄로 이 모든 복이 사라졌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것은 단순히 금지된 열매 하나를 먹은 사건이 아닙니다.
아담은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그리했는데, 그것은 왕이신 하나님에 대한 명백한 반역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보다 사단의 말대로 행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 행위, 곧 사단을 자기 왕으로 모신 사건이었습니다(창 3:5).
아담의 첫 범죄는 하나님의 언약을 깨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언약 파기는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모든 혜택을 상실하게 했습니다.
아담은 에덴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에덴으로 가는 길조차 막혔습니다(창 3:24). 하나님께서 거저 주셨던 복을 전부 상실했지요.
이것이 언약 파기로 말미암아 아담에게 임한 재앙이었습니다. 언약 파기와 함께 아담의 신분과 상태는 급변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신분을 잃고 사단에게 종노릇하는 비극적인 상태에 처했습니다. 하나님 백성이 아니니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아담의 후손은 모두 하나님께서 무상으로 공급하셨던 풍성한 복을 애초에 누릴 수 없는 상태로 태어납니다.
아담은 인류의 조상이자 언약의 대표였기 때문에, 언약 파기의 책임을 인류가 함께 지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아담의 후손은 왕위를 찬탈하려 했던 역적의 자식이라는 신분으로 태어나 노비로 살아야 하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할 때만 낙원을 누릴 수 있도록 창조된 피조물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고 그분께 가까이 갈 수도 없는 신분과 상황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죄로 말미암은 언약 파기는 인류에게 엄청난 재앙이며 인간에게 있는 모든 비참함의 근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왕이 되시고 백성은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 나라를 상징적으로 드러낼 수 있도록 율법을 주셨지요.
그 율법의 중심에 제사 제도가 있습니다. 특히 대제사장이 대 속죄일에 수행했던 대속 사역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구속의 성격을 모형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원형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죄를 용서받고 담대히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긍휼과 때를 따라 도우시는 은혜를 받을 것을 모형의 제사장으로 나타내셨습니다(4:16).
그리고 오랜 세월을 지나 마침내 예수께서 원형의 대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아담 이후 인류는 이미 지옥으로 떨어지는 중이며 자기 힘으로는 결코 천국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있습니다.
지옥으로 떨어지는 중에 계속 후손을 낳고 있는 셈이지요. 역적의 아들로 태어나 이미 사형을 선고받고 천국에서 추방된 상태로 사형 집행일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와 같습니다.
은혜 언약은 그렇게 지옥으로 떨어지는 자 중에서 어떤 이들을 붙들어 주셔서 천국으로 보내신다는 내용입니다.
역적의 자손들에게 왕께서 보낸 중보자(대제사장)만 영접하면 모든 죄를 용서하고 양자로 삼으시겠다는 놀라운 선언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이미 우리에게 있다는 이 복된 소식보다 더 좋은 복음은 없습니다.
첫째 :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1절)
요점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케팔라이온)이라고 하여 ‘핵심’이라는 뜻입니다. 요점이라고 번역하는 것도 매우 잘 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것의 요점, 곧 핵심은 우리에게 이러한 대제사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대제사장은 지난 번 7장 끝부분에서 정리한 것처럼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며, 항상 살아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시고,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대제사장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자기 자신을 단번에 제물로 드려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희생 제물이 되신 그러한 대제사장입니다.
이러한 대제사장은 율법에 따라 세워진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맹세에 따라 하나님의 아들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대제사장이 되신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대제사장이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설명합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이신데 이제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대제사장이십니다.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은 만왕의 왕이 되셨으며 만유의 주가 되셨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또한 만왕의 왕이시며 만유의 주이신 대제사장이십니다.
구약의 스가랴를 보면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통해 장차 오실 영원한 대제사장을 예표하는데 놀랍게도 그 대제사장은 영원한 왕이 되실 것을 예언합니다.
지금 스가랴 선지자는 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예표적인 행위를 하도록 하는데 곧 언젠가 오실 메시아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 앞에서 대제사장이시며 동시에 “보좌 우편에 앉으실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영원한 왕이 되신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스가랴의 예언이 완성된 상태를 묘사하고 있는 것이 오늘 1절의 내용입니다.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홀로대제사장직과 왕의 직분을 영원히 다 지니시고 온 우주를 다스릴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의 중보자로서 우리를 위해 자기 생명까지 바치며 사랑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절은, 성소와 참 장막은 이 땅의 장막및 지성소와 대조되어 하늘의 성막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이에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라 주께서 친히 세우신성소와 참 장막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즉,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며 영원한왕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의 성막, 곧 하늘의 지성소 및 성소에서 섬긴다는 뜻입니다.
물론 하늘 전체가 지성소가 될 것이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린양으로 계신그곳은 모든 우주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지금부터 영원토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나라에서 대제사장 및 만왕의 왕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 히브리서 기자는 이 땅에서 모세의 지시에 따라 사람들이 지었던 성막과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하늘의 성막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성막은 하늘의 성막의 그림자일 뿐이며, 하늘에서 드려지는 예배는 완전한 예배입니다.
히브리서에서의 대조는 언제나 상징과 그 상징이 나타나는 실체를 대조하고 있고, 상징물은 불완전한 것이지만 상징이 나타나는 실체는 완전한 것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둘째 : 자신의 몸으로 제사를 드린 대제사장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그러므로 그도 무엇인가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3절)
이때 하늘의 장막에서 섬기는 대제사장이신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옛 언약에서 제사장들이 예물과 희생 제물을 바친 것같이 대제사장이기 때문에 뭔가를 바쳐야 합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대제사장은 속죄일 또는 대 속죄일에 자신을 위해 송아지로 속죄하고 그리고 백성들을 위해 수염소, 수양, 비둘기 같은 제물로 속죄 제사를 드렸습니다.
놀랍게도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은 동물이 아니라 바로 흠없는 자기 자신을 속죄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히 7:27).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 9:14).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대제사장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레위 지파가 아닌 유다 지파에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이 땅이 아닌 하늘에서 대제사장이 되셔야 합니다. 주께서는 친히 자기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시고 부활하셔서 하늘에 오르셨고, 하나님께서는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맹세 가운데 영원한대제사장으로 삼으사 하늘의 성막에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모세의 율법에 따라 오직 아론의 후계자들 가운데 대제사장이 되었지만, 우리 주님은 하늘로 오르셔서 하나님의 맹세에 따라 멜기세덱의 계통에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들은 동물의 피로 제사를 드렸으나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는 피 흘리신 자기 몸으로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셋째 :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대제사장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5,6절)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지상의 성소에서 그들의 직무를 수행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성소는 하늘에 있는 참 성소의 모형에 불과했습니다.
지금 하늘과 땅의 성막 비유는 하늘에도 똑같이 생긴 성막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영적 실체를 우리 인간들에게 맞게 구약에서 허용한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막에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다고 하는데 그 공간이나 형체 등에 대해서는 지금 우리로서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아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및 왕으로서의 중보 역할 때문에 우리는 죄사함을 받으며 죄를 이기며 또한 이 땅에 사는 동안, 아니 영원토록 안전하다는 사실입니다.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에 하늘의 예배 장면이 나오는데, 그러한 환상 속에서 하늘 성막 또는 성전 등을 상상해 보는 것은 괜찮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상 이 땅의 모형으로 하늘 성전 또는 성막을 구체화하려는 것은 자칫 어리석음과 우상에 빠질 수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예배와 사귐과 하나됨 가운데 주 하나님과 완전하게 화목한 상태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즉, 거꾸로 말하면 하늘의 예배와 영광은 인간에게 제시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주께서 알려주신 그대로 이 땅에 성막을 짓게 하심으로 수많은 상징으로 하늘의 성전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사건은 하늘의 성막이 우리 인간들에게 열려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더라.”(마 27:50-51)
이후로 하늘의 성소가 열렸기 때문에 이 땅의 성소를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실체가 오면 그 예표는 사라져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율법에 따른 아론의 대제사장직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희생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심으로 하늘의 성소에서 대제사장의 역할을 하시니 이제 더 이상예표로 존재하던 모세 율법의 제사장들은 다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예배를 드리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지시하신 그대로 예배와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며, 완전한 영원한 희생 제물이시고, 나아가 영원한 왕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 오늘도 그분과 동행하며 평안과 안식과 의와 기쁨을 누리시기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