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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의 충만함 (행 2:1~4)

작성자이상모 목사|작성시간26.06.22|조회수17 목록 댓글 0

성령의 충만함

2:1-4

 

오늘 본문은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인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2:28-29)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오순절에 성령님께서 강림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 강림하셨다는 말은 그 오순절 이전에 성령님께서 이 땅에서 전혀 활동하시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참되고 영원하신 한 분 하나님으로, 삼위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 일하십니다.

삼위는 위격상의 구별은 있지만 분리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삼위의 영광을 우리에게 나타내심에 있어서는 먼저 성부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밝히 나타내 보여주셨다.

그 다음에 성자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나타내 주셨고, 그 다음으로 성령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나타내 주셨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영광은 그의 창조에서, 그리고 아들을 보내셔서 죄인들을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신 일에서 강렬하게 나타났습니다.

성자 하나님의 영광은 그의 성육신으로부터 시작된 그의 모든 지상생애, 특별히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에서 찬란하게 나타났습니다.

이전에도 성자 하나님은 영광의 하나님이셨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의 영광을 더욱 찬란하게 나타내셨고, 그렇게 하심으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17: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성령 하나님의 영광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이후, 만방에 복음이 전파되고 택한 자들이 구원을 받는 교회사 기간 전체에서 밝히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통해, 복음이 본격적으로 지역과 민족의 경계를 넘어서, 이전보다 훨씬 강력하고 자유롭게 증거되어 구원의 일들이 이루어지게 되었음을 매우 강력한 방식으로 알려주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성자의 영광이 가장 짧은 기간 동안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고, 성부의 때와 성령의 영광은 매우 길게 나타난 것처럼 보이지만, 성부와 성령은 성자의 영광을 가리키고 계시며, 그리스도는 전 역사의 중심에 계십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며, 성령은 성자를 영화롭게 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이 점점 더 충만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성령님은 이 세상에 복음이 선포되게 하시며, 복음을 들은 자들로 그리스도를 믿게 하십니다.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는 명령을 받은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순절날에 약속하신 대로 성령강림 사건이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때 사도들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2:4)하였습니다.

사도들에게 성령이 임하여 그들이 권능을 받았을 때에, 그들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님께서는 이 땅에 복음이 선포되도록 하시는 분입니다. 성령님은 시대마다, 지역마다 말씀의 증인들을 일으키십니다.

또한 성령님께서는 복음을 듣는 자들 가운데에서도 역사하셔서 복음을 듣는 자들이 그 복음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믿음을 일으켜 주시고, 그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게 하십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때에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모든 사도들을 대신해서 사람들 앞에 서서 설교하였을 때에 그 복음을 들은 자들은 사도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 마음에 찔림을 얻고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여 그날에 삼천 명이 세례를 받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음을 들려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시며, 그 믿음을 통하여 우리는 구원을 받습니다.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복음의 큰 비밀을 바로 깨달아 알고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첫째 : 오순절이 상징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1)

이 오순절도 여기서 중요한 상징입니다. 성령의 강림이 오순절에 임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상징적으로도 매우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에 오순절이 어떤 날입니까? 하나님 앞에 곡식의 첫 열매를 드리던 때입니다.

그래서 초실절이라고도 하고, 맥추절이라고도 하고, 유월절 후 50일째 되는 날이라 해서 오순절이라고도 하고, 혹은 유월절 후 7주 지난 다음 날이기에 칠칠절이라고도 합니다.

바로 이 날 성령께서 강림하신 것은 성령 받아야 우리의 신앙이 비로소 열매 맺는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잘 알아야 합니다. 성령 받기 전에는 쭉정이일 뿐입니다. 바람만 불면 다 날아갑니다.

알곡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는 갈 수 없습니다. 시험 당하면 끝내는 다 배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3:12)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없는 사람은 아무리 이력이 화려해도 참되게 믿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세상살이나 교회생활이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가 참 알곡이 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런데 주변에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을 보면서 잘잘못을 떠나 믿음 없어 그것이 전부인 줄 알고 다투고 싸우는 것을 보면 많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내가 옳아도 져주면 어떻습니까? 내가 죽어지면 어떻습니까? 왜 그렇지 못합니까? 아직은 알곡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함께 하시면 마음에 예수가 계시기 때문에 똑같이 범죄할 수 없습니다.

둘째 : 강한 바람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2)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바람으로 성령을 비유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보통 바람이 아니라 태풍입니다.

그냥도 임하실 수 있는데 왜 이런 태풍 같은 바람처럼 임하셨을까요? 성령이 임하시면 될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태풍이 얼마나 무서운지 지구촌의 소식을 보면 집도 날아가고 공장도 날아가고 자동차도 날아가고 지상을 완전 초토화시키는 것을 봅니다.

어떤 사람은 태풍에 날아가지 않기 위해서 자기 몸을 나무에 꽁꽁 묶었지만 너무나도 바람이 세차서 결국 죽고 만 안타까운 소식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순절에 임한 성령의 바람은 땅의 바람이 아니라 하늘의 바람입니다.

하늘의 바람은 세상에서 나타나는 자연적인 바람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적인 바람으로 이는 성령의 바람이요, 은혜의 바람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바람이 아니라 살리는 바람이며, 세상을 변화시킬 변혁의 바람입니다. 악과 그 모습을 다 쓸어 가시고 새롭게 하실 새바람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바람입니다. 이 성령의 바람은 인간을 바꾸고 세상 문화를 바꾸고 역사를 바꿉니다.

이 바람이 제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기도할 때에 하늘로부터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가장 귀한 성도는 기도하는 성도요, 가장 귀한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기도 없이 수효만 많으면 죽은 교회이며, 기도가 없으면 죽은 것입니다.

이 땅에 성령의 바람이 불도록 기도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귀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오순절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로서 나타나신 것은 성령이 임하시면 그런 변혁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셋째 : 불의 혀 같이 나타났습니다.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3)

성령께서 불의 형상으로 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냥 불의 모양이 아닙니다. 불의 혀와 같은 모양이었습니다.

불도 능력이 있는데 혀는 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혀는 우리 인격을 지배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3: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이처럼 말은 대단한 것이어서 우리 인생을 불사릅니다. 이 불은 지옥불과 같이 거세서 아무도 끌 수 없는 불입니다.

오순절에 임한 불의 혀도 그런 의미입니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우리 일생을 주님과 선한 일에 불사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불을 끌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합니다.

이 불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들고, 열심히 살게 만들고, 온갖 죄악을 소멸하게 하며, 얼음장 같은 심령도 녹이고, 완고한 심령도 깨뜨리고,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능력을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땅에 불을 던지러 왔다고 하신 것은 다른 불이 아닌 열심의 불, 성령의 불을 말씀한 것입니다.

이 불은 방언으로 다른 언어들로 말함과 동시에 소통하는 역사가 임하였습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4)

이처럼 성령이 임하시면 방언하는 역사도 있습니다. 지금도 방언의 은사는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알아야 할 것은 오순절에 있었던 방언은 실제이면서도 상징적으로 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필요하다면 각국 방언을 하게 하십니다. 여러 사람이 각각 다른 방언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120명 모두가 다 다른 120개 지방의 방언을 동시에 한 것은 그 때밖에는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성령을 받을 때 오순절과 같은 경험을 하지 않아도 성령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때 태풍을 경험시키고 불의 혀를 보게 하고 오순절에 임하신 것은 거기에 중요한 의미의 상징적인 것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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