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산제물
롬 12 : 1-2
구약시대의 제사의 방법과 신약시대인 지금의 제사 방법은 다릅니다. 구약시대는 제물을 죽여서 피는 제단에 뿌려서 바쳤고, 몸은 태워서 번제로 드렸습니다. 죽은 제물로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더 이상 피를 흘려 죽은 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제물이 되사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입니다. (히10:14)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이제 우리가 드리는 제사는 산제사입니다. 죽은 제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제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바로 살아 있는 내 자신을 드리는 제사입니다.
내 몸을 산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비단 육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영혼과 육체 모두를 의미합니다. 전인격을 의미합니다.
신약의 제사는 삶의 예배입니다. 예배가 삶이고 삶이 곧 예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산제사란 내 영혼과 육체와 내 인격과 삶 전체를 드리는 삶의 제사요 삶의 예배를 의미합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산 제물을 드릴 수 없습니다. 그들의 영혼이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살아 있기에 제물을 드릴 수 있습니다. (엡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살아 있습니다. 또한 우리 육체도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피 값을 주고 사신 바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영혼과 육체를 주께 드려 산 제물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산 제물을 드릴 수 있는가를 본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 세대를 본 받지 말아야 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2절)
이 세대를 본 받지 말라는 것은 쉽게 말해서 세상의 가치관과 풍조를 따라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산 제물을 드리려면 반드시 이 세대를 본 받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불화하는 세상의 향락적인 문화가 내 삶이나 가정에 들어와 있다면 몰아내야 합니다.
또한 부부 간에 반목과 갈등을 조장하려는 마귀의 간교한 술책도 몰아내야 합니다. 부부간에 자존심을 버리고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잘못을 인정하고 화해를 시도해야 합니다.
(요일2:15,16)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말씀을 살펴보면 세상의 가치관을 세 가지로 요약해 놓았습니다.
① 육신의 정욕으로서 절제되지 않는 육체의 욕구입니다.
② 안목의 정욕은 눈에 보이는 대로 좇아가는 것입니다. 재물을 보고 탐욕을 갖거나 여자의 육체를 보고 음욕을 품는 것입니다.
③ 이생의 자랑은 세상 명예와 자랑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이 세 가지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이 세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는 마음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세상을 바라보면 두 가지 문제점으로 성적인 타락과 가정의 파괴입니다.
둘째 :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2절)
우리는 예수를 믿을 때에 이미 새롭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날마다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사망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으로 두 번째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반드시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새 생명이 되었기 때문에 계속 자라가야 합니다.
주님 앞에 설 때까지 우리는 날마다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날마다 새롭게 변화가 될 수 있나요? 내가 결심을 한다고 새롭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힘과 의지로 새롭게 변화될 수 없습니다.
마치 자연 현상과 똑 같습니다. 봄이 되고 새 잎이 돋아났습니다. 그 새 잎은 동녘에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받으면서 날마다 자라갑니다. 봄이 되었구나 싶은데 잠시 지나보면 주변의 산들이 푸르른 신록으로 우거집니다.
바로 이와 같이 우리도 아침 해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참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침마다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날마다 새롭게 되는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시143:8)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아침마다 새 마음과 새 영으로 변화하시어 하나님의 산제사로 기쁨을 드리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서 붙잡아야 할 것들이 있는데 바로 변화입니다.
셋째 :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2절)
이 세대를 본 받지 않고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하여 결국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알 수 있는지를 살펴보면 본문에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선하시고” 즉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워야 합니다. 두 번째로 “기뻐하시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온전하신” 즉 하나님 앞에 온전한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기준을 마음에 새기면 어떤 일이든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하고 변질하고 범죄가운데 있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는데 이 비참한 상황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희망의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거짓 선지자의 근거 없는 낙관론으로 해방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극단적 비관론으로 회복은 없다며 절망가운데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정확한 말씀을 통해 새로운 변화에 대한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반드시 회복되고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며 살아가는 것은 매우 성숙한 신앙의 단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