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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럭셔리 브랜드인 재규어(Jaguar)는 고성능과 멋스러움의 대명사로 통한다. 특히 재규어를 대표하는 모델들의 우아한 디자인은 독특한 기품마저 내뿜는다. 스피드 경쟁에서도 두각을 보이며 기술적인 부분 역시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지켜오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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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 XK120 로드스터 <출처: 랜드로버 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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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의 역사는 모터사이클 매니아이자 자동차 판매원인 영국인 월리엄 라이온즈(William Lyons)로부터 시작된다. 야간대학에서 기계학을 전공하며 자동차에도 해박한 지식을 가졌던 그는 모터사이클 사이드카 제작자인 10살 연상의 윌리엄 웜슬리(Willam Walmsley)를 만나게 된다. 의기투합한 이들은 1922년 재규어의 전신인 ‘스왈로우 사이드카’(SS)라는 회사를 설립하게 되는데, 가벼운 알루미늄 차체와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 |
오스틴 세븐 스왈로우, SS1의 성공, 자동차 메이커 입지 굳혀

1922년~1939년까지 생산된 오스틴7 <출처: (cc) Mali at Wikipedia> |
오스틴7 스왈로우 (1927년~1937년) - 윌리엄 라이온즈가 오스틴7의 뼈대에 자신이 디자인한 바디를 올려 만들었다. <출처: 랜드로버 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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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리엄 라이온즈가 자동차 제작에 뛰어든 배경이 흥미롭다. 당시 그는 영국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소형차 ‘오스틴 세븐’(Austin 7·1922년 허버트 오스틴이 개발한 자동차로 차제가 가볍고 운전이 쉬워 자동차 대중화를 앞당긴 모델로 평가받는다.) 이라는 차를 가지고 있었다. 평소 디자인을 탐탁지 않게 생각해오던 그는 어느 날 새로운 바디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를 자신의 차인 오스틴 세븐의 뼈대 위에 올렸다. 이 차가 바로 ‘오스틴 세븐 스왈로우’(Austin 7 Swallow)다. 낮은 가격대와 독특한 디자인 덕분에 이 차는 출시와 함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오스틴 세븐 스왈로우의 성공은 다른 자동차 메이커들의 바디 제작 요청으로 이어졌는데, 밀리는 주문 물량에 더 큰 공장을 빌려야 했다. | |
1932년~1934년까지 생산된 SS1 전측면 <출처: 랜드로버 코리아 > |
SS1 후측면 <출처: 랜드로버 코리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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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식으로 제작된 대표적인 모델이 SS1(스왈로우 사이드카와 바디 제작과 관련해 전속계약을 체결한 스탠다드사와 스왈로우의 앞글자를 따 ‘SS’로 명명했다)이다. 1931년 런던모터쇼에 공개된 이 모델은 외관은 흡사 고급차 벤틀리(Bentley)와 유사했으나 가격은 벤틀리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해 이 역시 큰 인기를 끌었다.
잇따른 성공에 고무된 월리엄 라이온즈는 2차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 회사 이름을 재규어로 바꾸고 본격적인 자동차 제작에 뛰어든다. 참고로, ‘SS’라는 회사명이 전쟁 기간 동안 악명을 떨친 독일의 나치 친위대(SS)의 약자와 같아 결국 이름을 바꿨다는 일화도 있다.
재규어 XK의 탄생

이를 전후해 재규어의 상징이 된 ‘XK’ 엔진을 자체 제작하게 된다. 경주용 엔진을 모티브로한 DOHC 형식의 XK 엔진은 직렬 6기통의 3.4ℓ(3,392㏄)엔진이었다. 이 엔진이 바로 재규어를 대표하게 될 양산형 스포츠카 ‘XK120’ 의 엔진이다. XK엔진은 훗날 2,392㏄와 3,785㏄, 4,195㏄ 등으로 업그레이드되면서 재규어 XK120C와 D타입 에 적용돼 르망24시간 경주에서 수차례 우승을 거머쥐었다. | |
재규어 XK120 로드스터 <출처: 랜드로버 코리아> |
재규어 XK120 로드스터 <출처: 랜드로버 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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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의 ‘XK’는 XK 엔진의 이름에서 따왔다. 오버헤드 캠축 엔진을 장착하고 시속 193㎞의 최고 속도를 자랑한 이 모델은 1948년 런던 모터쇼 최고의 히트작으로 평가됐다. 출시 가격은 세금을 제외하고 988파운드(3,300달러)였다.
무엇보다 기품있고 우아한 곡선이 눈길을 끈 디자인은 우아함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곡선의 미학은 전쟁 이전 마지막 밀레 밀리아(Mille Miglia) 자동차 경주 대회에 참가한 알파 로메오, 프랑스의 최고급 스포츠카 탈보, BMW 328MM 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탈리아의 차체 제작자이자 공기역학적 스타일로 이름을 떨친 ‘토우링’의 작품이다. 당시 스포츠카의 대세로 여겨졌던 본체와 분리된 펜더(Fender)의 방식을 탈피하고 모던한 분위기의 일체형 밀폐구조도 주요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XK120의 디자인과 뛰어난 성능때문에 모터쇼 등장 이후 주문이 몰리며 윌리엄 라이온즈의 성공 신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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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 XK120 로드스터 버전 전면 - 우아한 곡선이 눈길을 끈 디자인 <출처: 랜드로버 코리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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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사로잡은 영국의 스포츠카, 140·150으로 명성 이어

문제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알로이판을 수작업으로 판금한 바디가 그것인데, 이럴 경우 양산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시승용 차량마저 부족하자 언론의 불만이 쌓여갔고 급기야 성능의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져 갔다. 이에 월리엄 라이온즈는 출시 7개월 후인 1949년 5월 벨기에로 기자단을 초청해 XK120의 성능 시연을 보였다. 표준형 모델의 지붕과 창을 닫은 상태로 시험 운전한 결과, 당시로서는 세계 최고 기록인 203㎞/h의 속도를 기록하며 이같은 불만을 잠재울 수 있었다. XK120은 특히 미국 시장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XK120이 세상에 공개될 즈음 영국은 독일과의 전쟁으로 국가경제가 나빠진 상황이었다. 따라서 경제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 미국 등에 대한 자동차 수출에 주력하고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월리엄 라이온즈는 미국 스타일이 아닌 가장 영국적인 스포츠카를 제작해 미국 시장에 내놓았고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대중의 관심이 커지면서 할리우드의 대스타인 존 웨인과 클라크 게이블의 애마로 소개되기도 했다. 미국시장에서의 성공과 국가에 미친 공로를 인정받아 윌리엄 라이온즈는 영국 정부로부터 기사작위를 받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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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 XK140 드롭헤드 쿠페 실내 인테리어 <출처: 랜드로버 코리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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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K120의 명성은 XK140, XK150으로 이어졌다. 1954년 엔진 성능을 높혀 190마력 특허 엔진을 장착한 XK140은 XK120에 비해 엔진이 조금 앞으로 설치됐다. 운전석의 공간을 넓히기 위해서다. 또한 XK140의 고정헤드, 드롭헤드 쿠페에서는 앞 좌석이 앞으로 당겨져 임시용 뒷 좌석의 활용도가 높아졌다. 1957년에는 실용성을 강조한 중형 세단 스타일의 XK150이 공개됐다. 곡면으로 제작된 전면 유리창, 넓어진 실내공간이 특징이다. 디스크 브레이크 장착 등 새로운 시스템도 추가됐지만 대부분의 기술은 XK140을 이어받았다. 하지만 XK120만의 독특한 매력으로 꼽혔던 곡선의 미학은 사라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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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실버스톤에서 열린 자동차 경주대회에 참가한 XK120. <출처: (cc) Writegeist at Wikiped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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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리엄 라이온즈는 특히 재규어라는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경주대회에 적극 참여했다. XK 엔진으로 무장한 XK120은 출시 이듬해에 실버스톤(Silverstone)에서 열린 1시간 양산차 경주(One-Hour Production Car Race)에서 우승했다. 르망 24시 경주에서는 1951년 우승을 시작으로 1955~1957년까지 3회 연속 정상을 차지했다. 특히 1957년 르망 24시 경주에서는 1위에서 6위까지의 자동차 중 5대가 XK엔진의 재규어였다. 재규어 XK는 출시 후 12년동안 3만대가 팔렸는데 시리즈 중 가장 많이 팔린 차는 XK120 으로 총 1만 2,078대가 팔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