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그늘
(정용화)
오래 머무는 것들은 그늘을 흘려놓는다
햇살이 시큰둥해진 저녁나절
그림자가 나무 하나 심어놓고
그 주위를 맴돌고 있다
날은 차가워지고
주머니 속에 모서리를 가득 넣고
돌아온 날에는 그늘을 묻어 둔
고양이의 눈 속을 상상하게 된다
계단이 삼켜버린 길들에 대하여
그늘을 둥지로 삼아버린 새들에 대하여
미처 시야를 확보하지 못하고
한 줌의 그림자를 털고 날아가는
새들의 언어를 빌리지 않더라도
너는 두드릴수록 단단해지는 그늘을 갖고 있다
한 장의 얇고 옅은 그늘이 단단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슬픔에 담금질을 한 것인가
나무에서 흘러나온 그늘이
내 몸에 젖어들어 무겁게 얼룩진다
시선이 머물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고양이와 두터워지는 그늘 때문에
부리가 더 짧아지는 새 사이가, 멀다
슬픔도 오래 머물면 오히려 따스해지는가
그늘이 나무를 키우는 저 풍경 속에는
느리게 저녁을 부르는 목소리가 있다
**정용화: 2001년《시문학》, 2006년《대전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바깥에 갇히다』『나선형의 저녁』외.
2012년 수주문학상 수상.
(2013년<시와미학>겨울호.)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