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루아*
나희덕
호모 파베르이기 전에
호모 루아, 입김을 가진 인간
라스코 동굴이 폐쇄된 것은
사람들이 내뿜은 입김 때문이었다고 해요
부드러운 입김 속에
얼마나 많은 미생물과 세균과 독소가 들어 있는지
거대한 석벽도 버텨낼 수 없었지요
오래 전 모산동굴에서 밤을 지낸 적이 있어요
우리는 허공에 하얀 입김을 피워올리며
밤새 노래를 불렀지요
노래의 투명성을 믿던 시절이었어요
노래의 온기가
곰팡이를 피우리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몸이 투명한 동굴옆새우들이
우리가 흘린 쌀뜨물에 죽었을지 모르겠어요
입김을 가진 자로서 입김으로 할 수 있는 일들
허공에 대한 예의 같은 것
얼어붙은 손을 녹일 수도
유리창의 성에를 흘러내리게 할 수도
후욱, 촛불을 끌 수도 있지만
목숨 하나 끄는 것도 입김으로 가능해요
참을 수 없는 악취
몇 마디 말로
영혼을 만신창이로 만들 수도 있지요
분노가 고인 침으로
쥐 80마리를 죽일 수 있다니,
신의 입김으로 지어진 존재답게 힘이 세군요
그러니 날숨을 조심하세요
입김이 닿는 순간 부패는 시작되니까요
* Homo Ruah. 'Ruah'는 히브리말로 ‘숨결’‘입김’을 뜻함.
**나희덕시인: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연세대 국문과와 同대학원을 졸업 및 同대학원에서 박사과정 수료.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 당선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 『뿌리에게』(창비, 1991)『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창비, 1994)
『그곳이 멀지 않다』(민음사, 1997),『어두워진다는 것』(창비, 2001)
『사라진 손바닥』(문학과지성사, 2004)『야생사과』(창비, 2009)와
시론집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리고 산문집 『반통의 물』이 있음.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이며 '시힘' 동인
**월간 유심 2014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