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집(이용악) - 해설
날로 밤으로
낮으로
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
사람이 살지 않음(흉가의 모습)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불길한 집 일제 강점하의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이농해야 하는 식민지 현실 또는 피폐한 우리 민족의 처지를 상징
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우리 민족
대대손손에 물려줄
은동곳1)도 산호관자2)도 갖지 못했니라.
양반 계급의 장신구로 재산이나 권력을 상징 → 우리 민족의 가난한 삶
재를 넘어 무곡3)을 다니던 당나귀
고개 곡식을 실어 나르는 일
⌌ 일제의 수탈에 등이 휜 농민의 모습 상징
항구로 가는 콩실이4)에 늙은 둥글소5)
일제의 수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
모두 없어진 지 오랜
외양간엔 아직 초라한 내음새 그윽하다만
가난의 심화
털보네 간 곳은 아무도 모른다.
일제의 수탈로 신음하는 우리 민족의 모습을 대표
[1~2연] 폐허가 된 낡은 집의 모습(현재)
찻길이 놓이기 전
일제의 수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
[노루 멧돼지 쪽제비 이런 것들이
앞뒤 산을 마음 놓고 뛰어다니던 시절]
[ ] ⇨ 일제 강점 이전의 평화롭던 시절
털보의 세째아들은
나의 싸리말6) 동무는
죽마고우
이 집 안방 짓두광주리7) 옆에서
첫울음을 울었다고 한다.
[“털보네는 또 아들을 봤다우
송아지래도 불었으면 팔아나 먹지.”]
낳았으면 [ ] ⇨ 자식의 출생을 기뻐할 수만은 없는 궁핍한 현실
마을 아낙네들은 무심코
차가운 이야기를 가을 냇물에 실어보냈다는
자식의 출생보다 생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비극적 처지가 담긴 말을 촉각적으로 형상화
그날 밤
저릎등8)이 시름시름 타들어가고
속 타는 농민들의 심정
소주에 취한 털보의 눈도 한층 붉더란다.
자식이 태어나도 기뻐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슬퍼함
갓주지9) 이야기와
무서운 전설 가운데서 가난 속에서
부모들이 바라지 않은 자식을 갓주지가 잡아간다는 전설
나의 동무는 늘 마음 졸이며 자랐다.
어린아이마저 삶에 대해 걱정해야 하는 눈물겨운 현실
당나귀 몰고 간 애비 돌아오지 않는 밤.
노랑고양이 울어울어
종시 잠 이루지 못한 밤이면,
어미 분주히 일하는 방앗간 한 구석에서
나의 동무는
도토리의 꿈을 키웠다.
작고 소박한 꿈
그가 아홉 살 되던 해
사냥개 꿩을 쫓아다니는 겨울
일제 우리 민족 냉혹한 현실
이 집에 살던 일곱 식솔이
털보네 가족
어디론지 사라지고 이튿날 아침
털보네의 야반도주
북쪽을 향한 발자국만 눈 위에 떨고 있었다.
가난 때문에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냉혹한 현실을 드러냄
더러는 오랑캐령 쪽으로 갔으리라고
만주
더러는 아라사10)로 갔으리라고
러시아-시베리아
이웃 늙은이들은
모두 무서운 곳을 짚었다.
이주한 곳도 상황이 나은 곳은 아님
[3~7연]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털보네 가족의 이야기(과거)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 ] ⇨ 우리 민족의 비참한 현실을 드러냄
[제철마다 먹음직한 열매
탐스럽게 열던 살구]
[ ] ⇨ 평화와 풍요가 넘치던 과거
살구나무도 글거리11)만 남았길래
그루터기 - 피폐한 민족 현실을 상징하는 소재
[꽃피는 철이 와도 가도 뒤울안에
꿀벌 하나 날아들지 않는다.]
[ ] ⇨ 일제 강점하의 암울한 현실 - 계절이 바뀌어도 황폐한 낡은 집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음
[8연] 황폐해진 낡은 집의 모습(현재)
[어휘 풀이] 1) 은동곳 : 은으로 만든 동곳. ‘동곳’은 상투를 튼 뒤에 풀어지지 않도록 꽂는 남자의 장신구로, 관자와 함께 재료에 따라 부귀의 정도를 드러냄. 2) 산호 관자 : 산호로 만든 관자. ‘관자’는 망건에 달아 망건 줄을 꿰는 작은 고리. 3) 무곡 : 장사하려고 많은 곡식을 사들임. 4) 콩실이 : 콩을 싣고 다님. 5) 둥글소 : ‘황소’의 방언으로 큰 수소를 말함. ‘콩실이에 늙은 둥글소’는 항구에 실어 나를 콩을 싣고 다니다가 늙어 버린 수소를 일컬음. 6) 싸리말 동무 : 죽마고우. ‘싸리말’은 싸리나무로 조그맣게 엮어 짜서 말처럼 만든 것으로, 함경도에서는 아이들이 이것을 말 삼아 타고 놀기도 함. 7) 짓두광주리 : 함경도 방언으로 바늘, 실, 골무, 헝겊 같은 바느질 도구를 담는 그릇. 반짇고리. 8) 저릎등 : ‘겨릅등’의 함경도 방언. 뜨물에 버무리 좁쌀 겨를 겨릅대에 입혀서 만들었던 등. 9) 갓주지 : 갓을 쓴 주지승(住持僧). 옛날에는 아이들을 달래거나 울음을 그치게 할 때 이 갓주지 이야기를 했다고 함. 어떤 이는 이 낱말을 ‘갖주지’의 오기(誤記)로 보고 ‘갖가지’, 즉 ‘가지가지’의 방언으로 해석하기도 함. 10) 아라사 : ‘러시아’의 음차 = 아국(俄國). 11) 글거리 : ‘그루터기’의 함경 남도 방언. 풀이나 나무, 또는 곡식을 베고 남은 밑둥, 그루. 여기서는 돌보는 이 없어 황폐한 모습을 상징함.
[핵심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이야기시
▣ 성격 : 서사적, 향토적
▣ 특징 : ① 액자식 구성과 과거 회상 형식을 통해 시상을 전개함
② 가족사적 일대기 형식을 통해 일제 강점기 농촌의 전형적인 삶을 표현함
③ 직접 체험에 의한 진술 부분(2,5,6,7,8연)과 화자가 전해들은 이야기 부분(1,3,4연)으로 구분됨
④ 일제 강점기의 농촌의 전형적 삶을 드러냄
⑤ 시적 화자가 직접 체험한 내용과 전해들은 이야기의 인용을 액자식 구성을 통해 적절히 조화시킴
▣ 주제 : 일제 강점하 유이민의 비극적인 삶
[해제]
이 시는 폐허가 된 낡은 집을 소재로 일제 강점기의 비참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낡은 집에서 살다가 현실적 가난을 못 이겨 이국땅으로 떠나야 했던 털보네 가족의 이야기를 제재로 하고 있는데, 이 작품 속의 화자는 털보네 셋째 아들의 어린 시절 친구로 설정되어 있다. 즉, 이 작품은 일제 강점기라는 궁핍한 현실을 배경으로 화자의 눈에 비친 털보네 가족의 비극적인 삶의 이야기이다.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액자 구성 방식으로 짜여 있다. 1, 2연과 마지막 연은 털보네가 떠나가 버려 흉가가 된 낡은 집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중간에 삽입되어 있는 3~7연들은 털보네의 궁핍상과 유랑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 외부 액자에 드러난 ‘낡은 집’은 털보네의 가난한 삶만을 상징하지 않고, 일제 강점기를 살았던 우리 민족의 비극적인 모습을 전형적으로 보여 준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내부 액자 이야기는 털보네 가족의 빈궁한 삶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특히 털보네의 셋째 아들이자 ‘나’의 어린 시절 친구는 출생부터 축복받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도토리의 꿈’과 같은 작고 소박한 꿈을 간직하며 살아가려 하지만, 현실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결국 털보네는 현실적 가난 때문에 야반도주를 하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이런 털보네의 삶을 통해 일제 강점기를 힘들게 살아야 했던 우리 민족의 삶을 드러내고 있다.
[이야기 형식이 주는 효과]
이 시는 이야기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야기 형식의 시는 대체로 있는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려는 형식을 취한다. 이 시도 시적 화자가 친구네 가족이 유랑민이 되어 고향을 떠난 일대기를 담담한 어조로 들려주는 형식을 취한다. 털보네 가족의 궁핍한 삶의 공간인 ‘낡은 집’이라는 상징적 제재를 통해 우리 민족의 아픔을 형상화하였는데, 시적 화자가 직접 체험한 내용과 전해들은 이야기의 인용을 액자식 구성을 통해 적절히 조화시키고 있다.
[사건의 객관적 전달]
이 작품은 시적 사건(3~7연)을 주관적으로 표출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전해들은 것처럼 객관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그’는 ‘털보’의 셋째 아들로서 화자의 관찰 대상이 되고 있다. 화자는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서술하고 있을 뿐이다. 판단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있다. ‘-고 한다’와 같은 인용의 표현 방식이나, 주인공인 털보의 아들을 ‘그’로 객관화함으로써 시적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여 주는 데 치중한다. 더구나 화자를 어린 아이로 설정함으로써 화자의 직접적인 판단과 개입을 막고 있다. 이런 점들로 인해 이 작품은 사건을 객관적으로 전달한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상황의 리얼리티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화자의 이중적 성격]
이 시의 화자는 외부 액자 역할을 하는 1, 2, 8연, 그리고 내부 액자로 볼 수 있는 3~7연에서 성격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이러한 이중적 성격의 화자 설정은 비애의 정서가 시 전체를 압도하는 것을 막으면서, ‘털보네’의 몰락 과정을 객관적으로 부각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외부 액자 | 내부 액자 |
시적 대상에 대한 화자의 정서를 직접적으로 제시 | 털보네의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제시 |
[사건의 객관적 전달(내부 액자)]
이 작품은 시적 사건(3~7연)을 주관적으로 표출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들은 것처럼 객관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그’는 ‘털보’의 셋째 아들로서 화자의 관찰 대상이 되고 있다. 화자는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서술하며, 판단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 두고 있다.
화자를 털보 아들의 어린 시절 친구로 설정 | → | 화자의 직접적인 판단과 개입을 차단하고 사건을 객관적으로 전달 |
털보의 아들을 ‘그’로 객관화 | ||
‘-고 한다’와 같은 인용의 표현 방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