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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상실의 시대' 토론 자료

작성자헤이쮸|작성시간10.11.23|조회수263 목록 댓글 1

상실의 시대 <노르웨이의 숲(ノルウェイの森)>

 

1)작품 소개

《노르웨이의 숲》, 김난주 역, 허호 역, 임홍빈 역 (상, 하)

《상실의 시대》, 유유정 역, 문학사상사

 

가장 많이 판매된 것은 유유정 역의 상실의 시대이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번역은 일반적으로 김난주가 최고로 꼽힌다. 임홍빈 번역은 문학사상사의 임프린트인 문사미디어에서 출간된 가장 최근 번역본으로 새롭게 번역하였고, 단락구성 등과 상/하로 나뉜 판본형태와 표지 디자인 등을 원작에 가깝게 출간한 번역본이다.

 

《노르웨이의 숲(ノルウェイの森)》은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이다. 장편소설로서 1987년 발표되었다. 2009년에는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조사한 대한민국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일본 소설로 뽑히기도 했다.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로는 '세련되고 경쾌한 문장' 때문이라고 답한 사람이 32%로 가장 많았고 이어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구성'(26%), '무겁지 않은 주제'(11%) 등으로 답했다.

비틀스가 1965년에 발표한 곡 '노르웨지언 우드(Norwegian Wood)'를 무라카미 하루키는 89년 펴낸 자신의 동명 소설에서 '노르웨이의 숲'으로 옮겼지만 비틀스 전문가들의 조언이나 여러 정황을 참조할 때 '노르웨이산 가구'가 적절한 번역이라고 한다.

 

2)줄거리

 

'죽음은 삶의 대극으로서 존재한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언제나 그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소설은, 서른일곱 살인 내가 18년 전의 사건=실연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대학에 갓 입학하여, 주위가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는 내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나는 어느 날 전차 속에서 우연히 고교 시절에 자살한 친구 기즈키의 여자친구 나오코를 만나다. 여러 차례의 데이트를 거듭한 끝에 나와 나오코는 재회한지 1년 후인 나오코의 스무 번째 생일날 함께 잠을 잔다. 그러나 나오코는 그 직후 실종되어 버리고, 그 후 나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던 나오코가 쿄토의 산 속에 있는 아미료라는 요양소에 들어가 있음을 그녀의 편지를 통해 알게 된다. 이 무렵, 나는 미도리를 만나게 된다. 미도리는 같은 대학의 1학년생이며, 매우 활달하고 생명이 넘쳐난다. 나오코와는 정반대의 인물인 것이다. 이리하여 두 여성 사이를 오거는 나의 격렬하고 슬픈 연애가 진행된다. 나오코가 들어가 있는 교토의 요양소는 외계와 차단된 조용한 세계이다. 거기서 살고 있는 나오코는 조용한 죽음의 세계를 상징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고, 미도리는 생명을 상징한다. 여기서 작가는 죽음은 삶과 반대가 되는 요소가 아니라 공존하는 것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는 나오코를 비롯하여 나오코의 언니, 나의 친구인 기즈키, 미도리의 부모, 나가사와의 연인인 하쓰미 등의 많은 죽음이 내포되어 있다. 결국 나오코 역시 깊은 숲속에서 목을 매달아 죽고 만다. 끝내 ‘나’는 그녀를 구해 내지 못한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전화 부스 속에서 정신없이 미도리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든 너와 꼭 이야기를 하고 싶다, 온 세상에서 너 외에 원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랜 침묵 끝에 미도리가 "당신, 지금 어디에 있어요?" 하고 물어 어자, 나는 제대로 대답할 수가 없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게 된 내가 전화기에 대고 미도리의 이름을 계속 부르는 장면으로 이 작품은 끝이 난다.

 

3)작품의 특징

 

얼핏보면 포르노 소설 같기도 하다는 성애(性愛) 장면의 짙은 관능 묘사와, 사랑과 질투와 미움과 고독의 심리 묘사가, 탁월한 하루키의 문학성과 문장력에 의해 현란하게 펼쳐지는 것도 이 소설의 특징이다.

죽음과 자살과 이별, 꿈과 이념, 우정과 사랑, 그런 모든 젊은 날에 차례차례 빚어지고 사라지는, 감격적인 환희와 슬픈 ‘상실’의 아픔이 끝없이 되풀이되고 엇갈리는 가운데, 언제나 깨어나면 ‘나는 혼자’라는 고독을 깨닫게 되는, 누구나 겪게 되는 ‘젊은 시절의 나날’이란 테마가 부각되어 있다.

그리고 비할 데 없이 애절하고, 감미롭고, 황홀하게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 작가는 허무와 무상(無常)의 세월을 초월해서, 재생의 의욕과 내일의 희망에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런 새시대적 ‘사랑의 방식’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회관과 가치관을 부각한 이 소설을 감상함으로써, 산다는 것과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젊은이들의 필독서로서, 총장기 베스트셀러 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4) 작가의 변

 

@주제에 관하여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도 《노르웨이의숲》도, 포맷 자체는 이른바 청춘 소설이다.

그곳에 묘사된 것은, 스무 살 전후 의 청년이 성장 과정에서 발견하는 세계의 광경이다.

그러나 이 두 소설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노르웨이의 숲》을 쓸 때 내가 의도한 것은 세 가지였다.

첫째, 철저하게 리얼리즘 문체로 쓸 것. 둘째, 섹스와 죽음에 관해서 철저하게 언급할 것.

셋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에서 보이는 처녀작 같은 수치감을 지워 버리기 위해서 '반(反) 수치감'을 정면에 내세울 것이었다. 그러나 이 세 번째 점에 관해서는 더 이상 자세히 설명하기가 곤란하다. 기분 상 그러했다는 것 이외에, 나로서는 적절한 말 이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의도했던 것을 간단히 말하자면, '이것은 래디컬(radical)하지도 세련되지도 지적이지도 포스트모던하지도 실혐적이지도 않고 단순히 평범한 리얼리즘 소설이다...

세 간의 평은 그다지 좋지 않더라도, 국부적으로는 열렬한 팬을 지니는 소품과도 같은 소설을 쓸 생각 이었다. 책(일본 원서)의 띠지에 '백 퍼센트 연애 소설'이라는 문구를 넣은 이유는, 이러한 소설을 펴낸 데에 대한 나름의 변명이었다.

그러나 《노르웨이의 숲》이 연애 소설이라는 관점에서 평론 되는 데에 대해서는, 스스로 자초한 결과라고는 생각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몹시 당황하고 있다.

왜냐하면 <<노르웨이의 숲》은 정확한 의미에서 연애 소설이라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나는 연애소설이라는 말이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지조차 몰랐다.(지금도 모르지만).

나는 이제까지 수많은 소설을 읽어왔지만, 그 대부분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다.

인간이 어떻게 사랑을 주고(주지 않고), 어떻게 사랑을 받아들일(받아들이지 않을) 것인가,

그 문제가 끊임없이 다루어져 왔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소설을 연애소설로 취급한 적은 없다. 그리고 나 자신도, 이 책에 묘사된 갖가지 종류의 사랑은, 그러한 의미에서의 사랑의 범주를 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소설에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연애는 묘사되고 있지 않으니까. '연애 소설'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는 비평을 받는다고 해도 사실 그렇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소설을 굳이 정의하자면, 성장 소설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소설을, 당초의 예상대로 가벼운 소설로서 끝내지 못한 까닭이기도 하다.

 

@문체와 구성에 관하여

‘나는 소설의 문체와 줄거리는 자동차(vehicle)와 승객 (passenger)의 관계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소설에 관해서 말하자면, 나는 승객보다는 오히려 자동차를 만드는 데 상당한 신경을 썼다. 리얼리즘이라는 문체는 시종일관 나에게 신종의 자동차였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리얼리즘이란, 우선 담백(simple)하스피드가 있을 것.

문장은 줄거리의 흐름을 저해하지 않고, 독자에게 그다지 물리적, 심리적 요구를 하지 않을 것, 이것이 내가 설정한 《노르웨이의 숲》에서의 문장적 액세스의 개요였다.

** 4부작 (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 ‘댄스, 댄스, 댄스’) 의 집필을 통하여, 원환 구조 즉 과거의 기억 리스트를 떠오르는 대로 나열하는 방법에서, "아날로그 구조"로, 즉 일정한 스토리를 생성하는 방향으로 시도되어졌다고 할 수 있다.**

 

@제목에 관하여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은 상징적이라고 여겨진다.

원작의 시를 읽어 보아도 역시 그렇지만 'NORWEGIAN WOOD'라는 말에는, 어휘 자체가 자연스럽게 부풀어 오르는 듯한 느낌이 있다. 조용하고, 멜랑콜릭하고, 더구나 어딘가 텐션 (tension)이 느껴진다. 노르웨이 사람에게 서 들은 말인데, 노르웨이어의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말에는 정말로 그것에 가까운 분위기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시대적 배경에 관하여

‘우리들은 그 변동을 자기 손에 움켜잡을 수 있을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우리들은 그러한 확연한 실감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거기엔 이상(理想)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또는 이상에 근접하거나 유사한 것이 있었습니다. 정치적인 투쟁이 있었고, 탄압이 있었고, 히피와 마리화나와 비스마르크와 반전가(反戰歌)가 있었습니다. 지미 헨드릭스와 짐 모리슨이 있었습니다. 재즈 음악 다방에서는 프리 재즈가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스커트가 점점 짧아지고 데모의 열풍에 휩싸였던 대학은 봉쇄된 채로 있었습니다.’

 

@작가적 책임론에 관하여

'《노르웨이의 숲》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사랑에 대해서, 혹은 모럴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있듯이, 나도 그 이야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 소설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잇달아 죽어간다. 그건 지나치게 편의주의적이 아니냐는 비평도 많이 받았다.

이것은 내 주위에서 죽어간, 혹은 사라져 간 수많은 캐주얼티즈(전투원의 감원이라는 시각으로)에 관한 이야기이며, 혹은 나 자신의 내부에서 죽거나 사라져 간 수많은 캐주얼티즈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가 정말 이 소설에서 쓰고 싶었던 것은 연애의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캐주얼티즈의 모습이며, 그 캐주얼티즈의 뒤에 남아서 존속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혹은 사물들의 모습이다. 성장 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고독하게 싸우고, 상처받고, 상실되고, 상실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살아야만 하는 모습이다. 그러니까 만약 이 소설에 어떤 흠이나 결점이 있다 하더라도(물론 많이 있다), 나는 이 이야기에 대해서 나름대로 책임을 완수했노라고 말할 수 있다. 적어도 내 자신에 대해서는 작은 소리로 대답할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1949년 일본 효고현에서 출생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러시아문학과 재즈에 탐닉하였고, 고등학교 시절부터는 한 손에 사전을 들고 미국문학을 탐독하였다. 1968년 와세다 대학 연극과에 입학했다. 1971년 학생의 신분으로 요우꼬(陽子)와 결혼 1974년 재즈 카페 'PETER CAT'을 고쿠분지에서 운영했다. 1975년 [미국영화에 있어서의 여행의 사상]이란 논문으로 7년만에 대학졸업 1979년 스물 한 살의 '나'의 여름방학 이야기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신인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1980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속편 격인 <1973년의 핀볼>을 발표했다. 1981년 '와세다 문학'의 편집위원이 되었고,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영화화 되었다. 오랫동안 경영하던 재즈 카페의 문을 닫는다.

이미지즘 단편집 <꿈에서 만나요>을 발표 1982년 본격적인 장편소설 <양을 둘러싼 모험>으로 '노마문예신인상'을 수상. 이때부터 인기작가로 급부상했다. 1985년 전혀 다른 두 편의 이야기를 장마다 번갈아 쓴 이색적인 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발표했다. 이 소설로 '다니자키 준이치로상'을 수상했다.

1987년 그리스, 이탈리아 등에서 생활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 중 유일하게 리얼리즘 기법으로 쓴 소설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을 발표했다. 일본은 물론 한국에까지도 '무라카미 하루키 현상'을 일으킨 작품이다.

1988년 <댄스댄스댄스>를 발표했다. 1990년 <TV 피플>을 발표했다. 1992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객원 연구원으로 미국에 체류하면서 장편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을 발표했다. 1994년 장편 <태엽 감는 새 연대기>를 발표했다. 1995년 인쇄매체 광고를 위해 광고문으로 쓴 <밤의 원숭이>를 발표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특유의 풍부한 상상력, 기발한 상황 설정, 독특한 문장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1996년 에세이 <소용돌이 고양이의 발견법>과 소설 <렉싱턴의 유령>을 발표했다. 1997년 옴진리교의 '지하철 독가스 사건'을 취재한 특이한 르포집 <언더그라운드>를 출간,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1999년 <스푸트니크의 연인> 발표 2000년 3인칭 시점의 연작소설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발표. 2002년 <해변의 카프카> 2009년 <IQ84>

군조 신인 문학상 (1979), 노마문예신인상(1982), 다나자키 준이치로상 (1985)

 

@그의 소설을 보면 현대 사회에서 소외된 군상들의 고독이 ‘나’라는 일인칭 시점을 통해 자주 등장을 한다.

 

‘나는 전에 존재 이유를 테마로 한 짧은 소설을 쓰려고 했던 적이 있다. 결국 소설은 완성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동안 줄곧 ‘레종 테트르’에 대해서 생각을 했고, 덕분에 기묘한 버릇이 생겼다. 모든 사물을 수치로 바꾸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버릇이었다. 약 여덟 달 동안 그런 충동에 시달렸다. 전철에 타자마자 승객 수를 헤아리고, 계단 수를 전부 세고, 시간만 나면 맥박 수를 셌다.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1969년 8월 15일부터 이듬해 4월 3일 사이에 나는 강의에 358번 수강을 했고, 섹스를 54번 했고, 담배를 6921개피 피운 것으로 되어있다. 그때 나는 그런 식으로 모든 걸 수치로 바꾸어 봄으로써 타인에게 무언가를 전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타인에게 뭔가를 정확하게 전할 수 있는 한, 나는 확실히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연한 일이지만, 내가 피운 담배 개비의 수나 올라간 계단의 수나 내 페니스의 크기에 대해서 누구 한 사람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나는 자신의 레종 테트르를 상실하고 외톨이가 되었다.’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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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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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헤이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0.11.23 하루끼에 관한 방대한 자료들 중 아주 간략한 정리만 올려요.
    딱히 발제는 없이 가겠습니다. 자료 군데군데에서 시간을 가지고 토론을 해보기로 하죠.
    방대하다는 것이 '토론을 풍성하게 이끈다'..라는 측면보다 '무엇을 얘기해얄지 허우적대다'..라는 결과가 나올까 많이 잘라내었고요. 개인적으로 지난 주 공부를 할 시간이 없어서리, 무지 버벅거릴지도 모르겠지만.
    뭐 한 두번 있던 일도 아니고, 우왕좌왕의 재미.. 다시 한 번 재연해봅시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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