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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한 편의 시와 두 권의 철학서>-원재훈과 레비나스

작성자라폴리아|작성시간10.12.07|조회수94 목록 댓글 0

■■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그리운 102 / 원재훈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그대를 기다린다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들

저것 좀 봐, 꼭 시간이 떨어지는 것 같아

기다린다 저 빗방울이 흐르고 흘러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고

저 우주의 끝까지 흘러가

다시 은행나무 아래의 빗방울로 돌아올 때까지

그 풍경에 나도 한 방울의 물방울이 될 때까지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그대를 기다리다보면

내 삶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은행나무 잎이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면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그대

그대 안의 더 작은 그대

빗방울처럼 뚝뚝 떨어져 내 어깨에 기대는 따뜻한 습기

내 가슴을 적시는 그대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자꾸자꾸 작아지는 은행나무 잎을 따라

나도 작아져 저 나뭇가지 끝 매달린 한 장의 나뭇잎이 된다

거기에서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넌 누굴 기다리니 넌 누굴 기다리니

나뭇잎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며

이건 빗방울들의 소리인 줄도 몰라하면서

빗방울보다 아니 그 속의 더 작은 물방울보다 작아지는

내가, 그 삶에 그대가 오는 이렇게 아름다운 한 순간을

기다려온 것일 줄 몰라한다

 

●●레비나스의《윤리와 무한》

과거 철학자들은 윤리를 주로 주체의 문제로 고민했지만, 이제 우리는 타자를 고려하지 않고는 윤리를 사유할 수 없다. 사실, 책임이란 윤리적 테마만 생각해 보아도 우리는 윤리와 타자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직감할 수 있다. 책임을 항상 타자에 대해서만 논의되기 때문이다. 타자와 윤리의 문제를 숙고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 것, 이것이 바로 레비나스라는 철학자가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이다. 그만큼 철저하게 타자와 윤리의 문제를 숙고했던 철학자도 없다. 이 책은 1981년 프랑스 퀼튀르 방송에서 필립 레모와 대담한 것을 엮은 것이다.

필립 레모와의 대담에서 레비나스는 자기 철학의 커다란 주제들, 그리고 자신의 사유가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는 너무나도 친절히 설명한다. 레비나스의 사유를 이해하는 데 있어 어정쩡한 연구서보다 레비나스의 육성을 듣는 쪽이 훨씬 나을 것이다.

 

●● 레미나스의《시간과 타자》

분량은 짧지만 타자의 철학자 레비나스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책이다. 후설 이래로 현대철학에서 시간은 타자라는 테마와 함께 가장 빈번하게 논의되었던 테마이다. 마침내 레비나스에 이르러 두 테마가 연결되기 시작했다.

이것만 보아도 이 작은 책의 소중함이 분명하다. 특히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전체주의의 내적 논리가 깔려 있음을 밝히는 부분은 이 책의 압권이다.

레비나스는 하이데거의 세계에서는 사람들이 존재를 함께 우러러 보고 있을 뿐, 서로 마주 보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책의 후반부에 역자가 붙인 상당한 분량의 해설은 독자들이 레비나스를 이해하는 데 길을 잃지 않도록 나침반이 되어 줄 것이다.

 

 

◆ 하나 더 읽어야 할 시 한 편

 

■■ 타 인 /정 호 승

 

내가 나의 타인인 줄 몰랐다

우산을 쓰고 횡단보도를 건너며

공연히 나를 힐끔 노려보고 가는 당신이

지하철을 탈 때마다 내가 내리기도 전에 먼저 타는 당신이

산을 오를 때마다 나보다 먼저 올라가버리는 산길이

꽃을 보러 갈 때마다 피지도 않고 먼저 지는 꽃들이

전생에서부터 아이들을 낳고 한집에 살면서

단 한번도 행복한 순간이 없었다고 말하는 당신이

나의 타인인 줄 알았으나

내가 바로 당신의 타인인 줄 몰랐다

해가 지도록

내가 바로 나의 타인인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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