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호 _ 피천득 문학세계
비개고(1984)
우리가 ‘물’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생의 약동이다. 이러한 심상을 담고 있는 그의 가장 짧은 시 〈비 개고〉를 읽어보자.
햇빛에 물살이
잉어같이 뛴다.
“날 들었다!” 부르는 소리
멀리 메아리친다. (전문)
소낙비가 내리고 난 후 개울의 ‘물살’이 힘 좋은 잉어같이 뛰어오른다는 표현에서 우리는 빠르게 흐르는 개울물을 ‘잉어’로 비유하는 역동적 이미지를 잡는다. 여기서 물살은 생명의 충동이며 원천의 이미지다. 펄쩍펄쩍 뛰는 잉어는 생(生)의 충일함 그 자체이다. 전통적으로 잉어는 출산 직후 산모들이 원기회복을 위해 먹었던 보양식으로, 수필 〈춘원〉에서 역동적인 이광수의 모습도 “싱싱하고 윤택하고 ‘오월의 잉어’ 같았다”고 묘사하고 있다. 4행의 짧은 이 시는 인간과 자연이 조응(照應)하는 정경교융(情景交融)의 극치를 보여주는 한국 현대시사에 오래 남을 절창(絶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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