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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피천득 시의 서정성과 천진성 / 이승하 시인

작성자사무총장|작성시간26.10.23|조회수47 목록 댓글 0

피천득 시의 서정성과 천진성

 

이승하(시인, 중앙대 명예교수)

 

 

금아 피천득(1910~2007)은 수필가로 알려져 있다. 일본 체류시에 만난 아사꼬(朝子)라는 소녀와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애틋한 추억을 그린 「인연」이라는 수필은 우리나라 국정교과서에 오랫동안 실림으로써 여러 세대 사람들에게 피천득은 수필가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그의 등단작은 1930년 4월 7일 자 <동아일보>에 발표한 「차즘」이라는 시였다. 제일 먼저 출간한 책도 해방공간에서 펴낸 『서정시집』(1947)이었다. 「인연」이 발표된 것은 1973년 《수필문학》이었고, 제대로 된 한 권 수필집은 1976년 범우사에서 나온 수필집인 『수필』이 처음이었다. 즉 첫 시집은 1947년에 냈으면 첫 수필집은 1973년에 냈으니 26년이라는 간극이 존재한다. 1960년에 낸 『금아시문선』과 1969년 펴낸 『산호와 진주』는 시ㆍ수필ㆍ번역시로 이루어진 문집이었다.

‘피천득’이라는 이름을 인터넷에 들어가 찾아보면 ‘수필가ㆍ영문학자’로만 되어 있지 ‘시인’이라고는 되어 있지 않다. 1930년 시로 등단 이후 한평생 시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시인 피천득은 어디로 사라지고 수필가 피천득과 영문학자 피천득만 남아 있다. 피천득 자신은 한평생 시인이자 수필가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갔겠지만, 세상은 그에게 ‘수필가’라는 호칭을 붙여주었을 뿐, ‘시인’이라는 호칭은 주지 않았다. 정정호는 피천득 문학세계를 논한 『산호와 진주』(2012)라는 책에서 이런 문단의 편견을 지양ㆍ극복하고자 제3장 ‘금아의 시세계’, 제4장 ‘피천득의 수필세계’, 제5장 ‘번역문학가 피천득’이라는 제목을 붙여 공정한 평가를 하였다.

1980년 일조각에서 낸 시집 『금아시선』을 보면 머리말에 기존 『산호와 진주』를 시집 『금아시선』과 수필집 『금아문선』으로 분리해 내면서 근작들을 덧붙인다고 설명하고 있다. 어떻든 1930년에 시로 등단한 이후 1993년에 시집 『생명』을 낼 때까지 그는 시인이었다. 등단작이라고 할 수 있는 「차즘」부터 보자.

 

마치고 기다림도

못견딘다 하옵거든

 

말업시 찾는심사

아는이나 아올것이

 

십년은 더살목숨이

줄어든 듯하여라

모습이 권양하야

하마긘가 딸읍더니

 

닥치니 아니로세

애꿎어 봣횡세라

 

아쉬워 정가시랴만

구지 미워합니다

 

오늘밤 달뜨거든

그빛을 타고올라

 

이골목 저거리로

두루두루 찾삽다가

 

살몃이 님자는곁에

나려볼까 합니다

―「차즘」 전문

 

제목 ‘차즘’은 ‘찾음’의 옛말일 것이다. 정정호는 이 시에서 피천득이 찾고자 한 것이 엄마라고 보았다. “시인은 밤의 달빛을 타고 올라가 이 골목 저 골목 살피다가 찾게 된 님 옆에 살며시 내리고자 한다.”라고 작품평을 하였다. 이런 평을 한 이유는 아버지가 1916년에, 어머니가 1919년에 작고했기 때문일 것이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해에 태어난 피천득은 6세 때 어머니가, 9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다.

정정호는 어머니 잔영을 찾아 태생지인 서울 종로구 청진동 일대를 헤매는 피천득 발자취를 생각해보았다. “십년은 더살목숨이/ 줄어든 듯하여라” 같은 구절을 눈여겨본 듯하다. 그런데 이 시는 구한말에 많이 창작된 창가처럼 3ㆍ4조, 4ㆍ4조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재와 주제가 확실히 파악되지 않는다. 최초 시 발표 작품이라 그런지 시상의 집중도도 떨어진다. 특히 제5연 “닥치니 아니로세/ 애꿎어 봣횡세라”라는 뜻 파악이 쉽지 않다. 시적 대상도 확실하지 않다. 대상을 미워한다고 했다가 달빛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이 골목 저 골목 두루 찾아다니다가 살며시 자고 있는 ‘님’ 곁에 내려가 볼까 한다니 핀트가 맞지 않고 짜임새도 부족하다. 연구자 판단으로는 아주 미숙하고 어색한 작품이다. 그다음 발표작을 보자.

 

새로신은 구두를

심사낫븐 아이가

코를 밟아주엇세요

× ×

겁질벗은 구두를

옷소매로 닦아도

자죽없어 안저요

× ×

아파하는 구두를

곱게벗어 안고서

울며불며 왓세요

× ×

암만다친 구두도

엄마입김 쐬이면

덧나지 아니 하지요?

―「다친 구두」 전문

 

<동아일보> 1931년 7월 15일 자에 발표된 이 동시는 4ㆍ3조를 유지하고 있다. 화자인 아이가 새 구두를 신고 나갔는데 심술궂은 아이가 코를 밟았다. 자국이 안 지워져 아이는 해결사인 엄마에게 구두를 안고 달려간다. 아이가 어딜 다치면 호호하며 김으로 낫게 해주신 엄마이니 다친 구두도 낫게 해줄 거라는 아이의 순진한 마음이 느껴지면서 독자는 미소를 지을 것이다. 즉, 동심이 「다친 구두」에는 잘 살아 있다. 이 시는 피천득의 시가 동시든 아니든 간에 앞으로 쓰는 시가 동심에 기초해 있을 것이라는 암시를 하고 있다. 또한, 엄마라는 존재를 늘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시가 많을 거라는 암시도 하고 있다.

 

달은나만 눈에띄우면

조하라고 딸하주지요

내가엄마 쪼차다니듯

가라해도 딸하옵니다

 

한발한발 걸러가보면

느즉느즉 딸하오고요

깡충깡충 뛰어가보면

얼신알신 쪼차옵니다

 

달은아마 어린애라서

만남자꾸 쪼차다녀요

내가무슨 엄마이라고

염치조케 딸하옵니까

―「달」 전문

 

<동아일보> 1931년 7월 18일 자에 발표된 이 동시는 4ㆍ5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30년대 초에 발표한 이 3편 시는 모두 창가 가락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 창가는 7ㆍ5조로 이루어졌으나, 우리나라 창가는 그 명칭만 빌려 왔을 뿐 형식은 고전 시가의 바탕인 4ㆍ4조로 초기에 많이 지어졌고, 이후 3ㆍ4조, 4ㆍ5조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되었다. 이 동시에도 아이와 엄마가 등장한다. 아이는 달이 자기를 따라다닌다고 생각한다. 화자인 아이가 엄마를 계속 따라다니듯이 달도 나를 엄마라고 생각하는지 그렇게 따라다니느냐고 묻고 있다. 다시 말하거니와 「다친 구두」와 「달」은 모두 동시이고 정형률을 지키고 있고 엄마와 아이의 친밀한 관계를 다루고 있다.

정정호는 등단 초기 작품 목록을 만들었는데 《동광》 1931년 9월호에 「편지」 「무제」 「기다림」이, 1932년 5월호에 「불을 질러라」가, 《신동아》 1932년 6월호에 「선물」 「가신 님」이 실려 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 몇 편 시를 살펴보기로 한다.

 

오늘도 강물에

띄웠어요

 

쓰기는 했건만

부칠 곳 없어

 

흐르는 물 위에

던졌어요

―「편지」 전문

 

쓰기는 했지만 부칠 곳이 없다는 것은 짝사랑 대상이 아니고, 지상에 없는 존재에게 쓴 편지라는 뜻이다. 대체로 편지는 짝사랑을 사랑으로 돌리기 위해 동원하는 고전적인 방법인데 이 시는 편지를 흐르는 물 위에 던졌으니 대상이 없는 상태다.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어머니가 편지의 대상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볼 수 있다. 어버이날이나 두 분 생신 때 편지를 써도 전할 길이 없었을 테니 이 시에 드리운 화자의 아픈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설움이 구름같이

피어날 때면

높은 하늘 파란빛

쳐다봅니다

 

물결같이 심사가

일어날 때면

넓은 바다 푸른 물

바라봅니다

―「無題」 전문

 

정정호는 이 시를 물의 이미지로 분석하였다. “설움”과 “심사”를 어지럽고 뜨거운 불의 이미지로 보았고, 반대로 “넓은 바다 푸른 물”을 몸의 평정과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는 물의 이미지로 보았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바다의 물결이란 것이 잔잔하지만은 않다. 해일이 될 수도 있고 산더미 같은 파고를 보이는 경우도 많다. 구름이 피어나면 그 구름이 장대비가 될 수도 있고 폭우를 불러올 수도 있다. 따라서 서러울 때는 높고 푸른 하늘을 보았고, 심사가 일어날 때는(화가 날 때는) 넓고 푸른 바다를 보며 마음을 달랬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쓴 시가 아닌가 한다. 심사가 어지러울 때면 자연으로부터 위안을 얻었다는 것이 이 시 주제로 여겨진다.

 

밤이면

눈이 소리 없이

나려서 쌓이지요.

지나간 바람밖엔

스친분도 없지오.

봄이면 봄눈 슬듯

슬고야 말터이니

자욱을 내달라고

발자취를 기달려요.

―「기다림」 전문

 

《동광》에 이런 상태로 발표된 이 시는 『금아 시선』에서는 다음과 같이 퇴고가 되어 발표된다.

 

밤마다 눈이

나려서 쌓이지요

 

바람이 지나고는

스친 분도 없지요

 

봄이면 봄눈 슬듯

슬고야 말 터이니

 

자욱을 내 달라고

발자욱을 기다려요

―「기다림ㆍ1」 전문

 

시집에는 2번 시를 새로 써 보탠다. 1편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을 수도 있고 같은 제목으로 또 한 편을 썼기에 1, 2번으로 제목을 붙인 것일 수도 있다.

 

자취 소리에 들은 고개

맑은 눈결에 수그려져라

걷는 뒤만 우러러보았느니

―「기다림ㆍ2」 전문

 

「기다림」과 「기다림ㆍ1」 내용상의 변화는 없다. 눈 내리는 밤 내내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는 것인데, 날이 풀리면 눈은 다 녹아버릴 터, “자욱을 내달라고 발자취를 기달려요”라고 하는 것은 이 밤에 누군가 내게 와달라는 것이다. 눈 내리는 밤에 이야기라도 도란도란 나누고 싶은데, 그런 상대방이 없어서 외롭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다림ㆍ2」 화자는 관찰자다. 누군가 집 밖으로 나와 고개를 숙이고 걷고 있는데 무슨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었더니 뒤에 있는 사람의 맑은 눈길에 관찰 대상이 된 앞에 가던 사람의 고개가 수그러졌다. 하지만 “걷는 (자의) 뒤만 (한번) 우러러”보고는 앞선 사람도 뒤따르는 사람도 다시 말없이 걸음을 옮길 뿐이다. 뒤에 오던 사람이 앞서 걷는 사람이 기다리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다림이 기다림으로 끝난 슬픈 시이다. 피천득의 초기 시는 이렇게 쓸쓸한 정조를 벗어나지 않는데, 그중 예외적인 시가 있다.

 

마른 잔디에 불을 질러라!

시든 풀잎을 살라 버려라!

 

죽은 풀에 불이 붙으면

히노란 언덕이 발갛게 탄다.

봄 와서 옛터에 속닢이 나면

불탄 벌판이 파랗게 된다.

 

마른 잔디에 불을 질러라!

시든 풀잎을 살라 버려라!

―「불을 질러라」 전문

 

느낌표와 명령어투를 네 번씩 쓰면서 마른 잔디와 시든 풀잎을 다 태우라고 한다. 마른 잔디와 시든 풀잎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정확히 알 길이 없지만 짐작하건대 마음속의 짜증이나 번민, 외로움, 설움 같은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욕망이 이런 시를 쓰게 한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30년대 작품 중 동요와 동시도 있다. 앞에서 「다친 구두」와 「달」을 다루었는데 1933년 《신가정》 5월호에 실린 「엄마의 아기」, 1935년 《신가정》 4월호에 실린 「유치원에서 오는 길」, 6월호에 실린 「아가의 슬픔―옛날 엄마를 생각하며」와 「아가의 근심―죽은 엄마를 생각하며」 중 몇 편을 감상해 보자.

 

재깔대며 타박타박 걸어오다가

앙감질로 깡충깡충 뛰어오다가

깔깔대며 배틀배틀 쓰러집니다

 

뭉게뭉게 하얀 구름 쳐다보다가

꼬불꼬불 개미 거동 구경하다가

아롱아롱 호랑나비 쫓아갑니다

―「유치원에서 오는 길」 전문

 

이 동시는 정정호도 평가하고 있지만, 의태어를 잘 배치하여 역동적인 생명감이 넘쳐난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아이이니 대여섯 살쯤 되었을 것이다. 친구들이랑 함께 걸어오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귀엽다. 처음에는 재깔대며 타박타박 걸어오다가 신이 나서 앙감질로 깡충깡충 뛰다가 서로 그 모습이 우스워 깔깔 웃어대다 배틀배틀 쓰러지니 너무너무 귀엽다. 아이는 하늘의 구름도 신기하고 개미가 돌아다니는 것도 재미있다. 호랑나비를 보고 쫓아가는 아이 모습이 이 동시의 마지막 줄이다. 아이의 귀여운 모습에 대한 관찰이 이 동시의 특징인데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동시도 있다. 아이를 관찰 대상에 놓지 않고 화자를 아이로 삼은 동시여서 그런지 이렇게 달라진다.

 

엄마!

엄마가 나를 나놓고

왜 자꾸 성화 멕힌다 그러나?

 

엄마!

나는 놀고만 싶은데

무엇 하러 어서 크라나?

―「아가의 슬픔―옛날 엄마를 생각하며」 전문

 

피천득은 어머니를 열 살 때 여의고 말아서 그런지 평생 모성에 대한 애타는 그리움을 시화했는데, 이 동시는 성격이 좀 다르다. 어린 천득이 보채거나 고집을 피우면 엄마는 ‘얘가 왜 자꾸 성화를 멕힌다지?’ 하면서 화를 낸 모양이다. 성화 멕힌다는 것은 ‘화나게 한다’라는 뜻이다. 밥을 잘 먹지 않으면 엄마들은 잘 먹어야지 키도 크고 튼튼해진다고 하면서 채근을 한다. 아이가 보건대 어른들은 돈벌이해야 하고 식구들을 챙겨야 한다. “나는 놀고만 싶은데/ 무엇 하러 어서 크라나?”라는 시구는 놀고 싶어 하는 아이 마음을 솔직히 표현하고 있어 아주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다. 자신의 그 시절 생각을 잘 표현한 동시인 것이다. 그런데 왜 제목을 이렇게 붙였을까? 그리움을 동반한 원망이 가슴을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죽음을 직접 다룬 동시도 있다.

 

엄마가 살아나면

어떻게 그 무덤을 헐고 나올까?

흙덮고 잔디덮고 다져놨는데!

 

엄마가 살아나면

그 이상한 옷을입고 어떻게 오나?

사람들이 우습다고 놀려먹겠지!

―「아가의 근심―죽은 엄마를 생각하며」 전문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입관과 하관을 지켜본 아이 피천득은 두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다. 예수님이 살아났다는 말을 들은 것일까, 어머니가 살아나면 저 무덤에서 어떻게 나올까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또 살아나면 수의를 입고 나타날 텐데 그것을 보고 우습다고 놀려대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던가 보다. 두 편 동시는 아이 마음이 잘 나타나 있지만, 기본 정조는 엄마를 잃은 슬픔과 내면 가득히 차오르는 설움 같은 것이다. 동시라면 무조건 밝고 희망적이고 아이는 천진난만해야 하는가? 피천득 생각은 달랐다. 아이라고 해서 슬픈 감정을 안 가질 수 없다고 보았고, 더군다나 열 살 때 여읜 어머니 생각에 이런 애잔한 동시를 썼던 것이다.

시사적으로 보면 1930년 전반기는 1920년대 동인지 시대를 마감하고 문예지와 잡지, 신문 학예면을 중심으로 활동이 펼쳐지던 시대였다. 카프 문학이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었고 이상과 김기림 등 모더니즘이 대약진하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순수서정시를 지향하던 시문학파가 이들과 대립하고 있었고 백석ㆍ이용악ㆍ오장환 등 북방의 정서를 다룬 시인들, 그리고 민요조 서정시를 쓰고 있던 김억ㆍ김소월ㆍ김동환 등도 시단 중심축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피천득의 시는 그 어느 무리와도 거리를 두고 있었다. 시적 경향도 누구와 함께 논의할 수 없을 만큼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논의 대상이 될 때는 아주 불리하게 작용하였다. 어느 유파의 한 사람이라면 함께 자주 거론되었겠지만, 외톨이나 다를 바 없는 그는 시단 주류에서 늘 밀려나 있었다. 특히 그는 창가 유의 시, 시조, 동시, 자유시를 거의 비슷한 비중을 두고 쓰고 있었다. 이것 또한 그를 평가하는 데는 아주 불리하게 작용하였다. 확실하게 하나의 장르를 잡아서 집중적으로 썼더라면 그의 시에 대한 평가는 달라졌을 것이다.

일본은 1937년에 중일전쟁을, 1941년에 태평양전쟁을 일으킴으로써 한반도는 병참기지 역할을 하게 된다. 피천득은 1937년에 상하이 후장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귀국해 서울중앙상업학교 교원이 되었다. 1939년에 결혼하여 같은 해에 장남 세영이 태어난다. 1941년에 경성대학교 이공학부 도서관 사서로 취직하여 해방 때까지 일했고 그 이후에 서울대학교 예과 영어과 교수가 된다. 미군정 치하였던 1947년에 첫 시집 『서정 시집』을 내기는 했지만, 시작 활동은 1936년 이후부터는 거의 중단되고 만다. 시집 발간 이후 그는 영문학과 교수, 영문학자, 수필가의 삶을 살아가면서 ‘시인 피천득’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1930년대 시단의 피천득은 그만 증발하고 말았다. 연구자는 사라져버린 피천득의 1930년대 전반기의 시, 즉 초기의 시가 온당한 평가를 받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시 내용이 아주 쉽고 소박하다고 하여, 시심이 천진하고 애잔하다고 하여 1930년대 전반기 시사에서 그를 완전히 빼버리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특히 아동문학계에서는 1930년대 피천득의 동시와 동요를 자리매김하는 작업이 새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1932년 작 「가신 님」은 연가풍이 조금씩 확립되어 가는 과정의 시로서, 연작시 「琴兒戀歌」 18편의 모체 격인 작품이 아닌가 한다.

 

둥글게 달불이 에웟스니

잇흔날 아츰에 비가온다고

하날을 처다보며 가리키더니

그말이 마자서 비가왓네

 

달뜨고 눈오는 꿈을 꾸면

이듬해 봄에는 님이온다고

강자를 부리며 일너주드니

그말은 안맛고 님이갓네

―「가신 님」 전문

 

자연의 이모저모는 순리대로 진행되는데 인간 세상의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달 곁에 그림자가 모이면 다음 날 비가 오고 겨울 가면 반드시 봄이 온다. 점쟁이가 말한 것인가, 뭐가 어찌 되면 님과 맺어진다고. 하지만 그 반대로 님이 가버렸다. 사랑이 문학작품 소재가 될 때면 이렇게 이별인 경우가 많다. 사별일 수도 있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서글픈 심사를 「가신 님」은 잘 보여 주고 있다.

정정호의 연구에 의하면 피천득은 초기에 평시조를 총 18수, 연시조를 총 12수 발표했다고 한다. 이들 작품 중 몇 편을 살펴보도록 한다.

『신가정』 1933년 4월호에 발표한 「이 마음」을 보면 두 수 평시조를 이어서 쓴 연시조(聯詩調)로서 본격적인 자유시 쓰기에 앞서 여전히 ‘정형’에 천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떨어져 사는우리

편지조차 못하리니

같은때 별을보고

서로 생각하자했네

깊은밤 흐린하늘에

샛별찾는 이마음

늦도록 문틈으로

불빛새는 밤이면은

불끄고 누어서도

그와 함께새우노니

찾아가 님없는밤에

불켜놓은 이마음

―「이 마음」 전문​

 

화자와 님은 같은 공간에 있지 않다. 같은 시간에 같은 별을 보았지만, 지금은 편지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다. 사별한 것도 같다. 몸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님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고, 캄캄함을 몰아내기 위해 불을 밝힌다는 내용이다. 이 시조는 동시의 세계를 떠나서 성인 시로 발돋움한 전초가 되는 작품이다. 《신동아》 1933년 10월호를 보면 「時調九首」란 시조가 나온다.

 

잊어 좋을진대 부듸잊어 버리라고

잊으려 잊으려도 잊는슲음 더욱커서

지난일 하나하나를 눈물적셔 봅니다

―「時調九首」 부분

 

연작 9편 중 여섯 번째 작품인데, 형식은 시조이지만 창가 유의 시와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헤어진 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계속 생각이 나고, 눈물까지 흘리는 이별의 정서가 애달프다. 《신동아》 같은 해 12월호에 「무제」라는 시조를 발표하였다.

 

이불 걷어차고 ‘만또’ 띄여 걸드리고

깊은숩 어둠젖어 인적끛인 다리지나

마질손 잇는듯이나 숨갑부게 나갓소

 

막차에 나린이는 애기업은 늙은마님

가지고 나린것은 족박달린 봇짐하나

차가고 정거장에는 장명등이 꺼지오

오실리 없는것을 기다리는 이마음을

찬별을 바라보며 산길도라 집에오니

이밤도 손님온다고 검둥이는 짖이오

―「無題」 전문

 

화자가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밤이 꽤 깊은 시각이었다. 잠도 안 오고 막차 시간이 되어 정거장까지 갔는데 내린 이는 아기 업은 늙은 여인이었다. 하는 수 없이 산길을 돌아 집에 오니 검둥이가 반겨 짖더라는 내용이다. 피천득 시의 주된 정조는 이처럼 ‘그리움’이다. 훗날 쓰는 수필 「인연」도 인연이 있기는 했지만 이루어지지 못한 연정이었고 시든 시조든 간에 주된 내용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기에 화자의 심사는 늘 아쉽고 안타깝다.

이상 20편쯤 되는 피천득의 초기 시를 살펴보았다. 모두 1930년부터 1935년까지 6년 동안에 쓴 작품이므로 그가 20대 전반기에 쓴 것이다. 아주 초기에는 창가의 영향을 받아서 3ㆍ4조, 4ㆍ3조, 4ㆍ5조 자수 맞추기에 충실하였고, 시조와 동시, 자유시로 영역을 넓혀 나갔다. 작품의 주된 대상이 어머니이든 다른 여성이건 간에 애잔한 그리움의 대상으로 설정하여 시를 썼다. 이별이건 부재건 충족되지 않은 사랑의 감정은 그리움이 되었고, 시는 그 그리움의 놀이터였다. 어느 시 할 것 없이 짙은 서정성을 가진 것이 피천득 시의 큰 특징이다.

지금까지 1947년에 간행한 첫 시집 『서정시집』에 실려 있는 시편들을 살펴보았다. 그는 60년대에는 교수로서, 학자로서, 가장으로서 정신없이 나날을 보낸다. 70년대에 들어서서는 수필가로 왕성한 작업을 하여 주옥편을 계속 발표한다. 그러다 80년대, 즉 칠순에 들어서서부터 다시 시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이제부터는 노년기에 쓴 시를 몇 편 살펴볼까 한다.

 

봄이 오면 七旬

고목에 새순이 나오는 것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본다

 

연못에 배 띄우는 아이같이

첫 나들이 나온 새댁같이

이 봄 그렇게 살으리라

―「이 봄」 전문

 

나이는 어언 내일모레면 일흔이다. 그런데 새봄을 맞으면서 연못에 종이배를 띄우는 아이같이 천진하게, 첫 나들이 나온 새댁같이 호기심을 갖고 이 세상을 살아볼 결심을 하고 있다. 등단 초기에 지닌 천진성을 평생 유지해온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경이롭기도 하다.

 

회갑 지난

제자들이 찾아와

나와 같이 대학생 웃음을 웃는다

내 목소리가 예전같이 낭랑하다고

책은 헐어서 정들고

사람은 늙어서 오래 사느니

―「장수」 전문

 

제자들이 예순이 넘었다고 하니 90대에 쓴 시임이 틀림없다. 제자들이 스승을 찾아와서 환담을 하고 웃음꽃을 피운다. 자신을 포함한 일행의 웃음을 “대학생 웃음”이라고 표현했다. 누군가 말했나 보다. 선생님 목소리가 예전같이 낭랑하다고. 기분이 썩 좋아진 시인은 제자들이 가고 난 이후 즐거운 마음으로 이 시를 썼다. 이 또한 시인 천진성을 보여 준 시라고 생각한다. 피천득의 시가 놀라운 것은 노년기에 쓴 시가 기교나 실험을 배제하고 깨끗하고 순수하다는 것이다. 어떤 날에는 추억에 잠기기도 한다.

 

햇빛에 이슬 같은

무지개 같은

그 순간 있었느니

 

비바람 같은

파도 같은

그 순간 있었느니

 

구름 비치는

호수 같은

그런 순간도 있었느니

 

기억만이

아련한 기억만이

내리는 눈 같은

안개 같은

―「기억만이」 전문

 

이런 시도 시인 마음의 바탕이 얼마나 깨끗한가를 알게 한다. 그의 시는 어느 한 편도 난해하지 않다. 결코 길지 않았고 산문조로 쓰지 않았다. 천진성을 잃지 않고 있는 그의 시는 마치 워즈워스가 「무지개」에서 제시했던 유명한 시구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노니 나의 하루하루가 자연의 믿음에 매어지고자.”를 연상시킨다.

 

국민학교 문 앞을 지날 때면

꾀꼬리들이 배워 옮기는 참새 소리

번연히 그럴 줄을 알면서도

가슴이 뻐개지는 것 같았다

 

태극기 날리는 운동장에서

삼천리를 부르는 어린 목소리

나는 멍―ㅇ하니 서 있고

눈물만이 눈물만이 솟아오른다

 

꿈에서라도 이런 꿈을 꾼다면

정녕 기뻐 미칠 터인데

나는 멍―ㅇ하니 서 있고

눈물만이 눈물만이 흘러나린다

―「국민학교 문 앞을 지날 때면」 전문

 

이 시를 시라고 해야 할까 동시라고 해야 할까. 시적 화자가 노년이므로 동시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앞을 지나면서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눈물짓는 시작 화자가 바로 피천득 시인이기에 천진성의 산물이라 아니할 수 없다. 피천득의 시가 동시대 다른 시인들의 시와 구별 짓는 지점에 바로 천진성이 있다. 아이 마음으로 돌아가서 시를 썼기 때문에 그는 생애 내내 시로서는 별로 인정을 받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후 20년이 다 된 지금, 수필가 피천득이 아닌 시인 피천득을 논하면서 시의 중요한 특징인 천진성을 빼면 안 될 것이다.

 

 

- 이승하 시인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명예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사람 사막』 『일출』, 디카시집 『세상의 둥근 것들』 등

평론집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등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우상순』 등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유심작품상, 가톨릭문학상, 서울시문화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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