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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아의 작가수필과 그 속의 투영된 자화상/ 박양근 문학평론가

작성자사무총장|작성시간26.10.23|조회수129 목록 댓글 0

금아의 작가수필과 그 속의 투영된 자화상

― 피천득의 정신적 자화상 읽기

 

박양근(문학평론가)

 

서론

 

피천득(琴兒, 1910~2007)은 우리 문학사에서 수필가이자 시인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동시에 평생을 영미문학 연구와 번역에 헌신한 영문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서울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강의하며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수많은 영미 작가를 소개하였고, 서양 문학의 웅대함을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의 문학 세계를 이야기할 때 흔히 『인연』을 비롯한 <수필>과 서정시를 논하지만, 그의 번역과 작가론 역시 피천득 문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축을 이룬다. 특히 그가 남긴 짧은 작가수필들은 인간 피천득과 문학가 피천득의 상호성을 이해하는 귀중한 창이라 할 수 있다.

피천득이 소개한 작가수필은 모두 열 편 남짓이다. 중국 도연명을 비롯하여 셰익스피어, 찰스 램, 로버트 프로스트, 랠프 월도 에머슨, 앙리 프레데리크 아미엘, 춘원 이광수, 치옹 윤오영, 윤동주, 도산 안창호 등이다. 이들은 동서양의 국적, 문학 장르가 서로 다르지만, 피천득은 그들을 비평의 대상으로만 다루지 않았다. 오히려 가까운 벗을 소개하듯 그들 성품을 들려주면서 자기 생각과 감회를 자연스럽게 녹여 놓았다. 그의 작가수필은 비평문이라기보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평가이며, 문학을 매개로 한 대화에 가깝다.

여기에서 몇 가지 중요한 의문이 생긴다. 피천득은 평생 수많은 영미 작가를 연구하고 번역하였음에도 왜 작가수필을 따로 남겼을까. 왜 작품의 미학적 성취보다 사람됨과 삶의 태도를 주로 이야기하였을까. 이들의 문학과 인생은 피천득 문학 세계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으며, 그의 인격 형성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을까. 이러한 질문은 작가수필의 성격을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 피천득과 그의 문학적 정체성을 조명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작가를 이해하는 방법은 작품 분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의 생애와 시대적 환경은 물론, 편지와 회고록, 주변 인물들의 증언, 즐겨 읽었던 책과 존경했던 작가들까지 함께 살펴볼 때 비로소 한 작가의 정신세계가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사람은 자신이 만난 사람을 닮아가고, 작가는 자신이 오래 읽은 작가를 닮아가기 때문이다. 특히 번역은 단순한 언어의 치환이 아니라 원작자 사상과 감성, 세계관을 깊이 이해하고 수렴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평생 번역을 자신의 문학적 소명으로 삼았던 피천득에게 외국 문학을 소개하는 일은 자신의 인격과 문학을 형성하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그가 남긴 작가수필은 평생 닮고자 했던 인간상을 비추는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본고는 이러한 관점에서 피천득의 작가수필을 정신적 자화상으로 읽고자 한다. 그는 작품을 논하면서 자신의 문학관을 말하고, 작가를 소개하면서 자신의 삶을 비추었다. 다시 말해 피천득이 선택한 작가들은 우연히 다룬 인물들이 아니라, 그가 평생 닮고자 했던 정신적 가늠자에 맞게 선정한 작가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개별 작가들의 문학을 해설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이들 작가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삶의 태도와 정신적 가치가 어떻게 피천득의 인격에 스며들고 그의 시와 수필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수필가나 서정시인으로 여긴 피천득을 확장하여 번역가이자 세계문학 수용자로서 조명할 근거를 마련하고, 작가수필로 표현한 그의 정신세계를 밝히고자 한다.

 

 

1. 자연의 순수성과 피천득

 

피천득의 작가수필을 차례로 읽어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공통점은 자연과 순수성에 대한 깊은 동경이다. 그가 특별히 애정을 가지고 소개한 도연명, 로버트 프로스트, 아미엘은 자연 속에서 인간의 모습을 찾고자 했던 인물들이다. 그들은 화려한 성공이나 영웅적인 삶보다 평범한 일상과 시적 안식을 더 소중히 여겼으며, 자연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고향으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가치관은 피천득의 수필과 시 전반을 관통하는 정신이기도 하다. 그는 이들 작품을 번역하고 소개하면서 문학적 기법보다 그들의 인격과 삶의 방식에 더 깊이 공감하였고, 나아가 자신의 문학세계를 더욱 단단하게 다져 나갔다. 결국 피천득이 사랑한 것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자연처럼 살아가는 인간이었다.

 

1) 도연명 ― 귀거래사 마음

 

피천득이 중국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 가운데 도연명을 선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는 이백이나 두보처럼 웅대한 시 세계를 펼친 시인보다 관직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간 도연명의 삶에서 더 깊은 공감대를 발견하였다. 「도연명」은 피천득이 쉰 살을 앞둔 1958년에 발표한 글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기와 일치한다, 서두에서 “웃음을 잃고 무표정한 사람이 되어 가는 자기 모습이 미워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고백하듯 도시 생활로 인하여 메말라 가는 자신의 영혼을 자각하였음을 보여준다.

그 무렵 피천득은 대학 강의와 번역으로 바쁜 도시인 삶을 살면서 마음으로는 자연함의 세계로 향해 있었다. 도연명의 「귀거래사」처럼 자신도 자연다운 삶을 누리고 싶었지만 주어진 현실을 박차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박목월의 「나그네」를 떠올리게 하는 심정으로 “늙은 몸 같은 이 몸을 채찍질하며 잘못 들어선 길을 가고 있다.”라는 탄식을 은근히 드러낸다. 도연명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사실은 “지금 살고 있는 아홉 평 집을 팔면 충청도 어느 시골에다 초옥팔구간(초가집 여덟, 아홉칸)”을 마련할 수도 있으련만, “잘못 도시 속에 빠져 30년이 가 버리다”라는 자신의 현실을 탁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피천득에게 도연명은 단순한 중국 고전 시인이 아니라 자연과 안빈을 선택한 표상이었으며, 피천득이 지향하고자 했던 삶의 방향을 보여 주는 정신적 좌표였다. 그렇다면 수필 속 도연명은 피천득 자신의 에고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2) 로버트 프로스트 ― 순박한 농부의 품격

 

피천득의 작가수필 가운데 가장 각별한 작품은 단연 <로버트 프로스트」이다. 그는 프로스트에 대하여 유일하게 두 편의 수필을 남겼고, 경어체로 서술하였다. 처음 만남과 마지막 이별을 생생하게 회상하는 서사와 경어체 문체는 존경하는 은사를 추억하는 마음 그대로 피천득 문학과 인생에서 결코 피할 수 없는 인물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피천득이 존경한 것은 프로스트 명성이나 시의 유명세가 아니었다. 그가 감동한 것은 프로스트의 인간됨이었다. 거칠지만 따뜻한 농부의 손, 오래된 혁대, “나는 평범한 사람이오”와 “나는 나의 농장을 좋아한다.”라는 소박한 말에서 성실한 생활인 품격을 발견하였다. 특히 금아는 프로스트로부터 시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깊은 영향을 받았는데 그 점은 “시인은 정직한 사람이어야 한다.”라는 대목을 특별히 강조한 데서 알 수 있다. 문학은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순수하고 정직한 삶에서 시작된다는 점에 그들은 한마음이었다.

나아가 프로스트의 시를 “동양의 묵화와 같다.”라고 평가하며 「자작나무」를 직접 번역하여 소개한다. “나도 한때는 백화나무를 타던 소년이었다.”라는 시구는 “거문고를 켜는 아이((琴兒)”로서 단순한 번역자가 아니라 평생 '늙지 않은 소년'으로 살고자 했던 가능성을 그에게서 발견했음을 말한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은 금아에 이르러 “내 저 시내를 따라서 가려내”라는 첫 연을 가진 <시내」로 발전한다. 이처럼 그들은 자연을 공유하고 프로스트의 정직은 피천득 삶의 윤리가 되었다. 두 사람은 국적은 달라도 자연과 인간을 사랑한 정신적 동반자였다고 할 수 있다. 금아는 여기서 “이 세상은 사랑하기에 좋은 곳”이라고 했지만, 과연 그랬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긴다.

 

3) 아미엘 ― 영혼의 평화를 향한 마지막 대화

 

피천득이 말년에 깊은 관심을 보인 작가는 앙리 프레데리크 아미엘이다. 「아미엘의 일기」는 2005년에 발표되었는데, 피천득이 아흔다섯 살이 되던 해였다. 치열한 번역과 교육자의 삶을 마무리하고 번역시집 『내가 사랑하는 시』를 발간하고 상하이를 다녀오는 등 삶의 마무리 무렵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그는 아미엘의 『일기』를 자신이 가장 오래 간직한 책으로 중요한 부분마다 밑줄을 긋고 노트 기록하며 반복하여 읽었다고 적었다. 특히 “육체적 욕망을 이기는 정신의 승리, 다시 말해 병과 고독과 죽음의 공포를 초월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영웅적인 것이다.”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찰스 램」의 첫머리에서 “나는 위대한 인물에서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라는 이유를 밝혔다. 아미엘을 기술할 때 “단순함, 순수한, 영혼의 양식” 등을 인용하면서 “요즘 시대에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책”이라고 한 서평은 2005년 95세의 삶을 암시하는 담론에 해당한다. 젊은 시절에는 도연명의 자연 회귀를 동경하였고, 중년에는 프로스트의 농부다움을 배웠다면, 노년에는 아미엘을 통해 ‘고귀한 영혼’을 받아들인 것이다.

아미엘을 이야기하는 피천득의 문장은 담담하지만, 그 속에는 오랜 세월 삶을 성찰한 노(老)문인의 깊은 감회가 배어 있다. 그는 여기서 문학적 업적을 말하지 않고, 오직 인간이 어떻게 늙어야 하며,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이야기한다. 이러한 태도는 말년으로 이어지는 정신적 완성을 비추어준다고 할 수 있다.

 

소결

피천득은 도연명, 로버트 프로스트, 아미엘에게서 공통으로 자연을 닮은 순수, 절제와 영혼의 평화를 발견하였다. 그들 작품보다 삶을 먼저 이야기하는 이유도 문학을 인간 완성의 과정으로 이해하였고, 번역도 타자 정신을 배우는 수련의 하나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피천득은 세 작가에게서 그가 지향했던 인간상을 찾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들은 피천득 문학을 이루는 자화상을 이루는 첫 얼굴이라 할 수 있다.

 

 

제2장. 문학보다 인간을 먼저 본 작가들

 

피천득의 작가수필을 읽다 보면 한 가지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작품의 예술성이나 문학사적 업적을 논하기에 앞서 먼저 한 인간으로서 작가의 삶에 담긴 인성을 먼저 생각하는 피천득의 의식이다. 뛰어난 문학은 훌륭한 인격에서 비롯된다는 신념을 가진 그의 글에는 작품 분석보다 작가의 일상과 인간적인 일화가 훨씬 많이 등장한다. 문학은 삶을 떠나 존재할 수 없으며, 작품은 인간 정신의 결정체라는 것이 피천득 문학관임을 재확인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은 춘원 이광수, 치옹 윤오영, 셰익스피어, 찰스 램을 다루는 수필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네 사람은 소설가, 극작가, 수필가로서 장르가 다르지만, 피천득은 그들에게서 인간다운 품위와 따뜻한 인품을 발견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문학적 재능과 업적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은 그들의 “인간적인 아름다움”이다.

 

1) 춘원 이광수 ― 존경과 탄식의 감회

 

피천득에게 춘원 이광수는 “문학과 삶의 방향을 일깨워 준 스승”이었음은 어떤 경우에도 변할 수 없다. 그는 춘원을 “학덕이 높고 해박한 교양을 지닌 분”, “영문학과 인도주의, 애국심을 심어 준 은사”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정직하고 자연스러우며 남을 쉽게 비난하지 않는 성품”을 보여 주었다고 언급한다. 그러나 조건 없는 찬사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는 거절할 줄 모르고 일생은 불연속선’이었다고 하면서 춘원의 친일 행적을 “크나큰 과오”라는 절제된 표현으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 글은 1962년에 발표되었다. 이해는 춘원 탄생 70주년으로 인간 이광수를 조명하는 시대적 분위기가 형성된 때였다. 『동광』 등에서 문인의 길을 열어준 춘원에 대한 인간적인 회고와 시대적 분위기가 합친 글인 만큼 개인적인 고마움과 안타까움이 어울린 내용이 확연히 드러난다. 무엇을 쓰겠냐만 기회가 주어졌으니 쓴다는 변명조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1937년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라는 탄식에는 뛰어난 문재와 인간적 덕성을 지닌 인물이 시대의 비극 앞에서 무너진 안타까운 현실을 반영한다.

이광수를 다룬 작가수필에는 다른 작가수필과 달리 피천득 개인의 정리(情理)가 뚜렷하다. 한 인간의 생애 전체를 과오 하나로 결정하려는 시대와 떨어져 존경과 비판, 사랑과 안타까움으로 “그는 신부나 승려가 될 사람이었다”라고 그의 전 생애를 이해하려는 인간론은 피천득 특유의 온유한 성품과 인문정신을 대변한다. 피천득은 ‘금아’라는 호를 준 이광수에게 “5월의 잉어” 같다는 비유를 바친다. 어쩌면 춘원의 삶은 한국 현대사와 멀찍이 떨어져 무욕청초(無慾淸楚)하게 살았던 금아에게 타산지석이면서 선택의 역사적 오류를 알려준 거울이었을지도 모른다.

 

2) 치옹(痴翁): 문학은 사람이다

 

치옹 윤오영론은 다른 작가들에 비해 가장 인간적인 온기가 넘친다. 피천득은 그의 작품 제목을 일일이 소개하고, 학창 시절부터 교사 생활, 문단 활동에 이르기까지 삶을 그려내어 걸리는 개인적 사회적 장애물이 하나도 없는 듯하다. 마치 평전 요약문을 읽는 느낌을 준다. 이것은 그들이 직접 만나 인간적인 교류를 자주 나누었음을 반영한다.

그는 윤오영을 두고 “단칸방에 우주를 갖고 있다”라고 극찬한다. 나아가 “서리 같은 이성과 호수 같은 정”을, “노학자와 현대 젊음이 상”을, “삼강오륜과 대기만성”이라는 수사를 붙여주고 “화려한 명성보다 평범한 교사의 삶에 만족”하였던 태도를 높이 평가한다. 어찌 보면 금아 답지 않은 과장이지만 윤오영 성품을 알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원고를 들고 찾아오던 일화를 소개하여 두 사람의 깊은 신뢰와 우정이 공공연히 드러내기도 한다. 피천득은 윤오영의 작품을 설명하면서 “조약돌도 손에 쥐면 옥구슬”이라고 칭찬을 더 한다,

이는 피천득이 평가하는 기준이 수필에서는 “사람이 곧 글이다”라는 품격을 중시하였음을 보여 준다. 윤오영은 화려한 문학적 명성보다 인간적인 진실성으로 기억되는 만큼 그 점이 피천득이 가장 배우고자 했던 가치였음을 알 수 있다.

 

3) 셰익스피어 ― 위대한 문학은 위대한 인간에서 시작한다

 

셰익스피어 탄신 400주년을 맞아 쓴 <셰익스피어」론 첫인상은 서술 분량이 상대적으로 매우 짧다는 점이다. 평생 셰익스피어를 연구하고 번역한 영문학자의 작가론으로서 간결하지만, 그에 대한 모든 평가가 빠지지 않는다. “인도를 내준다, 천심만혼(天心萬魂), 삼림(森林)”은 그의 세계적 명성을. “시대를 초월한 인간”, “수많은 인간상을 창조한 작가”는 그의 관대한 작품을. “그는 나를 몰라도 나는 그를 들을 수 있다”라는 셰익스피어에 대한 그의 존경심을, “그를 읽고도 비인간적인 사람은 적을 것이다”라는 그의 인문학적 영향력을 평가한 말이다. 이들은 모두 ‘왜 우리는 지금 그를 만나야 하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결국 그의 업적을 피천득은 “그의 바탕은 사랑이다.”라는 문장으로 압축한다. 이 한 문장은 피천득 자신의 문학관을 보여 주는 핵심이기도 하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언어적 천재성이나 극적 구성보다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음을 더 반긴다. 피천득은 평생 셰익스피어를 번역하면서 희곡과 소네트에서 수많은 인간 군상을 만났고, 소네트의 서정성과 희곡의 대화는 그의 시와 수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셰익스피어가 남긴 154편 소네트를 모두 번역하고, 희비극 등장인물 성격을 한마디로 요약한다. 그중에서 ”애잔한 오필리아“는 ‘애잔한 아사코’로 치환하여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인연』의 인간 심리에 대한 절제된 통찰은 셰익스피어 비극을 연구한 결과와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셰익스피어는 피천득에게 단순한 번역과 비평의 대상이 아니라 번역을 통해 시적 감수성을 키우고,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도록 해준 문학가였다.

 

4) 찰스 램 ― 피천득이 닮고 싶은 수필가

 

피천득 수필은 찰스 램을 기반으로 한다고 할 만큼 영국 수필의 대가인 램을 자신의 문학적 스승으로 삼았다. 이 점은 서두에서 “나는 그저 평범하되 정서가 섬세한 사람을 좋아한다.”라고 말하면서 “인정, 동정심, 작은 인연, 순진함, 아련한 유머”를 자신이 좋아하는 인간 조건으로 내세워 찰스 램의 인간미를 소개하는 데서 알 수 있다.

피천득은 램의 못난 외모와 술 담배 버릇, 이야기 좋아하는 버릇, 나아가 정중한 대접을 불편해하던 소탈한 성격까지 시시콜콜하게 묘사한다. 위대한 문학적 업적도 중요하지만 평범한 인간 램을 두고 “램이면 언제나 램이면 된다.”라는 말로써 남과 비교할 필요 없이 자신(自身)으로 살아가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피천득 자신의 인생 철학까지 담아낸다. 이 말은 훗날 “아인슈타인은 우리의 아인슈타인이면 된다.”라는 표현으로 이어지면서 ‘피천득은 피천득이면 된다’라는 말을 함축할 정도로 그의 인간 이해를 상징하는 문장이 되었다.

피천득은 찰스 램을 통해 수필은 어찌해야 하며, 수필가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를 말한다. 피천득 수필이 지닌 담백한 문체, 절제된 유머, 평범한 일상을 사랑하는 태도, 나아가 “모든 아이를 사랑하였다”라는 설명은 피천득의 동심과 서정미의 근원을 밝혀준다. 어린이를 소재로 다룬 여러 편의 동시 외에 유치원 다니던 시절을 다룬 수필 「찬란한 시절」은 램의 「굴뚝 청소부 예찬」에 시종 흐르는 순수함을 떠올려준다. 지금까지 금아 선생만큼 ‘한국의 찰스 램’이라 불릴 수필가는 아직 없지 않을까 싶다.

 

소결

춘원 이광수, 치옹 윤오영, 셰익스피어, 찰스 램은 다른 시대와 문화권 인물이지만, 재능과 작품보다 인품과 삶의 태도를 존중한 피천득 인성을 보여 준다. 이미 영문학 강의나 평론을 통해 그들 작품을 소개한 만큼 인간론을 다루겠다는 여유 부림도 찾을 수 있다.

결국 피천득에게 문학은 인간을 이해하고 약점조차 포용하는 길이었다. 번역은 작품을 옮기는 작업이면서 인간 정신을 배우는 과정이었고 수필은 자신이 닮고자 했던 인간상에 바치는 헌사였다. 다만 이광수론을 쓸 때와 윤오영론을 쓸 때 문체가 각기 둔중하거나 유쾌하여 당시 피천득 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러한 인간 중심 기술은 다음 장에서 살펴볼 윤동주와 에머슨, 브루크, 도산 안창호 등 역사와 마주 선 지식인의 양심으로 확장된다.

 

 

제3장. 시로 담아낸 지식인 부채의식

 

피천득은 흔히 순수한 수필가이자 서정시인으로 평가된다. 그의 작품에는 민족, 혁명, 투쟁과 같은 정치 구호와 이념적 언어가 거의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일각에서는 그를 시대 현실과 거리를 둔 작가로 간주하지만, 그의 작가수필을 차례로 읽어 보면 시대상을 외면한 것이라기보다는 시대상을 표현하는 방식을 달리하였다고 말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직접 외치기보다 애국적인 시와 시인을 소개하여 당시의 격변과 정치를 말하면서도, 이념 자체보다 자유와 양심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더 옹호하였다. 그는 문학은 이념 이상으로 존엄한 것이므로 서정성으로 자신의 시대론이 문학에 반영토록 숙고하였다.

특히 윤동주, 랠프 월도 에머슨, 루퍼트 브루크, 도산 안창호, 그리고 「1945년 8월 15일」은 공통으로 인간의 자유와 나라 사랑, 그리고 지식인 양심을 보여 준다. 그렇게 하려고 이들이 쓴 시를 전문(全文)에 가깝게 소개함으로써 자신이 직접 말하기보다는 젊은 영혼을 추모하고 헌정함으로써 자신의 부채의식을 표현하려 하였다.

 

1) 윤동주 ― 죽은 자를 의한 산 자의 애모

 

피천득이 쓴 윤동주론은 작가 소개문이 아니라 그의 시를 통한 애도의 글이다. 그는 윤동주 생애를 설명하지 않기보다는 「별 헤는 밤」 전문을 독자 앞에 펼쳐 보여 시 자체가 모든 것을 말하게 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보여 주기를 중시하는 현대 문학의 기교이자 젊은 시인의 희생 앞에 자신을 앞세우지 않는 겸허한 태도를 반영한다.

피천득이 강조하는 것은 북간도에서 태어나 조국의 해방을 꿈꾸다 스물일곱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순교자 시인”이다. ‘나는 그때 무엇을 했는가’라는 자책이 깊게 묻어있는 “부끄러운 이름”에 대한 자의식은 “우리나라의 자유가 올 것을 믿고 그는 죽었다.”라고 강렬하면서 담담한 마지막 어조로 강조된다. 이 절제된 슬픔을 더욱 깊게 한다. 살아남은 지식인으로서 부끄러운 역사적 부채의식이 이 짧은 문장 속에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윤동주를 회상하는 피천득 심정은 “하늘 별 순이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이 시가 되었다”라고 시를 해설하면서 그의 “순결한 영혼”을 예찬한 말에서 나타난다. 피천득은 평소 “시와 수필이 자신에게는 동일하다”라고 말하였고 「어머니 사랑」, 「봄」, 「마르지 않는 동요의 샘」, 「오월」, 「눈물」, 「기도」 등의 수필과 「달」 「꿈」 「이슬」 「꽃씨와 도둑」 등의 시는 작은 것에 대한 섬세함에서 윤동주 시 세계와 동일하다, 이런 유사성은 그를 추모하는 데서 나아가 윤동주의 시가 그랬듯이 오늘의 독자들에게 조용하게 역사의식을 물려주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다.

 

2) 에머슨 ― 자유는 인간 정신의 완성이다

 

에머슨은 ‘미국의 정신적 독립의 아버지’이며 초월주의자로서 미국 산문 선구자다. 그에게서 피천득이 주목한 것은 「콩코드 찬가」에 담긴 자유 정신이다. 피천득은 그것을 신생국가 미국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 보편 자유에 대한 찬가로 읽었다. “그들이 쏜 총소리는 온 세계에 울려 퍼졌다.”라는 구절을 소개한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작품이 발표된 1980년으로 당시 한국은 ‘서울의 봄’이라는 격동기에 놓여있었다. 그는 현실 정치에 논평을 삼가는 대신, 자유를 노래한 콩코드 찬가를 통해 시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였다. 애국심 이상으로 자유의 존엄성과 적에게까지 아량을 베푸는 시 내용은 문학적 양심의 표현으로서 피천득의 「1945년 8월 15일」에 이어진다. 피천득은 어느 경우든 환호성 구호보다는 시적 목소리로써 자신의 심중을 밝히려 하였고 그 점을 여기서도 재확인할 수 있다. 그는 문학은 특정 이념의 깃발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지켜주는 등대로 본 것이다.

 

3) 루퍼트 브루크 ― 애국은 인간다운 삶에서

 

루퍼트 브루크의 「병사」를 소개할 때도 피천득의 역사관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전쟁 영웅을 미화하기보다는 젊은 병사가 죽음을 앞두고 조국 산하와 자연미를 떠올렸을 거라는 모습을 그려 참된 애국심이 무엇인가를 강조한다.

 

“내가 죽는다면 이것만은 생각해 주오/이국 땅 들판 어느 한 곳에/영원히 영국인 것이 있다는 것을/기름진 땅속에 보다 더 비옥한/한 무더기 흙이 묻혀 있다는 것을.”

 

피천득은 놀랍게도 윤동주 같은 촉망받는 시인이 말한 “태양, 공기, 흙, 꽃, 웃음”과 같은 시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국가를 위한 희생보다 인간다운 삶을 상징하는 시어를 통해 그가 말하는 애국은 적개심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삶을 사랑하는 것임을 말한다. 그는 브루크의 시조차 인간애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음을 말한다.

 

4) 「1945년 8월 15일」 ― 절제된 감격과 녹두꽃

 

「1945년 8월 15일」은 해방 50년을 맞아 쓴 소품으로 “그때 그 얼굴들…모두 다 ‘나’가 아니고 ‘우리’였다”는 짧은 서문과 자작시로 이루어진다. 자작시는 “녹두꽃과 파랑새”라는 전봉준을 회상하는 내용으로 해방의 기쁨을 추상적인 해방이나 독립 같은 과장된 언어로 외치지 않고 “파란 하늘이 그리 스몄으리”처럼 빼앗긴 이름과 되찾은 산하로서 조용한 기도 형식으로 펼쳐진다. 환호보다 침묵으로, 격정보다 절제가 큰 감동을 전하는 전형적인 형식이다.

이 작품에서 피천득은 앞서 소개한 3편의 시에서처럼 자유를 되찾은 “우리” 인간의 존엄과 희생에 대한 감사, 무엇보다 이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소망을 전한다. 특히 마지막 행, “나는 멍-하니 서 있고/눈물만이 눈물만이 흘러나린다.”라는 시적 화자의 소회는 인간 피천득이 지금까지 침묵해온 지식인으로서 자책감을 말하는듯하다. 이 구절은 금아 시인이 지켜온 서정 문학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는 점에서 피천득 문학의 특징이자 한계라 하겠다.

 

5) 도산 안창호 ― 그의 인격 자체가 애국이다

 

도산 안창호가 작가가 아님에도 소개하는 이유는 피천득의 정신적 스승이기 때문이다. 인상적인 대목은 “나는 영웅을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고백으로 작가수필에서 4번이라 적을 만큼 도산의 인간미를 강조한다. “망명 시절에도 꽃을 심었던 인간미”를 독립운동가로서 업적보다 인격의 위대함을 더 높이 평가한다는 뜻이다. 그는 도산을 정치적 혁명가로 여기지 않고, 성실과 책임, 사랑과 희생을 몸소 실천한 한 인간으로 이해하였다.

이렇듯 피천득에게 애국은 거창한 입발림 구호가 아니라 자기 자리에서 정직하게 살아가는 삶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프로스트, 윤동주, 에머슨, 도산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그의 문학에서 인격과 애국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훌륭한 인간보다 성실한 인간에 대한 믿음이 그의 작가수필을 관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결

윤동주, 에머슨, 루퍼트 브루크, 도산 안창호, 그리고 「1945년 8월 15일」을 잇대면 공통으로 자유와 양심, 나라 사랑이 발견된다. 그는 직접 시대를 논하기보다는 문학을 통하여 시대를 증언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존엄도 지켜내려 한다. 그의 역사의식은 적개심을 거부하고 모든 인간에 대한 연민을 아끼지 않는 자세에서 출발하였다. 이처럼 그의 작가수필은 피천득 자신을 안내하는 정신적 지도라 할 수 있다.

 

 

결론

 

피천득의 작가수필은 지금까지 대체로 짧은 인물 소개나 문학적 단상 정도로 읽혀 왔다. 그러나 이들 수필을 연속된 텍스트로 읽으면 단순한 작가론을 넘어 피천득의 정신세계를 비추는 자전적 기록임이 드러난다. 그는 작가수필이라는 타인 문학을 말하면서 자신의 정신적 지향을 보여 주는 내면의 자화상으로 삼은 것이다.

본고에서 살펴본 작가들에게는 일정한 공통점이 존재한다. 도연명과 로버트 프로스트, 아미엘에게서는 자연과 순수, 정직과 평온을 발견하였고, 춘원 이광수와 치옹 윤오영, 셰익스피어, 찰스 램한테서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이해와 품격 있는 인품을 배웠다. 윤동주와 에머슨, 루퍼트 브루크, 도산 안창호에게서는 범애와 나라 사랑, 지식인 양심을 살폈다. 이처럼 자연·인간·역사라는 세 축을 지닌 작가수필은 피천득이 지향한 정신적 계보와 일치한다. 그는 문학을 통해 이념이나 정치적 구호를 앞세우기보다 인간다운 삶과 작가로서 품위를 지켜내는 태도를 보여 주었다. 그가 선택한 작가들도 결국 피천득 자신이 지향했던 인간과 문인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특히 본고는 번역가이자 영문학자로서 피천득의 삶에 주목하였다. 그에게 번역은 단순한 기술적 작업을 넘어 다른 작가의 사상과 인격, 삶의 태도를 경험하는 정신적 작업이었다. 그 점에서 작가수필은 번역의 부산물이 아니라 세계문학과 정신적 교감과 자기 성찰의 기록이다. 이런 의미에서 피천득의 문학과 번역은 언어의 표현인 동시에 인간의 번역이라 하겠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작가수필은 인간과 작가의식을 연결하는 매개라 할 수 있다. 작가수필은 ‘작가’를 이해하는 글이면서 동시에 ‘사람’을 이해하는 글이므로 피천득은 가능한 한 위대하다는 작가에게서조차 평범하고 친근한 인간미를 발견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런 결과로, 그의 글에는 비평적 냉철함보다 인간을 향한 존경과 애정이 더 짙게 배어 있다. 피천득의 인격과 문학이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까닭 역시 여기에 있다.

작가는 자신이 탐독한 문학으로 자신의 영혼을 형성한다. 피천득 역시 자신이 읽고 번역하고 사랑했던 작가들로부터 자신의 정신과 문학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러므로 금아를 보면 그의 문학이 보이고, 금아 문학을 읽으면 금아가 보인다. 그의 작가수필은 작가 형성을 기록한 자서전 같으므로 피천득이라는 인간의 정신을 재발견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참고자료

 

양병석 번역. 『찰스램 수필선』, 범우문고 105, 2001.

정정호 책임편집. 『피천득문학전집 1. 시집 꽃씨와 도둑』, 범우사. 2022

『피천득문학전집 5. 번역집 셰익스피어 소네트』

피천득. 『산호와 진주』, 일조각, 1969.

Nina Baym 외. The Norton Anthology of American Literature, W.W. Norton & Co, 2007.

 

 

- 박양근

부경대학교 명예교수, 수필가, 문학평론가이며 국제펜클럽한국본부 부이사장 역임.

저서 <메타에세이>, <문학 속 두 이야기)> 등 다수.

유혜자수필문학상(2025)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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