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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왜 우리는 피천득을 읽는가/ 박동숙

작성자사무총장|작성시간26.10.30|조회수88 목록 댓글 1

왜 우리는 피천득을 읽는가

부제: 공감, 세계성, 그리고 생성의 문학

박동숙 수필가

 

Ⅰ. 들어가기

 

좋은 문학은 시대와 함께 낡아지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바뀔수록 새로운 독자를 만난다. 어떤 작품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고전으로 남지만, 어떤 작품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독자 기억에서 점차 사라진다. 그런데도 피천득 수필집 <《인연》은 오늘날에도 꾸준히 읽히고 있으며, 시대를 넘어 새로운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이러한 지속성은 단순한 향수나 문학사적 권위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의 작품 속에는 시대를 넘어 독자 마음을 움직이는 보편적 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피천득은 평생 단 한 권 수필집 《 인연 》 으로 한국 현대수필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는 정제된 문장과 절제된 감성으로 한국 서정수필 미학을 확립했으며, 「인연」에서는 사랑과 이별, 기억과 시간의 의미를 섬세하게 형상화하였다. 또한 「수필」을 통해 수필의 본질과 미학을 체계적으로 제시함으로써 한국 현대수필의 문학적 지평을 넓혔다. 발표한 작품은 많지 않지만, 그의 수필은 오늘날에도 꾸준히 읽히며 시대를 넘어 독자들의 공감과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피천득 연구는 주로 서정성, 문체의 아름다움, 순수성, 인도주의적 정신 등 그의 문학적 미학을 밝히는 데 집중되어 왔다. 이러한 연구는 피천득 문학의 가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성과를 이루었지만, 그의 작품이 왜 시대를 넘어 현재 독자들에게도 살아 있는 문학으로 읽히는지를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피천득 수필은 단순히 아름다운 문장을 지닌 서정문학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독자의 공감적 상상력을 끌어내고,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세계와 소통하며, 인물과 화자, 독자가 관계와 시간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형성하도록 한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수필은 과거를 회상하는 정적인 문학이 아니라, 독자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살아 있는 문학이라 할 수 있다.

  이에 필자는 ‘왜 우리는 피천득을 읽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피천득 문학이 독자에게 어떻게 작동하느냐는 관점에서 그의 수필을 먼저 아담 스미스의 공감 이론을 통해 작품이 독자의 공감적 상상력을 어떻게 끌어내는지 분석하고,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문화와 국경을 넘어서는 세계성을 고찰한다. 나아가 들뢰즈의 생성 개념을 통해 작품 속 인물과 화자, 그리고 독자가 관계와 시간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필자는 피천득 수필이 단순한 서정 수필을 넘어 공감과 세계성, 생성의 가능성을 지닌 현재적 문학임을 밝히고자 한다.

 

Ⅱ. 공감의 문학: 피천득의 수필은 왜 오래 사랑받는가

 

1. 공감은 삶을 연결하는 상상력이다

 

피천득 수필이 오랫동안 독자들 사랑을 받아온 이유는 단순히 아름다운 문장이나 서정적인 분위기에 있지 않다. 그의 작품은 독자에게 특정한 삶의 태도나 가치관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삶에서 경험한 만남과 이별, 기쁨과 그리움, 아름다움과 쓸쓸함을 담담하게 보여 준다. 그 결과 독자는 작가의 경험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작품 속 경험과 연결하며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다. 즉 피천득 문학의 힘은 작가 감정이 독자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자신의 삶을 통해 작품의 의미를 완성하는 공감의 구조에 있다.

  이러한 피천득 수필의 공감 구조를 설명하는 데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은 중요한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 스미스가 말하는 공감(sympathy)은 타인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는 감정적 동일화가 아니다. 인간은 타인의 마음속에 직접 들어갈 수 없지만, 상상력을 통해 자신을 타인의 상황에 놓아 보고 그가 느끼는 감정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즉 공감은 타인의 경험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통해 타인의 삶과 자신의 삶을 연결하는 능력이다. 이와 같은 스미스의 공감 개념은 피천득 수필이 독자에게 작동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데 적합하다. 피천득은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을 사적인 기억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그는 절제된 문체와 여백을 통해 독자가 자신의 경험을 작품 속으로 가져올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따라서 독자가 느끼는 것은 피천득의 감정을 그대로 전달받는 경험이 아니라, 그의 경험을 계기로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새롭게 발견하는 경험이다. 이는 스미스가 말한 상상적 공감의 과정과 맞닿아 있다.

  물론 스미스의 sympathy는 현대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empathy와 동일한 개념은 아니다. empathy가 타인의 감정 상태를 함께 느끼는 정서적 공명을 강조한다면, 스미스의 sympathy는 상상력을 통해 타인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 감정의 의미를 판단하는 과정을 강조한다. 이러한 점에서 피천득 수필에서 나타나는 공감은 단순한 감정 이입이 아니라, 독자가 타인의 삶을 자신의 경험과 연결하며 새로운 이해에 도달하는 상상적 공감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피천득 수필에서 공감은 타인의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아니라, 타인의 경험과 자신의 삶이 만나는 과정이다. 문학은 이러한 공감적 상상력을 통해 작가와 독자,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피천득 수필이 시대를 넘어 읽히는 이유 역시 그의 개인적 경험이 독자의 삶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기 때문이다.

 

2. 피천득 문학의 공감 구조

 

앞서 살펴본 공감적 상상력이 작품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작품이 「인연」이다. 이 작품에서 피천득은 젊은 시절 만났던 일본 여성 아사코와 만남과 이별을 회상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절제된 문장과 담담한 시선으로 지나간 시간을 바라본다. “세 번 만났고,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라는 문장은 사랑의 감정을 설명하기보다 여백으로 남겨 둔다. 그리고 그 여백은 독자가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통해 작품의 의미를 완성하도록 만든다.

  이때 독자가 경험하는 것은 피천득의 사랑 자체가 아니라, 그의 기억을 통해 새롭게 발견하는 자신의 사랑이다. 작가의 개인적 경험은 독자의 삶과 만나 보편적인 감정으로 확장된다. 스미스의 공감 개념으로 보면, 독자는 피천득의 감정을 그대로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그의 경험을 상상적으로 이해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삶과 감정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작가 경험은 독자의 경험으로 확장되며, 그의 문학은 개인의 기억을 보편적인 공감의 경험으로 전환한다.

  이 같은 공감 구조는 사랑을 다룬 작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서영이」에서도 같은 문학적 원리가 발견된다. 피천득은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추상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서영이가 자신의 책상 위에 '아빠 몸조심'이라고 써 놓았다가 밖에 나갔다 돌아와 보니 '아빠 마음 조심'으로 바뀌어 있었던 일화를 들려주고, 새로 나온 잎새처럼 보드라운 뺨과 맑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자신의 여생 축복을 맡기겠다고 고백한다. 이처럼 그는 아이의 말과 행동, 표정과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줄 뿐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장면은 독자가 자신의 자녀와 가족, 혹은 지나간 기억을 떠올리게 하며 작품 속 경험을 자신의 삶과 연결하게 한다. 이때 서영이는 더는 피천득 개인의 가족에 머물지 않고 독자의 기억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부연하면 피천득 수필은 독자에게 감정을 주입하는 문학이 아니라, 독자가 자신의 경험을 통해 감정을 발견하도록 만드는 문학이다. 그의 수필이 시대를 넘어 지속해서 읽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공감의 구조에 있다.

  이러한 문학관은 피천득 자신의 문학론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산문 순례」에서 “문학은 금싸라기를 고르듯이 선택된 생활 경험의 표현이며, 사상이나 표현 기교에는 시대에 따라 변천이 있으나 문학의 본질은 언제나 정(情)이다.”라고 말하였다. 여기서 ‘정’은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타인과 연결되는 보편적인 정서이다. 이러한 관점은 상상력을 통해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스미스의 공감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피천득이 셰익스피어를 높이 평가한 이유 역시 이러한 문학관과 관련된다. 그는 셰익스피어 작품이 인간의 희로애락과 삶의 경험을 깊이 담아내기 때문에 시대와 문화를 넘어 사랑받는다고 보았다. 즉 「한여름 밤의 꿈」, 「마음이 드시는 대로」, 「템페스트」와 같은 희극을 즐겨 언급한 것도 이러한 작품들이 인간의 보편적인 삶과 감정을 통해 시대와 문화를 넘어 독자의 공감을 끌어낸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천득이 발견한 문학의 본질은 인간을 이해하고 서로의 삶을 연결하는 힘이었다. 이러한 문학관은 그의 수필에서도 실현되며, 독자가 자신의 삶과 작품을 연결하고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도록 만드는 공감의 구조로 나타난다.

 

3. 보편적 감정과 문학의 지속성

 

앞 절에서 살펴본 것처럼 피천득 수필은 독자가 자신의 경험을 작품 속 장면과 연결하도록 이끄는 공감의 문학이다. 이러한 공감이 시대와 세대를 넘어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특정한 개인의 경험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유하는 보편적인 감정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천득 수필의 지속성은 인간의 삶과 감정을 얼마나 깊이 포착하고 있는가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문학사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은 고전들은 특정 시대 사건이나 사회적 이념을 넘어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경험을 탐구해 왔다. 시대와 문화는 달라도 사랑과 상실, 기다림과 만남, 기쁨과 슬픔, 삶에 대한 경이와 고독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주하는 삶의 원형적 경험이다. 이러한 인간의 공통된 경험은 시대적 변화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고전문학은 새로운 시대의 독자들에게도 지속해서 의미가 있다. 결국 문학의 지속성은 특정 시대를 얼마나 충실하게 재현하는가보다 인간 존재의 본질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표현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피천득 수필 역시 이러한 문학의 지속 원리를 잘 보여 준다. 그는 시대를 대표하는 거대한 사건이나 사회적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일상 속 만남과 이별, 자연과 계절, 사람 사이 관계에서 발견되는 인간의 근원적인 정서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인연」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과 오래된 기억이 남기는 여운을 담아내고, 「나의 사랑하는 생활」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행복과 삶의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 또한 「오월」은 자연을 통해 생명의 경이와 삶의 충만함을 노래하며, 「은전 한 닢」은 한 인간에게 작은 물건 하나가 지니는 특별한 의미를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 준다. 피천득은 한 닢의 은전 자체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 그리고 그 안에 담긴 희망과 기다림, 삶의 절실함에 주목한다. 이처럼 그의 수필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그 경험을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삶의 정서로 확장한다.

  그러므로 피천득 수필은 시대가 변해도 독자의 삶 속에서 새롭게 읽힐 수 있다. 오늘의 독자는 오래전에 쓰인 작품을 읽으며 자신의 첫사랑을 떠올리고, 가족과 추억을 되새기며, 삶의 아름다움과 쓸쓸함을 다시 발견한다. 작품 속 경험은 작가 개인의 기억으로만 남지 않고 독자의 삶과 만나 더욱 풍부한 의미가 있게 된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피천득 수필은 과거 기록이 아니라 현재의 독자와 계속 소통하는 살아 있는 문학이 된다.

  이처럼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를 담아내는 피천득 수필의 특성은 한국문학을 넘어 세계 독자들과 만날 가능성을 보여 준다. 인간의 삶과 감정에 대한 깊은 이해는 문화와 언어의 차이를 넘어 공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삶과 정서를 담고 있는 피천득 수필은 어떻게 문화적 경계를 넘어 세계성과 만날 수 있을까.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피천득 수필의 세계성과 K-수필로서 가능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Ⅲ. 세계성의 문학: 피천득 수필은 왜 K-수필이 될 수 있는가

 

1. 한국적인 것이 어떻게 세계적인 것이 되는가

 

오늘날 K-pop과 K-드라마는 세계 문화의 중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의 성공은 한국적인 요소를 지웠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 사회 문화와 정서를 바탕으로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BTS 음악이 세계인의 공감을 얻은 이유 역시 한국어라는 문화적 특수성을 바탕으로 사랑과 상실, 성장과 희망이라는 보편적인 경험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문학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세계성을 획득하는 작품은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유한 삶의 경험을 통해 인간 보편의 감정에 도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피천득 수필은 한국적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적 공감에 이르는 문학의 가능성을 보여 준다. 그는 「수필」에서 “수필은 청자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라고 말하며, 수필이 지닌 절제와 자연스러움, 그리고 고유한 미적 감각을 강조하였다. 그의 작품은 한국인의 삶과 정서를 담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인간관계에 대한 성찰과 자연에 대한 감수성은 문화적 경계를 넘어 공감 가능한 경험으로 확장된다.

  피천득 작품에 나타나는 한국성은 전통적 소재의 재현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정(情)을 바탕으로 한 관계 중심의 삶, 절제와 여백을 중시하는 미의식,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태도 속에서 드러난다. 「멋」에서는 화려함보다 절제와 조화를 아름다움으로 여기는 한국적 미감을 보여 주며, 「비원」에서는 고요한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공간을 통해 여백과 평온의 미학을 드러낸다. 또한 「장미」에서는 꽃을 바라보는 섬세한 시선을 통해 생명의 아름다움과 덧없음을 성찰하고, 「나의 사랑하는 생활」에서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행복과 삶의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

  이처럼 피천득 수필에서 한국적 특수성은 세계와 단절되는 요소가 아니라 인간 보편의 정서에 이르는 통로가 된다. 그의 작품이 보여 주는 절제의 미학과 자연 친화적 감수성, 그리고 일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삶의 태도는 특정 문화권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평온과 그리움, 생명의 아름다움, 삶의 기쁨으로 확장된다. 따라서 피천득 수필은 한국적인 삶과 미의식을 깊이 담아내면서도 인간 보편의 정서에 도달함으로써 세계문학적 잠재력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2. 관계 중심의 서사가 만드는 세계성

 

피천득 수필의 또 다른 세계성은 사건보다 관계를 중심에 둔 서사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그의 작품에서 관계는 단순히 인간과 인간 사이의 현실적 관계에 머물지 않는다. 인간과 자연, 현재와 과거, 한국과 세계를 연결하는 정신적 관계로 확장되며, 이러한 관계망 속에서 개인의 경험은 더 넓은 인간적 의미를 획득한다.

  이를 잘 보여 주는 작품이 「찰스 램」이다. 피천득은 영국 수필가 찰스 램을 단순한 외국 작가가 아니라 정신적 교감을 나눈 벗으로 받아들인다. 그의 작품을 읽으며 느낀 위로와 즐거움은 시대와 공간의 차이를 넘어 문학이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힘을 지닌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또한 「셰익스피어」에서는 셰익스피어 문학이 특정한 시대나 민족을 넘어 사랑과 인간의 희로애락을 담아내기 때문에 세계성을 획득한다고 평가한다. 이는 피천득이 문학을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이 만나고 교감하는 관계의 공간으로 이해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관계의 확장은 자연과 만남, 그리고 다른 시대와 문화 속 인물들과 정신적 교류에서도 나타난다. 「로버트 프로스트Ⅰ·Ⅱ」에서 그는 프로스트의 시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삶을 성찰하며, 자연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공간으로 바라본다. 또한 「도연명」에서는 중국 시인의 삶과 문학을 통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의 태도와 소박한 가치의 의미를 발견한다. 외국 문학은 그에게 낯선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인간 존재를 이해하게 하는 관계의 매개이다.

  피천득은 또한 과거 인물과 현재 독자를 연결하는 관계의 의미에도 주목한다. 「도산」과 「도산 선생께」서는 안창호 삶과 정신을 오늘날에도 이어 가야 할 가치로 제시하고, 「춘원(春園)」에서는 한 문인을 역사적 평가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문학과 인간에 대한 기억을 통해 그 삶을 다시 이해하려 한다. 또한 「어느 학자의 초상」에서는 한 인간의 성실성과 인품을 통해 인간다움의 의미를 탐색한다. 그의 수필에서 중요한 것은 역사적 사실 자체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과 정신이 시대를 넘어 현재의 독자와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의미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피천득 수필에서 관계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과거와 현재, 한국과 세계를 이어 주는 연결 방식이다. 그는 거대한 사건보다 한 사람의 삶, 한순간의 만남, 한 편의 문학작품이 만들어 내는 정신적 교류에 주목한다. 이러한 관계 중심의 시선은 타인의 경험 속에서 자신의 삶을 발견하게 하며, 문화와 시대의 차이를 넘어 인간을 연결하는 힘이 된다.

  오늘날 K-드라마와 K-콘텐츠가 가족, 우정, 사랑, 기억과 같은 관계의 서사를 통해 세계인의 공감을 얻는 것처럼, 피천득 수필 역시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인간의 감정을 오래전부터 탐구해 왔다. 그의 작품은 한국적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다양한 인간과 대화하며, 관계를 통해 세계와 소통하는 K-수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3. K-수필로서 가능성과 세계문학적 확장

 

피천득 수필이 세계 독자들과 만나기 위해서는 작품이 지닌 정서와 미학을 새로운 방식으로 전달하고 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세계문학으로 확장은 단순히 번역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권 독자가 작품 속 경험과 감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새로운 소통 방식을 마련하는 과정이다.

  먼저 피천득 수필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문체의 미학을 살리는 번역이 필요하다. 그의 문장은 사건의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절제와 여백을 통해 독자의 상상력을 끌어낸다. 따라서 번역 역시 의미 전달뿐 아니라 문장의 리듬과 정서, 함축된 분위기까지 함께 전달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새로운 접근도 가능하다. 오디오북, 팟캐스트, 유튜브 에세이 등 다양한 매체는 짧은 분량 속에 삶의 순간과 감정을 포착하는 피천득 수필 특징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특히 낭독과 이미지, 영상이 결합할 경우 그의 문학은 새로운 세대와 세계 독자에게 더욱 친숙한 방식으로 다가갈 수 있다.

  나아가 피천득 수필을 세계문학 맥락에서 새롭게 읽는 연구가 필요하다. 그의 작품은 한국적 정서를 담고 있지만, 공감, 기억, 관계,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통해 다양한 문학 담론과 만날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은 피천득 문학을 한국문학 범주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한국적 특수성과 세계적 보편성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피천득 수필의 K-수필로서 가능성은 한국적인 것을 지우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한국인의 삶과 정서를 깊이 담아내면서 인간 보편의 감정에 도달하는 데 있다. K-콘텐츠가 한국적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적 공감을 얻었듯이, 피천득 수필 역시 번역과 새로운 매체, 다양한 해석을 통해 시대와 국경을 넘어 세계 독자와 소통하는 문학으로 확장될 수 있다.

 

Ⅳ. 생성의 문학: 피천득 수필은 어떻게 새로운 존재를 생성하는가

 

1. 생성은 되어 가는 과정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피천득 수필은 독자의 공감을 끌어내고, 이러한 공감은 인간 보편의 감정을 매개로 세계성과 연결된다. 그러나 그의 문학적 의미는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피천득 수필은 독자에게 특정한 감동을 전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품 속 인물과 화자, 나아가 독자의 존재 방식까지 변화시키는 생성의 과정을 보여 준다.

  들뢰즈에게 생성(becoming)은 완성된 하나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은 고정된 본질로 규정되는 존재라기보다 타인과 만남, 시간의 흐름, 기억과 경험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생성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고정된 정체성에 대한 질문보다 ‘나는 무엇이 되어 가고 있는가’라는 변화 과정에 주목한다. 중요한 것은 동일한 자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새로운 존재 방식으로 끊임없이 되어 가는 운동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피천득 수필 속 인물들은 처음부터 완성된 존재로 제시되지 않는다. 그의 작품에는 극적인 사건이나 영웅적인 성장 서사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일상의 만남과 이별, 기억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존재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다음 절에서는 이러한 생성의 과정이 작품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살펴보겠다.

 

2. 기억과 관계 속에서 변화하는 존재

 

앞에서 살펴본 「인연」은 사랑과 그리움이라는 보편적 감정을 통해 독자의 공감을 끌어내는 작품이면서, 동시에 기억이 현재 속에서 다른 의미를 획득하는 과정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아사코라는 인물 자체보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가 화자의 기억 속에서 어떻게 다시 이해되는가에 있다. 아사코는 더는 젊은 시절 만났던 한 사람에 머물지 않는다. 그녀는 사랑과 그리움, 시간의 흐름과 삶의 아름다움을 성찰하게 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이처럼 기억은 과거를 단순히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새롭게 이해하도록 만드는 매개가 된다.

이러한 변화는 「서영이」 연작에서 감각 차원으로 확장된다. 서영이는 단순히 어린아이로 재현되는 인물이 아니라, 화자로 하여금 잊고 있던 생명의 감각과 순수한 시선을 되찾게 하는 존재이다. 들뢰즈가 말한 '아이-되기(becoming-child)'는 실제 어린아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세계를 아이 감각으로 다시 경험하는 존재 방식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서영이는 화자가 익숙한 일상을 새로운 감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생성의 계기가 된다.

  피천득의 생성에 대한 사유는 후기 수필 「만년」에서 더욱 깊어진다. 그는 "요즘 나는 점잔을 빼는 학계 권위나 사회적 거물을 보면 그의 어렸을 적 모습을 상상하여 본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회적 지위나 명성으로 사람을 규정하는 시선을 넘어, 인간을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을 지닌 열린 존재로 바라보는 태도이다. 피천득에게 인간은 하나의 역할이나 지위로 고정되는 존재가 아니라, 시간과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이해되는 존재이다. 이러한 시선은 인간을 완성된 정체성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로 이해하는 들뢰즈의 생성 개념과 맞닿아 있다.

  이러한 생성의 사유는 그의 시 「어떤 오후」에서도 확인된다. 화자는 오래된 신문과 빈 병을 정리한 뒤 "나는 지금 뜰에서 꽃이 피는 것을 바라다보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의 시선은 지나간 사건과 사회적 소음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 피어나는 생명으로 향한다. 이는 과거를 부정하거나 잊는 태도가 아니라, 현재의 삶을 새로운 감각으로 바라보는 태도이다. 생성은 거대한 사건이나 극적인 변화가 아니라, 익숙한 일상을 새롭게 느끼는 시선의 전환에서 시작됨을 보여 준다.

  따라서 피천득 문학에서 생성은 극적인 사건이나 영웅적 성장이 아니라, 만남과 기억, 관계와 시간을 통해 삶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다. 그의 작품은 완성된 인간상을 제시하기보다 인간이 시간과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며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이러한 점에서 피천득 문학은 존재를 하나의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계속해서 되어 가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생성의 문학이라 할 수 있다.

 

3. 생성하는 화자와 독자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피천득 수필에서 생성은 고정된 자아가 새로운 존재로 변화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생성은 작품 속 인물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화자와 독자에게까지 이어진다. 문학은 완성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과 독자가 만나는 순간 새로운 의미가 형성되는 열린 과정이다. 따라서 피천득 수필에서 생성은 인물과 화자, 독자가 함께 참여하는 문학적 운동이라 할 수 있다.

  피천득 수필에서 화자는 자신의 경험을 단순히 회상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과거를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바라보며 그 의미를 새롭게 이해한다. 따라서 기억은 지나간 시간을 보존하는 저장물이 아니라, 현재의 삶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경험의 장이 된다. 이러한 화자 태도는 인간을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관계와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로 이해하는 들뢰즈의 생성 개념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피천득 수필에서 생성의 운동은 화자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독자 역시 작품과 만남 속에서 변화 과정에 참여한다. 독자는 작품 속 경험을 단순히 이해하거나 감상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기 기억과 감정을 작품과 연결하며 자신이 살아온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이때 독자는 이미 형성된 동일한 자아로 작품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라는 타자와 만남을 통해 자신의 감각과 사유 방식을 변화시키는 존재가 된다. 즉 문학적 공감은 타인의 경험을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 자신이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세계와 관계 맺도록 만드는 생성의 사건이다.

  이러한 독자를 생성할 수 있게 하는 것은 피천득 문체가 지닌 절제와 여백의 미학이다. 그는 감정을 직접 설명하거나 하나의 해석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독자가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작품 속에 가져와 의미를 완성하도록 여백을 남긴다. 이 여백은 독자를 수동적인 감상자가 아니라 작품과 함께 의미를 만들어 가는 능동적인 존재로 만든다. 따라서 피천득 수필은 고정된 의미를 전달하는 닫힌 텍스트가 아니라, 독자와 만날 때마다 새로운 감각과 해석을 생성하는 열린 텍스트이다.

  결국 피천득 수필에서 생성은 작품 속 인물이나 화자에게만 일어나는 변화가 아니다. 인물은 기억 속에서 새롭게 의미화되고, 화자는 만남과 관계 속에서 자신을 다시 이해하며, 독자는 작품과 만남을 통해 자신의 삶과 세계를 새롭게 구성한다. 이러한 점에서 피천득 문학은 과거 경험을 재현하는 문학이 아니라, 읽는 순간마다 새로운 의미와 존재 방식을 만들어 내는 생성의 문학이라 할 수 있다.

 

Ⅴ. 나가기

 

본고는 ‘왜 우리는 피천득을 읽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였다. 그 답은 그의 수필이 단순히 아름다운 문체와 서정적 감수성을 지닌 문학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피천득 수필은 독자의 경험과 만나는 공감의 문학이며, 한국적 삶과 정서를 바탕으로 세계와 소통하는 문학이고, 작품과 만남 속에서 독자가 자신과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이끄는 생성의 문학이다. 필자는 이러한 지속성을 공감, 세계성, 생성이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피천득 수필은 완성된 의미를 전달하는 닫힌 텍스트가 아니라, 만남과 기억, 관계를 통해 독자 스스로 삶을 새롭게 이해하도록 이끄는 열린 문학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오늘도 피천득을 읽는 이유는 그의 수필이 특정 시대의 감성을 재현하기 때문이 아니라, 시대를 넘어 인간과 삶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선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그의 문학은 공감을 통해 독자 마음을 열고, 한국적 정서를 통해 세계와 소통하며, 작품과 만남 속에서 독자 자신이 이전과 다른 존재 방식으로 변화하도록 이끈다.

 

- 박동숙(1958~ ) 서울 출생. 문학평론가

연세대학교 졸업. 서울시립대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서울시립대 강사 역임

현 구립수락노인복지회관 강사

저서: 경계를 넘는 존재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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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사무총장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11.01 다음주에는 "피천득과 주요섭" 이란 주제로 정정호 교수님의 강의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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