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Column

[승단기]내 생의 아름다운 노을을 꿈꾸며 (진현진 선생님)

작성자정세준(국선재)|작성시간09.10.22|조회수265 목록 댓글 0

<8단 승단기>




내 생의 아름다운 노을을 꿈꾸며




진  현  진

(관악구청 감독/ 8단 교사)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 힘찬 약동과 벅차오르는 희망을 느낀다. 서산에 기울어 마지막 찬란한 빛을 뿜는 태양을 보면, 그 아름다움 저편에 드리워진 알 수 없는 애잔한 슬픔의 그림자를 느낀다. 위대한 자연의 섭리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희망의 봄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이승에서의 인간의 삶은 흐르는 시냇물이 같은 장소를 다시 지날 수 없듯이 돌이킬 수 없음이다. 그래서 우리는 잠재된 운명의 그림자를 인식하고 노을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슬픔에 젖어드는 것이 아닐까!


검도 인생 40년!

어느덧 내 나이도 쉰을 넘기고 있다. 까마득한 날의 일이라 생각했던 8단의 자리에 서 있는 내 자신을 돌아보고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검도 단의 마지막 자리에 서서 이제 노후를 위한 준비를 서서히 해나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마지막 찬란한 불꽃을 태우고 저물어가는 석양처럼, 검으로 일관된 인생을 추하지 않게 마무리하기 위해 더욱 긴장하며 살아야 할 것 같다. 인격적으로나 검도의 실력으로나 지극히 부족한 자가 8단의 자리에 서게 됨이 한없이 부끄럽기만 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검도에 입문하여 초지일관 한길을 걸어왔다. 본래 허약하게 태어나 운동에는 재능이 없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운명의 암시가 있었는지, 어려서부터 칼을 좋아하고 칼싸움하며 놀기를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이 자리에 존재할 수 있기까지는 부모 형제를 비롯한 많은 선생님과 선배님들의 가르침, 격려, 헌신, 도움의 덕일 수밖에 없다. 고목나무에 싹이 돋게 하는 인고의 고통을 감내하는 가르침이 없었다면, 재능 없는 내가 결코 승단의 끝자리에 설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스승에 대한 운은 참 좋았던 것 같다. 검도 입문에서부터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시점까지 좋은 검도를 지도해 주시고, 검도에 대한 열정을 갖게 해주신 분이 전영술 선생님이시다. 대개 수련 과정에서 선생님이 바뀌기 마련인데 운이 좋게도 중학교 때를 제외하고는 기초부터 전반적인 선수생활 모두를 전영술 선생님께 지도를 받는 혜택을 누렸다. 전 선생님의 탁월한 지도력에 힘입어 국가대표선수로 발탁되는 영예도 맛보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우여곡절 끝에 ‘부천시청 실업검도단’에 입단하게 되어 김재일 선생님 문하에서 1년간 수련을 하게 되었다. 김재일 선생님께 검도에 대한 실험정신과 승부에 대한 신념 등을 배웠으며, 이 시기에 검도 이론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많은 갈등적 요소가 존재하여 심적으로 힘든 시기였다. 결국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1년 만에 실업팀을 떠나게 되며 내 짧은 선수생활을 마감하게 되었다.

이 무렵 국가대표선수 입상 경력을 인정받아 ‘병역 특례 보충역’ 혜택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 혜택의 대가는 혹독했다. 5년간 다른 직장을 가질  수 없고, 그 업종에 종사를 해야 하는 옵션에 걸려 취직도 할 수 없었다. 그 후 선수 생활은 그만 두었으나 검도에 대한 열정은 버릴 수 없어 이종림 선생님을 찾게 되었다. 이종림 선생님의 배려로 중앙도장에서 보조사범 생활을 하면서 외로운 수련 생활을 하게 되었다. 중앙도장 회원들을 지도하며 내 검도의 향상을 위하여 개인훈련을 해 나가야 했다. 배움에 목말라 오로지 일주일에 한번 정도 나오시는 이종림 선생님을 기다리는 간절한 기다림의 수련 시기였다. 어려운 시기이기는 했지만 이종림 선생님께 직·간접적으로 많은 가르침을 받으며, 검도에 대한 깊이를 조금씩 더해가는 성숙의 계기가 된 시기였다.  인간의 도리, 도덕적 삶의 방식, 주체적 역사관, 우리 민족에 대한 자부심, 검도인의 마음가짐, 검도의 역사적 배경, 검도 기술의 원리, 검의 이법, 검도본의 방법 및 원리, 심판법, 심판원의 마음 자세 등 확고한 인생관과 검도관을 정립하게 된 소중한 기회의 시기였다.

최근에 들어서는 늘 만나면 아낌없는 칭찬과 격려를 해 주시며 자신감을 심어주시는 이호암 선생님, 후사가 없음을 항상 염려해 주시는 조승룡 선생님, 합동연습 때 만나면 열정적으로 마음을 다해 지도해 주시는 고규철 선생님 등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참으로 고마우신 분들이 많다. 이러한 선생님들의 가르침 덕에 오늘의 내가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평생 갚아도 갚지 못할 큰 은혜를 입고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은혜를 잊는다는 것은 금수만도 못한 짓일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이런 금수만도 못한 짓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남의 도움을 아무리 받지 않으려고 해도 알게 모르게 주위 사람들의 은혜를 입게 된다. 자신이 잘 되었을 때 교만하지 않고 작은 은혜라도 잊지 않고 자신을 낮추어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참된 인간의 도리일 뿐 아니라 검도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일 것이다.


8단은 수련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진정한 지도자가 되기 위한 출발점이다. 지도자의 길을 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고독한 고행의 길이라 생각한다. 지도자는 인격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실력으로나 푯대가 되어야 하고 솔선수범하며 앞서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선수들에게 선생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한다. 나는 선생이라는 호칭을 들을 만한 자격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생은 아무나 선생이 되는 게 아니라 생각한다. 선생은 나이가 많든 적든 상관없다. ‘뱃속에 있는 부모는 없어도 뱃속에 있는 선생은 있다’는 말이 있다. 주위에서 진정 마음 깊이 존경심이 우러나와 선생으로 불러 주어야 진정한 선생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수련 시작과 끝에 선수들이나 관원들에게 인사를 받을 때 마음 편히 인사를 받아본 적이 없다. 내가 과연 선생으로 인사를 받을 만한 인격과 실력을 갖추었는지 늘 반추를 하며 두려움으로 앞에 선다. 지도자는 군림을 해서는 안 된다. 수련생들과 늘 대화를 하고 온유함 속에 범할 수 없는 위엄을 갖추어야 한다.


8단 승단 후 심사 준비를 어떻게 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갖추어져서 8단이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내 자신이 잘 알고 있다. 선수 생활 때부터 지배적인 검도 철학은 경기를 잘 하기보다 바른 자세로 잘 하는 검도를 하고 싶었다. 나는 솔직히 승단을 위해 따로 연습을 하지는 않았다. 단지 매일매일 선수들과 쉬지 않고 꾸준히 수련을 했다. 매일매일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노력 했다. 특별한 재능이 없으니 성실한 노력만이 최상의 방책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내가 감독으로 선수들을 지도하지만 그 현장에 나를 지도해줄 선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수련시간에 선생님이 계시지 않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선생님이 보고 계신다는 두려운 마음을 항상 잊은 적이 없다. ‘가르치며 절반은 배우는 법’이라는 이종림 선생님 말씀대로 선수들을 지도하는 가운데 깨달음도 얻으며 쉬지 않고 수련을 해왔다. 물론 그 노력이 최선이라고 하기에는 지극히 부족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나마 노력의 흔적을 인정받아 더욱 노력해서 부족함을 채우라는 격려의 차원에서 선생님들께서 합격의 영광을 주신 것이라 생각한다.


예전에 선수들과 수련하며 느끼는 정서를 글로 표현해 ‘월간검도’에 투고한 적이 있다. 내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기에 다시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오늘도 그 자리에

                                                          

눈부신 햇살이 따사롭고 부드럽게 도장 마루에 번진다.

띄엄띄엄 뒤뜰로 난 조그만 창문을 투과하여

맨발에 느껴지는 차갑고 선뜻한 느낌과는 다르게

갓 기지개를 켜고 있는 새봄의 따스함이, 생명력이

맑고 투명한 햇살 아래서 느껴진다.

아직은 겨울의 차가움을 간직한 대기 속에서

오늘도 어김없이 내손에 들려 있는 한 자루의 죽도는 허공을 가른다.


검 한 자루에 인생을 걸고 살아온 나!

오늘도 선수들과 하루를 부대끼며 나아가야 한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탈진의 바닥에서

마지막 남은 한 방울의 氣를 끌어 올려 토해내는 선수들을

안타까움으로 아픔으로 바라보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호통을 치며 몰아 부친다.

우리의 이 고난은 새로운 도전을 향한 도약의 힘찬 몸짓인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우리의 염원을 불태워

희망의 劒先에 마음을 모은다.


무엇을 위한 지독한 고행인가?

가끔은 인생의 허무를 느끼며

우리의 반복된 일상 속에서

오늘 이 인고의 시간이

우리의 삶에 던지는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인간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추구해야만 하는 존재라던가!

모든 인고의 시간이 찰나에 환희와 좌절로 두 동강이 나는

이 허무하고 냉엄한 승부의 세계 속에서

우리의 투혼은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짓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자기 성찰과 깨달음을 통한

참 진리를 향한 각성의 길인가?

또 다시 밀려드는 갈등과 번민의 쳇바퀴 속에서

내 내면의 흔들림을 어쩔 수 없이 느끼며,

오늘도 내 자신과의 싸움에 도전한다.


하루하루가 몸이 부서질 듯한 고통 속에서

부상의 통증의 자리에 승리의 희망을 꽃 피우기 위해

오늘도 護具를 몸에 붙이고 劒을 겨누어 앞장서 나아간다.

비지땀을 펑펑 쏟으며 턱까지 차오르는 가쁜 숨을 삼키며,

선수들의 쏟아지는 강력한 타격과 격렬한 몸 받음과

꿰뚫는 듯한 통증이 동반된 날카로운 찌름을 몸으로 받으며,

오늘도 끊임없이 나를 이기는 싸움에 도전한다.


그 짧은 우리 모두의 환희를 위해

모든 정열과 시간과 인생을 걸고

오늘도 나는 超然한 모습을 하고

劍을 겨누어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


                         - 관악구청 훈련장에서 (2003. 2.) -


나의 검을 향한 여정의 종착지점은 아직도 저 멀리에 있다. 오늘 또 다시 죽검을 손에 쥐고 보이지 않는 검도의 종착지를 향해 서둘러 쉬지 않고 달려가야 한다. 검도를 향한 내 생의 마지막 정열을 불태울 아름다운 노을을 꿈꾸며….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