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도총담-8호>
공세(攻勢)를 연마하라 -下-
(검도일본 98년 9월호 특집)
치고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고 친다. 상대를 무너뜨리고 중심을 깨고 친다…… 많은 검사들은 이것을 검도의 이상형으로 여기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검선의 공세를 연마하는 것이나……그러나,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길은 다양하며 단계에 따라 생각해야 할 것도 다르다. 검도에서는 옛날부터의 가르침이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자신이 생각하고 훈련을 쌓아 발견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의 후편에서는 각 분야를 대표하는 7단, 8단 강호(强豪)검사 5명이 실천하고 있는 검선의 공세에 대해, 나아가 그 뒤에 숨겨진 검도관에 대하여 이야기해 본다. ―편집부
(5) 검선으로 대화하라
―고가와(古川和男) 교사 7단 지도
* 약력
1954년 5월 생. 서해학원고교(나카사키)에서 동해대학에 진학. 현재 동해대학 제4고교 교원. 1978년 24세때 전일본 선수권대회 첫 출전하는 등 모두 10회 출전. 1979년 2위. 1988년 7단 취득 후에도 7단 대회에서 우승, 2위, 3위 각 1회씩의 성적을 거둠. 그외 일본 동서대항전, 세계선수권대회(개인 2위), 전국 교직원 대회 등에 출전.
평생 수련이라고 하는 검도 세계에서 다감한 고교생들을 지도하는 고가와 씨의 처지는 어렵다. 승리 추구와 제자들의 장래를 위한 기본 다듬기. 표면적으로 보면 이 두 가지 목표는 자석의 남북과 같이 반대에 위치하는 것 같이 생각되나, 양자는 깊은 부분에서 서로 통하고 있다. ‘지금’을 살면서 ‘미래’를 응시하는 고가와 씨의 몸 안에는 고교생 때부터 현역 선수까지를 납득시키는 무엇인가가 있다. 이번에는 검선의 공세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기초로 하여 설명해 주었다. <편집자>
1. 상대의 마음을 움직였을 때가 타격 기회.
‘시카께’ 기술이라면 상대의 중심을 부수고 자신을 과감히 버리는 머리치기. 응하는 기술이라면 왼주먹을 자신의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되받아 허리치기.
이와 같이 검도에서는 그 행위를 행하기 위한 기본이 되는 가르침은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번의 테마이기도 한 검선의 공세는 순간순간 변화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격렬한 기백으로 상대의 중심을 취한다, 또는 상대의 왼주먹에 검선을 겨눈다, 이와 같은 것은 참으로 임기응변으로 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검선의 공세는 이러한 것이다, 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다만 검선의 공세를 전개할 때 한가지 힌트가 된다고 생각되는 것은 있습니다. 그것은 일족일도의 거리에서 상대와 대치했을 때 기(氣) 싸움에서 이기고, 그리하여 상대가 이쪽에 말려들게 하는 것입니다.
고단자 선생님들에게 훈련을 들어가면 어느 사이 공격연습을 하고 마는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저 선생님에게 들어가면 공격 연습이 되고 말기 때문에 재미없어.”
“저 선생님은 내가 치고 들어가면 되받아 허리치기나, 스쳐올려 머리치기만 하기 때문에 훈련이 되지 않아.”
이렇게 생각하는 선수도 많이 있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선생님들은 공격 연습을 하라고 받아주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내가 모르는 사이, 혹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선생님들의 검선의 공세에 말려들고 있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내가 훗카이도(北海道)에 와서 얼마 안 되었을 때 菅原惠三郞 선생님께 들어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나는 일족일도의 거리에서 단전으로 기부림 하고, 검선의 공세를 취해 들어갔습니다.
시간의 경과와 함께 서서히 선생님과 기가 맞추어졌다고 느낀 나는,
‘지금이다!’
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나가려는 순간 선생님께서,
“거기서 치면 안돼. 참으시오.”
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일순간 어? 하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내 나름으로 타격의 기회를 잡아 앞으로 나가려고 하는 때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회 있을 때마다 선생님께 훈련을 들어갔습니다만, 그래도 계속 “아직 빨라. 좀 더 참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선생님의 말씀을 뜻을 알 수 없으나 그래도 선생님의 말씀이니 참지 않으면 안 된다, 라는 정도로밖엔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그 말씀의 깊은 곳에 있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진실로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10년, 15년 훈련을 계속해 오는 사이 선생님의 말씀을 겨우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에게는 나의 기분이 이미 보이고 있었던 것이지요. 즉 고가와는 머리로 오는구나, 또는 손목을 노리고 있구나, 이와 같은 것들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참아라” 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참으라는 것은 단지 치고 들지 마라, 라는 표면적인 움직임만에 대하여 참으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상대의 기분이 움직일 때까지도 참으라, 라는 의미입니다.
―더 참고 나(菅原)의 기(氣)를 움직이고 거기서 뛰어들라.
라고 선생님은 가르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령 나보다 명백하게 힘이 떨어지는 상대와 연습을 할 때는 상대를 손바닥 위에 갖고 논다든가 상대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즉, 다음에는 머리다, 다음에는 머리로 가는 척하고 손목이다, 이와 같은 것들 말입니다.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은 내가 기분상으로 상대를 삼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의 기가 무르익은 것을 간파하고 거리를 쑥 좁혀 상대를 꾑니다. 그러면 상대는 퉁기듯이 머리나 손목으로 나오므로 거기에 응하는 기술로 가볍게 요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내가 고단자 선생님께 들어가면 아무리해도 내 쪽부터 일을 꾸며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즉 시카께 기술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기분이 들게 되고, 거기서 쑥 하고 거리가 좁혀지면 거기에 반응하여 앞으로 나가게 되고 영낙없이 되받음을 당하거나 눌려지거나 하는 것이지요. 그 기분을 주고받는 것이 연습의 재미있는 부분이며, 고려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선생님과의 연습에서 내가 갖는 목표는 선생님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공세, 검선의 공세를 취하는 것이었습니다.
거리의 공방 가운데서 서로 참고 참아 이윽고 참을 수 없는 데까지 참고, 선생님이 이제 친다, 하는 기분이 되려 할 때 먼저 머리로 들어가는 그런 연습을 하도록 마음먹었습니다. 대개는 내 마음이 먼저 움직여 선생님에게 되받음을 당했지만, 때로는 선생님의 기분이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고 하면 내가 칠 수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전심전력을 집중하여 발가락 끝까지 신경을 민감하게 하여 상대의 움직임, 호흡을 읽어내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연습을 하면 대체로 5분입니다. 그 이상은 쥐는 힘도 없어지고 호흡도 거칠어져 옵니다. 고교생이라면 2시간 훈련해도 손이 마비되는 일은 없지만, 고단자 선생님과 훈련을 하면 5분만에 숨이 거칠어집니다. 이상하지요. 칼을 차고 움직이는 것도 아닌데.
2. ‘몸 넣는 것’을 깨달으면 거리의 공방 속에서도 선을 취할 수 있다.
기분을 주고받는 것에 대하여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작년 전일본선수권대회에서 3위를 한 에이가(榮花直輝) 군과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훗카이도에서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볼 때 나는 고교 때의 지도자이고 역시 좋은 곳을 치고 싶은 기분이 듭니다. 그러므로 내가 검선으로 에이가 군의 중심을 취하고 있어도 그는 그 이상의 강한 기분을 갖고 나에게 대치합니다. 이때 그의 기(氣)에 촉발되어 내가 평상심을 잃고 그의 기를 맞게 되면 그때는 이미 나의 패배입니다. 에이가 군은 한창 물이 오른 현역이고, 더욱이 일본의 톱 클래스이므로 서로 맞대면 열세인 것은 이쪽입니다.
그러나 가령 내가 기분상으로 에이가 군을 삼키고 있으면서, “자, 어디서든 오시오”라는 기분으로 상대와 대치한다면, 그는 다시 긴장도를 올려 달려들 기분이 듭니다. 이렇게 되면 나의 승리입니다. 흔히 있는 일입니다만, 상대가 치고 싶다는 기분이 되었을 때는 내가 검선으로 상대의 주먹을 공격하거나, 또는 쑥 하고 거리를 좁힙니다. 그렇게 하면 상대는 이끌리듯 앞으로 나오므로 그 일어나는 참을 공격할 수도 있고 응할 수도 있습니다. 움직임으로 볼 때는 ‘후(後)의 선(先)’이지만 상대의 마음에 영향을 주는 공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선(先)’이 되는 셈입니다.
이 일족일도의 거리에서 진퇴를 유리하게 하기 위해, 다시 말하면 자신의 타격 가능거리까지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검선의 공세, 기의 공세, 발놀림을 포함한 몸 넣기라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몸 넣기란 자연체에서 중단으로 겨누고 거기서 상대에게 눈치 채이지 않고 타격 가능 거리까지 들어가는 동작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가령 서로 동시에 치더라도 내가 선(先)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의 타격에 지는 일은 없게 됩니다. 고단자 선생님들이 동시에 머리치기를 할 때라도 스피드 있는 젊은이에게 지지 않는 것은 검선의 공세를 포함한 몸 넣기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또 고단자 선생님들에게서 배워야 할 점은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힐 때의 허리 이동, 즉 허리를 넣는 방법입니다. 일족일도의 거리에서 젊은 선수와 대치했을 때 선생님들은 상대가 칠 기분이 되었을 때가 아니라, 칠 기분이 되려 할 때 상대에게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게 하면서 쑥 하고 자신의 거리에 들어갑니다. 상대로서는 타격 기세가 충만하려는 순간 거리가 좁혀지기 때문에 팡―하고 기세 좋게 나옵니다. 이때 손끝만으로 거리를 좁히거나 또는 허벅다리로 거리를 좁히거나 하면, 상대도 그 움직임을 느낄 수 있고 그만큼 상대는 이쪽을 두렵지 않게 여기게 됩니다.
그러나 하반신으로 허리를 받치듯 올린, 크고 여유 있는 자세로 검선을 살려 쑥 하고 들어가면 상대는 아무래도 그 움직임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번 후퇴하여 거리를 떼고 다시 겨눔세를 고치는 방법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미 타격할 기세가 되어 있습니다. 즉 간다! 들어간다! 는 기분이 80% 정도 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쑥 하고 거리까지 좁혀지기 때문에 아무래도 앞으로 나오고 맙니다. 그 뒤의 결과는 불을 보듯 훤합니다(상대의 패배).
발 운용(발놀림)도 검선의 공세를 보다 위력 있게 하기 위해서는 필요 불가결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나는 일족일도의 거리에서 발가락만을 미묘하게 움직여 밀리미터(mm) 단위로 거리를 좁히는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마루 위를 미끄러지듯이 전후좌우로 움직이는 것보다 훨씬 무게 중심의 이동이 적을 뿐 아니라 허리가 들어간 자세로 기술을 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타격의 기본은 일족일도 거리에서 검선을 살려 상대의 중심 속으로 쑥 하고 들어가 치는 머리치기입니다만, 저는 슬금슬금 거리를 좁혀가 허리가 들어간 ‘낮고 긴’ 뛰어들기로써 머리치기를 시도하는 것이지요.
어쨌거나 거리를 좁힐 때의 허리 위치와 발운용, 그리고 검선의 공세, 이것 모두가 높은 차원이 되지 않으면 상대가 ‘졌습니다’ 하고 말하게 할 기술을 낼 수 없습니다.
3. 자신의 특기가 있으면 중심 빼앗기는 유리하게 된다.
―죽도의 선혁과 선혁이 서로 닿는 일족일도의 거리에서 다시 중혁 끼리가 맞닿을 때까지 거리를 좁힌다.
이것은 대단히 어렵고 검도의 진미인 마음의 진퇴가 펼쳐지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내 경우는 죽도의 바깥(表)에서 중심을 서로 다투다가 갑자기 검선을 상대의 안쪽으로 겨누는 일이 많습니다. 기와 기로써 서로 밀기보다는 기를 서로 부딪치게 해두고 쑥 하고 검선을 비낍니다(흘립니다). 이 공세 방법은 대학시절 은사이기도 한 하시모토(橋本明雄) 선생님의 영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도 검선으로 상대와 맞서며 다투다가 갑자기 검선을 흘리고 비끼며 안으로부터 머리로 들어가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공격의 많은 부분은 겉에서부터 안으로 걸쳐 들어가는 케이스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 예가 찌름입니다. 당신이 나와 대련하고 있는 상황을 상상합시다. 준거(蹲踞)에서 일어나 일족일도의 거리에서 서로 겨눕니다. 그때 당신은 먼저 나의 찌름을 경계하여 내 죽도를 위로부터 누르면서 중심을 빼앗으려 합니다. 그러나 나는 위로부터 눌려지는 힘을 이용하여 상대의 죽도를 감듯이 하면서 안(裏)을 취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때까지 나의 중심에 있던 당신의 죽도는 몸으로부터 벗어나고 반대로 나는 안으로부터 당신의 중심을 취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 검선의 공세의 주도권은 바뀌어지고 나는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고 거리를 좁혀 기술을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검선의 공세란 항상 겉에서부터, 그리고 자신만이 먼저 일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상대의 움직임을 이용하여 타격의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한 것입니다.
이 경우 자신의 기분을 충만하게 검선에 넣는 것과, 기분은 충만하나 검선으로부터는 아무 것도 감지하지 못하게 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좋은가 하면, 나는 후자가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기분의 충만함이 검선에 전해지면 당연히 상대도 이쪽의 기분을 느끼므로 집중합니다. 이렇게 되면 서로의 기는 호각의 다툼을 하게 되므로 우선 찌름은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순간적인 움직임에 반응하려고 집중하고는 있습니다만, 쑥 하고 들어오는 검선에는 일순간이나마 멍하니 보고 마는 일이 있습니다. 즉 움찔하는 상태가 되고 마는 것이지요. 죽도의 끝과 끝이 서로 닿고 거기서 서로 기 싸움을 하고 있어도, 또다시 긴박한 거리에 들어갈 때에 이쪽은 아무 것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이쪽이 아무 것도 드러내지 않으면 상대도 느끼지 못하므로 상대는 일순간 가만히 보고만 있습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팡―하고 찌름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머리로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대련해 온 가운데 검선이 강한 상대는 역시 야마다(山田博德) 선생(구마모토)입니다. 그 외에 동기인 가메이(龜井徹) 군(구마모토). 그래도 야마다 선생님만은 각별했습니다.
처음 야마다 선생님께 들어간 것은 삿뽀르에서 열린 제4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1979)에 대비한 합동훈련 때였습니다. 그 무렵의 선생님은 30대 전반으로서 6년 전에 전일본대회에서 우승한 소위 현역. 더구나 야마다 선생에게는 찌르기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이미지라는 것은 무서운 것으로 그것을 의식하기만 해도 이쪽의 기분이 움직이고 마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도 동해대 제4고교의 선생으로서 그 지방에서 개최되는 대회이므로 분발하고 있었습니다. ‘좋다. 야마다 선생님이라. 한 번 해보자.’ 하는 강한 기분으로 연습에 임해 준거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과 대치한 순간 이것은 서투르게 찌르기로 나갔다가는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웃음). 선생님의 검선은 밑에서부터 찔러올라오는 느낌이 강했고, ‘자아, 오라. 네가 오면 사양 않고 간다.’는 위압감이 검선을 통해 팽팽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한 번도 찌르지 못했습니다. 나가지 않았다기보다 나갈 수 없었다는 표현이 정확합니다(웃음).
검선의 공세라면, 어떻든 검선을 뻗어내고 있으면 된다고 잘못 생각하고, 가령 상대가 머리로 올 때 억지로 맞아찌르기를 하거나(칼끝을 목이나 가슴에 대는 행위), 일족일도의 거리에서 상대의 죽도를 탁탁하고 치거나 누르거나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다음으로 이어지는 것이 없으면 그것은 검선의 공세라고 할 수 없고, 어떤 의미에서는 자기 마음대로의 검도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 많은 고교생들은 상대와 마주서면 ‘야압, 머리!’하고 단조롭게 치고 들어갑니다. 거기에는 검선으로 상대를 무너뜨린다든가 끌어들인다든가 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합을 보고 있어도 마음을 울리는 것이 적습니다.
나는 문하생들에게 ‘검선과 검선을 통해 대화하시오’라고 곧잘 말합니다. 그것은 ‘검선을 통해 상대의 생각, 즉 기분을 간파하시오.’ 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즉각 실천할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체력이나 스피드에만 맡긴 검도만 하다가는 체력이 감퇴하기 시작하면 어찌하겠습니까. 검도는 일생을 걸고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검도인생을 한 단계 더 깊이 있는 것으로 하기 위해서도 검선을 통하여 상대의 기분을 간파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 향후 자신에게 있어서도 대단히 의미 깊은 일이 된다는 것을 느꼈으면 합니다.
* 안(裏)으로부터 상대의 중심을 취하는 고가와 씨.
중심을 차지할 때 고가와 씨는 상대의 죽도 힘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먼저 죽도 바깥쪽에서부터 상대와 서로 중심 다툼을 벌인다.(검선을 통하여 상대의 기분을 탐색한다)
이어 상대가 중심을 차지하기 위해 죽도에 힘을 넣는 것을 감지하면 즉시 죽도를 밑으로부터 감듯이 하여 상대 죽도의 안쪽으로 돌린다. 그러면 상대는 죽도에 힘을 넣고 있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고 중앙선에서 벗어나게 되며, 반대로 고가와 씨의 죽도는 상대의 중앙선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중심 싸움에서 이긴 고가와씨는 상대의 중심을 깨고 머리로 뛰어들 수 있다.
6) 왼손을 올리지 않는 검도
―니시가와(西川淸紀) 교사 7단 지도
* 약력
1955년 2월생. 구마모토 8대 제일고교 졸업후 경시청에 들어감. 1975년 전일본선수권대회에 첫 출전. 1997년까지 16회 출전하여 최다출장기록을 갱신함. 전국선발 7단 대회 우승 2회. 전국경찰선수권대회 3회 우승.
1997년 42세로 전일본선수권대회에 출장한 니시가와 교사. 3년 전에는 39세의 나이로 세 번째 우승을 하였다. 그때 상대 선수의 코멘트는 “공세가 강하여 앞으로 나갈 수가 업었다.”, “검선이 강했다. 격이 다르다.” 등과 같은 것뿐이었다. 지금도 공세의 강함은 건재하고, 특히 중심으로부터 힘차고 거침없이 공세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특히 상대의 공격을 받을 때 검선을 상대에게서 놓치지 않으며, 결코 왼손을 올려서 하는 방어는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즉각 공격으로 전환할 수 있고, 그 행위 자체가 검선이 살아 있는 것이다. <편집자>
1. 먼거리(遠間)에서 쉬어서는 안 된다. 먼거리에서부터 신경을 곤두세워 검선으로 코등이 부위를 공세한다
나는 키가 크기 때문에 경시청에 들어갈 당시에는 머리를 치려고 할 때 손목이나 허리를 맞는 일이 잦았습니다. 따라서 상대가 움찔할 만한, 상대가 손목부위를 올릴 만한, 그런 정도의 기세로써 공격해 들어가리라,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손목부위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상대에게는 위에서부터 코등이 부위를 치고 머리 또는 찌름을 하는 2단치기로 나가거나, 자세를 흐트러뜨리고 나서 치는 형태를 취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 죽도를) ‘치고 들어가는 기술’은 하지 않고, 되받아치는 기술 또한 잘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상대의 손목부위를 올리도록 하거나 코등이 부위를 공세한 뒤 기술을 펼치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동안 대회 등에서 성과를 올리자 이번에는 ‘니시가와는 손목이 특기다’ 라는 것이 알려져 똑같이 공세를 취해도 상대가 손목부위를 올려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처음 몇 번은 손목을 치러 나갑니다. 하지만 똑같은 공세 방법이므로 상대가 손목을 피하기 위해 검선을 엽니다. 바로 그 순간에 머리치기를 시도합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상대선수는 어느 쪽인가 하고 헷갈립니다. 하나의 단계, 실패를 거쳐 지금은 그 반대편을 치는, 이러한 반복을 통해 나의 검도가 조금씩 넓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코등이 부위를 공세하여 상대가 손목부위를 올리면 손목을 친다. 검선을 열거나 하여 주면 머리로 들어가거나 두 손으로 찌른다. 상대가 나와 주면 손목을 누르거나 되받아 허리를 친다. 코등이 부위를 공세하는 단 하나의 공세 방법만으로 얼마든지 응할 수 있도록 연구해 왔습니다. 나의 페이스로 끌고 가는 셈이지요.
하지만 자신이 공격해 들어갈 때에 상대에게 당할 수 있는 위험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맞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거리에서부터 자신이 칠 수 있는 거리까지 빈틈이나 방심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들어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즉 되받을 수도 있고, 누를 수도 있으며, 들어오지 않으면 치고 나갈 수 있다, 라는 마음과 긴장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단순히 공세하는 것뿐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만, 먼거리에 있을 때부터 신경을 곤두세워 두고 타격 거리까지 들어갈 때 신경을 긴장해 두지 않으면 거꾸로 당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먼거리가 되면 거기서 쉬는 사람이 많은 듯합니다만, ‘먼거리에선 쉬고 타격 거리에 들어가면 치자’는 방식으로는 늦습니다.
뛰어들어 치기 연습할 때 받아주는 사람이 쉬고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치는 사람보다도 받아주는 사람입니다. 받아주는 사람이 기(氣)를 뻗고 특히 왼발 뒤꿈치를 마루에 붙이지 않고 똑바로 겨누어 들어오는 사람 이상으로 진지하게 받아주어야 합니다. 쉬지 않고 조여 가는 기분을 계속 유지하면 할수록 좋은 훈련이 되는 것이며, 들어가는 사람도 들어가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유대련연습에서도 먼거리가 되어도 기를 죽이지 않고 계속 살려가며 서로 공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 두려움을 떨치고 과감히 중심을 깨고 치고 들어간다
상대가 먼거리에서 일족일도의 거리로 들어옵니다. 이때 움찔 놀랄 때가 있습니다. 상대의 검선이 강하다고 느낄 때이지요. 이는 상대의 검선이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 검선이 중심에서) 벗어나 있으면 그다지 두렵지 않으나, 자신이 치고 들어가려 해도 벗어나지 않으면 무리하게 공격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무리하게 들어간다고 해도 검선이 살아있기 때문에 맞질 않습니다. 그것이 검선의 강함으로 연결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검선의 강함을 의식하게 된 것은 경시청에 들어간 뒤입니다. 강한 사람은 겨눈 것만으로도 이쪽을 칠 수 없게 만듭니다. 죽도도 굵게 보입니다. 겨눈 것만으로 무게가 있는 것입니다. 경시청 선생님들은 검선을 흐트러뜨리지 않기 때문에 치고 들어가기가 무척 어렵고 두려웠습니다. 그래도 전공연습을 많이 한 덕분에 검선의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똑바로 치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상대의 검선이 두려웠지만, 그것을 깨고 들어가는 연습을 젊었을 때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자연히 검선이 강한 선생님에게도 정면으로 치고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두려워한다는 것은 곧 과감히 칠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조금이라도 상대의 검선이 자신을 향해 찔러오면 거기서 그만두고 맙니다. 그래서는 안 되고, 다소 찔리더라도 기세로 들어가면 검선이 벗어나게 됩니다. 단지 부주의하게 아무렇게나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 자신도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며 과감히 치고 들어갑니다. 상대의 검선이 내 몸에 와 닿더라도 그것을 쳐부술 듯한 기분으로 들어가면 의외로 상대의 검선이 열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기분이 먼저 약해져 있으면 도중에 기술이 멈추고 말기 때문에 아무리 쳐도 올바르게 타격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미묘한 차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가 받아주는 입장이 되었을 때, 나는 검선을 열어주어 치게 하지는 않습니다. 이는 단(段)의 차이가 있더라도 서로 진지하고 열심히 훈련하는 것에 검도의 진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검선을 크게 열어 어떻게든 치게 하면 치는 쪽도 ‘맞아주네’하고 생각할 뿐이며,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검선을 열지 않는다.
그 가운데 최종적으로 중심을 깨고 때리는 방법을 깨닫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동시에 머리를 치는 연습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먼저 쳐서 이길 수 있는 거리와 타이밍을 만들어두지만 먼저 치지는 않습니다. 거기서 잠시 참고 기다려주면 저쪽도 재빨리 머리를 치고 나옵니다. 서로 열심히 훈련하는 가운데에 눈치 채지 못하도록 맞혀주는 연구를 합니다. 누구와 훈련을 할 때도 결코 기를 빼지 않고 하고 싶은 것입니다.
학생 무렵에는 검선의 공세를 그렇게 의식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회인이 되면 육체적으로도 쇠퇴하기 때문에 검선의 위력을 연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고령자가 되어서도 검도를 할 수 있는 하나의 이유에 그런 검선의 위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검선이 살아 있으면 상대가 치고 와도 맞지 않고, 그 이전에 상대는 부주의하게 기술을 낼 수 없기 때문에 자연히 이쪽도 그렇게 기술을 내지 않아도 됩니다. 검선의 매력은 검도 그 자체의 매력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3. 왼손을 올려 막는 방어법―피할 수는 있어도 칠 수는 없다.
검선의 공세가 아니더라도 ‘공격한다’는 것은 검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나 또한 공격하는 것을 중심으로 검도를 하고 싶습니다. 먼거리에서부터 공격 기분을 가진 쪽이 승부 면에서도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키가 크기 때문에 유리하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확실히 일족일도의 거리에서 겨누고 기세 좋게 들어간 경우에는 키 큰 사람이 유리하겠지요. 그러나 키가 작은 사람은 공세를 취하여 들어오고, 키 큰 사람은 (공세가 없는) 그대로의 상태로 들어가면 대부분 키가 작은 사람이라도 큰 사람보다 빠르게 칠 수 있습니다. 나는 키가 커서 유리할지 모르지만, 그것 이상으로 공세에 대한 연구를 해두면 더 유리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공세로 여러 가지 응할 수 있도록 연구해 온 셈이지만, 반대로 검선이 너무 강하면 나쁜 쪽으로 말해 억지(무리한) 공세가 되고 맙니다. 억지 공세가 되면 스스로 무덤을 파는 셈이 됩니다. 시합에서도 몇 차례 있었습니다. 상대의 기가 충실해 있는데 억지로 들어가면 팡-하고 맞습니다.
1987년 전일본선수권대회에서 다구찌(田口亮二) 선수(연사 6단)와 대전한 적이 있습니다. 그의 경우는 내가 공격해 들어가면 쓱 하고 물러갑니다. 역공세로 나오거나 하면 나도 부주의하게 들어갈 수 없겠지만, 들어가면 물러나고 들어가면 물러나므로 결국 그러다가 그는 맞고 말았습니다. 그의 이러한 공세는 거꾸로 말하면 가장 나쁜 것입니다. 그런 점을 더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무리한 공격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곧잘 하는 말이 ‘허리 도시락이 되라’ 입니다. 즉 허리에 도시락을 하나, 둘 차고 있다는 생각으로 신중히 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공세가 곧 공격(타격 행위)은 아니다.’ 라고 들었습니다. 나의 경우는 ‘공세’와 ‘타격’이 어떻게든 연결됩니다. 확실히 공세 행위는 타격으로 연결되는 것이고, 공세하여 상대가 무너지면 과감히 치는 것입니다만, ‘공세를 했다고 하여 반드시 친다’ 라는 것은 아닙니다. 공세해도 무너지지 않으면 거리를 두고 다시 한 번 공세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또 중심이 두터운 사람은 먼거리에서부터 공격해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과감히 깊이 들어가서 무너뜨려 본다는 방법도 있습니다.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한 억지는 약간은 필요합니다.
지금은 줄어들고는 있습니다만 10년, 15년 전 무렵부터 고교생이 왼손을 올려 피하는 검도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공격 검도’가 아니고 ‘피하는 검도’입니다. ‘피하기’부터 하면 맞지는 않겠지만 자신도 칠 수가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시합이 길어지고, 그래서 상대가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어물어물 칩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검도의 줄기에서 벗어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공격하는 검도’라면 자신이 공세하는 것이므로 칠 수가 있습니다. 그 반면 틈도 나올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으며, 거기에서 검도의 허와 실이 생겨납니다.
“나도 왼손을 올려 피하면 99% 피할 수 있다.”
라고 확신합니다.(웃음)
하지만 자세가 무너져도 피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 왼손을 올리지 않고 맞는 것이 좋은가. 나는 왼손을 중심으로부터 벗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검도의 진미라고 생각하는 데까지 왔습니다.
연격에서도 왼손이 자신의 몸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가르침이 있습니다만, 나는 어떤 때라도 왼손을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명심하고 있습니다. 벗어난다고 해도 되받아 응하거나 스쳐 올리기 때 정도입니다. 그것도 나의 몸에서 왼손이 벗어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가령, 상대가 머리를 치고 오면 왼손은 그대로이고 오른손을 약간 움직일 뿐만으로도 맞지 않습니다. 왼손을 머리위로 올려 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왼손을 올려 피한다는 것은 상대가 온 것을 피하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그 자세로부터 기술을 되펼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에 비하여 왼손이 중심에 있으면 기술을 낼 수 있습니다. 손목을 치고 올 경우에도 왼손을 오른 허리 앞으로 가져가 오른손을 약간 바깥쪽으로 비틀기만 하면 대응할 수 있습니다. 왼손을 올리거나 오른손을 크게 벗어나게 하는 것은 그다지 하지 않습니다. 왼손을 중심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상대 기술에 대응할 때 상대 기술보다 앞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에 응하는 기술도 내기 쉽지요. 즉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술을 낼 수 있고, 상대 공격에도 대처할 수 있는 자세―그것이 곧 공세하는 자세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는 당연히 검선이 상대를 향하고 있기 때문에 검선이 살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다음부터는 상대는 부주의하게 나올 수 없습니다. 그것이 점점 상대에게 압박을 가한다고 생각합니다.
4. 이제부터는 스피드만이 아니라 마음을 공격하는 검도에 도전하고 싶다.
지금까지는 겨눌 때 검선을 상대의 명치에 겨누었습니다. 목 부분보다도 명치 쪽이 검선이 먹혔기 때문이지요. 상대가 치고 들어올 때 목 부위를 겨누고 있으면 검선이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허공을 찌르게 됨에 반하여, 명치 쪽을 겨누고 있으면 명치 쪽에서 벗어나더라도 상대의 몸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고단자 선생님들은 검선이 목 부위를 정확히 겨누고 있기 때문에 검선이 먹히고 있습니다. 이는 검선이 흐트러지지 않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나는 목 부위를 겨눈다고 겨누지만 흐트러질 때가 많습니다. 지금부터는 이 부분을 연구해 나가고 싶습니다.
공세를 취할 때도 지금까지는 코등이 부위를 공격하고 거기서 기술을 내었습니다. 이때 검선은 상대보다 약간 밑으로 갑니다. 이러한 공세 방법으로 상대의 기분을 올려놓은 후 손목 부위를 올리게 하였습니다만, 거기서 너무 깊게 들어가거나 하여 거리를 착각하면 먼저 맞고 마는 경우가 곧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이러한 공세 방법을 토대로 검선을 위에서부터 올라타듯이 하면서 공격해 들어가 상대의 기분에 올라탈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상대의 검선과 기분을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위로부터 눌러 상대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드는 것이지요. 결국 상대는 손목부위가 올라가거나 검선이 열리거나 하겠지만, 그에 앞서 호흡이 거칠어지거나 기분이 붕 뜨게 됩니다. 그때를 노려 칩니다.
그러므로 스피드만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경험상 윗 선생님들에게 연습하러 들어갈 때도 스피드라면 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앞의 과정들이 다릅니다. 선생님들은 천천히 해도 우리가 앗! 하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쑥 다가와 있습니다. 단지 스피드만을 겨루어 치는 것은 젊을 때는 할 수 있다고 해도 지금부터 연령적으로 올라가면 천천히라도 상대의 허를 칠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검선으로의 공세나 몸으로의 공세를 하고 있으면 이번에는 기(氣) 공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공세를 취할 때 상대가 제자리에 붙어 있게 하여 치는 경지. 지금 나는 거기까지 가지 못했기 때문에 몸으로의 공세, 검선으로의 공세에 머무르고 있습니다만, 장래에는 그것이 기의 공세로 연결되면 제일 좋을 것이고, 마음의 공세가 되면 더 좋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떻든 검선의 공세 없이도 그런 기의 공세, 마음의 공세라는 것을 항상 의식하여 조금씩 자신의 것으로 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7) 살아 있는 검선을 위하여
―고바야시 요시오(小林義雄. 교사 7단) 지도
*약력
1941년 6월생. 도립고교에서 동경 교육대 진학. 주위에는 고교시절에 전국 클라스에서 실적을 남긴 선수가 많았으나 노력한 결과, 4학년에 정규멤버로서 전일본선수권의 출전권 획득. 동시에 학생 동서대항전에도 출전. 졸업후 淸野(교사 7단) 씨에게서 일도류(一刀流. 이토류)를 사사하여 조예가 깊다.
일도류를 배운 고바야시 씨는 검선이 얼마나 위력을 갖는 것인가를 알고 있다. 몸 전체에서 뻗는 힘을 전달하여야 비로소 검선이 살고, 그것은 칼만이 아니라 죽도에도 통하는 것이라고. 이번 회는 고류(古流)의 ‘살아 있는 검선’에 대하여 들어보고, 검선의 공세란 어떤 것인가, 그리고 거기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편집자>
1. 검술에 있어서의 검선의 엄격함
옛날 일도류(一刀流)의 데라다(寺田五右衛門)는,
―내 목도의 끝에서는 화염이 나온다.
라고 했으며, 시라이(白井亨)는,
―내 칼끝에서는 바퀴가 나온다.
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불꽃이나 바퀴가 나온다는 것은 아니지만, 검선에 그 정도의 위력이 있으며 그 사람의 기(氣)의 충실도, 또는 그런 것들이 검선에 모여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심기(心氣)를 단련한다.”라고 말합니다만, 이는 언제나 검선에 기합(氣合)이 모인 검을 들고 그것을 조작하며, 그러한 작용에 의해 단련되고 깊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세나 타격 방법, 휘둘러 올리고 쳐내리고 하는 것을 옛날에는 특히 엄격하게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칫하면 현대검도에서는 타격 부위에 닿으면 된다는 것에 그치고 마는 정도여서, 타격 후의 자세는 어떠해야 한다 라든지, 검선이 튀어올라가 있지 않은가 어떤가 하는 점이 소홀히 여겨지고 있는 듯합니다.
교토 대회 등에서 한판의 내용을 보고 있으면 타격후의 자세나 검선에 느슨함이 있기 때문에 쳤다고 생각해도 한 판이 되지 않거나, 들어갔구나 생각해도 깃발이 올라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도법(刀法)의 원리 원칙에 접근하려고 생각했다면 고류(古流)의 존재를 무시할 수는 없을 듯 싶습니다. 검선의 문제도 그러합니다. 가령 일도류에서의 ‘베어떨어뜨리기(切落=키리오토시)’라든가 신음류(新陰流)에서의 ‘동시에 서로 치기(合擊=갓시)라는 대도(大刀) 쓰기에서도 검선의 중요함을 배울 수 있고, 팔상(八相)이나 허리칼 자세에서도 칼날을 바르게 하여 치는 타격에서도 대단히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형(形)과 죽도 검도를 함께 연습하여 검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베어떨어뜨리기=절락(切落)이라고 쓰며, 키리오토시라고 읽습니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잘라내다, 끊다’ 입니다. 상대가 치고 오는 칼에 대해 거의 동시에 마주 쳐서 상대 칼을 스치며 떨어뜨려 내 중심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상대를 쳐 이기는 기술입니다.
* 동시에 서로 치기=합격(合擊)이라고 쓰며, 갓시라고 읽습니다. 동시에 서로 치는 과정에서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을 합격이라고 하며, 절락(切落)과 거의 같은 기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형(形)이는 죽도 검도이든 기본적인 휘두르기 방법을 시작할 때는 자세, 겨눔세가 매우 중요합니다. 우선 겨누었을 때 검선에 기합이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손매무새(=데노우치)입니다. 검 또는 죽도와의 접점은 손이며, 몸 전체에서 작용하는 기세를 검선에 전달하기 위해서는 자연히 손매무새가 올바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고류의 입장에서 보면, 현대 검도에서는 머리나 손목, 허리 등을 겨누고 거기를 침으로써 이기는 것으로 합니다만, 도법의 원리에서 말하면 언제 어느 때 자신의 검에 상대의 검이 닿을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때 검을 야무지게 들고 있지 않으면 칼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죽도 떨어뜨리기로 끝나지만, 전쟁터에서 칼을 떨어뜨렸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에서도 검선에 항상 기합이 들어가 있어야 하는 것은 대전제이며, 손매무새가 변하거나 흐트러져서는 안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손매무새가 흐트러지면 자연적으로 검선의 기가 느슨해지기 때문입니다.
2. 상대가 앞으로 나올 수 없는 검선의 위치는?
검선에 위력을 주어 겨누기 위해서는 검선을 어디에 두면 효과적일까요? 어느 선생님께 연습을 부탁했을 때, “검선을 보면 진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시야에는 들어오나 보면 진다, 는 것이지요. 그런데 강한 선생님은 그것을 보여준다고 하네요.
또 어떤 별난 선생님과 연습했을 때는 ‘죽도가 두텁다’라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죽도 끝이 엄청난 위력으로 나에게 육박해 왔습니다. 죽도에 가려 상대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고 표현해야 할지 어떨지. 그것은 단지 죽도의 두께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죽도를 찔러내듯이 작용시키기도 하고, 타고 누르듯이 들어오기도 하고. 이러한 작용과 위력은 등줄기의 뻗음, 충실한 자세, 정확한 눈을 갖춘 후에야 가능한 일일는지.
‘검선을 좋은 곳에 둔다.’라는 것은 자신에게 있어서 유리한 위치에 둔다는 뜻으로서, 상대와의 관계에서 말하면 중심에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생님에 따라서는 왼눈을 겨누라고 하는 분도 계시지만, 나의 경우는 ‘정중앙’입니다. 아래 위로는 움직일지 몰라도 어디까지나 정중앙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열려 있을 때 열린 곳으로 상대가 겨누고 들어오면 중심을 빼앗기게 됩니다. 설령 그것이 엷은 칼이라도 거기에는 미묘한 다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심을 공세하여 칠 때에 한 번 더 정확하게 겨눈 뒤 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정중선―여기에 왼손으로 쥔 손잡이 꼭지를 단단히 둡니다. 그리고 오른손과 검선을 잇는 선을 상대의 중심까지 뻗게 합니다. 그렇게 하면 죽도의 컽과 안이 확실해집니다.
공세를 취할 때는 검선을 상대의 오른 주먹에 겨눌 때가 있습니다. 검선을 상대의 코등이 부위에 겨누고, 그 위에 공세의 위력을 가미하면 상대는 두려워져서 검선을 세울지 모릅니다. 그 순간에 손목을 칩니다. 그와 같이 겨누고 있으면 휘두르는 폭이 작아도 칠 수 있습니다. 검선을 높게 하고 있으면 휘둘러 올릴 때 맞기 쉽습니다. 높은 곳에서 올리면 소위 중심 입구가 열기기 때문입니다. 검선의 겨눔 목표에는 이와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눈 두기에 대해서는 오륜서에 쓰여져 있는 것을 현대 검도에서도 그대로 채택해도 좋을 것입니다. 무리하게 턱을 당기거나 하여 잘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게 하면 기량이 늘지 않습니다. 조금 턱을 내어도 좋습니다. 그렇게 하면 조금 위에서 보는 듯이 됩니다. 몸의 기위(氣位)가 단단히 올라갑니다. 겨누는 곳은 상대의 눈과 기술이 나오는 곳인 두 주먹.
―검선은 시야에 들어와도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라는 가르침은 말 그대로라고 생각합니다. 움직임의 근원인 두 주먹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면 상대가 어떠한 기술을 낼까 예측해낼 때도 많이 있습니다.
고류에서도 눈을 두는 곳은 눈과 주먹입니다. 움직임의 근원이기 때문에.
3. ‘베어떨어뜨리기’는 검선의 작용이 있고 난 후에야 가능
다음으로, 휘둘러올리고 내리는 동작중에서라도 항상 검선이 살아있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을 배우기 위해 효과가 있는 것이 고류입니다. 예를 들면 일도류의 ‘키리오토시(=베어떨어뜨리기)’. 이것은 참으로 검선의 작용이 먹히고 있는가, 아니면 먹히고 있지 않는가 둘 중 하나일 뿐입니다. 간단한 듯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기술입니다. 검선에 느슨함이 있어서는 베어 떨어뜨리지 못하니까요.
대개 사람들은 쳐내리는 것외에는 생각지 않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검선을 느슨하지 않게 하면서 중심선을 따라 휘둘러올리는 것입니다. 휘둘러올리기는 검선이 살아있게 한 상태에서의 점의 연속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휘두른 폭이 크드 작든 언제나 상대 중심을 깰 수 있습니다.
초보자에게는 상단으로 휘둘러올려 천천히 치고 들어가 충분히 뻗어치기를 시키고, 상급자에게는 베어떨어뜨리도록 지도하고 있습니다. 손끝으로 비틀어 휘둘러올리면 베어떨어뜨리기는 맞질 않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도법(刀法)을 생각할 때 하나의 핵심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휘둘러올리고 휘둘러내릴 때는 어깨죽지로 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몸 전체의 움직임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손끝만으로, 즉 팔꿈치에서 손까지만으로 하는 것은 헛일입니다.
보통 빠르게 치고 싶어하기 때문에 ‘스냅을 살린다’고 하지만, 그런 것을 하면 좋은 타격은 나오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절대 힘을 주어 쥐어서는 안됩니다만, 그렇다고 손목을 써먹는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칼이나 무게가 무거운 죽도로 그런 것이 가능한지 어떤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무거운 것을 다루는 훈련도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가벼운 것이라고 하여 손끝만으로 다루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검선에 기(氣)가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 휘둘러올리고 휘둘러내릴 것. 아울러 크고 천천히 할 것.
이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상대를 빨리 치고 싶은 기분이 왕성하면 양손을 밀어뻗게 되며, 따라서 팔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합니다.
‘검선 올라타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체중이 실려 있는지의 여부가 중요합니다. 손에 힘만 넣어서는 헛일입니다. 손목치기를 하더라도 찍듯이 치는 경우를 흔히 봅니다만, 이것은 검선의 올라타기가 없는 타격 방법입니다.
가령 상대가 검선을 낮추어 공세를 취해오면 위로부터 비스듬히 내려치듯이 칩니다만, 그러한 손목치기가 가능한지 어떤지? 이것은 검선 올라타기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또 스쳐올리기 기술이나 손목-머리 등의 연속기술에서도 검선 올라타기는 빠뜨릴 수 없는 요소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잘 알고 계시듯 오륜서의 「불의 권」 또는 벙법 35개조 가운데서도 손끝으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것, 작은 것과 약한 것은 안 된다는 것, 팔꿈치를 활용하라는 것이 쓰여져 있습니다.
4. 검선의 공세는 ‘또 하나의 타격’이다
검선의 공세란 이상과 같은 겨눔세, 휘둘러올리고 내림 등을 전제로 하여 상대와 대치하여 공격하는 것입니다만, 나는 학생들에게 손끝만의 타격이 되지 않도록 서로 공세를 취할 때의 죽도 조작은 타격의 일부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도록 강조하고 있습니다.
공세에는 상대의 죽도를 쳐서 떨어뜨리거나 제치거나, 스쳐넣거나, 감거나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만, 가령 (죽도를) 쳐서 떨어뜨리기라도 ‘큰 동작의 일부분을 활용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강한 공세가 가능해집니다. 커다란 타격의 일부로 파악하라는 것이지요.
이것이 살아 있는 공세입니다. 이와 같이 검선에 기합이 들어가 있지 않으면 상대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무너뜨리기가 약하면 그만큼 서둘러 치지 않으면 안됩니다.
참고로 齊村五郞 선생님의 겨눔세를 분석해보면 참으로 폭(=가슴)이 넓습니다. 등줄기의 뻗음과 검선이 뻗는 공간―그 세계가 넓습니다. 독립된 세계가 확립되어 있는 셈으로 거기에는 당연히 상대에게 미치는 기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검선이라는 것을 별개의 것으로 여기고 있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등줄기의 뻗음, 몸체의 뻗음, 전체를 포착한 검선의 자리매김(=검선이 위치할 자리매김)을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충실하면 상대의 공간을 공격하며, 침투하며, 전진하여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상대의 검선이 살아 있을 때에 치고 나가면 걸리고 맙니다. 상대가 충실한 기세를 유지하고 있는데도 무리하게 치고 나가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데……하고 겨눔세를 흐트러뜨려서는 좋지 않습니다. 그와 같은 경우, 고류에서는 그 상태로는 이길 수 없으므로 상대의 자세를 무너뜨리고 그 다음에 상대의 몸을 향해 들어간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상대의 겨눔세를 무너뜨리고서 쳐오는 검을 베어 떨어뜨리는 셈이지요. 그것을 단련하는 것입니다.
상대의 몸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상대와의 칼의 위치 싸움에서 이겨 유리한 상태를 확보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쳐서 떨어뜨리거나 스쳐넣거나 감거나 뻗치거나 하는 무너뜨리기 방법이 여러 가지 생겨났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그 자체가 충실하고 위력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처음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고류에서와 마찬가지로 현대 검도에서도 겨눔세의 충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흔히 시합에서 “시작”하자마자 즉시 코등이 싸움이 되는 경우가 자주 생겨나는데, 그것은 곧 겨눔세의 충실함이 어떠했는가 하는 점에 생각이 미치는 바가 많습니다. 이와 같이 쓸데없이 근거리에 접근하려는 것을 칠 수 없는 것도 기술 부족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5. 서로 공세를 취할 때는 순간을 놓칠 수 없다.
상대도 검선이 강하여 움직이지 않으면 어떻게 하여 무너뜨리고 나갈 것인가. 그때는 그보다 한단계 높은 차원의 공세를 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그 타격이 충실한가 어떤가가 중요합니다. 공세를 취하여 기회를 잡아도 타격 자체가 무르면 헛일입니다. 특히 높은 레벨이 되면 될수록 순간을 간파하여 포착할 필요가 절실합니다.
쌍방의 공세가 서로 높은 레벨로써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되면 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고단자 선생님들에게는 나가려 해도 나가지 못하고, 물러서려 해도 물러나지 못하는, 그래서 한번도 공격해보지 못하는 그런 시간, 그런 공간이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무엇이 그런 작용을 지속시키는 것인가. 일순간이라도 기합을 빼는 적이 없어서인가. 얼핏 보면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실은 그 선생님의 자세라든가, 주먹의 위치라든가, 겨눔세의 기위(氣位)라든가, 발의 공세 모양이라든가, 상대와의 칼의 위치 다툼이라든가 등등 보아야 할 곳은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경지의 선생님들조차도 공세를 당할 때가 있으므로 여기에는 역시 심오한 그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공세 다툼이 치열할수록 참된 자세의 유지나 손매무새를 바꾸지 않는 것 등 앞에서 말한 원리 원칙에 대한 충실도가 중요해집니다. 순간이라도 기합이 빠지면 패배입니다. 그러므로 몸의 자세가 무너지거나 검선이 떠오르거나 하여 내가 무너졌을 때 맞게 되면 설령 그것이 가벼워도 나의 마음을 울립니다. 패배인 것이지요. 앗, 하는 때가 패배라고 옛 사람들은 말합니다. 가벼워도 앗, 하는 순간에 맞았다면 패배, 반대로 아무리 강해도 무너뜨리지 못한 타격은 의미가 없습니다. 때리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한편, 상급의 사람에게 들어가서 하는 연습의 경우에는 “버리고 쳐라”입니다. 그때 맞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이것은 좋은 연습 방법이 아닙니다. 상대의 검선의 위로부터 깨고 들어가 타격을 낸다, 또는 공세를 취한다, 그렇게 하다가 맞았다고 하여 주저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상대의 중심을 무너뜨리고 쳐낼 수 있도록 채찍질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을 던져야 비로소 새로운 세계가 열려온다.
이리하여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훈련이나 연습을 통해 배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활기가 넘쳐나고, 끝까지 볼 수 있는 능력도 생겨납니다.
―이길 수 없는 상대라면 버리고 친다.
최선을 다하여 타격을 내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6. 멋진 공세를 보여주는 대호(大濠) 고교
어느 선생님이 요즘 고교생은 시합만 하고 훈련을 하고 있지 않는 게 아닌가,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는 현재 검도계의 일면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초는 그렇게 간단히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시간이 걸립니다. 눈앞의 승부에 구애되면 나쁜 버릇이 생깁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을 살릴 수 없고, 어느 시점에 가선 발전이 멈추고 비약은 불가능해집니다. 벽이 생겨 견딜 수 없게 됩니다. 중학생이라면 중학생의, 고교생이라면 고교생 나름의 멋진 검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학생들도 어떤 경우에든 부끄럽지 않은 자세, 겨눔세, 타격 방법 등등을 익혀주기를 바랍니다. 승부에 있어서의 전술은 연구하려면 끝이 없고, 다른 종목을 보아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흔들림없는 자세라든가 충실한 일타(一打)는 간단히 몸에 붙일 수 없습니다. 확실히 몸에 익혀두지 않으면 달아나 버립니다.
고교생에게서도 멋진 공세를 본 적이 있습니다. 복대(福大) 대호고교 시합이었는데, 보통은 이쯤에서 몸을 던져 치면 되겠다, 라고 생각한 때에 거기서 또 한번 상대와 칼을 맞춰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상대는 완패입니다.
가령 상대가 약간 열려 있을 경우 그대로 들어가면 오히려 들어간 쪽이 당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확실히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이제 당신은 당신의 칼을 회복시킬 수도, 중심으로 되돌릴 수도 없다.
라는 데까지 몰고 들어가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런 후에의 공격은 되받음을 당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공격 방식은 참으로 약한 검선, 약한 작용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위력적인 공세라 할 수 있습니다.
고류에서 상대 칼을 이긴 뒤 몸으로 이겨라,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공세에서 이기고 난 후 쳐라, 라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런데 고교생 수준에서도 이 같이 멋진 기술을 볼 수 있다니. 이것은 역시 지도자 및 그 주변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이겼다, 졌다 라는 것보다 그러한 습관을 몸에 붙이는 훈련―이렇게 해야 검도가 좋은 방향으로 나가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검선의 공세라는 것을 충분히 구사하고 있는 선수 중 한 사람이 미야자끼 선수입니다. 그는 상대의 칼의 작용을 항상 봉쇄하고 있습니다. 도법(刀法) 이론상으로 말하면 상대방에게 칠 수 있는 상태를 제공하지 않는다, 입니다. 이것이 바로 검선의 작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비판도 있습니다만, 대단히 이치에 맞다고 생각합니다.
7. 확실한 일타(一打)가 대전제
결국 모두가 완벽한 일타(一打)에 고심하고 있습니다. 상대와 대련하는 중에서도 그러하지만, 기본훈련 중에서도 스스로가 만족할 만한 일타는 잘 나오질 않습니다. 어딘가 하나가, 가령 손매무새가 조금이라도 느슨하기라도 하면 말입니다.
그러므로 기본훈련을 할 때 발, 혹은 몸으로 치는 것을 신경써야 하며 타격 후 몸의 뻗음이 변함없이 이어지도록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자세가 무너지면 반드시 검선도 느슨해진다, 라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완벽한 일타란 칼과 몸의 조화가 있는 타격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검체 일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꼭 동시라는 시간상의 개념만은 아닙니다. 조화로운 움직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타격을 확립시켜 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세’라는 것이 오면 대인(對人) 문제가 됩니다. 하지만 혼자서 연습할 때도 검선의 작용이 충실하지 않으면 상대가 있을 때 상대에 대하여 공세가 통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일타가 나올 수 있도록, 끊임없이 이에 대한 훈련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자세를 올바르게 하는 것이라든가, 손매무새를 바르게 하는 것이라든가, 내려치는 것만이 아니고 휘둘러올릴 때도 검선에 기를 넣을 수 있는가 등등 간과하기 쉬운 것들에 대해서 늘 마음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체로 훈련하는 가운데서도 자신을 점검하는 눈을 가질 수 있는 것―그렇게 할 때 훈련은 대단히 가치 있고 의미가 있는 것이 됩니다. 같은 타격을 두 번은 할 수 없기 때문에.
검선의 공세라는 테마는 넓고 깊은 내용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중요시되지 않으면 검도의 참된 맛을 느끼기 어렵지 않을까요
(8) 기(氣) 공세의 중요성과 타메의 효과
―야마다 히로노리(山田博德. 교사 8단) 지도
*타메(溜) : 타메란 타메루의 명사형으로 ‘모으다, 일을 쌓아두다, 저축하다, 겨누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상대가 자신을 공격하려고 할 때 그 동작이 거의 완전히 펼쳐질 때까지 나의 검선은 상대의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고 기다리는 그런 상태를 말하는 듯합니다. 예를 들어 연격할 때 치고 들어오는 쪽이 충분히 들어올 때까지 받아주는 사람은 칼날을 비켜주지 않고 중심을 겨누어 주는 그런 상태이겠지요. 우리나라 말로 대치할 적절한 용어를 알지 못해 그냥 ‘타메’라고 번역했습니다.
* 약력
1948년 구마모토 출생.
전일본 선수권대회 10회 출전. 73년 우승. 80년 2위. 72년, 79년에는 연속 3위의 성적을 남김.
1979년 일본에서 개최된 제4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에서 단체, 개인 동시에 우승.
현재 구마모토현 경찰 검도 수석 사범.
전일본 선수권대회에서 우승 경험이 있는 야마다 히로노리 씨는 ‘시합에서 강하다’는 이상으로 ‘공세가 강하다’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풍기고 있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강함을 가장 실감할 수 없는 사람은 바로 야마다 씨 본인이다. 자신과는 영원히 겨룰 일이 없기 때문이다.
―‘공세’란 상대가 느끼는 것. 내가 공세를 하고 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라고 야마다 씨는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공세란 설명하기 어려운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렵기 때문에 추구할 가치도 있는 것이다. 나름대로의 검도관을 갖고 있는 야마다 씨는 공세에 대한 자료도 풍부했다. <편집부>
1. 상단으로 인해 기(氣) 공세의 중요성을 눈뜨다
지금은 술자리에서까지 검도 이야기를 하지 마, 라는 풍조가 있습니다만, 예전에는 연회 자리가 되면 온통 검도 이야기로 꽃을 피웠습니다. 젓가락을 죽도에 비유하여 검선의 공방에 관한 이야기를 곧잘 하였으며, 구마모토 현 경찰에 들어간 무렵에는 이치가와 선생님, 그 뒤에는 무라야마 선생님, 이시하라 선생님 등에게서 다양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검풍이나 검선의 공격 방법은 선생님들마다 제각기 달랐습니다만, 공통적인 것은 역시 ‘위압감’이었습니다.
이치가와 선생님의 경우 내가 2단인가 3단일 때로서, 아직 감을 잘 잡지 못했습니다. 부드러운 검선에서 나오는 예리함과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이시하라 선생님은 몸이나 발의 운용을 동반한 강한 공세가 있었습니다.
또 추억이라면 지난 호에 호리구치 선생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만, 나도 그것은 인상에 남았습니다. 호리구치 선생님은 겉으로부터든, 안으로부터든 언제나 공세하셨으며, 특히 안으로부터의 공세 때는 왼발을 내어 공격하여 오신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 선생님으로부터 안으로부터의 공세에 대해 여러 가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만, 검도는 참으로 부드럽구나 하는 인상이 기억에 남습니다.
대조적으로 다마도시 선생님은 거의 움직이지도 않았을 뿐더러 절대로 중심을 벗어나는 일이 없었습니다. 검선의 위압감은 대단했습니다.
무라야마 선생님과는 옛날 유럽선수권대회 때 일본 검도형을 시연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때 검도형을 연습함에 있어 검선의 매서움을 느꼈습니다. 칼날이 닿는 거리부터 일족일도의 거리로 들어갈 때 그 검선의 움직임이 보는 사람까지 끌어당기는 것이었습니다. 검도형을 하면 힘의 차이가 역력히 나타나는구나 하고 실감했습니다. 죽도 검도의 훈련에서도 무라야마 선생님과 검선을 교차했을 때 전류가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살아 있는 검선이겠지요.
단지 중심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무엇인가 더하여진 것이 있었습니다. 야구의 투수 경우에도 공이 빠르기만 해서는 안 되고 스피드 외에 ‘무게’나 타자의 가슴 근처에서 뻗어나는 ‘예리함’이 보태어지지 않으면 위력이 나오질 않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검도에서도 똑바로 겨누기만 한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거기에 여러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만 비로소 ‘검선의 강함’이 생겨나는 것이라도 생각합니다. 나는 그 검선의 강함이란 그 사람의 검도의 힘, 강함 그 자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검선이라는 것은 죽도의 맨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맨끝의 앞에 있는 공간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검의 끝이 아니라 검선의 앞 말입니다. 그 보이지 않는 앞에까지 공세의 위력이 미치고 있는지 어떤지. 이쪽의 공세의 위력이 상대 죽도의 맨끝 부분에만 미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 몸 전체에까지 미치는 공세가 참된 강함이 아닐까요.
흔히 “(중단으로 겨눈) 상대의 죽도가 방해가 되어 앞으로 나갈 수 없다”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눈에 보이는 상태만을 말하는 것으로서, 실은 상대의 몸 전체로부터 나오는 기백, 압력에 지고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상단을 대할 때를 생각하면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쪽이 중단, 상대가 상단이라면 상대의 검선은 나의 중심을 향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압되어 나갈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더욱이 중단을 취하는 사람은 물리적으로 검선을 사용한 중심의 쟁탈을 할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상단에 대해서는 평정안(중단세의 일종)이나 카스미(霞)의 겨눔세를 취함으로써, 그다지 검선을 똑바로 상대의 목에 겨누는 공세는 하지 않습니다. 과연 이럴 때 어떻게 공세를 살려나갈 것인가,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실은 나 자신 옛날에 상대 때문에 매우 고생한 경험이 있습니다.
내가 전일본 선수권대회에 우승한 무렵은 상단의 전성시대였습니다. 경시청의 지바 선생, 세상을 떠난 가와조에 선생과 같은 분이 있었기 때문에 상단을 이기지 못하면 일본에서 정상에 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연구가 필요했습니다.
정석은 검선을 상대의 왼주먹에 겨누는 평정안입니다만, 나는 동료의 겨눔세에서 힌트를 얻어 당시에는 그다지 사용하지 않던 ‘카스미’의 겨눔세를 취했습니다. 이 자세를 취하면 머리도 손목도 동시에 방어가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효과를 발휘하여 나는 전일본선수권대회에서 이겨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 사이 상단을 취하는 상대들도 나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왼주먹이 많이 올라갔을 때 왼손목을 노리고 옵니다. 손이 많이 올라갔으므로 왼손목이라도 유효타가 되기 때문이지요.
이때부터 다시 이 ‘카스미’ 자세도 그만두고 다시 무엇이 없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생각해낸 것이 죽도를 크게 연 공세 방법입니다. ‘카스미’로 겨눌 때는 검선의 위치만은 상대의 중심선에 있었습니다만, 이번에는 검선도 상대의 중심에서 크게 벗어나게 했습니다. 무엇이라고 이름 지을까. 검선은 밑을 향하지 않기 때문에 하단은 아닙니다. 중단은 중단이나 검선을 크게 연 중단이라고 할까요. 어쨌든 머리를 텅 비워둔 겨눔세로 거리를 좁혀갑니다. 거기서 어떻게 공격하느냐 하면 상대가 머리를 노리고 치고 오면 상대의 왼허리를 칩니다. 왼허리를 칠 경우 동작이 일어남을 보이지 않고 나갈 수 있도록 크게 열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상단 측도 왼허리가 있다는 것을 알면, 설령 머리가 비어 있다 해도 무작정 치고 오지 못합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다시 거리를 좁혀 타격거리까지 들어가 한손이나 두손 찌름을 합니다. 열린 상태에서 찌르는 것이지요. 물론 반복하여 훈련하였으며, 찌를 수 있는 자신이 없으면 그런 자세는 취할 수 없었겠지요.
상대 대 중단―서로 검선을 교차하여 겨누는 일은 없어도 거기에는 확실하게 서로의 공세가 있습니다. 서로 나름대로 죽도에서 무엇인가를 느낍니다. 느끼지 않으면 상대도 텅빈 머리로 곧장 내리쳐 올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는 나의 검선이 엉뚱한 곳을 향하고 있어도 ‘허리로 온다’, ‘목으로 온다’, ‘손목으로 온다’ 라고 느끼고 그것이 두려움으로 연결됩니다. 공격하는 쪽은 역시 ‘허리고 간다’, ‘찌르기로 간다’, ‘손목으로 간다’ 라는 기분으로 공세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기분이 열린 자세의 검선을 통해 커브를 그리며 상대의 기분의 중심에 닿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반대로 가령 검선이 상대의 목 부위를 지그시 향하고 있다 해도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공세라는 것은 자신이 ‘공세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내가 공세할 생각으로 무엇인가 동작을 일으켰다 해도 상대가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으면 그것은 이미 공세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받는 쪽이 ‘공세 당하고 있다’라고 느낄 때 비로소 참된 공세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떻든 상대의 기분에 호소해 가는 것이 공세라면 그것을 위해 제일 필요한 것은 역시 몸 전체에서 나오는 기백이 아닐까 합니다. 이것이 상단에 대해 연구를 하는 중에 내가 통절하게 느낀 점입니다.
2. 타메를 이해하면 검선도, 공세도 강화된다.
공세에서는 기백도 필요하지만, 중단세에서 검선을 서로 교차하고 있는 이상 중심 빼앗기는 더욱 중요하고 그것을 위한 검선의 공세는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중에는 검선이 들떠 가벼운 공세도 있습니다. 요즘 고교생들과 연습해보면 검선의 공세에 대한 연구를 찾아보기 거의 힘듭니다. 심지어는 방어하기 위해 죽도를 쥐고 있는 듯한 검풍과 맞부딪치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검도는 서로 겨눈 상태에서 검선을 약간 접해보면 대개 상대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칼을 겨누어보지 않으면 상대 수준을 알 수 없다는 말도 성립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보고 있으면 잘 된 것 같은 제자라도 막상 겨누어보면 전혀 검선에 압박감을 느낄 수 없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아이들이나 고교생들에게 가르칠 경우 입만으로 지도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칼을 겨누고 결점을 찾아내어 모범을 보이면서 교정하는 그런 지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나는 도장에서 주1회 소녀들 검도지도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거기서도 검선에 관해 여러 가지로 지도하고 있습니다.
목 부위를 공세하여 중심을 빼앗아가면 머리, 손목, 찌름 등을 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기본이고, “상대가 공격해와도 중심을 벗어나지 마라”라는 것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수비할 때도 공격하라.
라는 것입니다. 상대가 공격해와도 최대한 손목 부위를 움직이지 말 것, 겉으로부터이든, 안으로부터이든 어떻게 하든 위로부터 누를 것, 그때는 상대의 코등이 부위를 누르는 듯한 의식을 갖고 중심을 빼앗을 것, 나아가 코등이 부위를 누르는 것만이 아니라 몸도 동시에 사용하면 효과가 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코등이 부위를 누르라’라고 하는 것은 ‘중심을 뺏어라’라는 것보다 구체적이고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초심자나 아이들에게 전달하기 쉽습니다. 이외에도 겉으로부터 누를 때는 상대의 오른 주먹을 누르는 기분으로, 또 안으로부터 누를 때는 왼주먹을 누르는 기분으로! 하는 표현을 쓰면 정확하게 검선이 중심에 올 수 있게 되며, 왼주먹을 올리는 것을 고치는 교정 방법도 됩니다. 왼주먹이 올라가지 않으면 즉각 다음 기술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 모임에서는 목검을 사용해 매번 검도형을 연습시키고 있습니다. 최근은 목검으로 ‘응하는 기술’ 연습을 30분 정도 하고 있습니다. 머리스쳐 머리치기나 손목스쳐올려 머리치기 등입니다. 여기서 중요시하는 것은 칼이 거의 나에게 닿았을 때까지 나의 검선을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하는 방법은 목검을 쥐고 중단으로 겨누고 “얍!” 하는 기합을 서로 지릅니다. 치고 들어가는 쪽은 ‘지금부터 들어간다’라는 기분으로 기합을 지르고, 받아주는 쪽은 기세가 아직 정리되지 않았으면 대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랫배에 숨을 멈추고 준비가 되면 “얍!”하고 응답합니다.
그런 다음 가령 ‘머리받아 허리치기’라면 치고 들어가는 쪽은 머리를 치고 갑니다. 그때 받아주는 쪽이 중요시해야 할 것은 ‘왔다’고 생각하여 즉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최후까지 중단세를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왔다고 생각해 즉각 응하게 되면 그 시점에서 겨눔세는 무너지고 맙니다. 시합에서 머리를 스쳐올리는 타이밍이 너무 빨라 되받는 기회를 놓치고 머리를 맞는 경우도 이 같은 것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후까지 상대의 칼의 코스를 보고 겨눔세를 무너뜨리지 않는, 그리하여 그런 가운데 어떻게 응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할 것인가, 하는 훈련을 하다 보면 무엇보다도 ‘타메’를 배울 수 있습니다.
타메를 생기게 하기 위해서는 집중력이나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기분이 움직이면 헛일이고, 숨을 마신다거나 해도 안 되므로 호흡법에도 자연히 신경 써야 할 것입니다. 숨을 마시는 순간은 움직이지 못합니다. 거착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반대로 칠 때는 ‘호흡이 중지된 상태거나 토해내는’ 순간입니다. 이것이 바로 호흡법입니다.
기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훈련시키고 있는 것은 ‘머리에 대하여 되받는 기술’, ‘손목에 대하여 되받는 기술’, ‘머리에 대하여 스쳐올리는 기술’, ‘손목에 대하여 스쳐올리는 기술’, ‘손목 빼어 머리치기’, ‘머리 빼어 허리치기’ 등입니다. ‘머리 빼어 머리치기’는 너무 고도의 것이어서 시키지 않습니다만, 아무튼 이런 기술들을 익혀두면 자신감이 생기고 그 자신감이 겨눔세에서도, 공세에서도 생겨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 오라.” “언제든지 오라.” 이런 마음가짐이 생기게 되며, “오지 않으면 내 쪽에서 간다.” 라는 마음 말입니다. 들어갈 때는 언제라도 타격 부위를 노리는 마음자세와 겨눔세를 유지합니다. 이것이 전체적인 공격 기세로 연결되어가는 것입니다.
오면 치고, 오지 않아도 치기 때문에 ‘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상대도 괴롭게 됩니다. 상대가 괴로운 것은 결과적으로 나의 공세가 먹히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겨눔세나 공세에 한치의 틈도 없이 상대를 압도하는 상태가 되면 옛날 내가 무라야마 선생님과의 연습에서 경험한바 있는, 검선에서 전류를 느끼는 듯한 공세의 위력이 생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전류가 흐르는 듯한 공세도, 조금이라도 지키려거나 막으려고 하는 순간에는 전기의 흐름이 멈추고 말 것입니다. 팽팽하던 것이 도중에 끊어지고 문자 그대로 기가 빠지고 맙니다. 하물며 왼손을 중심에서 벗어나게 하여 방어하는 것 따위는 이미 완전히 정전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전기의 흐름을 악착같이 끊지 않으려는 의식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상대가 왔을 때, 가령 응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고 코등이 부위를 누릅니다. ‘그렇게 하면 절대 맞지 않는다.’라는 정도의 자신감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설령 맞아도 상관없습니다. 맞았다면 또 연구하면 됩니다. 그것을 위해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연습을 하면 자신감이 생기고, 다시 “자, 오라. 오지 않으면 내가 간다.”라는 마음으로 공세를 취합니다. 이러한 자신감을 가진 공세라야 비로소 기분이 밖으로 나오고, 위압감이 있는 공세로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목검을 사용한 이 훈련은 나 자신의 연구에도 많은 도움을 줍니다만, 초등학교 4, 5학년 정도의 아이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 모임의 훈련은 1주에 1회로써, 훈련도 5분이나 10분밖엔 시키지 않습니다. 그래도 시합에 나가면 꽉 찬 타메가 있는 공세나 기술을 보여줍니다. 그때는 형(形)의 훈련이 살아 있는 듯한 기분에 잠깁니다. 대개 검도의 본(本)에서도 똑같이 배울 수 있으므로 검선의 공세에 대한 연구 재료는 아직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9) 죽도의 호(鎬)와 응하는 기술
―야노 히로시(矢野博志. 범사 8단. 국사관대학 교수) 지도
전월호에 이어 야노 선생에게 지도를 부탁했다. “칼과 마찬가지로 죽도에도 호가 있습니다. 그것을 잘 다루면 응하는 기술은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라고 야노 씨는 말한다.
죽도를 칼과 같이 사용하라고 흔히 말하지만, 그 모양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실제로 어떻게 겨누면 좋은가를 알기 어렵다는 소리도 적지 않다. 그러나 야노 씨의 이론은 그 어려움을 ‘호’라는 접점을 이용하여 초보자라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명쾌히 해소하고 있다. 도대체 죽도의 호란 무엇인가. 그리고 사용 방법은? 전월호에서 야노 씨가 설명한 검선의 공세를 살리는 방법은 실은 이 호를 사용한 응하는 기술을 알게 됨으로써 다시 설득력이 되살아난다. <편집부>
1. 죽도는 대가 네쪽이다. 위가 등, 밑이 날, 그리고 좌우가 호(鎬)
전월호에서는 중심을 뺏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최근 중심을 벗어나면서까지 수비하려는, 그리고 피하려는 검도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 원인의 하나로 응하는 기술을 낼 수 없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즉, 검도를 일방통행식으로 한다는 것이지요. 한쪽이 치고 나가면 다른 한쪽은 단지 수비만 합니다. 지키기만 해서는 이길 수 없으므로 이번에는 다른 쪽에서 치고 나옵니다. 그러면 이쪽에서 수비합니다. 시카께 기술이 주체가 되어 공격측과 수비측이 확실하게 나누어지는, 그리하여 수비에 실수한 쪽이 패배하는 그런 검도가 되고 마는 것이지요. 마치 펜싱과 같습니다. 확실히 최근에는 학생 검도가 발전하여 자세 등 여러 가지가 많이 좋아졌습니다만, (공격과 수비가 확실히 구분되는) 이런 면에서는 아직 수준이 낮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래 검도에는 ‘받기’라든가 ‘수비’는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은 ‘사바끼(=운용)’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치고 나오면 발 운용(=발 사바끼), 몸 운용, 또는 칼 운용 등을 통해 되받아 응합니다. 응하는 기술을 알면 “먼저 기술을 내는 쪽이 패배다.” 라는 말의 깊은 맛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세를 무너뜨려가면서까지 수비를 견고히 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심 빼앗기, 검선의 공방이라는 것에 전념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검도 고유의 맛이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응하는 기술을 능숙하게 익힐 수 있는가? 나는 그것을 위해서는 먼저 죽도의 호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워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호(鎬)란 칼의 등과 칼날의 경계를 이루는 선을 말합니다. 당연히 호는 칼날 부위보다 두텁고, 그 두터움이 있기 때문에 치고 들어오는 상대의 칼에 응하여 되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검도의 형 소도본에서도 1본은 왼쪽 호로써 받아흘리고 정면을 칩니다. 2본은 오른쪽 호로 받아흘리고 정면을 칩니다. 3본은 왼쪽 호로써 스쳐 그대로 왼쪽 호로 선도의 코등이 부위까지 밀고 들어갑니다. 호의 사용법은 이렇듯 잘 나타나 있습니다. 대도본에서의 스쳐올리기 기술이나 되받기 기술도 모두 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검도가 도법에 기초하는 이상, 그것을 죽도에서도 살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죽도에는 칼날이 없기 때문에 칼과는 전혀 별개다, 라고 생각해서는 호에 대한 개념을 익힐 수 없습니다. 죽도에도 분명 칼날이 있고 호가 있습니다. 아이들이나 초보자들에게 검도를 가르칠 때 먼저 죽도의 등줄이 있는 쪽이 칼등, 그 반대편이 칼날이라는 것을 분명히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다. 칼날 줄기를 바르게 하여 치지 않으면 유효 타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려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제로 칼이나 목검을 이용하여 설명하면서 “자, 칼이나 목검의 양측면에 있는 불룩 튀어나온 부분은 무엇입니까?” 라는 식으로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호에 대한 설명을 하면 됩니다. 간단합니다. 죽도로 말하면 네 조각의 대의 하나하나를 들어서 줄이 있는 쪽이 등, 그 반대쪽이 칼날, 양 옆의 두 쪽이 호다, 라고 가르치면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죽도를 겨누었을 때 자신을 기준으로 왼쪽이 겉 호, 오른쪽이 안 호라고 말해주면 됩니다. “스쳐올리기 기술이나 응하는 기술에서는 호를 사용하면 좋아요. 그 사용법은 이러합니다.” 라고 설명하면 아이들도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치는 가르치지 않고 단지 “스쳐올리기는 이렇게, 받아치기는 이렇게……” 하는 식으로 시범만 보여서는 배우는 사람이 그 움직임을 멋도 모르고 흉내만 내어 제 멋대로 치기 쉽습니다. 그 결과 도법을 무시한, 단지 봉을 다루는 듯한 기술이 나오고 맙니다. 예를 들어 머리 받아 허리치기에서 되받을 때에 보통 겉 호를 사용하면 되는 것을 지금은 손목 돌리는 것이 힘들어서인지 안 호를 사용하여 받는 것을 곧잘 볼 수 있습니다.
해보면 아시겠지만 그렇게 하여 허리를 쳤을 때는 (칼날) 옆으로 치기가 되는 것은 당연하고, 타격 후 그것을 얼버무리기 위해 오른손 하나로 빼는 듯한 타격이 나옵니다. 무릇 칼이라면 표리(表裏)(=겉과 안) 어느 쪽의 호를 사용하면 되받기가 쉬운가를 저절로 알게 되며, 머리로 올바른 호의 사용 방법을 이해하여 두면 그런 허리치기는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국사관 대학의 검도부원에게는 훈련 뒤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키고 있습니다. 거울 앞에서 상대가 치고 나온 것을 상정하고 호로써 되받거나 스쳐올리기를 하는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입니다. 그때 호를 이해하고 있으면 되받거나 스쳐올리기를 하는 순간을 어디서 어떤 각도로 해야 하는가를 미세하게 이미지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 깨달음이 빨라지겠지요.
훈련할 때, 받아주는 4학년생들은 순발력으로 뛰어들어오는 1학년생들의 기술을 팍팍, 보기 좋게 되받습니다. 그 중에는 “지금까지 이미지만큼 제대로 받아친 것이 한번도 없었다.”라고 말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여기까지 이해할 수 있는 것만도 “즐겁다”라고 덧붙입니다.
나는 최소한 이 정도 수준까지 가지 않으면 검도는 헛것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재빠른 ‘시카께’ 기술도 좋으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빠르게 친다는 것은 무리한 일입니다. 공세하여 상대가 괴로워져 나올 때를 응하여 친다, 라는 것도 있는 것입니다. 그때 필요한 것이 이 호의 응용입니다.
몸만으로 깨닫는 기술은 나이를 먹고 육체가 쇠퇴했을 때 사용할 수 없지만, 이치를 안 기술은 나이에 맞게 언제까지도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지도자는 이 이치를 가르치는 것이 임무입니다.
2. 호를 사용한 스쳐올리기
응하는 기술의 호 사용 방법입니다. 아까 말했듯 네 조각의 대 가운데 좌우 2면을 의식하면 됩니다. 겉으로부터 머리 스쳐올려 머리를 치는 경우는 머리로 온 상대 죽도의 겉 호를 나의 겉 호로 스쳐올립니다. 스쳐올리기는 ‘반원을 그리듯이’가 기본입니다. 그때의 포인트는 호와 호, 즉 대나무의 면과 면이 서로 스치는 것입니다. 검도형에서의 ‘스쳐넣기’라든가 ‘스쳐흘리기’라는 표현에서도 보듯이 이 경우에도 글자 그대로 ‘스쳐올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호와 호가 서로 잡한 선의 길이는 대략 10cm나 15cm 정도입니다. 요컨대 한 점에서 튀기는 것과는 다릅니다.
한 점에서 팍 하고 튀기는 것은 ‘쳐떨어뜨리는 기술’입니다. 그 경우는 호가 아니라 칼날을 사용합니다. 또 ‘되받기 기술’은 칼인 경우는 호를 호로써 응합니다만, 죽도인 경우는 정확히 죽도의 홈과 홈이 접촉하는 기분이겠지요. 겉으로부터의 머리 받아 허리치기이면 나의 겉 호와 칼날부가 교차하는(대와 대 사이에 생긴) 홈으로 상대의 홈 근처를 노리고 되받습니다. 칼이 그러하듯이 검도에서도 기술에 따라 각각 죽도의 사용법이 다른 것입니다.
스쳐올리는 타이밍은 가능한 한 상대를 끌어당겨 스쳐올리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손목 스쳐올려 손목치기’라면 상대가 “쳤다”는 감촉을 갖기 바로 직전까지 끌어붙이면 상대도 팔을 끝까지 뻗고 있으므로 비킬 수가 없습니다. 빠르게 움직이면 상대도 반응하여 기술이 먹히기 어렵게 됩니다. 10단계로 나타내면 4나 5 시점에서는 비킬 수 있어도 7, 8, 9까지 올 때까지 참으면 상대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 순간 팍, 하고 스쳐올리는 것이 기술로서, 가장 고도의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위 ‘한 치까지 지켜보기’입니다.
이것이 ‘스쳐올리기’의 타이밍입니다만, 자신의 죽도 어느 부분으로 스쳐올리는가 하는 것은 타격 부위(죽도의 타격 부위)나 거리와도 연관되므로 정확히 “여기다”라고 말하기는 곤란합니다. ‘손목 스쳐올려 손목치기’는 죽도의 중간 정도나 아랫부분에 가까운 쪽입니다만, ‘머리 스쳐올려 머리치기’는 죽도의 끝쪽으로 스쳐올리는 것이 치기 쉽습니다. 하지만 역시 상대가 일족일도 거리에서 치고 올 때와 가까운 거리에서 치고 올 때는 서로 닿는 부위가 다릅니다. 요컨대 호를 사용한 스쳐올리기 기술은 자신의 죽도의 어느 부분을 사용해도 좋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머리 스쳐올려 머리치기의 경우, 모범은 검도형 대도 5본에 있습니다. 선도는 후도의 턱까지 베는 기분으로 쳐내려 옵니다. 이에 대해 후도는 선도의 칼을 머리 바로 위까지 끌어당겨 턱까지 베려고 하는 선도의 칼을 역으로 머리부터 턱까지 거리만큼 스쳐올리는 것입니다. 그 거리는 아까 말했듯이 약 15cm.
검도형에서 흔히 설명되는 거리, 자세, 완급강약, 호흡법……. 이런 것들도 중요하지만 도법이기 때문에 호의 사용법이라는 것도 더 설명되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죽도 검도에도 연결되는 것이 아닐까요.
호를 사용해 되받거나 스쳐올리기를 하는 경우, 죽도의 좌우 대는 상하의 대 사이로 파고 듭니다. 그리고 타격하면 이번에는 상하의 대가 좌우의 대 사이로 파고 듭니다. 즉 죽도가 네 개의 대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도법의 호의 효용을 의식시키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고 내게는 생각되는 것입니다. 2차 대전 후 한때 검도가 공공장소에서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고육책으로 죽도 경기를 고안해 냈습니다. 어디까지나 스포츠로서의 부흥을 노린 것이었습니다만, 거기서 사용한 죽도는 대를 16조각으로 하여 가죽으로 둥글게 감싼 ‘포대 죽도’였습니다. 칼이나 호의 관념이 없는 도구로 한 것에서 경기성을 꾀했다고 하면, 반대로 네 조각의 죽도야말로 칼의 엑기스가 고여든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3. 의식하여 사용하면 자신의 호가 크게 보인다.
나는 매년 1월에 행하여지는 가쓰우라의 지도자 연수회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1994년 당시 생존하셨던 고모리 선생님이 “야노 군은 호를 잘 쓰고 있네.”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머리로 오는 상대의 죽도를 안으로부터 팡 하고 스쳐올려 손목을 향해 치고 들어갔는데, 그것을 선생님께서 보신 것입니다. 그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새는 그 호를 사용하는 것이 지도자들에게 부족해요.”
강습할 때도 “당신들은 이제 조금씩 도법을 배워 호를 연구하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이상 상세한 것은 말씀하시지 않았지만 나는 지도자이기 때문에 스스로 연구하시오, 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호를 사용하면 검선으로 중심을 지그시 공세할 수 있습니다. 그 묘의를 터득하면 검도의 맛은 더욱 깊어집니다. 상대가 오면 호를 운영하여 치면 됩니다. 대부분은 호의 폭만큼 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손목 부위를 움직여 달칵달칵 할 필요도 없어집니다. 코등이 싸움에서도 호 사용법을 머리에 넣어두면 더 깨끗한 모양이 됩니다. 코등이 싸움에서 기술을 낼 수 없게 되면 호와 호를 딱 붙여서 그대로 쑥 하고 물러나면 깨끗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죽도를 안으로 감기어도 안 호를 사용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호와 호를 서로 스치면서 물러나 보십시오. 느낌이 다를 것입니다. 호와 호를 서로 깎습니다. 보는 눈에도 깨끗하고, 기술을 낼 수 없으면 곧 호를 사용해 물러나려는 의식도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공세에서도 마찬가지로 가능하다고 봅니다. 지난 호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중심 빼앗기나 공격해 들어갈 경우, 겉 호 안 호를 의식하여 사용하면 좋습니다. 상대의 죽도를 호를 사용해 누르고 중심을 빼앗는 것. 죽도 겉으로 상대의 호를 느끼면서 스쳐넣듯이 들어가는 것. ‘옆으로 치기’에서도 호로써 칩니다. 모두 호인 것입니다.
다음은 오노 선생님에게서 들은 것입니다만, 다카노 선생님도 호의 효과를 살린 기술을 연구하셨다고 합니다. 그 하나가 손목 스쳐올려 손목치기로서, 다카노 선생님은 상대의 손목을 스쳐올림과 동시에 칼날을 상대의 손목으로 향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응하자마자 즉시 자신의 호를 상대 죽도에 미끄러지듯이 하면서 손목을 쳤다, 고 합니다. 기술의 분류로 말하면 스쳐올려 손목치기이겠으나, 지금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손목 스쳐올려 손목치기는 반원을 그리듯이 스쳐올리는 반면, 다카노 선생님의 스쳐올려 손목치기는 스쳐올린 때에 이미 칼날이 상대 손목을 향하고 있어, 거기서 그대로 되돌려 누르듯 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빠릅니다.
아까 말씀드린 안 호로 되받는 머리 받아 허리치기가 호의 사용을 무시한 기술이라면 이 손목 스쳐올려 손목치기는 호를 가장 잘 이용한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호를 특별히 의식하게 된 것은 8단이 된 무렵부터입니다. 의식하여 연습을 계속해가다 보니 이상하게도 나의 호가 크게 보여오는 것입니다. 호의 폭이 넓어보이는 것이지요. 물론 착각이겠지만 그런 관념으로 호라는 것을 보고 있으면 그것이 눈에 두드러지는 것이 아닐까요. 크게 보이면 운용하기도 편합니다. 특히 스쳐올리기 등은 나의 주특기입니다.(웃음)
스피드 있는 학생이 도약해 들어와도 팡 하고 응할 수 있습니다. 흡사 학생들에게 “내게는 호가 이렇게 크게 보인다” 라고 말해도 믿지 않겠지만(웃음), 그래도 호를 이용한다는 의식은 갖게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지도자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지도자의 자리에 설 때가 반드시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때까지 연구를 계속 높여가면 다시 기술에도 깊이가 더해지겠지요.
다카노 선생님의 기술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호를 이용하는 공격 방법에 폭이 생겼습니다. 놀라운 효과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번 회는 호를 사용하여 응하는 기술을 중심으로 말씀드렸습니다만, 이것이 발전해 가면 호를 사용하여 공격하는 방법도 다채롭게 되지 않을까요. 다만, 그것은 각자가 연구해가야 할 일. 호를 사용하는 방법의 미묘함은 각자 훈련을 하는 가운데서 터득해야 합니다. 여러 가지 생각하면서 연습을 거듭하면 검도가 대단히 즐겁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