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爲校院諸生答地主

작성자이상훈|작성시간26.06.23|조회수15 목록 댓글 0

爲校院諸生答地主

原文

伏以民等生長遐鄕蠢騃無識其不足齒數於人久矣迺者閤下暫輟淸班來莅弊邑下車之初變通民瘼約己裕民猶恐不及民情感悅如旱得雨

今者又以興學設敎之意勸諭諸生諄悉懇惻民等展讀再三欣踊恍惚有若披雲霧而覩靑天也顧念弊邑有何好運氣而見此百許年來所未有之盛事耶幸甚幸甚

民等因竊窺其旨意之所歸蓋深以俗學之奪志爲憫利欲之溺人爲憂而世敎驅人慾浪滔天非一葦可抗

則固欲兩存其間交致其功一以爲循例應俗之資一以爲學問踐履之實要使學者不失其內外輕重之分其可謂本末兼擧曲盡無餘欠矣

所可慮者民等擿埴迷塗眩東錯西其於所謂學問路徑尤所昧昧忽聞大君子修己治人之說殆不省其爲何語

誠恐不能自拔於流俗以答盛意之萬一也至於贊畫科條尤非民等淺陋所敢與知惟閤下參酌時宜明示條貫以終幸焉

民等無任蘄望祝願之至

恒齋先生文集卷之二

역주

爲校院諸生答地主(위교원제생답지주)

교원(校院)의 여러 생도들이 지방관에게 답한 글. 공문서적 서간 형식.

伏以(복이)

상투적인 서두 표현으로, ‘삼가 생각건대라는 겸양적 개시어.

民等(민등)

자신들을 낮추어 이르는 표현으로 저희들’.

遐鄕(하향)

먼 시골, 변방 지역.

蠢騃無識(준애무식)

어리석고 무지함. ‘은 둔함, ‘는 어리석음을 의미.

不齒數於人(불치수어인)

사람의 수에 끼지 못할 정도로 하찮다는 겸양 표현.

閤下(합하)

지방관을 높여 부르는 존칭.

暫輟淸班(잠철청반)

청요직(淸要職)을 잠시 그만두다.

下車(하거)

지방관이 부임함을 의미하는 관용어.

民瘼(민막)

백성의 고통과 폐단.

約己裕民(약기유민)

자신을 절제하여 백성을 넉넉하게 함.

興學設敎(흥학설교)

교육을 일으키고 교화를 세움.

諄悉懇惻(순실간측)

간곡하고 정성스럽고 측은한 태도.

披雲霧而覩靑天(피운무이도청천)

구름과 안개를 걷고 맑은 하늘을 봄. 혼란이 해소됨을 비유.

本末兼擧(본말겸거)

근본과 말단을 함께 고려함.

擿埴迷塗(적집미도)

눈먼 사람이 땅을 더듬으며 길을 잃음. 심각한 무지 상태 비유.

眩東錯西(현동착서)

동서조차 분간하지 못함.

學問路徑(학문로경)

학문을 하는 올바른 방법과 경로.

修己治人(수기치인)

자신을 닦고 남을 다스림. 유학의 핵심 정치·윤리 개념.

贊畫科條(찬화과조)

정책과 규범을 마련하는 일. ‘贊畫는 계획하고 보좌함.

參酌時宜(참작시의)

시대와 상황에 맞게 참작함.

條貫(조관)

체계와 규정의 일관된 줄기.

蘄望祝願(기망축원)

간절히 바라고 축원함.

번역문

교학(校學)과 원생(院生)들이 지방관에게 올리는 답서

저희들은 먼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난 무지몽매한 사람들로,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 언급될 가치조차 부족한 존재입니다. 그런데도 이제 존귀하신 어른께서 한때 중앙의 직책을 내려놓고 우리 고을에 부임하시어, 부임 초기부터 백성의 고통을 바로잡고 자신을 검약하게 하여 백성을 넉넉히 하려 하시니, 그 마음이 미치지 못할까 두려울 정도입니다. 이에 백성들의 마음이 감격하여 마치 가뭄 끝에 단비를 만난 듯합니다.

더구나 이번에는 학문을 일으키고 교육을 세우려는 뜻으로 여러 학생들에게 간곡히 권면하신 글을 내려 주시니, 저희가 거듭 읽을수록 감격과 환희가 일어나 마치 짙은 구름이 걷히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듯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고을에 어찌 이런 좋은 운이 있어, 지난 백여 년 동안 없었던 큰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겠습니까. 참으로 다행이며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희는 그 말씀의 깊은 뜻을 헤아려 보건대, 대체로 속된 학문이 뜻을 빼앗는 것을 걱정하고, 이욕이 사람을 빠뜨리는 것을 근심하신 것이며, 세상의 교화가 사람을 몰아가고 욕망의 물결이 하늘을 뒤덮는 상황에서 한 사람의 힘으로 막기 어려움을 통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편으로는 현실의 질서와 학문을 함께 존립시키되, 각기 그 효용을 살려 하나는 세속적 규범을 따르는 실제적 도구로 삼고, 다른 하나는 학문적 실천의 근본으로 삼아, 배우는 자로 하여금 내면과 외면, 경중의 구별을 잃지 않게 하려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본말을 함께 갖추어 빠짐없이 온전히 하려는 깊은 뜻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우려하는 바는, 길을 잃고 어둠 속에서 방향을 헤매듯 학문의 바른 경로를 전혀 알지 못하는 처지라는 점입니다. 동쪽과 서쪽조차 분별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문득 군자의 수기치인(修己治人)의 가르침을 듣고도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참으로 두려운 것은, 저희가 속된 풍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 크신 뜻에 만분의 일도 보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제도와 규범을 마련하는 일은 저희와 같은 얕은 학식으로는 감히 논할 바가 아니오니, 오직 어른께서 시대의 형편을 참작하시어 조리 있게 밝혀 주시면 더없이 감사하겠습니다.

저희는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랄 뿐입니다.

附註

이 글은 항재(恒齋) 이숭일(李嵩逸, 16311698)의 문집 중 하나로, 지방 교학기관의 생도들이 수령에게 올린 답서 형식의 공문서이다. 당시 조선 후기 향촌 사회에서 지방관은 단순한 행정 책임자를 넘어 교육과 교화의 주체로 기능하였으며, 그에 대한 유학적 예의와 존숭의 언어가 서신 전반에 강하게 드러난다.

본 서신은 수령이 흥학(興學)과 교화(敎化)”를 강조한 데 대해 생도들이 감격과 공경을 표하는 구조로 되어 있으며, 동시에 당시 향촌 지식인의 현실 인식즉 학문이 세속적 욕망에 의해 왜곡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반영한다.

특히 학문 경로에 대한 미혹”, “수기치인에 대한 이해 부족등의 표현은 조선 후기 지방 유생들의 자기 인식 수준과 학문적 불안감을 잘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감상문이 아니라, 향촌 교육정책과 유교적 교화 체계의 실제 작동 양상을 보여주는 사료적 가치도 지닌다.

저자인 이숭일은 영남학파 계열의 유학자로서, 성리학적 수양론과 향촌 교화론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며, 이러한 공문서적 서신에서도 그의 실천적 유학 성향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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