送趙子冕赴省試序
【原文】
趙君子冕今年再捷鄕解,將赴省試。臨行,故人親戚相與酌酒而送之。酒數行,余起而言曰:
夫人情之所欲,莫科擧若也。自幼至老,勞心竭思,僥倖於萬一,而卒不得遂其願者,不知其幾。今趙君獨能高見遠識,不屑屑於世俗科臼中,其爲學也,必以博通世務爲先;爲文也,亦以多積博發爲主,盡人事之所當爲而已。至於得喪屈伸,一付之於天,而其收效見功,反有過於專其業者,其故何也?
蓋天下之事,有本有末,有源有流。治其本源者,雖若迂緩,而其效日著;治其末流者,雖若切近,而其效日亡。趙君之於科業,其可謂治其本源者乎?
雖然,吾有一說,請爲君道之。夫士之生於世也,其所當爲者至重且大,不可安於小成而怠於進修之方也。何謂至重且大?明道義、黜名利而已。道義爲主則名利退聽,名利爲主則道義絶息。二者交戰於方寸之間,而不知所趣舍,則道義之公卒無以勝夫名利之私,而天理存亡之幾判焉。斯豈非所當審察而明辨處乎?
況今子冕旣挾其有,爭能於名利之府,馳逐於衆楚之中,尤不可不審其取舍也。夫事物當前,各有當然之理,循其理之自然,而無邪思妄念之介乎其間,則道義常爲吾用而名利無所容矣。苟爲不然,不顧義理之當否,而汲汲於利害之際,規規於得失之間,則名利爲主而道義自此息矣。道義旣息,則悖倫逆理,亦何所不至?
毫釐之差,千里之謬,可不懼哉!子冕平生讀古書談仁義,其於義利公私之辨,必能講之熟而擇之精,又何患於取舍之不審乎?雖然,人心至危,存亡之易,而保守之難,人鬼之關判於是,聖狂之分由於是,豈可謂吾知已審而忽於警戒之道哉?
玆以明道義審取舍之說,反復焉。子冕念乎哉?其在洛下,亦願以是說諗諸同志,或有因此而有所發焉,則尤幸之幸也。
恒齋先生文集卷之五
【역주】
조자면(趙子冕)의 성시 응시를 전송하며 지은 서문
鄕解(향해)
향시(鄕試) 합격.
省試(성시)
조선 과거 제도에서 중앙 시험에 해당하는 단계.
科擧(과거)
조선의 관료 선발 시험 제도.
科臼(과구)
과거 공부의 틀, 관습화된 시험 공부 방식.
博通世務(박통세무)
세상 일을 널리 통달함.
博發(박발)
다양한 재료와 경험에서 글을 널리 전개함.
得喪屈伸(득상굴신)
얻음과 잃음, 성취와 좌절.
本末(본말)
근본과 말단.
源流(원류)
근원과 흐름.
明道義黜名利(명도의출명리)
도의를 밝히고 명리를 배척함.
方寸(방촌)
마음속.
道義之公 / 名利之私(도의지공 / 명리지사)
공적인 도의와 사적인 명리의 대립.
天理存亡(천리존망)
천리(天理)의 존재와 소멸.
名利之府(명리지부)
명리(名利)가 집중되는 곳, 즉 과거장·출세 구조.
衆楚之中(중초지중)
수많은 경쟁자 속, 치열한 경쟁 세계.
毫釐之差 千里之謬(호리지차 천리지류)
작은 차이가 큰 오류를 낳음.
人心至危(인심지위)
인심은 매우 위태롭다는 경구.
人鬼之關(인귀지관)
사람과 귀신을 가르는 경계.
聖狂之分(성광지분)
성인과 미치광이를 가르는 분기점.
諗諸同志(심제동지)
동지들에게 알리고 권함.
【번역문】
조자면이 금년에 다시 향시(鄕試)에 합격하여 성시(省試)에 나아가게 되었다. 떠나는 날, 친구와 친척들이 함께 술을 마시며 전송하였다. 몇 잔 술이 오간 뒤 내가 일어나 말하였다.
사람의 마음이 바라는 바 중에서 과거시험만큼 절실한 것이 없다.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마음과 뜻을 다해 애쓰지만, 만에 하나 요행으로 뜻을 이루고도 끝내 성취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조군은 홀로 높은 식견과 원대한 통찰을 지녀, 세속적인 과거 공부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의 학문은 반드시 세상일을 널리 통달함을 먼저 하고, 그의 글은 또한 많은 경험과 자료를 널리 전개함을 중심으로 삼아,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다할 뿐이다.
성패와 득실은 모두 하늘에 맡기고 있으나, 그 결과와 성취는 오히려 전적으로 그 일에만 몰두한 사람보다 나은 듯하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천하의 일에는 본말이 있고 근원과 흐름이 있다. 근원을 다스리는 사람은 비록 더디게 보이나 그 효과는 날로 드러나고, 말단만을 다스리는 사람은 비록 급하고 가까워 보이나 그 효과는 날로 사라진다. 조군의 공부는 근원을 다스리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한 가지 말이 있으니 그대에게 말하고자 한다. 선비가 세상에 태어나 마땅히 해야 할 바는 지극히 크고 중대하니, 작은 성취에 안주하여 수양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그 큰 일이란 무엇인가. 도의를 밝히고 명리를 버리는 것이다. 도의가 주가 되면 명리는 물러나고, 명리가 주가 되면 도의는 끊어진다. 이 둘이 마음속에서 다투어 어느 쪽을 따를지 알지 못하면, 결국 도의의 공적인 힘은 사적인 명리를 이길 수 없게 되고 천리의 존망이 갈라지게 된다. 이것을 어찌 분명히 살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지금 자면은 이미 능력을 갖추고 명리의 중심 속에서 경쟁하며 치열한 세계를 달리고 있으니 더욱 선택을 삼가지 않을 수 없다. 사물마다 당연한 이치가 있으니, 그 이치를 순리대로 따르고 사사로운 생각이 끼어들지 않으면 도의는 항상 나를 돕고 명리는 끼어들 자리가 없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의리의 옳고 그름을 돌보지 않은 채 이익과 손해에 급급하면 명리가 주가 되고 도의는 사라진다. 도의가 사라지면 윤리를 어기고 이치를 거스르는 일 또한 무엇이든지 가능해진다.
털끝만한 차이가 천 리의 잘못이 될 수 있으니 두렵지 않겠는가. 자면은 평생 고전을 읽고 인의(仁義)를 말해왔으니 의리와 이익, 공과 사의 구분을 이미 깊이 익히고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 선택을 제대로 하지 못할 걱정이 있겠는가.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매우 위태롭고, 보존은 어렵다. 사람과 귀신의 경계, 성인과 미치광이의 구분이 여기에 달려 있으니, 이미 안다고 해서 경계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이에 도의와 선택을 밝히는 말을 거듭하여 남긴다. 자면은 깊이 생각해 보라. 또한 서울에 머무는 동안 이 말을 동지들에게 전하여 혹시라도 이를 통해 깨닫는 바가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가장 큰 기쁨이다.
【부주】
이 서문은 항재(恒齋) 이숭일(李嵩逸, 1631~1698)의 글로, 조선 후기 영남 학파 계열의 학문관과 과거관을 반영한다. 저자는 과거시험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으나, 그것을 “본말 중 말단”으로 규정하고, 학문과 인생의 핵심은 도의(道義)와 수기(修己)에 있다고 본다. 특히 “治本源則效日著”와 “毫釐之差 千里之謬” 등의 표현을 통해, 근본 수양의 중요성과 선택의 윤리적 긴장 구조를 강조한다.
이 글은 단순한 송별문이 아니라, 과거 응시자를 대상으로 한 유학적 윤리 강의에 해당하며, 당시 선비 사회의 가치 구조—명리 중심 현실과 도의 중심 이상—의 긴장을 잘 보여준다. 또한 개인의 선택 문제를 우주적 원리(天理)의 존망 문제로 확장시키는 점에서 성리학적 사유 구조의 전형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