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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기독교 성지 순례] (26) 
군산 3·5만세운동 의 산실 군산구암교회 군산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구암교회가 서 있다. 전북 군산시 구암동 356-8. 이곳은 한강 이남 최초의 항일만세운동(1919년 3월 5일) 발원지다. 군산시는 2008년 구암교회 성역화 사업을 펼쳐 예전 예배당을 ‘군산3·1운동기념관’으로 지정했다. 여기에는 3·1운동 당시 선조들의 항거와 일제의 탄압, 독립운동 연표가 주제와 시기별로 설명돼 있다. 당시 사용했던 태극기와 태극기를 찍어냈던 목판, 3·1독립선언서, 독립운동가 문용기 선생의 피 묻은 두루마기, 당시 독립군이 사용했던 권총과 소총 등이 전시돼 있다.
군산 선교의 역사 새 예배당은 군산구암교회 역사성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성도들의 헌금을 모아 30억원 예산을 들여 창립 111년 만에 새로 지은 교회는 1544㎡(468평) 대지에 본당 건물 3층과 8층의 선교탑으로 구성돼 있다. 이 교회 김영만(49) 담임목사는 “군산 땅을 최초로 밟은 7명의 선교사와 한국인 조사 장인택을 기념해 전면에 기둥을 8개 배치했다”면서 “선교탑은 3·5만세운동의 출발점이 된 것을 기념해 35m로 했고, 선교탑 꼭대기는 선교사들이 배를 타고 성경책을 가져온 것을 기념해 배와 성경책을 펼쳐놓았다”고 설명했다.
1895년 3월, 미국 남장로선교회 선교사 드루와 전킨은 제물포에서 범선을 타고 군산에 도착했다. 이들은 동학농민운동의 여파로 한동안 정착하지 못하다 이듬해 군산으로 이주했다. 몇 달 후 여선교사 데이비스도 합류했다. 드루는 자신의 집에 진료소를 차렸다. 전킨은 순번을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이듬해 7월, 김봉래 송영도 차일선 세 사람이 학습문답을 거쳐 전킨 목사의 집에서 세례를 받았다. 전라도 최초의 세례식이었다. - 선교활동의 환경적 악화로 시작되는 군산선교부의 이전,합병이,군산 선교부로 적당한 ,궁멀의 구암산으로 정하게 되자,사전 준비후에
1899년 전킨은 전도선이 정박하기 좋은 궁멀(구암리)의 산등성이에 교회와 학교, 주택, 병원이 포함된 선교기지를 마련했다. 궁멀로 합병,이전하여,12월 첫 주일예배를 드림으로써,군산선교부는 계획적이며,더욱 구체적, 확실한 믿음의 터와 뿌리를 내리게되는 동시에,호남과 충청지역의 선교 교두보로, 이지역의 모교회로서의 역활을 훌륭히 담당해가는 지역교회와 선교거점교회로서, 지경을 넓혀가게 되는데 ,군산선교부는 일명,궁멀교회(현,군산구암교회)로 불려지게 된다. 교회 설립에는 장인택이 참여했다. 그는 1893년 1월에 열린 조선예수교장로회 선교사공의회에 남장로교 위원 레이놀즈, 전킨, 테이트와 함께 참석했던 유일한 조선인이었다.
1902년부터 군산 선교기지를 활용한 복음 전파는 매우 효율적이었다. 전킨 선교사가 서재에서 10여명의 소년소녀들을 모아 놓고 한글을 가르치던 것이 안락소학교(현 구암초등학교), 군산영명학교(제일고교), 군산멜볼딘여학교(영광여중고)로 발전했다. 다니엘 의료선교사와 최초의 간호 선교사인 케슬러는 병원 선교 사역을 활발히 진행해 구암예수병원으로 확장시켰다.
1904년 교회당의 협소함을 느낀 교인들은 공주에서 온 오인묵(군산 선교기지가 배출한 한국인 최초 의료선교사 오긍선의 부친) 장로의 헌금과 교회당 신축을 위해 전 교인의 헌금을 합한 1100냥으로 구암리 땅을 매입하고 건축을 시작해 교회 공간을 10칸으로 증축했다. 1919년에는 전 교인이 10전씩 또는 은지환, 은비녀 등을 헌금해 ‘ㄱ’자형 교회당을 신축하고 2월 봉헌예배를 드렸다.
군산 3·5만세 운동의 발원지 군산구암교회 교인(세례교인,집사)으로 군산영명학교 졸업 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서 수학 중이던 김병수는 1919년 2월 민족 33인 중 한 명인 이갑성 애국지사로부터 독립선언문 200매를 전해 받았다. 그는 2월 28일 군산에 내려와 영명학교 은사인 박연세 장로에게 전달하고, 3500장을 더 인쇄해 구암교회 교인은 물론 지역 주민들에게 나눠주었다. 이어 태극기를 만들고 조직을 갖추어 3월 6일에 만세운동을 계획했다. 그러나 누군가의 제보로 계획이 누설돼 4일 새벽 무장 경찰관 수십명이 들이닥쳐 주모자인 박연세와 이두열을 잡아갔다.
3월5일 영명학교 교사 김윤실 김수영 고석주와 학생들은 석방 시위를 하기로 결의하고 군산경찰서 앞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외쳤다. 한강 이남 최초의 만세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영명학교 학생 70명 가운데 반 이상이 유치장에 갇혔다. 그러나 만세 시위는 영명학교와 구암교회 성도 등 500여명이 합세하면서 군산 전역으로 번져갔다. 3월 말 군산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입학 거부에 이어 학교에 불을 질러 일본 경찰을 놀라게 했다.
군산에서는 그해 3월에서 5월까지 총 21차례 의거가 일어났고, 2만5800명이 참여했다. 21명이 목숨을 잃었고 37명이 실종됐으며 145명이 부상했다. 이 일로 박연세와 이두열 등 10여명은 대구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했다.
군산문화원 이복웅(65) 원장은 “군산구암교회에서 촉발된 만세운동이 일제에 대한 주민들의 저항의식을 일깨웠다”며 “군산이 호남에 자주정신을 전파한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군산구암교회 성도들은 신앙 선배들의 애국정신을 잘 계승하고 있다. 지난 95년부터 교회 주도로 3·1운동을 재현하는 행사를 갖고 있다. 3년 전부터는 군산시내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교회 본당과 교육관에서 글짓기와 그리기 대회도 개최하고 있다.
또한, 군산구암교회(예장/합동)는 보훈문화 확산에 기여한 공로로 2004.12.23일 국가보훈처로부터 ‘2004 보훈문화상’을 수상 했었다. 보훈문화 확산,평생교육에 앞장선 공로로 잇따라 표창을 받아 한국 교회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보훈문화상은 보훈정신에 대한 국민인식과 관심제고를 통해 국가유공자를 예우하고 보훈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국가보훈처와 문화일보가 공동으로 주관하여 2000년부터 시상을 하고 있으며,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상금 각 600만원이 수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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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교회 현주소 GIS 분석―① 한국의 바이블 벨트] 기독교 첫 발 디딘 곳,서해안은 ‘복음의 땅’◈ - (기독뉴스)
주님오시면 - 2010 .10 .18 . 17 :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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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교회 현주소 GIS 분석―① 한국의 바이블 벨트] 기독교 첫 발 디딘 곳,서해안은 ‘복음의 땅’] |
2008.12.09
 통계청 2005년 종교인구 현황을 토대로 한반도 지도 위에 기독교인 비율이 높은 지역을 표시해보면 하나의 뚜렷한 경향이 나타난다. 기독교인 비율이 인구의 25%를 넘는 지역은 서해안을 따라 분포한다. 맨 위에 인천 옹진군 백령도가 위치해 있고 강화군, 충남 서천, 전북 익산과 군산으로 이어지며, 전남 여수에 닿는다. 서해안이 한국의 '바이블 벨트'라는 게 확인된다.
2005년 기준 전국 240여 시·군·구 가운데 인구대비 기독교인 비율이 25%를 넘는 곳은 모두 20곳이다. 기독교인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전남 신안군. 인구의 34.98%가 기독교인이다. 경북 울릉군(31.68%), 전북 익산시(31.27%), 군산시(31.05%), 김제시(30.17%) 등도 30%를 넘는 지역들이다. 수도권 일대 도시 지역에서는 경기도 과천시(29.86%), 용인시 수지구(27.82%), 의왕시(26.59%), 고양시 일산서구(25.16%), 성남시 분당구(25.06%)등이 기독교인 비율 25%를 넘는 지역으로 집계됐다.
바이블 벨트로 엮인 땅들은 100여년 전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곳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백령도는 한국 기독교의 관문이었고, 강화군은 1860년대 성공회가 첫 발을 디딘 곳이다. 충남 서천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성경이 전해진 땅이다. 또 익산시, 목포시, 여주시, 이천시 등에서는 19세기가 저물기도 전에 교회당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초기 교회들은 진리에 목마른 이들에게 새 소망을 주었고, 헐벗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위로의 손길을 내밀었다. 기독교는 또 배움에 목말라하는 이들을 위한 학교 설립 등을 통해 깊고 넓게 퍼져갔다. 교회들은 일제 식민시대에는 독립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고, 순교의 피도 흘렸다. 산업화 시대엔 낯선 곳에서 외로워하는 이들에게 안식처가 되었다. 서해안 바이블 벨트는 초기 교회의 자랑스런 전통 위에서 지금도 모범적인 기독교 공동체를 이뤄가고 있다.
백령도=한국 기독교의 관문… 주민 70%가 교인
백령도 주민들은 일요일에는 고기잡이와 농사일을 일절 하지 않는다. 백령사랑교회 김주성 목사는 "백령도 주민에게 기독교는 생활의 뿌리"라며 "철저한 주일성수와 예배생활이 몸에 배어 있다"고 말했다. 인천 옹진군 인구는 12만여명. 이 중 29.08%가 기독교인이다. 백령도는 복음화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로 꼽힌다. 12개 교회(2개는 군인교회)가 있고 주민 4300여명 중 70% 이상이 기독교인이다.
김 목사는 "초기 기독교 복음화 과정에서 백령도는 사울의 탄압을 피해 다윗이 몸을 숨겼던 아굴람굴과 같은 땅이었다"고 말했다. 조선왕조의 부패로 고통받던 이들의 피난처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백령도 토박이인 향토사학자 김지현씨는 "외부의 큰 간섭없이 신앙생활을 꾸준히 해올 수 있었던 것이 높은 기독교인 비율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백령도에 복음이 전해진 것은 1816년이다. 호러스 G 언더우드와 헨리 아펜젤러 선교사가 1885년 4월 5일 인천 제물포에 첫 발을 디딘 해보다 70년이나 앞섰다. 영국해군 H J 클리포드와 바실 홀이 업무수행차 백령도에 상륙하면서 복음이 전해졌다.
1898년에 설립된 중화동교회(사진)는 백령도 교회들의 모태가 된 곳이다. 15년째 중화동교회를 지키고 있는 전응류 목사는 "클리포드와 홀이 상륙한 지 82년만에 중화동 교회가 설립됐다"며 "1900년에 언더우드 선교사가 예배당을 방문, 첫 세례식을 거행한 이 교회는 한국기독교사의 서막을 연 관문으로 기록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화군=저항의 역사 간직… 代 이어 신앙생활
강화군의 기독교인 비율은 29.91%이다. 강화군 선교는 1893년 성공회와 감리교가 함께 시작했다. 강화 최초 교회는 1900년에 건립된 성공회 강화성당(사진). 이 성당은 한옥 구조물에 서양 기독교 건축형태인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어져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인천지방 문화재로도 지정돼 있다. 100년이 넘은 이 교회에서는 지금도 100여명의 교인들이 참석해 예배가 이뤄지고 있다. 강화군에는 성공회 성당을 포함해 188개 교회가 자리잡고 있다.
강화성당 김준배 신부는 "강화군 기독교인 비율이 높은 것은 4∼5대를 거쳐 신앙생활을 계속 하는 인구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예배를 드리는 곳에 자녀들이 동참해 자연스레 기독교인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강화군은 병인양요(1861년), 신미양요(1877년) 등 외침이 많았던 곳이라 외국 문명에 대한 저항감이 크다. 이런 곳에 외래종교가 깊이 뿌리내릴 수 있었던 것은 일제시대 기독교가 보여준 철저한 민족정신 때문이다. 강화기독교역사연구회 이은용 회장은 "일제에 저항해온 기독교인들의 꼿꼿한 자세가 애국과 신앙을 동일시하게 했다"며 "여러 대를 거쳐 교회에 대한 애정이 유지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서천군=성경이 제일 먼저 도착한 땅
서천군 서면 마량진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성경이 전해진 곳이다. 이곳엔 '한국 최초 성경 전래비'와 아펜젤러 선교사 순직 104주년 추모비가 관광객을 맞는다. 아펜젤러는 1904년 목포로 가던 중 서천 인근 어청도에서 배가 침몰할 때 여학생을 구한 뒤 기력이 다해 사망했다.
서천군의 기독교인 비율은 27.65%에 달한다. 십자가교회 정근중 목사는 "서천군은 비교적 성경연구가 활발한 편"이라고 전했다.
서천군은 성경전래지로서의 전통 보존을 위해 마량리 주변 바다(3만3000여㎡)를 매립, 종교문화박물관과 조각공원, 상징탑 등을 만들고 있다. 박물관에는 1816년 조선에 성경을 전파한 영국인들이 타고 온 배에 남아있던 서적 등 각종 물품이 전시된다.

군산시=호남 선교의 모태… 연합 정신 돋보여
군산시는 '호남선교의 모태'라는 자부심이 큰 곳이다. 군산에는 호남 최초 교회인 군산구암교회(上,사진의 구, 예배당)와 개복교회가 100여년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 남장로회 윌리엄 M 전킨 선교사 등이 1892년 제물포로 입국한 뒤, 이듬해 1월 선교사공의회를 조직하고 호남지역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군산구암교회 최태웅 장로는 "전킨 선교사와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선교사공의회에 포함된 장인택 조사 등 7인이 이 교회를 설립했다"면서 "군산구암교회는 한강 이남에서 가장 먼저 3·1 만세운동을 일으켰으며,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을 받았다"고 전했다. 
인구 26만여명의 군산시에는 교회가 576개나 된다. 군산시내 중심지인 나운동 일대에는 교회 간판이 즐비하다. 개복교회 최광렬 목사는 "한국의 성자로 불릴 정도로 청렴한 생활을 한 이세종 선생과 같은 이들이 심어 놓은 기독교 영성과 내 교회 네 교회를 가리지 않은 연합정신이 지역선교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백령도·강화·서천·군산=윤중식·이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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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교회 현주소 GIS 분석―② 2000년대 한국교회 확장지도] 난립하는 교회들… |
08.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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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 10개 중 9개는 작은 교회다. 통계청 2007년 사업체 기초통계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교회수는 5만2905개로 집계됐으며, 이 중 92.98%에 해당하는 4만9192개가 소형 교회로 나타났다.
소형교회 숫자는 2000년 3만9518개(91.98%), 2006년 4만8184개(92.89%)로 2000년대 이후 꾸준히 전체 교회 중 90% 이상의 비율을 점유해왔다. 반면 중형교회는 2000년 2906개에서 2007년 2752개로 지난 7년간 154개가 줄었다. 중형교회 감소세는 전국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경북과 전남에서는 2000∼2007년 중형교회가 각각 15개, 11개 늘어났다. 최근 급속한 확장세를 보이고 있는 신도시교회들도 대부분 소형교회들이다.
작은 교회는 교인들 하나하나에 대한 직접적인 관리가 가능하고 친밀도 높은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으며, 적극적인 개척활동으로 지역사회 선교의 첨병 역할을 한다. 작은 교회 목회자들을 '한국 기독교의 실핏줄'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작은 교회들 대부분은 교인 감소와 낮은 재정자립도 등으로 생존 위기에 직면해 있다. 또 신도시처럼 특정 지역에 밀집돼 있어 교회 난립이라는 비난을 불러오기도 한다.
교회 개척에 실패한 뒤 간판만 달고 있는 교회도 제법 된다. 작은 교회 관련 모임을 하는 한 목사는 "문 닫아야할 교회, 문은 닫았지만 간판만 내리지 않고 있는 교회, 노회에 교회라고 보고만 한 교회들도 많다"며 "일부 교단은 교회를 유지하기만 해도 생활비조로 80만∼100만원씩 주거나 은퇴 뒤 연금을 주고 있어서 이를 노리고 간판만 달고 있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자립도 못하는 작은 교회들의 난립을 막기 위해서는 한국 교회의 목회자 수급 조건을 먼저 개선해야 한다. 목회자들은 신학교를 졸업한 뒤 전도사를 거쳐 부목사, 담임목사가 되는 과정을 밟는다. 매년 신학교를 졸업하는 예비 목회자 숫자는 1만5000여명에 달한다. 교회 성장이 둔화되면서 이들이 진출할 수 있는 전임사역자 자리는 꾸준히 줄어드는 상황이다. 다행히 큰 교회에서 자리를 얻었다고 해도 부목사가 되면 자기 교회 개척에 나설 수밖에 없다.
수요는 늘지 않는데 공급만 많은 구조에서 교회수는 계속 늘어나고 개척교회 대부분이 미자립 상태가 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각 교단 차원에서 교회 개척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교단마다 '500m 이내에 다른 교회가 있으면 교회를 세우지 못한다'는 원칙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원칙은 같은 교단 내에서조차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교회 건축이 이뤄지는 현장 바로 옆에서 또 다른 교회 공사가 시작되는 광경도 드물지 않다. 이원규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는 "교회 개척에서도 기준을 정하고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허용하는 등 대안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담임 목사를 꼭 해야 한다는 풍토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병원이나 학교, 복지기관, 교도소, 군 등에 목회자를 파견해 사회 선교를 담당하게 하는 등 전문영역을 개발해 교회가 아니더라도 목회자들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새로운 풍토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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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교회 현주소 GIS 분석―② 2000년대 한국교회 확장지도] GIS 분석 어떻게 했나 |
08.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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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기획팀과 종교부는 지난 10월 한국 5만 교회 지리정보시스템(GIS) 분석을 위해 특별취재팀을 꾸렸다. 글로벌 GIS 업체인 에스리의 한국 법인 선도소프트가 지도 구현 작업에 동참했으며, 한국갤럽은 젊은층 기독교인 표적집단 심층인터뷰(FGI) 진행에 자문을 해주었다.
2000∼2007년 한국 교회 확장 지역은 통계청의 '사업체 기초통계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했다. 통계청은 매년 12월31일을 기준으로 전국 사업체의 명칭과 소재지, 조직형태와 종사자수 등을 전수조사한 뒤 이듬해 발표한다. 통계청이 지방자치단체의 협조를 받아 읍·면·동보다 세분화된 집계구 단위로 조사원을 보내 실시하는 면접 조사다. 2007년 12월31일을 기준으로 한 수치는 지난 3월 조사를 거쳐 9월 전국 단위의 잠정치가 발표됐으나 아직 시·군·구 단위까지 공표되지 않고 있다. 통계청의 협조로 2007년도 데이터를 입수해 이번 분석에 포함시켰다.
교회는 사업체기초통계조사에서 '기독교단체' 항목으로 분류된다. 기독교단체의 정의는 "기독교 계통의 교회 및 포교소"이며 비영리 종교법인과 비법인단체가 포함된다. 따라서 교회뿐만 아니라 기도원과 교단 사무실 등이 모두 이 항목에 집계된다. 또 이단들도 포함돼 있지만 그 수치가 미미해 본보에서는 교회로 통칭해 분석했다.
기독교인 비율은 1995년과 2005년 통계청이 실시한 인구센서스의 종교부문 결과를 지역별 연령대별로 한번 더 추가 분석해 구했다. 지역적 분석은 시·군·구 단위까지 진행했으며, 연령대별 분석은 세대내 변화 추이를 따라가는 코호트 분석을 실시했다.
본보는 향후 개별 교회의 위치 정보와 소속 교단 등이 담긴 데이터베이스를 검증해 보다 심층적인 GIS 분석도 선보일 예정이다. 우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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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교회 현주소 GIS 분석―② 2000년대 한국교회 확장지도] 신도시로 몰리는 교회 |
08.12.09
경기도 화성시 반송동 나루마을 근린상가. 4차선 도로 양쪽으로 100m쯤 상가가 늘어서 있다. 이 거리에서만 예빛사랑교회, 동탄꿈의교회, 행복한교회, 신동탄순복음교회, 주세계교회, 서동탄사랑의교회 등 6개의 교회를 발견할 수 있다. 길 하나만 건너면 이 지역 최대 교회 중 하나인 동탄사랑의교회 십자가도 보인다. 화성시에서 19년째 목회를 하는 병점상동교회 박영식 목사(화성시기독교연합회 상임총무)는 "동탄신도시 안에만 현재 80개 이상의 교회가 있다"고 말했다. 개발이 시작되기 전 이 지역에는 3개 부락이 있었고, 교회는 2곳뿐이었다. 2007년 1월 동탄신도시 입주가 시작되면서 총 4만가구가 유입됐고, 2년 만에 80개 교회가 새로 생겨났다.
교회는 끊임없이 움직인다. 생겨나고 성장하고 사라지고 이동한다. 교회의 형성과 이동, 변화를 이끄는 가장 확실한 변수는 인구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1960∼70년대 농민 이주에 따른 도시화를 빼놓고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사를 설명할 수 없다. 또 70년대 시작된 강남 개발이 소망교회, 광림교회, 사랑의교회 등을 낳았다.
90년대 이후 한국의 인구변동을 추동하는 힘은 주로 신도시 개발에서 나왔다. 개발 중인 택지지구들의 입주가 완료되는 2015년쯤이면 경기도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신도시에 거주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다.
사람은 도시를 따라 가고, 그 사람들을 따라서 교회가 이동한다. 2001년 7만명이던 경기도 광주시 인구는 광남동 경안동 송정동 등지에 24개 지구단위 개발계획이 수립된 2002년부터 증가하기 시작해 2004년 20만명, 2008년 23만5000명으로 증가했다. 광주시 교회수도 2000년 103개에서 2007년 302개로 7년간 3배 늘었다.
2000∼2007년 통계청 자료를 토대로 본보가 전국 시·군·구별 교회수 증감을 분석한 결과, 충남 천안시,경기도 용인시, 평택시, 안산시, 고양시, 광주시, 화성시, 대전 서구, 인천 남동구, 서울 송파구 등에서 교회수 증가가 두드러졌다. 이 기간 용인시, 평택시, 천안시, 안산시, 고양시 등에서는 교회가 200개 이상 늘었다. 대규모 신도시가 들어선 곳이라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광주양림교회 노치준 목사(종교사회학 박사)는 "신도시는 좁은 공간에 인구가 밀집돼 있어서 교회 성장의 기회의 땅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지난 20∼30년 사이에 급성장한 교회들은 거의 다 신도시 교회들"이라고 말했다. 노 목사는 새에덴교회, 안산제일교회, 분당제일교회, 지구촌교회 등을 신도시와 함께 급성장한 교회들로 들었다.
천안시의 경우, 2000년 517개였던 교회가 2007년 737개로 220개 늘었다. 두정동 두정지구를 시작으로 백석지구, 불당지구, 청수지구 등이 개발되고 이곳으로 교회들이 몰려들고 있다. 최광송(천안기독교연합회관 관장) 원로목사는 "천안의 큰 교회들도 모두 신개발지구로 이전했다"고 말했다. 천안중앙장로교회는 천안에서 가장 유서깊은 교회로 꼽히는데 오룡동에서 두정지구 인근인 부성동으로 이전했다. 하늘샘교회도 구도심인 문화동에서 청수개발지구가 있는 구룡동으로 옮겼다. 하늘중앙감리교회 역시 성황동에서 백석동 백석지구로 이동했다.
평택시 인구는 42만명인데 2007년 교회수가 670개로 집계됐다. 인구가 두 배나 많은 용인시의 교회수(666개)보다 많다. 인구 유입이 많지 않은데도 교회가 급격하게 늘었다. 29년째 고덕면에서 목회를 해온 고덕중앙교회 임석영 목사는 "개발계획들이 계속 발표되는데다 땅값이 아직 싸고, 대형교회가 없다는 이유 등으로 평택을 개척지로 주목하는 목사들이 많은 것 같다"면서 "개발예정지 외곽이나 농촌지역에 교회들이 들어서고 있는데, 개발이 완료되면 신도시로 들어가려고 준비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충남 발전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계룡시에서는 2000년 24개에 불과하던 교회가 2007년 49개로 2배 넘게 증가했다. 파주시와 양주시의 교회 증가율도 100%에 근접했다.
반면 교회수가 줄어든 지역도 있다. 대구 중구, 부산 중구, 전남 진도군, 서울 강남구, 경기도 가평군 등이 그렇다. 그러나 교회수 감소가 가장 두드러진 대구 중구마저도 감소한 교회수가 14개에 불과할 정도로 감소폭은 미미했다.
한국 교회는 2000년대 들어서도 계속 확장되는 중이다. 교회 확장의 중심에는 신도시가 있다. 교회를 개척하려는 목회자들은 제일 먼저 신도시 개발 정보를 수집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신도시마다 교회가 난립할 수밖에 없다. 경기도 광주시 태전동에는 모두 37개 교회가 있는데, 3곳을 제외한 34개 교회가 2004년 이후 생겨났다. 태전동과 같은 경우가 신도시마다 흔하게 발견된다.
김동춘 백석대 교수(기독교학부)는 "신도시 상가마다 교회가 빼곡한데다 대부분 영세하고 자주 간판도 바뀐다"면서 "교회 난립으로 기독교 전체의 신뢰가 저하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교회들도 신도시로 향한다. 화성시 동탄신도시 안에는 모두 13개 종교부지가 조성됐는데, 불교 1곳, 천주교 1곳을 뺀 나머지 부지 11곳은 모두 대형교회에서 구입했다. 동탄감리교회, 시온감리교회, 신광교회, 동탄사랑의교회 등이 건물을 크게 짓고 동탄신도시로 진입했다. 시온감리교회는 올 한 해동안 새 신자가 250명 생겨날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동탄사랑의교회는 창립된 지 2년도 안 돼 신도수 1000명을 넘어섰다. 용인의 화광교회와 새에덴교회도 동탄 진출을 추진 중이다.
기회의 땅을 찾아온 신도시 작은 교회들 중에는 1∼2년 만에 존립 위기를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젊은데다 정주민 의식이 엷은 신도시 주민들에게서는 작은 교회를 회피하는 특성이 보인다. 용인 동백교회 조민수 전도사는 "입주민 대부분이 30∼40대 젊은 부부라서 그런지 교회가 제공하는 혜택이나 시설을 중시한다"며 "교회를 쇼핑하듯 고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예장통합측은 교단 소속 신도시 개척교회들의 자립률을 10% 미만으로 보고 있다.
2000년대 한국 기독교는 신자수 감소 속에서 교회수 증가라는 기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이는 한국 교회의 확장이 신도시 중심으로 전개되고, 신도시 교회 대부분이 교인 확보전에 몰두하고 있는 사정과 연관된다.
용인시 동백지구 인근 구갈동에서 7년째 상가교회를 운영하는 장성권 목사(브니엘교회)는 "개발지구에는 유입 인구가 많고 그 중에는 기독교인들도 많아 별도로 전도하지 않아도 성도들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교회들이 몰려든다"며 "일요일 아침이면 동백지구에 교회 버스들이 즐비하다"고 말했다.
강헌식 목사(평택순복음교회·평택기독교연합회 회장)도 "수도권 신도시 대형교회들의 성공은 교계 전체적으로 보면 이동성장의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용인시 향상교회는 큰 교회들이 작은 교회 신자들을 흡수해 간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내년부터 기존 신자들은 새신자로 등록시키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기독교인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교회 개척 움직임이 강성하다는 것은 한국 기독교의 건강성을 확인시켜 준다. 그러나 신도시를 무대로 한 교회의 난립은 기독교 전체 이미지를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예장통합총회 국내선교부 원인섭 목사는 "교회 난립을 조정하지 못 하면 한국 개신교의 이미지 쇄신은 어렵다"고 단언했다. 김동춘 교수도"신도시에서는 대형교회의 지교회가 브랜드를 이용해 성장하는 방식이 굳어지고 있다"며 "비기독교인들로부터 교회가 상업적이라고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장석 교회성장연구소 선임국장은 "교회의 목적은 선교"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대형교회가 아니라면 젊은 신도시 주민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어려웠던 게 현실"이라면서 "그러나 이제 큰 교회와 작은 교회가 윈윈하는 방법을 모색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경기도 광주·용인·천안= 김남중·박재찬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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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교회 현주소 GIS 분석―③ 기독교인 증감] 흔들리는 수도권,굳건한 전라도 |
08.12.09
인천 동구의 기독교인 숫자는 지난 10년 사이(1995∼2005년) 반토막이 되었다. 이 기간 동구 인구는 4분의 1이 사라졌는데, 교인 인구는 2만2779명에서 1만861명으로 줄어 절반이 넘게 빠져나갔다. 22년째 송림동을 지켜온 송림성결교회는 2000년까지만 해도 성도수가 500명이 넘었다. 그러나 현재 출석하고 있는 성도는 100여명에 불과하다.
전국 최고의 부자동네로 꼽히는 서울 강남구도 기독교인 감소비율이 매우 높다. 1995년 16만명이 넘던 강남구 교인수는 10년 만에 12만명으로 줄었다. 논현동의 한 상가 2층에 자리한 동광교회 홍승철 목사는 "내년쯤 문 닫을 것을 고려중"이라고 했다. 한때 400명이 넘는 성도들이 모였던 교회다.
기독교인 감소는 전국적인 현상이다. 통계청 인구센서스 자료를 보면, 1995년에는 전체인구 4460만명 중 19.6%인 876만명이 크리스천이었다. 그러나 2005년에는 4727만명 중 862만명이 기독교인으로 조사됐다. 인구는 267만명 늘었지만, 기독교인은 14만명이 줄어든 것이다.
특히 서울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등 '강남 3구'와 인천 동구와 연수구,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등 수도권에서 기독교인 비율 감소가 두드러졌다. 감소폭이 가장 큰 곳은 인천 동구로 인구 대비 기독교인 비율이 1995년 22.72%에서 2005년 14.56%로 10년 만에 8%포인트 넘게 감소했다. 인천 옹진군, 연수구, 남구, 계양구 등에서도 4∼6%포인트씩 기독교인 비율이 줄었다.
1995∼2005년 서울 강남구의 기독교인 비율은 30.32%에서 23.38%로 6.94%포인트 줄었다. 서초구와 송파구도 5%포인트 안팎의 감소를 기록했다. 구로구, 동작구, 강동구 등도 3∼4%포인트 감소를 나타내 서울시내 14개 구에서 전국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의 감소율을 보였다.
반면 전남 신안군의 기독교인 비율은 29.46%에서 34.98%로 5.52%포인트 증가했다. 전국에서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화순군, 곡성군, 완도군, 장흥군, 진도군 등도 4%포인트 이상의 증가를 보여 전라도의 기독교인 비율 증가가 돋보였다. 이밖에 경기도 용인시와 파주시, 부산 기장군 등 몇몇 신도시 지역에서도 기독교인 비율이 늘었다. 전국적으로는 80곳이 증가했다.
통계청 인구동향과가 제공한 '전국 시·군·구 전출입자 현황'을 분석한 결과, 기독교인 비율이 크게 준 곳과 인구 전출입이 잦은 지역은 상당부분 겹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에서 기독교인 비율 감소가 가장 큰 강남구의 경우, 1995년에서 2005년 사이 연평균 22.6%의 인구이동률을 나타냈다. 인구이동률이란 지역 총인구 중 전입 혹은 전출한 인구의 비율을 나타낸 것이다.
서초구, 송파구, 강동구, 동작구 등도 서울에서 기독교인 비율 감소가 큰 지역들인데, 인구이동률도 22% 안팎으로 높다. 인구이동률과 기독교인 비율 감소 사이의 연관성은 경기도에서도 발견된다. 시흥시는 경기도에서 기독교인 비율 감소가 두 번째로 크다. 시흥시의 인구이동률은 23.9%로 경기도에서 네 번째로 높다.
사람들이 거주지를 이동하는 과정에서 교회와 멀어지고 신앙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유추해볼 수 있다. 부천시 오정구 큰나무교회 구금섭 목사는 "우리 교회만 해도 한 해 평균 10∼20% 정도의 교인들이 바뀌는 것 같다"며 "경제 사정에 따라 서울을 오가는 사람이 많고 그 와중에 교회를 떠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구 목사는 이어 "개별 교회마다 목회자와 설교, 헌금 방식 등이 많이 다르다"면서 "이 때문에 신앙이 엷은 사람들은 거주지를 옮긴 후 교회를 다시 찾아가기가 어려운 듯하다"고 덧붙였다.
기독교인 감소는 한국 교회의 폭발적인 성장기가 지나간 1990년대 이후 일관된 현상이다. 원인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지난달 17일 발표한 '2008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에서 교회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신뢰한다'는 응답보다 두 배 이상 나왔다. 이장석 교회성장연구소 선임국장은 "2000년대 들어 기독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감이 커졌다"면서 "이런 이유로 전체 기독교인들 중 믿음이 약한 층들이 특히 많이 흔들려서 이탈했다"고 분석했다.
물질적 풍요 자체를 원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서울 방배동 나라교회의 배동한 목사는 "1인당 소득이 1만달러에서 2만달러로 넘어가는 시기에는 가난했던 때를 보상받으려는 심리로 물질을 즐기려는 욕구가 크다"고 말했다.
김동춘 백석대 교수(기독교학부)는 "천주교의 경우, 전통주의와 현대주의를 동시 구사하는 방식을 통해 '종교적 존귀함'을 유지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면서 "그동안 한국 교회들이 지나치게 세속화의 길을 걸어온 건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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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교회 현주소 GIS 분석] 한국교회 8년간 22% 늘었다 |
08.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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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의 지형이 급변하고 있다. 산업화 시절 도심 부흥의 역사를 이뤄낸 교회들이 2000년대 수도권 일대 신도시로 적극 진출하면서 교회 개척의 패러다임도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본보 탐사기획팀과 종교부로 구성된 특별취재팀은 통계청 사업체기초통계조사와 인구센서스 자료를 이용해 한국 교회와 기독교 인구에 대한 지리정보시스템(GIS) 분석을 실시했다.
2000년 12월31일 기준으로 4만3443개였던 전국 교회수는 2007년 5만2905개로 늘어 8년간 21.78% 증가했다. 2003년을 제외하고는 연평균 1200개 안팎의 성장세다. 전국 240여개 시·군·구 가운데 2000년 대비 교회수가 75% 이상 증가한 지역은 경기도 광주시 파주시 용인시 화성시와 충남 계룡시 등 6곳이다. 반면 10% 이상 감소한 지역은 부산 중구와 대구 중구, 경기도 과천시다.
16개 광역 시·도 가운데 경기도가 1만2527개로 교회수 1위를 기록했으며 서울과 인천은 각각 8618개와 3510개다. 수도권에만 전체 교회의 46.6%가 집중돼 있다.
규모별로는 종사자 1∼4명의 소형 교회가 2007년 4만9192개를 기록, 2000년에 비해 9674개 늘어 교회의 양적 팽창을 주도했다. 취재팀은 교계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교회 재정 대비 인건비 구조를 분석해 종사자수(유·무급 포함) 1∼4명은 소형, 5∼9명은 중형, 10명 이상은 대형으로 구분했다. 2007년말 현재 소형 교회는 전체의 92.98%를 차지했다. 중형과 대형은 각각 5.20%(2752개)와 1.81%(961개)였다.
기독교인에 대한 GIS 분석 결과 1995년과 2005년 사이 인천 동구와 서울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등에서 비율 감소가 두드러졌다. 인천 동구와 서울 강남구, 서초구는 같은 조사에서 천주교인 비율이 전국 최초로 20%를 넘긴 곳이다.
실천신학대학원 정재영 교수는 "소형 교회수가 늘면서 비슷한 시기 기독교인 수가 줄었다면 더이상 '교회 개척=기독교인 증가'란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 셈"이라며 "소명에 따른 개척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내는 만큼 교단 중심의 질서있고 섬세한 개척 정책 수립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탐사기획팀=최현수 김남중 우성규 이도경, 종교부=윤중식 박재찬 김나래 김성원 백상현, 사진부=강민석 구성찬 기자 tams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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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교회 현주소 GIS 분석―④ 2034세대 이탈] “학업·취업 부담… 젊은이들이 떠난다” |
08.12.09
한국 교회의 미래를 주도할 젊은 기독교인이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이 1995년과 2005년 실시한 인구센서스 종교부문 조사 가운데 연령대별 변화추이(코호트)를 추가로 분석한 결과, 특히 20세에서 34세 사이의 젊은 층에서 기독교 이탈 현상이 두드러졌다. 1995년 10∼14세, 15∼19세, 20∼24세의 기독교 인구는 각각 86만6373명, 84만1780명, 91만5230명이었다. 이들은 10년 후인 2005년에는 20∼24세, 25∼29세, 30∼34세로 성장했으나 같은 구간 기독교 인구는 각각 68만4430명, 62만6381명, 71만4953명으로 20만명 안팎씩 급감했다. 15∼89세 구간 전체에서는 137만여명의 기독교인이 이탈했지만 2005년 조사에서 새로 등장한 0∼9세와 10∼14세의 기독교인 증가로 기독인구 전체 감소폭은 14만여명 선에서 멈췄다. 취재팀은 청년목회자연합의 도움을 받아 지난 2일 서울에 사는 20∼34세 청년 기독인 6명으로부터 교회와 기독교인을 바라보는 시각을 솔직하게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표적집단 심층인터뷰(FGI)에 응한 이들은 통계청 조사 시점인 95년과 2005년 사이 기독교를 떠났다가 최근 다시 교회로 돌아온 사람들이다. 안티기독교 스타일의 무분별한 비난이 아닌 한때 낙심했던 사람들의 애정 어린 비판을 듣기 위해 '회심자'를 대상으로 했다. 참석자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20∼34세 표본에 속한 참석자들이 교회를 떠났던 이유는 개인적, 가족사적, 사회적 원인으로 구분된다. 고교시절 학습부담이 높은 상황에서 교회를 멀리하는 것이 습관화됐고 이후 대학이나 군대를 다녀오면서 신앙을 제때 회복하지 못했다는 것이 전형적 패턴이다. 부모가 입시에 대해 지나치게 높은 기대를 갖고 있거나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강요하는 것도 신앙 생활을 막는 요소였다. 학교나 직장 때문에 거주지를 자주 옮기는 세대라는 특성도 불교나 천주교에 비해 보다 주거지 밀착형인 기독교에서 젊은이들이 빠지는 원인이었다.
“성장주의에 거부감… 마음도 멀어져”
젊은 그들이 교회를 멀리했던 이유
△유기호=모태신앙이었지만 고 2 때인 1997년 여름부터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열심히 기도하고 예배 보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당시 교회 목사님과 주위에서는 "너 시험들었다"라며 기도와 믿음이 부족하다고만 말했다. 신앙 회복을 위한 보살핌과 논리적 설명을 얻지 못했다.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교회에서 얻지 못하자 마음이 멀어졌다.
△김철수=교회는 유치원 때부터 다녔다. 그러다가 입시가 다가오자 부모님의 기대가 쏟아지고 부모님이 교회에 시간을 많이 쓰는 것을 막았다. 제대 후에도 부모님이 교회 나가는 것을 반대하시자 몰래 다니다가 점점 마음이 옅어져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술도 마시게 됐다. 5년 정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다.
△서영은=유치원부터 선교원을 다녔고 초중고는 모두 미션스쿨이었다. 하나님을 믿으면 되지 꼭 교회에 나갈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 고교시절 '수능 끝나면 교회로 돌아갈게요'라고 기도했는데 재수를 하게 됐고 그해 여름부터 다시 교회에 나갔다.
△문나온=친척 가운데 목사님과 신앙좋은 분들이 욕심보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예 교회를 떠나게 됐다. 크리스천으로 욕먹는 행동을 하느니 아예 믿지 말자는 생각까지 했다.
△이주영=아버지가 술을 많이 드시고 종종 폭력적이셨는데 유독 교회나가는 것을 싫어하셨다. 고교 졸업 후 아버지와 싸우는 게 너무 피곤해 교회에 나가지 못했다.
△강기훈=보통 교회 안에서 청년들에 대한 기대가 크다. 특히 부흥하는 교회일수록 일정 정도 헌신을 요구한다. 이 때문에 거꾸로 부담감을 느껴 교회를 멀리하는 경우도 있다.
“리모델링 수십억 펑펑… 큰 반감”
한국교회의 이미지
조지 바나가 세운 미국 최대 기독교 전문 리서치 회사인 바나 그룹은 지난해 '비기독교인(unChristian)'이란 보고서를 펴냈다. 미국내 2400만명에 이르는 16∼29세의 청년들 가운데 기독교인 비율이 60% 아래로 떨어졌다는 위기 의식에서 나온 책이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10여차례에 걸쳐 대형 여론조사와 표적집단 심층인터뷰(FGI)를 진행, 젊은층이 기독교를 부정적으로 보게 되는 이미지를 6가지 키워드로 간추렸다. 순서대로 '위선적인' '전도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동성애를 혐오하는' '안일한' '지나치게 정치적인' '타인을 손쉽게 판단하는' 등이다.
문화적 맥락은 다르지만 한국 청년들도 교회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떠올리는 것이 사실이다. 신앙을 회복한 참석자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교회의 외형적 성장이 불신자들에게 불필요한 거부감을 불러온다고 지적했다.
△문=한국 교회는 건축사무소다. 교회 건축에 몰입하면서 잡음이 많다. 리모델링에 10억원을 쓰고 파이프 오르간에 20억원을 쓰는 것보다 가난한 사람을 돌보는 초대 교회의 모습을 보이는 게 좋지 않겠나.
△김=한국 교회가 필요 이상으로 대형화 고급화하고 있다는 것은 맞다. 대리석 깔고 럭셔리하게 꾸미지만 세금은 내지 않는다. 불신자들에게는 이게 가장 큰 반감을 불러온다.
△유=교회 대형화나 고급화는 천주교도 마찬가지다. 성당을 보라. 그런데도 안티기독교인들은 천주교는 비판하지 않고 기독교만 말한다. 교회가 커지면 믿음도 성장해야 하는데 핵심인 믿음이 정체된 듯하다. 한국 교회 실정이 1997년 경제 상황과 비슷하다. 고통을 겪기 시작했으며 이후 거품이 빠지리라고 본다.
“삶속에서 빛과 소금 역할해야”
한국 교회에 바라는 점
'청년 세대가 찾고 싶은 교회는 어떤 모습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자 참석자들은 적절한 양육과 돌봄의 기회가 주어지는 교회라고 답했다. 이를 위해 열린 마음으로 청년층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전문 사역자들이 늘어나야 한다고 요구했다.
△문=교회가 청소년 양육에 더 힘써야 한다. 고3 수험생이란 이유로 성경공부 빼주고 공부하라고 돌려보내는 것은 문제다. 청년들 가운데 목적 없는 삶을 사는 친구들 많다. 교회가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비전을 세우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서=일방적 전도보다 관계망을 형성해 돌본 후 교회에 정착하도록 세련되게 전도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유=한국 교회는 지나치게 규율과 율법에 얽매인다. 기독교에 관심 있더라도 규율에 의해 기가 죽는다. 기가 죽은 상태라면 교회에 더 이상 나가야 하냐는 고민이 시작된다. 이때 누군가 옆에서 관심을 가져주는 게 중요하다. 옆에서 지켜봐주고 신앙이 뿌리내릴 때까지 보조하고 인도해줘야 한다.
△이=예수님에게 집중했으면 좋겠다. 또 청년 제자를 키워낼 수 있는 전문성 갖춘 목회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김=교회가 장애인을 앞서서 포용한다고 하지만 장애 관련 시설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가. 약자에게 열려 있다고 말할 수 있나. 감리교 사태와 같이 일반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도 자제해야 한다. 교계 목회자들부터 외부의 시선을 두려워하고 바뀌어야 한다.
△강=비기독교인들은 그래도 '교회는 희망이다. 소망이다'라는 마음을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다. 정직과 도덕을 기독인에게 요구하고 있다.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니까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비판을 극복하고 삶 속에서 빛과 소금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Key Word 표적집단 심층인터뷰 (FGI·Focus Group Interview)
특정 집단의 의견이 형성된 세부 맥락과 심층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실시하는 조사 방법의 하나. 대량의 샘플을 대상으로 %를 구하는 여론조사가 양적 조사라면 FGI는 질적 조사다. 비슷한 특성을 지닌 5∼8인이 같은 공간에서 진행자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사고 형성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탐색이 가능해 주로 '왜'라는 질문에 적합하지만, 통계적 엄밀성을 지닌 대표 의견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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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교회 현주소 GIS 분석―③ 기독교인 증감] 전남,감소세 무풍지대 왜? |
08.12.09
한국 바이블벨트의 아래쪽을 담당하는 전남에서는 기독교인 비율이 늘고 있다. 한국 기독교가 교인 감소 문제로 고심하고 있지만 전남은 홀로 비켜서 있다. 신안군, 화순군, 곡성군, 완도군, 장흥군, 진도군 등 전남의 군들이 1995∼2005년 기독교인 비율 증가 상위 1∼6위를 모두 차지했다.
신안군 인구는 1995년 6만2472명에서 2005년 3만8463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그러나 기독교인수는 1만8404명에서 1만3453명으로 소폭 줄어 기독교인 비율은 오히려 높아졌다. 신안군 증도 대초리교회 지영태 목사는 "신안군은 1004개의 섬으로 이뤄져 '천사의 군'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섬 특성상 젊은이들의 인구 유출이 많다"며 "기독교인들은 노령층이 많아서인지 유출 인구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인구 2000명 정도인 증도에는 11개의 교회가 있고 기독교인 비율은 90%에 가깝다. 인구 4076명인 인근 임자도도 기독교인 비율이 70%가 넘는다고 한다. 17년째 이곳에서 목회를 하는 임자진리교회 박성균 목사는 "지난 10년간 40여명이 새신자로 등록했다"고 말했다.
한국섬선교회에 따르면 섬인구의 개신교 비율은 5% 안팎이다. 신안군 섬들의 기독교인 비율이 높은 것은 1930년대 홀로 돛단배를 타고 섬마을 곳곳에 복음을 전한 문준경(여) 전도사의 활동에 힘입은 바 크다. 지 목사는 "1950년에 이곳까지 내려온 공산당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살해당한 문 전도사가 세운 섬 교회 100여곳이 아직도 잘 유지되고 있다"고 전했다.
화순군은 인구도 늘고 기독교인도 많아졌다. 화순사랑의교회 이기회 목사는 "화순읍을 중심으로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3년 전 녹십자 백신공장이 세워져 유입 인구가 많았고 교회도 30∼40개 늘었다"면서 "전통적으로 기독교가 강한데다 지역교회들이 장애인, 독거노인, 아동복지 등에 신경쓰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한 호감도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신안=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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