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경/이경숙(2012.07.16 19:45 : 史)
유대민족이 구약을 가졌던 것처럼 상고시대에 우리민족도 고유한 경전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에 이르러 세계최고(最古)의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이라 자랑스레 떠들면서도 우리민족의 정신적 뿌리인 경전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다.
우리민족의 삼대경전은 천부경과, 고구려의 재상 을파소가 쓴 참전계경, 그리고 삼일신고의 세 가지다. 그 중 가장 오래된 천부경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일 뿐 아니라 유불선과 음양오행, 그리고 주역이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었으므로 우리 민족만의 경전일 뿐 아니라 전체동양의 경전이며, 세계인의 경전이다.
이 천부경은 원래 환인시절부터 있다가 훗날 환웅에게 전해진 삼부인 세 개 중의 하나인 거울(용경)에 새겨졌던 것인데 환웅천황이 백두산 기슭에 신시를 개국한 다음 백두산 동쪽에 큰 비를 세우고 거기에 글로 새겨 훗날 통일신라시대까지 전해져 왔던 것이다. 이 비에 새겨진 천부경은 우리민족의 옛글자(훗날 훈민정음의 모체가 됨)인 가림다로 새겨진 것이어서 후세사람들이 판독치 못하다가 통일신라시대에 해동공자로 추앙받았던 당대의 세계적 석학인 최치원이 백두산을 찾았다가 이 비석에 새겨진 글을 읽고 한자로 번역해서 전하는 것이 바로 여든한(81) 글자의 천부경이다.
이 여든한(81) 글자로 우주의 법칙 모두를 압축해 담은 번역문을 볼 때에 최치원의 학식의 깊이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천부경을 가지고 책을 써낸 사기꾼들이 워낙 많아서 서점에 가보면 한 20종이 넘는 천부경 어쩌고 하는 맹랑한 책들이 팔리고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정말 가관이다. 얄궂은 그림들에다가 황당무계한 숫자들을 잔뜩 늘어 논 것들이라 얼핏 보면 고등학교 수학책인 줄 착각할 정도이다. 그래놓고서 이 작자들은 꼭 도망갈 구석을 만들어 놓는다. 천부경의 진리는 워낙 심오한 것이어서 풀이자체가 난해할 수밖에 없단다. 어렵고 난해해야만 진리인 줄 착각하는 바보들이다. 그러나 진리는 어려운 것이 아니고 어렵다면 이미 진리가 아니다.
천부경은 가장 단순하고도 명확하게 설명해 놓은 글이다. 추측이나 가설의 여지가 없는 글자의 뜻 그대로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경전이다. 그렇지 않다면 해동공자는 허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반만년 동안 풀지 못했던 천부경의 비밀을 구름이 풀어드리겠다.
그리고 이 천부경을 통해서 숨겨진 세계사의 비밀을 알려드리겠다. 천부경의 전문을 먼저 올려드린다. 대개의 경우 이 천부경은 끊어 읽는 단락부터가 틀리고 있다. 옛 환인천제 시대의 사람들은 아침저녁으로 이 천부경을 게송하여 낭독해 왔건마는 단락구분조차 틀리니 이걸 노래로 운율에 맞추어 읽을 수가 없는 것이다. 구름이 아래 적은 끊어 읽기가 가장 정확한 것이다. 이래야 운율이 맞는 게송이 되고 정확한 해석이 가능하다.
< 天 苻 經 >
一 始 無 始 一 일시무시일이니
析 三 極 無 盡 本 석삼극 무진본이고
天 一 一 地 一 二 人 一 三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이라
一 積 十 鉅 無 櫃 化 三 일적십거 무궤화삼이니라
天 二 三 地 二 三 人 二 三 천이삼 지이삼 인이삼이니
大 三 合 六 生 七 八 九 대삼합육 생칠팔구하고
運 三 四 成 環 五 七 운삼사성 환오칠하니
一 妙 衍 萬 往 萬 來 일묘행 만왕만래라
用 變 不 動 本 용변 부동본이요
本 心 本 太 陽 본심 본태양이니
昻 明 人 中 天 地 一 앙명인중천지일할지니
一 終 無 終 一 일종무종일이니라
자 이제 천부경의 첫 문장부터 그 뜻을 알아보자.
一 始 無 始 一 일시무시일
한자의 뜻 그대로 풀어보면 “일은 시작되지 않고 시작된 일이며”라는 뜻이다. 이 일(一)이 무엇인가를 놓고 많은 학자들이 온갖 소리들을 늘어놓고 있는데, 시중 책들에 나열한 것만 해도 십여 가지가 넘는다. 그러나 몽땅 다 틀린 것이 전부 다 자기 맘대로 추측해서 쓰기 때문이다.
이 일(一)이 무엇인가는 지레짐작할 필요도 없이 천부경의 다음 문장에 나와 있다. 즉 天 一 一 地 一 二 人 一 三(천일일지일이인일삼)이라고 천부경에서 밝히고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된다. 이문장의 뜻은 글자 그대로 읽으면 된다. 황당무계한 학설을 동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즉, “하늘(天)의 수는 일일(一一)이요, 땅(地)의 수는 일이(一二)요, 사람(人)의 수는 일삼(一三)이다.”라고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즉 일(一)은 하늘을 뜻하는 수이다. 천부경에서 사용된 모든 일(一)이란 수는 하늘이고 이(二)란 수는 땅이며 삼(三)이란 수는 인간을 지칭하는 대명사이다. 한문을 하는 중학생도 그 뜻을 알 수 있도록 써진 것이 천부경이다.
그런데 이것을 가지고 어리석은 후학들이 황당한 장난을 친 탓에 마치 난해한 기문둔갑술의 주문으로 인식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첫째문장<일시무시일>의 뜻은? 어려울 것도 없다. 글자그대로, “하늘은 시작됨이 없이 시작된 하늘이니.”라는 뜻이다. 이런 문장이 해석이 안 되어서 어려울 게 뭐 있노 이말이다. 이거 못 읽는다 하면 빙신들이다. 이 천부경은 최치원이 한문으로 번역할 때 시적인 멋을 조금 부린 데가 있다.
즉, 당시의 한시 형태를 따서 시종대귀법을 사용했다. 첫 장과 종장을 댓귀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해석을 위한 목적에서는 천부경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붙여서 읽어야 한다.
一 始 無 始 ~ 一 終 無 終 一 일시무시일 일종무종일 자 설명 안 해도 총명한 사람은 이 말의 뜻을 알 것이다. 하늘 즉, 우주는 시작됨이 없이 시작되고 끝남이 없이 끝나니라 하고, 이 우주의 생성원리를 한마디로 잘라서 말하고 있다. 천부경의 첫 문장은 우주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요, 결론이요, 정의이다.
천부경의 이 여섯 글자가 바로 전체 동양의 우주론의 핵심이고 골자임을 부정할 사람이 있을까? 시작이 없는 우주, 끝이 없는 우주. 이것이 고대의 우리 선인들이 이미 밝혀 놓은 우주의 실체이다. 스티븐 호킹은 일만 년이 지난 지금에 이 우주는 시작이 있을 수 없다, 고로 우주의 종말은 없다. 하고 마치 자기가 처음 발견한 진리인 것처럼 책 팔아먹고 있다.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다.”고 하는 유치한 우주론과는 그 차원이 다른 것이다. 훗날 석가의 우주관이 여기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음을 알아야 한다.
저 문장을 보면 누구나 떠오르는 게 있을 것이다. 그렇다. 바로 불가의 반어법이 천부경에서 나왔음이다. 석가는 이 문장을 바꾸어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 말했고, “이 세상은 나는 곳이 없으므로 돌아가는 곳이 없느니라.”라고 말했다. “가장 큰 것은 가장 작은 것과 같고, 영원은 찰나와 같으니라. ”불가의 비장의 보도인 반어법은 모두 천부경에서 베낀 것이다. 그렇다면 석가가 이 천부경을 알고 있었는가? 답은 그렇다 이다. 유불선이 천부경에서 비롯된 내막들을 설명할 차례이다.
재밌는지 몰겠네요? 이 쉬운 문장이 왜 해석이 안 되었을까요? 이해가 안 되시죠? 콜롬부스의 달걀이에요. 심안이 떠지지 않은 탓에 장님처럼 글자만 더듬어왔기 때문이지요. 계속해 드릴게요.
내가 일전에 자게옥에 “반야심경 해설”을 연재할 때 말씀드렸지만 불경을 보면 부처님이 설법을 하시기 전에 얼마나 그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웠는지 불경을 읽다보면 그 서두가 지루해서 부처님 말씀 나오기도 전에 졸게 된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부처님이 설법하실 때는 무량겁의 과거세로부터, 부량광의 온 우주에 있는 부처와 보살과 천신과 나한들이 부처님의 설법을 경하하기 위하여 자리에 함께해서 그 설법에 원력과 위광을 보태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자리를 빛내준 여러 부처, 천신들의 면면을 보면 그 설법의 중요도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반야심경이나 법화경, 화엄경 같은 지극히 공덕이 높은 설법의 자리라야 참석하는 천신이 있는데 이이가 바로 환인 천제시다. 불경을 보면 부처님 설법자리에 납시어 지켜보는 환인천제를 확인할 수 있다. 불경에 왜 환인이 나오는가? 그것도 아미타불, 미륵불,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천수보살, 제석천왕, 도솔천왕과 같이 VIP로 귀빈석에 폼 잡고 앉아 계시는가 말이다. 부처님의 설법에 자리를 빛내는 들러리로 초빙되어 온 이 귀빈들은 모두 실제로 왔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의 원력이 화신되어 그 자리를 함께 했다는 뜻이다.
즉 부처님은 모든 하늘나라의 끗발 있고 쟁쟁한 실세들을 모두 경복궁 33경비단에 모으시고 그것을 백그라운드로 삼아 설법을 하셨던 것이다. 전두환이 청와대로 가는데 바로 갈 수 없는 법, 공수여단장, 청와대 경비단장, 수경사령관, 보안사령관을 차례로 거쳐야 했듯이 부처님도 마찬가지였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무량겁의 과거세를 통해서 곧억을 쌓는 과정에 여러 부처의생애를 보냈고 한 때는 도솔천에서 오야를 하기도 했고, 자리를 옮겨 제석천에서 사바세계의 감독관일도 하셨는데, 한 때는 천계에서 환인천제로 직접 중생의 세계에 선정을 펼쳐주시기도 했는데, 역대 환인 중의 석제임 환인이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공덕 중의 하나였다.
이 때의 인연으로 석씨 성을 가지고 마침내 해탈하여 우주궁극의 원력을 보이는 석가모니부처가 되셨음이다. 이 과정은 내가 “개천록”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는 부분인데 인연이 있다면 이상한 나라에 “개천록”의 진본을 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머나먼 남국 인도에서 하고 많은 나라 중에 하필이면 신라에 공주를 보내어 부처님의 사리를 전했겠는가? 다 부처님의 전생인연에 의한 귀향이었다.
이 넓은 지구 위에서 신라의 유적에서 발견되는 물고기 문양이 오직 인도와 바이칼 호 부근에서만 발견되었겠는가? 천계와 한민족과 불교의 혈연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석가모니 자신의 혈통이 아리안이 아니었고, 동이족이었다. 모든 초상화의 특징이 그것을 보여준다.
천부경을 만든 환인천제의 인연이 그대로 불가로 전해졌다. 천부경은 불경보다 5천 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족히 자신의 뿌리를 찾는 날 개벽이 있으리로다. 그럼 다음 문장을 보자.
析 三 極 無 盡 本 석삼극 무진본
이 문장은 학자들이 대충 3극 = 삼태극 = 음양중 = 천지인의 뜻으로 눈치때려갖고 3태극의 원리다~, 하고 겐또를 치고 있다. 여기서 쓰인 삼(三)은 사람(人)의 상징이 아닌 석삼(三)의 뜻이다. 이 문장은 여기에서 말하는 세 가지의 극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 그 밑의 문장을 먼저 해석하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 이해하기 좋다. 잠깐 보류해두고 다음 문장으로 SKIP하자.
天 一 一 地 一 二 人 一 三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이 문장은 앞에서 설명했지만 천부경이 사용할 수에 대한 정의를 내려놓은 문장이다. 하늘을 1이라는 수로, 땅을 2라는 수로 사람을 3이라는 수로 대치해서 설법하겠노라 하는 말이다.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런데 왜 천지인에 각각 일이라는 수가 하나씩 더 들어갔느냐 하면 여기에 천부경의 기막힌 압축법 (즉, 여든한 글자를 가지고 우주를 설명하는 놀라운 비결)의 요체가 있다.
이 극도의 압축을 시도한 천부경의 성격을 모르는 사람들은 첫째 줄, 둘째 줄까지는 어찌 어찌 겐또를 치다가 여기서 부터는 기냥 오리야 기리야다. 황당한 궤변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처음에 얘기 했지만 천부경은 댓귀법을 쓰고 있으므로 같은 형태의 두 문장을 찾아 한꺼번에 보지 않으면 뜻이 숨어서 안 나타난다. 이 문장과 같은 형태의 문장을 찾아보면 바로 네 번째에 있음을 알 수 있다.
天 二 三 地 二 三 人 二 三 (천이삼 지이삼 인이삼)이 그것이다. 일시무시일과 일종무종일을 붙여서 읽고 해석하듯이 이 두문장도 붙여서 해석해야 한다.
天一一地一二人一三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天二三地二三人二三 (천이삼 지이삼 인이삼)
같은 형태의 두 문장을 나란히 붙여 놓으면 무언가 보일 것이다. 천지인에 각각 네 개씩의 숫자가 있는 것이 보인다. 그것을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천(天)에 사용된 수 : 일일이삼
땅(地)에 사용된 수 : 일이이삼
인(人)에 사용된 수 : 일이삼삼
천지인은 각각 자기 고유의 수를 두 개씩 가지고 있다. 천은 일을 두 개 가지고 있고, 지는 이를 두 개 가지고 있고, 인은 삼을 두 개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천지인은 자신의 고유의 수 외에 나머지 둘의 고유수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즉, 하늘은 땅의 수 二와 인의 수 三을 하나씩 가지고 있고, 땅은 하늘의 수 一과 사람의 수 三을, 사람은 하늘의 수 一과 땅의 수 二를 가지고 있다. 즉 하늘과 땅과 사람은 각각 자신의 고유한 성질을 나타내고 있지만, 각각은 나머지의 성질을 부분적으로 다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즉 하늘은 하늘이면서 땅이고 사람이요. 땅은 땅이면서 하늘이고 사람이며, 사람은 사람이면서 하늘이요 땅이라는 말이다. 뭔가 번쩍하고 머리를 때리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이 천지인의 삼극(三極)에 음(陰)과 양(陽)과 중(中)을 대입시켜도 그대로 들어맞는다. 이것이 음양학의 제일 원리이고 기본법칙이다. 이런 이야기는 평소에 관심이 있는 분이면 재밌을 텐데 그렇지 못한 분들한테는 머리 아픈 이야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상한 나라에서 삼청궁 선녀를 만났을 때가 아니면 죽어도 못 듣는 이야기이다. 어느 누구한테서도, 어떤 책에서도 이건 알지 못하는 이야기다. 관심을 가지고 읽어 주시면 좋겠다. 천부경에 숫자가 사용된 이유는 난해한 주문이거나 뜻을 해석하기 어려운 난문이기 때문이 아니라 수백 수천의 단어로 설명해야 할 것을 극도로 압축하기 위한 벙법에서 나온 것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각각 모습이 다르게 보여도 천지인은 동일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자하면 아마 수십 페이지는 족히 필요할 것을 단 두문장으로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 넘어갔던 앞의 문장 석삼극무진본(析三極無盡本)으로 돌아가자. 한자 뜻으로 풀어보면 “세극을 나누어도 그 본은 다하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으로 나뉘어도 궁극적인 근본은 다함이 없다(변함이 없다)” 의 뜻이다. 천지인과 음양중의 삼극이 비롯되는 이 다하지 않는 본(本)을 우리는 태극(太極)이라 부른다. 불가의 진아일여(眞我一如), 우리 한사상이 지향하는 삼신합일(三神合一)의 상태가 우주본래의 자리, 그대로의 본모습인 태극이다. 곧 무진본(無盡本)인 것이다. 그 다음에 우리는 천부경에서 가장 의미가 있고 중요한 한 구절과 만나게된다.
一 積 十 鉅 無 櫃 化 三 일적십거 무궤화삼
이제는 여러분도 한자의 뜻만 알면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대로 풀이하면 “일이 쌓여서 십이 되는데 상자가 없어서 삼으로 변한다.”이다.
일이란 하늘이다. 삼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해석된 뜻은? 하늘의 정기가 쌓이고 충만해지는데 그것을 담을 상자(궤)가 없으므로 사람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여기서 동양사상의 오직 하나의 외침이 나온다.!!! 인간은 하늘이 모습을 바꾼 것이다.!!! 동학에서 주장한 인내천이 바로 천부경의 가르침에서 나온 말이다. 사람을 섬기기를 하늘과 같이하라 했던 유교의 인본주의 사상이 여기서 발원되었음이다.
공자가 동이족이었다는 것이 우연한 일이겠는가? 불가의 자재불성, 중생이 곧 부처란 사상이 여기서 나왔음이다. 하늘이 있고,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와 피조물이 나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변한 것이 사람이니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궁극의 가르침이었다. 이것이 일만년 전의 고대인의 종교관이었다고 누가 믿을 것인가? 우리민족의 종교적 차원은 태양신을 섬기거나 창조주를 찾던 타민족들의 그것과는 하늘과 땅만큼의 격차가 있었던 것이다. 유불선을 포함한 동양사상을 단 하나로 압축하면 바로 “인간”이란 두 글자가 된다.
하늘의 기가 쌓이고 충만한 과정을 거쳐 인간(혹은 생명이란 말로 대치해도 되겠다)으로 화한다는 이 말은 이 우주에서 생명이 모습을 드러내는 원리를 극명하게 표현한 것이다. 현대과학이 생명의 탄생을 밝히게 되는 날, 과학자들이 이 이상의 말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이란 하늘을 담아 놓은 그릇(상자)>이다. 그 그릇을 함부로 하고 가벼이 대해서야 되겠는가? 모든 사람이 다 하늘인 것이다.
서양이 신본주의라면 동양은 인본주의이다. 서양의 신과 인관이 대립관계요 종속관계라면 동양은 일체관계요 수평관계이다. 사람이 곧 하늘인데 어찌 사람 밖에서 신을 찾을 것인가? 마음 밖에 부처가 있겠는가? 천부경의 전체문장은 그 뜻이 애매하거나 모호한 것이 한귀절도 없다. 모든 것을 가장 명료하게 분명한 문장으로 말하고 있는 경전이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 하세요? 그래도 이 천부경이 해석이 불가능한 난해한 괴기문으로 보이세요? 이제 우리는 천부경에서 깊이 생각해야 할 하나의 흥미로운 수수께끼와 마주친다.
바로 이 문장이다.
大 三 合 六 生 七 八 九 대삼합육 생칠팔구
대삼합육은 글자 그대로 큰 세 개를 더하면 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큰 세 개란 무엇일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바로 천지인의 삼극이다. 즉 천의 수 일과, 지의 수 이와, 인의 수 삼을 합하면 육이 된다는 말이다. 이 당연한 덧셈을 왜 하고 있을까? 앞에서 하늘의 수가 네 가지 였다. 일일이삼, 땅의 수는 일이이삼, 사람의 수는 일이삼삼, 여기에서 천지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 수 하나씩을 빼면 1+2+3은 모두 6으로 같다는 말이다.
즉, 천지인은 동본이상(同本異象)이다 이 말이다. 하늘의 수도 6이요, 땅의 수도 6이요, 사람의 수도 6이다. 따라서 천지인의 삼극이 모여 있는 합일된 상태인 태극의 수가 바로 <666>이다. 삼극이 한자리에 모인 대삼의 수인 것이다. 천부경 여든한 글자를 세 개의 숫자로 압축하면 <666>이란 수가 나온다. 많이 본 것 같은 수일 것이다. 맞다. 요한이 묵시록에서 짐승의 수로 지칭했던 바로 그 숫자이다. 동양사상을 숫자로 상징하면 <666>이 나오는데 환상을 보고 있던 요한의 혼돈된 뇌리에 왜 이 숫자가 떠올랐을까?
그렇다, 말세에 기독교이 가장 커다란 적이 바로 동양의 정신이라는 것을 요한은 예언적인 환각 속에서 보았던 것이다. 기독교를 붕괴시키고, 멸절시킬 거대한 힘의 상징을 이 숫자로 보았다. 그리고 요한은 그 정체를 사탄을 추종하는 짐승으로 적었던 것이다.
이 요한의 묵시록과 우리 한민족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두 개의 대립되는 예언서 요한계시록과 정감록을 대조분석하면 미래세의 방향을 알 수 있다. 정다운스님의 정감록해설은 모두 틀렸다. 정감록의 뜻은 그렇게 푸는 것이 아니다.
이 <666>이란 숫자에 얽힌 동서양 이대문명의 충돌과 그 종말을 천부경 해설이 끝나는 대로 구름이 해 드리겠다.
그건 일단 뒤로 미루고 뒷 구절을 보자. 생칠팔구(生七八九), 칠팔구가 생긴다고 했는데, 이 칠팔구를 더하면 천하의 절기가 스물네개이다. 일 년의 운행이 24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물론 훗날에 하루의 시간 역시 24로 나뉘어진다. 삼극이 존재하면서 우주의 운행이 시작됨을 말하고 있다. 음양이 조화를 이루면서 천지가 돌기 시작하는 것이다. <666>이란 숫자를 본 김에 잠간만 옆길로 새자. 경문 풀이만 하니까 지루하신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잠깐 분위기 바꾸는 거다. 물론 천부경과 관련이 있는 이야기다. 요한이 계시록에서 기독교의 최후의 적을 <666>으로 상징되는 동양의 정신으로 보았고 그 화신인 짐승들로 보았는데, 그 짐승들은 누구이겠는가?
천부경으로 이어진 한사상의 아들들, 그 옛날 환인이 통치하던 천계의 후손들... 바로 우리민족이다. 배달민족의 이마에는 이 한사상이 지울 수 없게 각인되어 있다. 우리들의 이마에는 <666>의 표상이 찍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누구도 지우지 못한다. 설사 그가 독실한 기독교신자라 하더라도 그의 영혼은 한사상이 출렁거리는 삼심의 세계이다. 요한에 비견되는 우리의 대예언가 천표율사의 심안에 반대로 그들은 무엇으로 보였을까? 마찬가지로 짐승으로 보였다. 그것은 푸른원숭이었다. 정다운스님이 정감록인가 하는 책속에서 손도 못 대고, 강의할 때 횡설수설했던 정감록의 비문이 무엇이었나? 이 양반이 책선전하면서 광고카피로 사용했던 구절이 이것이다. 정도령을 예언한 구절이다.
청의자남래(靑依者南來)하니 성청원창해(城靑猿滄海)하고 사승즉비승(似僧卽非僧)이라. 내가 정다운스님을 만났을 때, 스님이 이 구절의 뜻을 풀이해서 구름이를 한참 웃겼다. 세상에 이렇게 푸는 것이었다. 푸른 옷을 입은 사람이 남쪽에서 온다는 것은 바로 승복을 입은 사람인데 고향이 남쪽지방 사람이다. 이 상반이 중이고, 고향이 전라도 남쪽이다. 성주위에 푸른 원숭이가 바다처럼 무수하게 깍깍 거린다. 깍깍거리는 것은 비웃는다는 뜻인데 정도령이 나타나면 사람들이 비웃는 다는 말이다. 아마 정다운 스님은 자기가 욕을 많이 먹어서 그렇게 생각 하나보다. 중은 중인데 중이 아니라는 것은 바로 땡초라는 뜻이다. 정다운스님은 자기가 땡초인 줄 잘 알고 있었다. 그람 스님이 정도령이네? 하고 까르르 웃고 말았다. 요즘 우편으로 사주팔자 봐주면서 돈을 솔솔이 벌고 있단다.
천부경을 난문괴서로 만든 사람들... 정감록을 만화로 만든 사람들... 구름이가 바로 잡으려 한다. 연약한 소녀의 몸이라하나 만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구름은 청의자남래(靑依者南來)하니 성청원창해(城靑猿滄海)하고 사승즉비승(似僧卽非僧)이라. 청의, 즉 푸른 옷이 상징하는 건 고래로 군인이었다. “푸른 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내 청춘” 노래가사에도 푸른 옷은 군인이다. 옛날 포졸들 옷도 푸른색이엇다. 즉, 정도력은 군인이라는 뜻이다. 위대한 장군이라는 뜻이다.
다음 구절의 첫 글자인 성(城)이 이 해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성은 군인에게 필요한 것이지 스님들한테는 필요 없는 것이다. 원래는 보루나 요새를 말하는 명사이지만 여기서는 막아낸다는 뜻의 동사로 쓰이고 있다. 너른 바다에 가득찬 푸른 원숭이를 막아낸다는 뜻이다. 바다에서 깍깍 거리는 원숭이가 어딨노? 뒤에 중은 중인데 중이 아니고, 라는 문장을 사족으로 달아놓은 이유는 혹시 후대에 우매한 사람들이 청의자를 군인이라고 해서 무과급제나, 육사 출신의 오리지날 군바리로 착각할까봐 염려되어 붙여 논 구절이다. 즉, 박대통령이나 전두환이나 노태우 같은 군바리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여기서 우리는 정도령의 역사적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너른 바다에 꽉 찬 푸른 원숭이를 막아내는 일, 즉 서양의 그릇된 문화와 문명으로부터 우리의 찬란한 정신세계를 지켜 나가는 것이 장차 올 정도령의 할 일이고 정도령은 그것 때문에 오는 것이다. 여기서 요한이 말하는 “말세”, 천표율사가 말한 “개벽”의 순간에 푸른 원숭이로 상징되는 서양문명의 공급자 유대민족과 666의 짐승인 동양정신의 승계자 한민족 사이에 아마겟돈이 있을 것이고, 이때 우리 쪽의 지휘자가 되는 분이 정도령이다. 우리가 승리해서 동양정신이 세계정신이 되는 날 “개벽”이 있을 것이고, 그들이 이겨서 서양정신이 세계정신이 되는 날 “말세”가 올 것이다. “개벽”이냐 “말세”냐가 인류의 두 적자인 유대민족과 한민족에 의해서 판가름 날 것이다. 이 승부가 인류사의 앞날을 결정할 것이다. 앞으로 이 아마겟돈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를 구름은 안다.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다. 인간만의 전쟁이 아니라 천상의 모든 신들이 참가하는 전쟁이다. 온 우주의 전쟁이다.
밤의 도시에 휘황하게 늘어선 십자가의 행렬이 푸른 원숭이들의 깃발들이다. 그들은 이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누구도 그 도도한 진군을 막을 자 없어 보인다. 저 십자가가 한민족의 하늘을 모두 덮는 날 그들은 승리의 나팔을 불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이제 시작된 것에 불과하다. 저들의 빛나는 승리도 이미 예언된 바였다. 그들의 참담한 최종적인 패배와 함께....
이쯤하고, 정감록의 상세한 해설은 천부경 이후로 미룬다. 구름의 글이 끝날 때쯤이면 이상한 나라의 사람들은 정도령이 누군지 알게 될 것이다. 진도 나가자. 다음 구절을 보자.
運 三 四 成 環 五 七 운삼사성 환오칠
한자 그대로 읽으면 “삼이 움직여 사를 이루고, 오와 칠을 덮는다.”이다. 삼이 움직인다는 것은 석삼극, 즉 천지인 또는 음양중의 3극으로 나누어 진 태극은 고정되어 제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 상생상극하며 돌게 되는데 이것은 천지의 운행이고 음양의 회전이다. 삼극은 움직(運)인다. 이 삼극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成) 것이 사(四)다. 이 사가 바로 기(氣)이다. 기의 부실함은 바로 삼극의 움직임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기가 오와 칠을 둘러싼다(環). 오(五)와 오행(五行) 즉 모든 물질과 제반 현상이고, 칠(七)을 칠기(七氣) 즉, 칠정(七情)인 마음이다. 태극이 나뉘어 삼극(삼신)이 되고, 이 삼극이 조화로 운행하면 기가 생기며 이가 몸(물질)과 마음(정신)을 같이 둘러싼다고 하는 음양오행의 이론적 시원이 여기서 나왔다. 이후 문장들은 한자를 아는 중학생이면 읽고 그 뜻을 알 수 있는 평이한 문장들이다.
一 妙 衍 萬 往 萬 來 일묘행 만왕만래
하늘의 움직임은 묘하고도 묘하여라. 삼라만상이 가고 오는 도다.
用 變 不 動 本 용변 부동본
세상만물이 그 쓰임(형태, 모습)이 변해도 근본자리는 바뀌지 않음이니.
本 心 本 太 陽 본심 본태양
근본마음이 본래 밝은 빛이니
그리고 이 다음에 천부경의 결론이 되는 구절이 나온다.
昻 明 人 中 天 地 一 앙명인중천지일할지니
사람을 우러러 비추어라. 천지 중에 으뜸이니라.
이 지구상에 이보다 더 인간을 존중하는 종교나 사상은 찾아볼 수 없음이다. 해서 석가는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이라 포효했다. 한 생명이 우주만큼 소중한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마지막 문장은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이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우주는 끝남이 없이 끝나니나.” 하지만 천부경 이야기는 끝이 안 났다. 휴, 겨유 천부경 여든 한 글자의 글자풀이를 끝냈다. 내일부텀 이틀 동안 어디 다녀와야 하기 때문에 여기 못 들어올 것 같아서 서둘러 쳐 올렸다. 이제 천부경은 글자대로의 해석만 끝낸 참이다. 해설도 해야 한다.
그런데 비슷한 이야기를 계속 끌고 가면 재미가 별로 없다. 그래서 중간 중간에 다른 스토리들을 잠깐씩 끼워 놓는다. 천부경의 해설 중간에 삼청궁 선녀가 아는 세계사의 비밀을 흘려 나갈 참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주인공은 어느 민족이었을까? 많은 주연들이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고 활약을 보이다가는 사라져 갔다. 그런데 영화의 주인공은 중간에 사라지거나 나중에 나타나거나 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등장해서 영화 끝날 때까지 나오는 게 진짜 주인공이다. 물론 마지막에 죽는 수는 있지만, 그건 영화가 끝나는 순간이다. 주인공이 중간에 죽어버리는 영화는 아직 못 봤다.
그렇다면 희랍은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로마도 잠시 동안의 주역이었지 진정한 주인공은 아니었다. 시황제의 진도 그렇고 징기스칸의 몽고도 마찬가지다. 사라센도 대영제국도 미국도 모두 아니다. 세계사의 처음부터 등장하여 최후까지 남으면서 인류사라는 영화의 줄거리의 중심에 서 있는 두 주인공이 있다. 화면에는 석양의 노을빛이 흐르고 두 주인공이 황야에 마주 서 있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이 흐르고 두 주인공은 총을 뺀다. 둘 중에 하나가 말을 타고 황야 저 멀리 사라지면 영화는 끝이다. 인류사라는 서부극에서 이 두 주인공의 이름은 유대민족와 한민족이다.
엥! 무슨 황당한 소리? 하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고, 정해진 신의 계획이다. 두 민족은 주인공만이 가지는 공통적인 특징을 완전히 동일하게 가지고 있다. 두 민족은 지구상에 거의 같은 시기에 나타난 최초의 인류였다. 이 과정의 비밀은 다음에 “선천기”를 올릴 때 상세히 들려 드리겠다. 지구상의 모든 민족은 이 두 민족으로부터 뻗어나간 방계가족들이다. 물론 상고시대에 이 두 민족은 지구의 지배자였다. 한쪽은 아프리카와 남미와 대서양을 지배했고, 한쪽은 아시아 전체의 지배자였다. 두 민족은 거의 같은 시기에 그들의 방계인 민족들의 강성함에 눌려 역사의 조연으로 전락하게 된다. 유대민족은 이집트와 로마, 배달민족은 황하유역의 황토인 들에게 일시 그 주인공 자리를 내주게 되는 것이다. 모든 액션 영화가 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꼭 악당들에게 잡혀 위기의 순간을 맞는다. 두들겨 맞고 고문당하고 비참함에 빠진다.
그러나 주인공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는 그들로 해서 스토리가 이어져 가야 한다. 두 주인공은 거의 같은 시기에 같은 이유로 무대에서 사라지게 되는데 이건 복수를 위해 주인공이 잠깐 도피하는 시기가 되는 것이다. 그들이 사라진 뒤, 세계사는 그들과는 전혀 무관하게 움직여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상 이 세계는 그들 두 민족이 움직여 온 역사이다. 유대민족의 기독교가 지구의 절 반쪽 역사를 결정지었고, 배달민족의 한사상이 나머지 절반을 유불선으로 움직였다. 두 주인공민족의 정신이 세계를 움직인 두 개의 축어었던 것이다. 양대 민족은 종교적으로 “선민사상”이라는 공통의식을 가지고 있다. 세계에서 신에게 선택된 민족이라는 의식은 이 두 민족만이 보이는 특징이다.
그들의 신은 아브라함의 신이고 모세의 신인데 반해, 우리의 신은 환인이요 환웅이며 단군으로 이어졌다. 이 두 민족만이 신이 지정해준 땅을 가지고 있는 시오니즘의 뿌리를 갖고 있다. 그들의 신이 지정해 준 땅은 가나안이요, 우리의 환인(하늘님)이 지정해 준 땅이 신시로부터 발원한 한반도였다. 이 두 민족만이 상고시대부터 바꾸지 않는 유일한 가치를 유지시켜 왔다. 유대사상과 한사상이다. 이 두 민족만이 고등한 이념과 교리의 체제를 담고 있는 경전을 가지고 있다. 바이블과 삼대성서(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가 그것이다. 이 두 민족만이 세계에서 유일한 예언서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것은 구약과 모든 세게이며 우리의 것은 신지와 정감록이다.
이 두 민족만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류사의 마지막에 대한 개념과 철학적 토대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종말론을 “말세”라 말하고 우리의 것을 “개벽”이라 한다. 그들과 우리는 비슷한 기간 고난의 시기를 견디어 왔다. 그들은 땅을 잃은 채 역사(바이블)에 의지해 고난을 견뎠고, 우리는 역사를 잃은 채 땅(한반도)에 의지해 고난을 견뎠다. 이 두 주인공은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화려하게 등장하기 직전에 최후의 위기를 똑같이 맞는다. 유대인들은 나치에 의해 말살의 위기를 맞았고, 우리는 왜인들에게 말살의 위협에 직면했다.
두 민족은 똑같이 최후의 시련을 견뎌냈으며 이제 악당들에게 빼앗겼던 그들의 무기를 찾고 있다. 유대인들은 잃었던 땅을 찾았고, 우리는 잃었던 역사를 찾고 있다.
<땅을 잃고 영혼만으로 대지를 방랑하는 자가 자기 땅으로 돌아가고, 영혼을 잃고 땅에 뿌리박혀 울던 자가 영혼을 찾으면 그것이 개벽의 시작이리라>고 한 신지의 예언이 적중하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바야흐로 두 주인공이 역사의 무대에서 단 둘이 마주설 날이 다가오고 있다. 어느 쪽이 정의이며, 어느 쪽이 불의일까? 다음 역사가 그것으로 결정되리라.
유대민족에서 발원된 기독교 정신, 그리고 기독교 정신을 씨앗으로 해서 마침내 열매를 맺은 서양의 문화를 압축해서 표현한다면 무엇이 될까? 나는 그것을 <자유와 평등>이라고 생각한다. 자유의 정신은 근세 이후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 꽃피었다. 평등의 사상은 필연에 따라 사회주의를 잉태하여 공산주의를 낳고, 반세기에 걸쳐 평등의 아들이 지구의 반을 붉은 색으로 물들였다.
초기 아담스미스를 비롯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창시자들이 대부분이 유대인이었음과 공산주의를 만든 칼 맑스가 유대인이었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천부경으로 시작된 한사상이 모든 것의 뿌리가 되고 있는 동양 문화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조화와 질서>였다. 아마겟돈은 자유와 질서의 전쟁이고, 평등과 조화의 전쟁이다. <자유와 평등>이 승리하면 말세요, <조화와 질서>가 승리하면 개벽이 될 것이다. 남녀가 평등한 사회와 남녀가 조화하는 사회 간의 전쟁이요, 아버지와 아들이 자유로운 사회와 부자지간의 질서가 엄정한 사회 간의 전쟁이다. 신 앞에서 만인이 평등한 세계와 신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세계간의 전쟁이다. 인간이 자연에 대해 자유로운 문명과 인간이 자연의 질서에 따르는 문명 간의 충돌이다.
아마겟돈은 <자유와 평등> 그리고 <조화와 질서> 이 둘 중에 앞으로의 인류가 어느 것을 택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종말이다. <자유와 평등>은 인류를 몰락으로 인도할 것이고, <조화와 질서>가 인류를 질곡에서 끌어내는 구원의 밧줄이 될 것이다. 다음 세기의 개벽은 인류를 <조화와 질서>의 세계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음이 양을 지배하여 둘로 가르면 후천개벽의 징조이다.” 신지의 이 예언은 무엇을 말하는가? 음의 인류 서양인들이 양의 인류의 적자인 한민족을 지배해서 둘로 갈라 놓는다는 말이다. 오늘의 분단상황이다. 반은 평등의 이름으로 지배하고 있고, 나머지 절반은 자유의 이름으로 지배하고 있다.
“양이 음을 초극하여 하나가 될 때 새로운 하늘이 열리리라.” 이 예언은 통일한국이 남쪽의 천민자본주의와 북쪽의 교조사회주의를 동시에 극복해 갈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자유에 의한 무한경쟁의 자본주의와 평등에 따른 강제행복의 공산주의, 어느 쪽도 아닌 <조화와 질서>에 바탕한 새로운 국가, 새로운 사회의 건설이 있게 될 것이다. 이 새로운 국가의 형태가 후천사의 세계 인류의 따라오는 바가 될 것이다. 타고르가 말한 동양의 횃불이 불확실한 인류의 미래를 밝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정감록이 말하고 있는 “개벽”의 요체이다. 우리가 세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우리를 따라오게 될 것이다. 다음의 세기는 찬란한 동양정신, 한사상의 세기이다. 한민족은 인류사의 주인공으로 찬란하게 복귀하게 될 것이다.
다시 천부경으로 돌아가자. 천부경은 그 내용이 길지 않으면서도 우주와 신과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불교의 8만대장경을 200여 글자로 압축한 것이 <반야심경>이다. 이 <반야심경>의 내용을 여든한 글자로 압축하면 천부경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게 된다. 반야심경을 한글자로 줄이면<心>이다. 천부경을 한글자로 줄이면 <人>이다.
천부경의 가르침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우주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 현재 우주물리학은 시작이 있는 세계, 즉 “빅뱅” 이라 말하는 대폭발이론으로부터 그게 전부가 아니다 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즉 “ 뱅”이 우주의 시작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대폭발설 이후에 거품우주, 다원우주이론 등이 폭 넓은 지지를 얻어가고 있는 중이다. 현대 우주물리학은 결론의 가닥을 “시종이 없는 우주” 쪽으로 잡아가고 있다. 천부경이 대개 종교적인 경전으로 생각하는데, 이 천부경에 신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없다. 불교의 가르침도 신은 종속적인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내세에 대한 이야기도 없다. 구원의 희망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인간은 하늘, 즉 우주 그 자체이다.”라고 말하고 있고, 우주는 시작도 끝도 없다고 말한다.
인간은? 태어남과 죽음이 없이 영원하는 우주이다. 세계의 모든 민족들이 태양과, 달과, 염소와, 독수리와, 뱀을 신으로 받들고, 신들의 기쁨을 위해서 인간의 심장을 바쳤던 때에 한민족은 이러한 졸렬유치한 종교관이나, 신관으로부터 훨씬 높은 차원에 가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우리민족은 우상을 세우지 않았던 민족이다. 불교가 들어온 이후에 불상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하늘에 제사지내는 신성한 장소인 소도는 그저 평평한 마당에 작대기 하나(솟대)를 세워 놓은 것이었다.
그 제사의 성격은 신에게 봉행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늘님을 모시고 산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잔치였다. 인간을 벌하는 신이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세계의 모든 민족은 신 앞에 죄의식에 사로잡힌 채 두려운 심정으로 나아갔다. 한민족은 원래 신 앞에서 더욱 명랑한 민족이었다. 신을 공경했지(敬天) 두려워하지 않았다. 신에 대한 공경은 인간에 대한 사랑(愛人)의 다른 방법이었다. 敬天愛人의 밝은 마음이 우리민족의 종교관을 형성한 것은 환인천제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져온 천부경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무엇인가를 만드는 신(그것이 우주건 사람이던 간에), 질투하는 신, 시험(test)하는 신, 분노하는 신, 복수하는 신, 편드는 신, 파괴하는 신, 벌주는 신이란 개념은 우리 민족에게는 황당하고 우스운 것이었다. 우리 민족이 알고 있는 신은 그렇게 촐싹거리는 신이 아닌 것이다.
우주의 본질 다음으로 천부경이 가르치는 것이 바로 인간의 본질이다. 하늘의 기가 형상으로 나타난 것, 이것이 인간이다. 우주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인간이라 말하고 있다. 인간을 신을 위해 봉사하는 피조물로 여기는 대부분의 종교들과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천부경으로 시작된 하늘의 개념이 지배한 고대 동양에서는 신을 위한 건축물을 짓지 않았다. 불교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불교의 사원이나 탑들은 부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것들이다. 부처를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기쁘기 위한 것들이다. 신은 혼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삼신이 함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천지인의 삼신사상이다.
삼일신고야 말로 종교적인 모든 경전의 윗자리에 놓일 만하다. 하나님을 흙 빚는 도자기 공으로 만들어버린 구약을 어찌 고결한 한 사상에 비할 것인가?
<최종정리>
一 始 無 始 一 일시무시일이니
우주는 시작됨이 없이 시작된 우주이니
析 三 極 無 盡 本 석삼극 무진본이고
하늘과 땅과 사람으로 나뉘어도 근본은 변함이 없고
天 一 一 地 一 二 人 一 三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이라
天 二 三 地 二 三 人 二 三 천이삼 지이삼 인이삼이니
하늘 땅 사람은 모습은 다르되 근본은 같으니라
즉 하늘은 하늘이면서 땅이고 사람이요,
땅은 땅이면서 하늘이고 사람이며,
사람은 사람이면서 하늘이요 땅이라는 말이다.
一 積 十 鉅 無 櫃 化 三 일적십거 무궤화삼이니라
하늘의 정기가 충만해지건만 담을 상자 없어 사람으로 변하노라
大 三 合 六 生 七 八 九 대삼합육 생칠팔구하고
삼극이 돌고돌아 24절기를 만들고
運 三 四 成 環 五 七 운삼사성 환오칠하니
삼극의 조화로 기가 몸과 마음을 감싸노니
一 妙 衍 萬 往 萬 來 일묘행 만왕만래라
하늘의 움직임은 묘하도다 삼라만상이 가고 오는구나
用 變 不 動 本 용변 부동본이요
만물의 쓰임은 변해도 근본은 변치않고
本 心 本 太 陽 본심 본태양이니
근본마음이 본래 밝은 빛이니
昻 明 人 中 天 地 一 앙명인중천지일할지니
사람을 우러러 비추어라. 천지간에 으뜸이니라.
一 終 無 終 一 일종무종일이니라
우주는 끝남이 없이 끝나는 우주이니라.
이경숙 주해(註解) 천부경(天符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