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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분기도

십분 기도 260606. 믿는 다는 것, 믿음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작성자민구식|작성시간26.06.05|조회수66 목록 댓글 0

십분 기도 260606. 믿는 다는 것, 믿음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요세비

 

우리는 보이고 이해한 것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집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나 상황에 대해서는 믿는다 기 보다는 먼저 이해 가능여부를 따져 봅니다

즉 나의 상식과 이해 가능한 공식, 유추와 상상의 범주내에서만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요. 이는 과학적 사고가 발달한 현대인의 사고방식에서 더욱 많이 기인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육체는 유한하고 존재는 영원하다는 말을 하면 영원함 앞에 현재나 육체의 존재는 하나의 과정으로 인식됩니다. 그 영원성에서 죽음은 다시 시작하는 문을 여는 것이지요. 그것이 장례식입니다. 죽음의 의식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이지요.

인간은 누구나 영원하기를 꿈 꿉니다. 죽음을 초월하기를 바라지요. 그래서 진시황제의 불로초 이야기를 하고, 죽음 이후, 그 너머의 세계를 궁금해합니다. 그러나 그 궁금은 인간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고 알 수 없고 볼 수도 없는 것이면서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상황입니다.

 인간이 오래전부터 고민해왔던 사후세계, 윤회, 이런 것에 대한 의문과 불신을 떨칠 수도 수용할 수도 없지요.

 그런데 우리는 귀신 이야기를 하고 유령 이야기를 하고 죽은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기적을 바라고 초자연적인 현상에 관심을 가집니다.

죽음 너머의 세계는 있을까요?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어떤 터널, 통과, 보임, 심판, 회생 등의 이야기를 합니다. 죽은 다음 초입의 순간에서 세상으로 돌아오기 전 까지의 과정을 보았다고 합니다. 대부분 듣게 되는 상선벌악이나 연옥 같은 이야기, 심판에서 겪은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우리가 사는 곳은 자연의 법칙을 따릅니다.

신을 간절히 부르는 사람의 입장(신이 내렸다는 무당의 이야기에서)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을 인식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신이 내리기도 하고, 신의 대리자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일종의 샤머니즘적(기복) 행위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신내림을 받은 이는 자신이 신의 역할을 하는, 스스로 신이 되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그 신을 볼 때 신에도 수준이나 차별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그 신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통점은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뇌 과학자들은 뇌 자극을 통하여 측두엽에 신과 연결되는 가스팟(God’s Spot)이라 부르는 이 영역의 영향이라고 합니다. 이 측두엽에 자기장을 흘려보내 10분 지나면 붕 뜬 상태 느낌을, 30분 정도가 되면 감정의 변화가 있었으며 그것은 뭔가 옆에 있는 듯한 느낌이고 영적, 종교적 체험은 아니었다고 하는 대상도 있었고, 다른 참가자는 가스팟을 자극했을 때 생각을 할 때의 느낌, 또는 누구인가 가 다가오다가 속삭일 것 같은 느낌, 환청인가? 하는 생각, 눈을 감으니 어떤 형상화가 되더라(보이더라), 둘러보게 되고, 누군가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만났다는 느낌, 예수님, 천사를 만났다고 구체적 답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는 측두엽의 자극이라는 것이 생리적 현상일까?

인간의 뇌에 갓스팟이 하나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명상이나 기도 같은 상태에서 뇌에 일어나는 현상을 연구한 촬영장치의 결과를 보면 뇌 안에 신의 영역이 따로 있지는 않다고 합니다. 고대 수렵에서 위험한 상황이 되면 어린아이처럼 독특한 능력을 키우지요. 그래서 반복적으로 그런 위험이나 사건 사고의 원인을 찾곤 했지요. 그리고 착시를 보기도 하고 다른 것을 보기도 하면서 상상, 착각 등으로 겁쟁이 뇌를 가지게 되고 그런 것에 반응하면서 어떤 절대적 존재를 가지게 되었지요.

 

한국인 24명의 대상을 선정 여러 종교를 가진 자들과 무신론자들을 대상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듣는 방식으로 6개의 상황을 각기 다른 이에게 이야기해 주고 답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여기서 <신의 의인화> 라는 현상을 알게 됩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어린아이가 십자 말 풀이를 하고 있는데 이를 신이 돕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한국 여성 하나가 베트남의 정글 숲 속을 걷고 있었는데 길을 잃었습니다. 날씨는 덥고 습하고 벌레들이 날아다녔습니다. 여성은 그곳을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겁이 났습니다. 여성은 신에게 기도했습니다. 어린이를 돕고 있던 신은 여성을 안심시키고 숲을 빠져나가는 길을 보여 주었습니다. 어린이는 신의 도움으로 십자 말 풀이를 다 끝냈습니다. “

이 이야기를 듣고 교수인 실험대상자에게 생각나는 대로 답을 하라고 했습니다.  대답을 하는 교수는 정확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연구자 리더가 말했습니다. 신은 앞의 두 일을 순차적으로 도왔는가? 아니면 동시에 도왔다고 생각하는가? 답을 한 교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순차적으로 도왔다고 생각을 했다고 답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을 전지전능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신이나 신앙의 대상이 두가지 일을 동시에 했다고 쉽게 떠 올리지 못했을까요? 이것을 <신이 의인화했다>라고 하는 것으로 인간처럼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것으로 기도의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지요. 그래서 신이 화가 나기도 하고, 복수를 하기도 하고, 하느님이 쪼잔하게 보이기도 하는 것인데 기억을 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는 것입니다. 만약 OX 문제로 했을 경우 의인화문제는 더욱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신을 사람처럼 생각해서 틀린 경우가 절반에 가까웠습니다. (45.1%). 일상적인 이야기의 오답은 10.4% 정도였습니다.

이 실험과 질문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인간을 통해 실제로 보이고 상호작용을 하면서 살아야 되는, 사람에 대해 아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신에 대해 생각하는 능력도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능력에 붙어있다고 봅니다.

신을 묘사할 때도 인간처럼 묘사하는 경우가 많지요. 모든 종교에서 신의 모습을 그린 것을 보면 팔이 여러 개거나 하는 모습이긴 하지만(이유가 있어서) 다들 사람의 모습을 크게 넘지 않지요. 하느님 역시 인간의 모습을 넘어 아주 다르게 그리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성경에 천지창조 이야기에서 보면 사람을 신인 여호와를 닮게 창조했다고 하지요.

보이지 않는 존재를 인간의 모습으로 상상합니다. 그것은 더 오랫동안 더 쉽게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음속의 신은 인간과 비슷하지만 좀 특별하지요.

인도 쿵부멜라(힌두교 축제)에서 보면 2억명의 사람들이 모입니다. 이 기간동안 강물에 몸을 씻으면 전생과 현생의 죄가 전부 씻겨 깨끗한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믿지요. 수행자 ‘나가사두’들을 필두로 의례가 시작되면 기다리던 사람들이 강에 몸을 담급니다. 50일 동안 지속되는 행렬입니다

믿음은 사람과 사람을 넘어 거대한 공동체를 만듭니다. 이 집단 속에서 위안을 얻고 거대한 문명체를 이룹니다.

뉴욕의 극단주의 집단 유대 공동체 <하시딕>에 소속된 어느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기본적인 것만 읽고 쓰고 다른 것은 배우지 않습니다. 여기서 받는 교육은 90%가 유대교와 관련된 것입니다. 영어를 쓰고 읽거나 기본적인 수학도 배우지 않습니다. 마이클 잭슨도 모르고 BTS 도 모릅니다. 이들의 복장과 대화 방식 등을 보면 1800년대로 돌아간 듯합니다. 검은 정장에 검은 중절모, 흰 셔츠의 공통된 복장입니다. 고립되어 있지요. 여자들은 머리카락을 자르지요. 다른 남성들이 관심을 가지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가발을 쓰지요. 직업을 가지는 것도 금지됩니다. 공동체는 서로 관심을 가져주고 도우며 협동합니다. 천명의 가족이 있는 것 같은 그런 관계를 가진 공동체이지요. 그런데 이스라엘에 유학을 가서 다른 비 종교인인 유대인을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의 사실이 진정 절대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요.

그는 이제 그런 종교가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종교가 제공하는 기능들이 없어도 삶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종교의 가치는 다릅니다. 삶의 지표가 되는 경우도 있고, 더 이상 유효하지도 않다고 합니다. 종교는 우리의 삶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요? 정신적인 기댈 곳이 필요해서일까요? 나의 발전을 위한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하게 해 주어서일까요? 평생 나를 지켜보는 CCTV 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일까요?  함께 해주는 소속감 때문일까요?

사람들은 꼭 신이라고 하지 않아도 무언가 절대적인 존재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작고 보잘것 없음을 인식할 때 더 큰 존재인 신을 의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믿음의 근원에 대해 많은 사유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신은 확인하는 대상이 아니라 느끼는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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