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분 기도 260616. 부자와 라자로 이야기에서
민요세비
성서에는 라자로 성인이 여러 명이 등장한다. 밀라노의 주교인 라자로가 있고, 예수의 제자였으면서 주교였던 라자로 베타니아의 성인이 있고 평신도였으면서 순교자인 라자노는 일본의 나가사키 성인이다. 11월 7일이 축일인 라자로는 설립자, 증거자의 성인이고 수도승이면서 화가이며 증거자인 라자로도 있다.
그 중에 우리가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라자로는 6월 21일이 축일인 거지로 등장하는 1세기 경의 라자로이다. 루가복음 16장 19-31절에 언급된 비유 중에 나오는 가난한 라자로인데 중세시대에 병원, 걸인, 라자로 수도회(나환자를 돌보는 수도회)등의 명칭이 그에게서 유래한다고 한다.
라자로는 그리스어로 ‘도움을 받을 길이 없다’ 라고 뜻이나 히브리어로 하면 엘리제르 가 되는데 거꾸로 ‘하느님이 도우신다’ 라는 뜻이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 빈부격차가 가장 심한 나라라고 합니다. 그리고 교육열도 커서 조기 유학이니, 기러기 아빠 니 하는 말이 생긴 나라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부자들이 골프여행이라고 동남아에 가서 성희롱 하다가 망신을 당하기도 하는 일도 있는 부자들의 물질적 수준과 정신적 수준의 격차도 최하위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루가 복음서에는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루가6.21)라는 말씀이 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별로 없는 통쾌한 말씀이다. 부자들이 이 말을 듣고 어떻게 반응했을까? 루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손을 많이 들어준 복음사가였다. 『배고픈 사람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고, 부요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루가 1, 53). 여기서 배고픈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먹거리가 필요한 구걸의 사람일까? 재산을 늘려 주신다는 이야기일까? ‘부자로 돌려 보내신다’ 라는 표현도 완곡하다. 부자들은 빈 털털이로 쫓아 내신다는 표현이 고쳐 읽어야 할까?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를 잘못 이해하면 부자는 무조건 나쁘다, 가난함을 선택해야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 라고 오해 할 수 있다. 그래서 카톨릭 젊은이들이 어쩌란 말이야? 돈을 벌어야 하는 거야, 그냥 가난해야 하는 거야? 하는 반발을 살수 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벌고, 번 돈은 가난한 이들에게도 나눌 줄 아는 공동체를 위한 소명의식이 있는 부자를 원하는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부자가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