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눈이 내리던 날
첫 손녀를 보았다.
그와 함께
시도 왔다.
하느님은 참,
많은 걸 주신다.
처음에 소설을 쓰다
동화를 쓰고,
나이 일흔에
시집이라니,
빚만 늘고
참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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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난아기
어제까지
없었는데
오늘
있다
눈도 있고
코도 있고
손톱도
작다
맹인
깡통 속엔 여전히 동전 두 개,
아이가 동전을 꺼내 자꾸만
되던지고 있다
소리만 듣고 아빠는 계속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인사를 한다
목욕탕에서
떠든다고
어른들에게 혼나 가면서
장난치고 노는데,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인살 하나 어쩌나
망설이고 있는데,
삼식이가 날 끌고
구석으로 갔다
너 봤어?
뭘?
무지 커, ㅋㅋ
삼식이가 말했다
나도 모르게
목욕탕 안을 살피는데, 어디에도
선생님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일 났네!
사춘기 1
ㅂ
ㅈ
ㅆ !
국어사전을
뒤적이는데,
엄마가 문을 열었다
얼른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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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현대문학>에 소설이 추천 완료되어 등단한 이래 줄곧 동화를 중심으로 마흔 권 가까운 산문을 내신, 강정규 선생님의 첫 동시집을 소개합니다.
“재작년 겨울(2010년) 눈이 오던 날이었는데, 손녀가 태어났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어요. 눈 떨고 소독하고 4층으로 올라가니까 유리벽이 있더라구요. 그 앞에서 조금 기다리니까 작은 베개를 수건으로 뚤뚤 말은 것 같은 걸 간호사 들고 와서 보여 주는데,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어요. 시에 쓴 대로, 어제까지 없던 게 있는 거예요. 세상에! 그야말로 눈도 있고 코도 있고 손도 있고. 눈을 맞으며 전철역으로 오는데, 기분이 아주 묘했어요. 전철 타고 부천까지 돌아오는 중에 메모를 했죠. 그게 제가 처음 쓴 동시예요.”
강정규 선생님이 동시를 쓰게 된 계기는 바로 ‘어제까지는 없던 손녀’가 세상에 태어나면서 부터랍니다. 해설을 쓴 이안 시인은 “선생님의 동시는 동심을 품은 종심(從心)의 관계론이자 시론”이라고 했습니다.
<시와 동화>(통권 61호, 환갑을 맞은 대표적인 아동문학 문예지) 주간이자 문단의 어른이신 강정규 선생님의 첫 동시집,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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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규
젊은 시절 야학운동을 했다. 처음에는 소설을 쓰다가 동화를 쓰고, 손녀를 보면서 동시도 쓰게 됐다. 오랫동안 신문사에서 일하고, 지금은 잡지 <시와 동화>를 낸다.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문학 담당 이사로 봉사하며 인사동 인문학 교실에서 매주 젊은이들을 만난다.
목욕탕에서 선생님을 만났다 - 강정규 동시집 - 문학동네.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