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망친 베트남 신부와 그 조직을 찾습니다. [26]
안녕하세요, 저는 평범한 대학생 여자 이구요,,도망친 베트남 신부의 남편인 삼촌의 조카입니다. 먼저 이 글을 이렇게 읽으시려 열어주신점 너무 감사드립니다.
글이 길어지더라도 꼭 한번 씩 읽어주시구요,,제보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먼저 삼촌은 저에게 친 삼촌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희 어머니께서 공장 구내식당을 하면서 그때 공장에서 일하는 삼촌과 알게 되면서 지금까지 15년을 알고 지내왔으니 오히려 그 어떤 가족보다도 끈끈한 관계입니다. 그래서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납니다., 삼촌과의 관계, 삼촌이 저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쓰고 싶지만 읽고 계신 여러분께서 다 아시리라 생각하고 본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처음 삼촌이 국제결혼을 택하게 된 것은 아마 2007년 7~8월 경일 것입니다. 삼촌은 시골에 어머니가 계시고 위로 형이 계셨는데 형께서도 너무나 좋은 분이셨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계셨지만 얼마 전 안타깝게도 대장암으로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삼촌을 결혼시키고자 선을 몇 번 주선했지만 한국 여자들 시골남자라는 이유로, 공장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고졸이라는 이유로,,거들떠 보지도 않았습니다. 제 가족 같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저희 삼촌 정말 그 누구보다 착하고 순수한 사람입니다. 나이는 30대 중반인데 그런 이유들로 결혼이 늦춰지고 삼촌 또한 몇 년 전부터는 결혼에 대해서 마음을 많이 접은 듯 했습니다. 하지만 시골에 계신 어머니 마음은 또 그게 아니잖아요,,두 아들에서, 큰아들을 그렇게 허무하게 보내시고 이제 남은 여생을 편하고,,그리고 막내아들 행복한 모습을 보시는게 남은 소원이셨겠죠,, 그래서 삼촌도 모르는 사이에 어머니께서 전라도 광주에 있는 국제결혼정보회사에 신청을 하셨답니다. 삼촌 또한 처음에는 싫다고, 생각 없다고 했지만 조금씩 마음이 바뀌어 가는 듯 했습니다. 제가 기억을 하는 것으로는 처음에 반 정도의 계약금을 제시하고 그리고 베트남을 가서 4박5일 정도를 머물렀던 것 같습니다. 그때도 오죽 하셨으면 어머니께서도 가시기를 원하셨고 그곳에서 처음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치 우리나라의 환갑잔치와 비슷하게 조촐한 결혼식과 웨딩사진을 찍었더라구요, 그렇게 돌아와서 삼촌의 모습이 얼마나 밝았던지 삼촌은 숱한 자랑들을 늘어놓았습니다. 너무나 예쁘고 짧은 기간 이었지만 어머니께 안마도 해드리고 너무나 잘했답니다. 말은 안 통했어도 답답한 것 없이 너무나 예쁘기만 했다고,,,그렇게 얘기하는 모습에 짧은 시간에 정이 들었구나 싶더 라구요,,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10월달 쯤 삼촌이 또 다시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물어보니 결혼과 관련된 여러 가지 절차도 밟을 겸 해서 나가야 한다고 하더 라구요, 그날을 너무나 기다리고 있어서 가는날 디카도 손에 쥐어주며 삼촌에게 사진도 많이 찍어서 오라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돌아와서 물어보니 비자 발급과 몇 가지 절차만 밟으면 3~4개월 안에 들어온다고 하더라구요, 그때부터 삼촌은 신부를 맞이한다는 생각에 집에 살림살이도 사다 나르고 연신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12월 말쯤이나 되어서 들어오겠거니 생각을 했는데 생각보다 조금 일찍 들어와서 아마도 제 기억에 12월 10일 전후 였던 걸로 기억 됩니다. 삼촌만큼이나 저와 저희 엄마,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기대를 많이 했기에 삼촌이 오전에 공항을 나가 픽업을 해온 후 가게로 데려 왔는데,,사진처럼이나 처음 모습은 너무나 예뻤습니다. 생각을 했던 것과는 달리 키도 굉장히 작고(대략 148~150cm) 머리는 긴 생머리에 노란색으로 브릿지를 넣고 손톱도 다듬어서 메니큐어까지 칠했더라구요, 처음 보면서 삼촌이 말했던 호치민에서도 8시간 가까이를 들어가서 산다는 시골 여자애 같지 않았습니다. 삼촌이 사진을 찍어왔던 가족들을 보면 어머니와 아버지는 눈에 띄게 나이가 있으셨고 언니나 오빠의 사진도 꾸밈이라고는 없는 베트남 사람이었기 때문에 처음 본 숙모(베트남 신부)의 모습은 생각했던 거랑은 너무나 달랐죠,
그렇게 들어왔는데 솔직히 사람이 첫인상으로 판단하면 안되지만 첫 모습이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다,,,싶었습니다. 저보다는 한 살 많은, 그러니까 지금 나이는 23살인데 솔직히 이 나이와 생년월일도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저 뿐만이 아니라 어른들이나 저희 엄마도 보통의 베트남 신부들과는 다르다,,정말 사돈 처음 뵙겠습니다. 라는 프로에 나오는 착하신 베트남 신부들처럼 가정이 어려워서 한국으로 시집을 오고 어떻게든 열심히 일하고 부모님 모시려는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삼촌의 경우 공장에서 일한다 해서 남들이 무시할지 몰라도 한결같이 17년을 일하면서 열심히 모아서 적당히 큰 평수의 아파트도 사 놓았고 무엇보다 어머니께서는 부담이 될까 싶어 같이 살고 싶지 않다며 삼촌과 숙모 둘이서만 살라고 힘든 일이나 궂은일은 안 해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걱정이 되었던 것은 들어왔는데 정말 한국말을 엄마라는 소리 말고는 손짓만을 사용하더라구요,
제가 듣기로는 결혼정보회사와 연결이 되어서 베트남에서 기본적인 한국어를 2개월 가량 배우고 나온다고 했습니다. 언어라는 것이 물론 2개월로는 택도 없지만 그래도 정말 기본적인 단어 만큼은 배워왔으리라 생각했는데 하는 말과 행동으로 봐서는 전혀 배우고 싶어하지 않는 듯 했습니다.
저와 주변사람들만 그렇게 생각할 뿐 삼촌의 눈에는 그저 예쁘고 사랑스럽기만 했을 것입니다. 처음 한국 들어올 때 뻔히 추운 겨울 날씨인것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숙모와 함께 들어온 또 다른 베트남 신부가 있는데 그 분은 따뜻한 옷을 입고 구두를 신고 나왔다는데 숙모는 반팔티에 귀걸이며,,거기에 샌들을 신고 나왔다고 하더라구요,,,그런 모습에 삼촌은 또 마음이 아파 오는길에 그 비싼 FILA 에 들어가 추울까봐 예쁜 회색바탕에 분홍색 스크래치 가들어간 따뜻한 운동화를 신겨서 왔더라구요,
그리고 삼촌은 항상 일이 끝나서 7시 가량 오면 항상 저희 가게에서 엄마일을 도와주고 11시에서 12시에 집에 가곤 했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했기에 더 이상 안도와줘도 된다고 했고 그저 숙모와 행복하게 살기만을 바랬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1주일가량이 흘렀는데 삼촌은 그래도 숙모와 둘이서 집에서만 있으면서는 말도 잘 안 통하니 가끔 저녁때 가게 내려와서 엄마에게 간단한 요리도 배우고 말을 배우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숙모가 싫다고 하더래요, 춥다고 나가기 싫다고,,추운건 이해가 되지만 적응을 해야하고 삼촌은 예쁜 숙모를 아는 가게 손님들이나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가게 와서 인사를 시켜주려 데리고 나오면 정말 딱 3분가량 앉아있다가 열쇠를 가지고는 혼자서 집에 가버리더라구요, 같이 있자고 하면 아무 말없이 휙 돌아서 그냥 가버리곤 했습니다. 그러니까 숙모가 들어오고 근 한달 간 숙모를 본 게 다섯 번 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삼촌이 핸드폰을 사왔더라구요, 그래서 그게 뭐야? 했더니 숙모 핸드폰이랍니다. 결혼정보 회사 에서도, 그리고 주변에서도 핸드폰은 사주지 말라고 당부를 했지만 숙모가 밥도 안먹고 핸드폰을 사주지 않는다고 계속 화내고 짜증을 내더랍니다. 그래서 못이겨서 폴더형 3만원짜리를 사왔더라구요, 그래서 걱정은 했지만 그 다음날 더더욱 어이가 없는 일이 터졌습니다. 삼촌이 가게를 들러 하는 말이 슬라이드폰을 사오지 않았다고 화를 계속 내더랍니다. 그리고 핸드폰 따르릉 벨소리도 마음에 안든다고 노래로 넣어달라 해서 제가 ‘텔미’로 바꿔주었습니다. 그리고 삼촌은 혼자 있는 동안은 국제전화를 계속 쓸가 염려되어 국제전화는 차단을 시켜 두었고 하고 싶으면 삼촌 퇴근하고 저녁 때 하라고 했습니다. 며칠은 그렇게 저녁마다 전화를 하더니 하루는 또 전화카드를 사내라고 조르더랍니다. 국제 전화카드를,,,그래서 삼촌은 또 2만원 가량의 싼 것 을 구입해 주고,,
무튼 시간이 흐르고 며칠 뒤 삼촌이 외국인증을 받아와서 보여주더군요, 출입국관리소에 신고하면 되는 거구 2년뒤에 나오는 주민등록증과 같은 효력으로 그것이 있으면 어디서든 외국인 취업은 가능하다고 하더라구요, 그걸 처음에 보여줄때 저희 엄마는 삼촌에게 서운하게 들릴지 몰라도 외국인증과 여권만 있으면 어디로든 도망치는건 쉽다고,,아무리 좋더라도 그거는 주는게 아니라구,,저희 집에 맡겨놓으라구,,볼일 있을 때만 주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삼촌은 얼버무리며 나중에 시골로 보내서 어머니께 맡겨 놓은다고 하더라구요,,조금 얼버무리기에 걱정은 되었지만 지금도 그때 강제로라도 뺏어 놓을 껄 하는 후회가 지금까지도 원통하고 눈물이 납니다. 이렇게 외국인 증과 모든 것이 서류상으로는 자리를 잡혀가는 즈음,,,사건이 터진 건 보름 전 이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은 와서 어떻게 지내는지 삼촌이 얘기를 하곤 했는데 삼촌이 안온지가 그제로 딱 보름정도 였습니다. 정확히 19일 저녁 이후로 30일 어제까지 한번도 못본 거죠, 솔직히 신혼생활이 행복해서 그런가보다 라는 생각보다 숙모가 계속 어디도 못나가게 붙잡나,,싶었습니다. 그전에도 일에서 조금 늦게 끝나거나 하면 10분가량 문을 안 열어 주고 현관앞에 세워 뒀다고 하더라구요, 하루종일 집에서 혼자 있으니 외로우니까 그런가보다 싶어 이해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마 23일 쯤 삼촌에게 전화를 해서 삼촌 어디냐구,,숙모랑 가게 와서 고기좀 먹고 가라고 했더니 삼촌이 울산이라고 하더라구요, 왜 거기 있냐고 했더니 숙모랑 같이 들어왔던 베트남 여자를 만나러 갔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저와 엄마는 숙모가 조르기에 삼촌이 일도 휴가를 내고 내려갔나 싶었습니다. 아파도 일은 빠지지 않고 성실히 하던 삼촌인데 휴가를 낼정도만 숙모를 정말 사랑하고,,아니면 숙모가 또 오죽 떼를 썼나보다,,싶었죠,,,
그러던 어제,,보름을 삼촌 얼굴도 못보다가 저는 학원을 갔다가 저녁 10시경 가게로 왔습니다. 왔는데 출입문 바로 앞쪽 테이블에 삼촌이 앉아있는데 얼굴이 정말 피골이 상접하다는 말처럼 해골처럼 말라있었습니다. 저는 삼촌과 눈인사를 하고 엄마에게 삼촌 얼굴이 왜저렇게 상했어? 장난으로 “숙모가 괴롭혔대?” 하고 엄마에게 물으니,,“키유미 도망갔댄다”
참,,,뭐랄까요,,정말 망치로 누군가 제 머리를 내려 치는 느낌,, 그리고 나서 잠시 멍하다 삼촌 얼굴을 다시보니 왈칵 눈물이 나더 라구요,, 삼촌이 존심상해하고 창피해 할까 티를 안내려고 눈물을 닦고 그냥 아무말 없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엄마에게 어떻게 된거냐고 물어봤죠,,토요일 저녁, 그러니까 19일 삼촌이 술을 마시고 11시에 집에 들어갔더니 없었답니다. 그때 바로 신고를 했어야 하는데 삼촌은 돌아오겠더니 했나봐요,,왜냐하면,,속옷하나, 생필품 하나 아무것도 안 가져가고,,삼촌은 그때 집안에 숨겨놓은 여권과 외국인증은 술이 취했기에 생각을 못했고,,그렇게 하루를 기다려 일요일이 지나고,,월요일날 신고를 하고,,기다리고 수요일날 울산을 가게 된 것입니다. 울산을 가게 된 것도 토요일부터 계속 전화를 하니 꺼져있었답니다. 그렇게 사흘 반나절을 꺼놓았다가 화요일날 켜서 실종신고로 해서 위치추적을 하니 울산으로 떳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엄마에게 거기까지 듣고 가게가 바빠 11시 경에 저녁을 먹어서 그때 둘러 앉아서 삼촌 얘기를 들었습니다. 차마 삼촌의 얼굴을 못보겠더라구요,,그래서 엄마가 어떻게 어디까지 진행이 되고 있냐 했더니 울산에 혹시나 자동차를 타고 갔을까 해서 CCTV검사도 앞으로 해보려 하고 삼촌의 외삼촌 께서는 소송을 할까도 생각중에 계시답니다..어르신이고 하시니 물론 소송을 하면 돈만 더 들어가고 되돌아 올건 없다는걸 알면서도 화가나니 법은 해결해 주지 않을까 싶어서 그러신가 봐요,,그치만 법적으로 이건 돌아오는게 아무것도 없거든요,,
그러면서 삼촌이 꼭 찾아야 겠다고,,해서,,여러분도 아시다 시피 어차피 찾는다 해도 다시 사는 것은 힘들것입니다. 그렇게 치밀하게 도망간 것은 다시 또 도망가기 마련이고, 삼촌만 더욱 힘들어 질 테니까요,,그래서 왜 그렇게 찾으려 하냐고 물으니,,삼촌은 내가 하고싶은것 다 해줬는데,,왜 도망을 갔냐고 묻고 싶다고 하더라구요,,너무나 답답했지만 오죽 좋아했으면 저럴까 싶어 마음이 아팠습니다.
애초부터 그렇게 도망갈 목적을 가지고 온 사람이 왜 도망갔냐고 한들,,,말이 통할 것이며,,,삼촌만 더욱 상처를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얘기를 듣고,,그리고 듣다보니 저도 화가 너무나 치밀어 올라서 찾아내고 싶었습니다.
듣다보니 미심쩍은 것이 한 둘이 아니었으니까요,,시간이 지나 이렇게 도망치고 나니 그래서 그랬구나 싶더라구요, 저희 가게를 오지 않으려 하는 것과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려 한것,,,그거겠죠,,도망을 쳐야하니 얼굴을 알리는게 싫어서 였을 거고,,도망을 칠거기에 요리를 배우고 한국말을 급하게 배울 필요도 없었으며,,,참,,그리고 삼촌은 한국말을 쉽게 배우게 하고 부담을 안주려고 서점에서 3세아이들이 배우는 그림책에 기초부터 하는 것들도 세트로 사다주었습니다...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어 공부는 안하고 삼촌이 집에오면 티비를 보고 있다가,,저녁 대충 먹고,,,체구가 작고 입이 짧아 두세숟갈밖에 안먹더래요, 그리고는 피곤하다고 자고,,,그렇게 한달을 지냈답니다..그리고,,의료보험증도 빨리 만들어 줬답니다. 혹시나 아플까 싶어서,,의료보험증 바로 신청해 주고,,,이제 한국에서 살 내 신부구나 싶어 보험까지 들어주었답니다. 나이가 어린데도 불구하고 달달이 11만원이라더구요, 하지만 한달 첫 계약금만 내고 그제서야 바로 해약을 시켰답니다...
휴,,,정말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하는지,,모르겠는데,, 혹시나 해서 도망한 베트남 신부들과 관련된 기사를 읽어보니 물론 한국생활이 힘들고,,저번에 텔레비전을 보니 모른다고 막 때리는 나쁜놈들을 피해서 도망을 가기도 하지만 치밀하게 계획이 되고 조직적으로 움직여서 도망을 가는 경우도 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딱 든것이 이것다 싶었죠,,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되는 것은,,,혼자서 울산을 갔다는 것은 말도 안될뿐더러,,지금 저희가 사는 곳에서 울산을 가려면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용산이나 서울역 쪽으로 가야만이 갈 수 있을 것이고,,그것이 아니라면 차를 타고 가는 것일겁니다. 지금 삼촌이 사는 곳은 시장내에 있는 주택으로 시장골목을 통해서 나와야 하고,,버스도 잘 다니지 않는 곳입니다. 바로 앞에 나오면 차들만 거의 많이 다니기만 하죠,,그런데 이 복잡한 동네를 벗어나서,,아무말도 못하는 사람이 서랍을 다 뒤져서 딱 필요한 여권과 외국인증만 들고서 울산을 갔다니요,,분명 배후가 있을 것이며 어쩌면 그 조직들이 치밀하고 거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마음이 너무 아프고 화가 납니다..울산에서도 이틀간을 잠을 안자고 결혼정보 회사에 연락해서 베트남 신부들은 하나하나 만나서 사진을 주며 보면 연락좀 달라고 부탁을 하고,,그렇게 이틀밤을 새면서 먹을 것은 아무것도 못먹고,,,그리고 그런 생각들로 머리도 아픈데다가,,삼촌이 하는 일이 힘들고 무거운 것을 들다보니 다리에도 신경통이 와서 어제 보니 쩔뚝 거리면서 걷더라구요,,물리치료 받아야하는데 회사를 며칠간이나 빼서 계속해서 빼는것은 무리라고 나중에 받는다고 하더라구요,,
정말,,,자존심 상하구,,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아무에게도 얘기를 못하고 혼자서 보름가까이를 끙끙 앓은 것을 생각하면,,너무나 화가나고,,,마음이 아픕니다..마음 같아서는 지금 삼촌의 모습을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께 보여드리고,,얼머나 힘들어 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여러분,,도와주세요, 사진을 계속해서 봐주시고,,자세히 보시면서,,,,핸드폰 번호도 저장을 시켜두고 꼭 좀 보시면 연락 좀 주세요,,제보전화로,,위치만이라도 조금 파악이 될 수만 있다면,,,삼촌의 지금 생각은 다시 살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저 또한 그 목적이 너무나 궁금합니다. 그 모습을 하고 들어올 때부터 알아봤지만 한국에서 돈을 벌고자 들어온 것이라면 그런 막대한 사기를 치고,,한사람의 마음을 그렇게 짓밟고서 까지 해야 했을까,,싶어서요,,정보회사에 들어간 돈은,,,1200여만원 이랍니다..삼촌의 외삼촌도,,,어머니도...이제는 그돈을 다시 돌려받고자,,그리고 돌려받을 수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 돈을 받고자 하는 생각은 아닙니다. 단지..정말 더더욱의 피해는 막고 싶고,,정말 제 생각대로 커다란 조직속에서 이러한 행각들이 벌어지고 있는 거라면 그들은 강제추방 시켜서 다시는 한국에 입국할 수 없게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들과 관련된 사람들이 제 글을 시간이 지나서라도 읽게 된다면 놀라겠죠,,분명 그들의 생각에는 아무래도 컴퓨터 문명과는 조금은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 국제결혼을 택한다고 생각할테니까요,,
삼촌또한 컴퓨터로 이렇게 할 생각은 못했지만 제가 그렇게 하자고,,그렇게 해서라도 어느정도 위치파악만 되어도 훨신 잡는게 수월하지 않을 까 싶어서요,,정말 치밀하게 조직된 것이라면,,그들도 법의 망을 다 피해서 생활하고 있겠죠,,하지만 혹여나 이글을 보면 찔리고 놀라겠죠,,
얼마 벌지 못하는 돈으로 한국 음식에 빨리 적응시켜 주려고 비싼 음식도 집에 사들고 들어가서 안 먹는다 해도 하나만 먹어보라며,,,그렇게 해주었던 삼촌이었는데...핸드폰에,,갖고 싶다고 하는 립스틱, 아이쉐도우(여자들 눈 두덩이에 바르는 화장품입니다-VOV 꺼 검정색 케이스로 된 것 가지고 있음- ) 세트에,,,아플까봐 의료보험에 일반 보험에,,결혼 후 작은 것 하나에도 너무나 행복해 했던 저희 삼촌입니다...도와주세요,,
정말 도와주세요,,글이 너무 길어져서,,,죄송합니다..
이 글을 보시면,,어디든 어떤 까페라도 좋으니까,,지나가시는 길에 한번씩이라도 올려주세요,,,보시면 꼭 전화도 부탁드릴께요,,
한국에 들어왔을 때 부르던 이름 : 키유미, 혹은 끼유미
연락처 : 016-9222-9553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시간 08.02.05 핸드폰 일반전화요금은 많이나오지않던가요?
-
작성시간 08.02.10 이런경우를 뭐라고 해야하나 ? 재수없다고하기도 그렇고 . 아.. 벳남결혼 신중해야되 ㅡ.ㅡ
-
작성시간 08.02.16 국내 여성부가 폐지되고 국제결혼추진부가 생겨서 국내 남 인증 절차거쳐 직장 있으면 소득증명등등 인증서 주고 베트남도 국가에서 인증된 사람만 등록증 줘서 좀 국가에서 좀 신경좀 써줘라 ..여성부에서 국내 말안듣고 콧대만 높아져만 가는 여자들 여성부가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책임져야할 아이를 출산하는 여자를 위한 여성부가 되기를 바란다..애를 안나는 여자는 여자가 아니라 일개 국민에 불과하다 여자가 아니다..
-
작성시간 08.02.22 그래도 국산품을 끈기있게 기다리면 어딘가...죄송 이런글을 올려...
-
작성시간 08.04.02 참 안되었네요... 힘내시고 건강 챙기시는게 우선일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