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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산우회

박남용과 양수랑의 백두산 여행(둘째 날, 백두산 북파(北坡)로 올라가 천지((天池)를 만나다.)

작성자雅石양수랑|작성시간26.06.09|조회수148 목록 댓글 0

아침 5시에 기상하여 나는 먼저 세수를 마쳤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캐리어를 관광버스에 실었고, 승차를 마치자 7시에 버스는 출발하였다.

오늘은 백두산을 가는데 동파(東坡) · 서파(西坡) · 남파(南坡) · 북파(北坡) 중 북파(北坡)로 올라갈 것이라 하였다. 지난 2018년 9월 20일에 문제인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오른 백두산 천지는 동파(東坡)라고 하였다.

 

◈천지(天池, Heaven Lake)는 백두산 정상에 있는 화산호로, 송화강(松花江, 쑹화강)의 발원지이다.

천지의 수면은 해발 2,257m, 면적은 9.165 ㎢, 둘레 14.4km,평균 깊이 213.43m, 최대 수심은 384m이며, 수량(水量)은 19억 5500만m³로 한반도뿐만 아니라 중화인민공화국에서도 가장 깊은 호수이다. 흑수(黑水)라는 별칭이 있다.

상단부가 직경 5km, 깊이 850m의 거대한 칼데라(분화구)에 의해 함몰된 성층화산이다. 이곳 칼데라는 969년(±20년) 화산분출로 인해 형성되었으며, 물이 차서 천지(天池)를 이루고 있다. 10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는 보통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다.

천지는 백두산의 최고봉인 장군봉(2,744m)을 비롯해 망천후(2,712m) · 백운봉(2,691m) · 청석봉(2,662m) 등 높은 봉우리에 둘러싸여 있는데, 천지의 물은 화구벽이 터져서 생긴 북쪽의 ‘달문(闥門)’을 통해 흘러내려 간다. 이 물은 '승사하'(昇嗣河=승차하,乘搓河)를 통해 흐르다가 68m의 장대한 비룡폭포(장백폭포)에서 수직으로 떨어진다.

생물학자 김리태에 따르면, 1960년 7월 30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과학자들이 천지에 산천어(표준어: 곤들매기)와 붕어를 천지에 풀어 넣어 정착시켰다. 또한, 2014년부터 천지에 빙어를 서식시키는 사업을 하여 2018년 성공했다고 로동신문이 보도하였다.

천지에서 호수 괴물을 보았다는 목격담이 있으나 입증된 적은 없다.

 

◈국경은 조중 변계 조약에 의하면, 천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경을 이루고 있다. 원래 백두산은 전부 중국의 영토였으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은 1962년에 ‘조중 변계 조약(朝中邊界條約)’을 체결하여 백두산과 천지(天池)를 분할하였다. 이 조약에 따라 천지의 54.5%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45.5%는 중화인민공화국에 속한다.

대한민국에서 발행된 지도들은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 북쪽 산마루를 이은 선'을 한국과 중국 사이의 국경으로 보아 천지(天池)를 포함한 백두산 정상부 전체와 비룡폭포(장백폭포)를 영토로 표시하고 있다.

◈백두산을 중국에서는 장백산(長白山, 창빠이산)이라 부르고 있으며, 중국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2007년 1월 제6회 동계아시안게임의 성화(聖火)를 백두산에서 채화한 후로 많은 중국 사람들이 백두산을 찾아오게 되었으며, 백두산 동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흘러가는 물줄기는 두만강(豆滿江, Tumen River)이고, 백두산 서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서해로 흘러가는 물줄기는 압록강(鴨綠江, Yalu River)이다.

 

안내양이 말하기를 전에는 국도(國道)로만 백두산을 찾아 가야 하였기 때문에 도시락을 싸가지고 새벽 5시부터 서둘러 출발하여야 7시간 후인 12시경에 백두산을 올라갈 수 있었는데, 얼마 전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백두산까지 가는 시간이 단축되어 비로소 7시 출발을 하여도 백두산을 올라 갈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탄 고속버스는 만주 벌판을 북동쪽으로 한없이 달렸다. 차창 밖으로는 산과 들이 마치 우리나라 들판을 지나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만 농가(農家)의 집들이 우리나라의 농가(農家) 모습과는 달랐다. 가도 가도 옥수수 밭이었다. 그러다가 검정막으로 덮여 있거나 파란 천으로 덮인 곳들이 보였다. 인삼을 재배하는 밭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인삼과 콩을 많이 생산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인삼보다 더 많은 인삼을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주로 상황버섯과 차가버섯이 많이 나오고, 불루베리와 목이버섯도 많이 나온다고 하였다. 모두가 야생이 많다고 하였다.

우리는 오전 11시에 ‘강원도(江原道)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당 안에는 ‘백두산 천지’를 찍은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고속도로는 평평한 산지를 지나는데 고속도로 좌우의 산에는 껍질이 하얀 자작나무가 가장 많이 눈에 띄었다. 우리를 태운 관광버스는 고속도로를 벗어나더니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는 ‘長白山 古樹公園’이라 적힌 원시림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였다. 키가 큰 적송(赤松)이 군락을 이룬 곳을 지나가는데 그것이 매우 아름다워 미인송(美人松)이라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이도백하(二道白河)라는 길을 따라 약 1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북경구(北景區, 북파 방문 센터) 입구였다. 우람한 건물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친구 박남용이 카우보이 모자를 들고 왔다. 이 모자를 박성수 원장이 2천원에 사 주었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모두 관광버스에서 내려 안내원이 나누어 준 백두산 방문 입장권을 가지고 계수기(計數機)를 지나 입장하였다. 그리고 셔틀버스를 타고 진짜 원시림 속을 달렸다. 완만한 경사로를 지나 백두산을 향하여 한참 타고 가서 어느 광장에서 내렸다.

이번에는 5인승 지프를 탔다. 거기에서부터는 아주 경사가 급해지더니 ‘지그재그’로 난 길을 곡예운전을 하여 또 한참 달렸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바로 백두산 정상(頂上)이었다.

나무 한 그루를 풀 한 포기를 찾아 볼 수 없는 돌과 바위뿐인 산이었다. 군데군데에는 눈이 쌓여 있기도 하였다. 여기가 중국인들이 말하는 장백산(長白山, 창빠이산)이다. 바람은 세차게 불었지만 오늘은 생각보다 춥지는 않았다. 약 200미터 쯤 떨어진 곳으로 사람들이 너도나도 몰려갔다. 거기가 바로 천지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악천후로 천지를 보지 못하고 돌아갔다는데, 우리는 맑은 날씨에 마음껏 천지를 볼 수 있었다. 하늘에는 새털 같은 구름이 조금 널려 있을 뿐 대체로 햇빛을 가리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마음껏 천지를 감상하고 마구마구 휴대폰으로 셔터를 눌렀다. 수많은 사진작가들이 천지를 사진에 담으려고 거액을 들여서 왔지만 건진 것 없이 돌아간 경우가 많았다는데, 천지 구경 왔다가 허탕치고 돌아간 사람들이 많았다는데, 우리는 ……. 감개가 무량하였다.

나는 생각하였다. 내가 현직에 있을 때, 통일교육의 선봉에 서서 얼마나 힘들게 조국의 통일을 위한 국민 교육에 힘을 쏟아 왔던가! 6월이면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글짓기 그리기 말하기 등으로 학생들에게 통일을 강조하며 평상시의 생활에서 생각하고 실천하도록 밀어 붙였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여기는 우리 민족의 영산(靈山)! 우리나라 건국(建國)의 신화에 등장하는 영산이다. 어제는 우리의 고대국가인 고조선(古朝鮮)과 고구려(高句麗) 유민(遺民)들이 살았던 땅에서 우리 민족의 생활 유적(遺蹟)과 유산(遺産) 들을 둘러보고 왔다. 오랜 옛날 우리의 땅이었던 백두산과 이 만주 땅이 다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와서 가꾸고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내려 올 시간이 되어 다시 5인승 지프를 타고 위험한 ‘지그재그’ 길을 내려오다가 어느 광장에서 내렸다. 설명을 듣지 못해 안내양을 따라 걸어서 올라갔다.

오후 2시 40분 우리는 ‘유황온천지대’가 있는 곳에 도착하였다. 계속하여 사람들이 올라가는 대로 나도 따라 올라갔다. 가는 길 옆으로 조그만 웅덩이에서 온천수가 부글부글 솟아 나오고 김이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것을 지나쳐서 곧장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계단이 너무 많고 가팔라서 포기할까 생각하였지만 앞서 가는 박남용 친구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서 계단을 오르고 또 올랐다.

오후 3시 30분에 도착한 곳은 바로 장백폭포(長白瀑布) 일명 비룡폭포(飛龍瀑布) 였다. 백두산 천지(天池)에 있는 물이 북쪽으로만 뚫린 수문(水門,달문闥門))을 통해서 내려오는 유일한 폭포인데, 60여m의 높이에서 쏟아지는 웅장한 모습에 감탄의 한숨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주변의 나무라고는 거의가 자작나무들뿐이었다. 자작나무의 특성은 줄기 하나가 하늘로 곧게 뻗어가다가 꼭대기에서 가지를 뻗어 잎이 달리는데, 이 화산지대에 있는 자작나무들은 하나가 아닌 여러 줄기들이 나와서 위로 곧게 뻗지 못하고 구불구불 휘어져 줄기들이 떨기를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다시 올라갔던 길로 되돌아 내려와서, 다시 우리가 타고 온 관광버스를 타고 내려와, 저녁 6시 10분에 하늘아래 첫 동네인 이도백하(二道白河)진의 ‘진달래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였다.

밤길을 약 1시간을 달려 ‘송강하(松江河)’로 가서 ‘성정(星程) 호텔’에 투숙하였다. 어젯밤에 잤던 호텔과 비교가 되었다. 어제보다 조금 하급(下級)이었다. 피곤하니 잠은 얼른 들었다.

 

송강하(松江河) : 길림성(吉林省) 동쪽과 백두산 서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발해 시대에는 군사적 요충지이자 경제 중심지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주변에는 발해 시대의 성벽과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발해 시대에는 교역 중심지로 활용되었으며, 강변 도시로 당나라 및 일본과도 활발한 무역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발해 멸망 후, 모든 흔적은 점차 사라졌지만, 최근 발굴을 통해 발해 문화의 중요한 유적들이 발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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