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훈련 3권, 작은 예수가 되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그 신분에 어울리는 거룩한 인격과 삶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제9과, 그리스도의 주재권
주인 되신 주님께 우리는 내 마음과 생활 영역을 다 내어 드려야 한다. 우리를 만드시고 죄 가운데서 구원하신 주님이 우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인도하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인으로서 행사하시는 주재권을 가질 때 최고의 평안과 자신감을 준다.
1.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유일한 주권자가 되시는 근거가 무엇인가?
1)사43: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해 우리를 지으셨다.
2)빌립보서2:9-11 “9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 어떤 이보다 높은 이름을 주사 천지간의 모든 존재가 무릎을 꿇고모듬 입이 주라고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
3)로마서11:36“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만물이 주께로 나와서 말미암고 주께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시작과 과정과 끝이 주님께 있다.
2.사도바울은 자기의 생활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주재권을 어떻게 인정하였는가? 로마서14장7,8절을 보라.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
1)본문을 외워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써보자. -상동
2)바울이 말하려고 하는 핵심이 무엇언지 한 마디로 요약하라.
-우리는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주를 위해 살아야 한다.
3)‘사나 죽으나 주를 위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살았을 때나 죽었을 대나 우리가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사는 이유도 주를 위해서, 죽는 이유도 주를 위해서여야 한다.
4)7절에서 바울은 자기 마음대로 살고 죽을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중에 한 사람도 없다고 장담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도 예외가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정말 당신은 바울처럼 장담해도 좋을 사람인가? - 이 부분에 있어서 믿음과 지식이 있으나 실제에서는 어떨지 검증이 필요하겠습니다. 쉽지 않겠지만 할 수 있을 듯...
5)당신도 예외일수가 없다. 어떻게 사는 것이 주를 위하는 것이며, 어떻게 죽는 것이 주를 위한 것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주를 위해서 산다는 것은, 삶의 목적이 주님의 영광이며 주님께 절대 순종을 의미한다. 주를 위해 죽는다는 것은, 주를 위해서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갈라디아2:20절 말씀처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산다는 신앙의 고백이 있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그는 자신의 힘과 지혜가 아니라 주님의 지혜와 힘으로 할 것이다.
6)당신에게 있어서 주님이 마음대로 지배하시는 영역과 그렇지 못한 영역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지배하시는 영역은 헌신의 영역이고, 그렇지 못한 영역은 부모님과 가족의 문제인듯, 하지만 점점 더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
3.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말세의 일곱 교회 가운데 질이 가장 낮은 라오디게아 교회 신자들은 예수님을 어떠한 처지에다 두고 있었는가? 요한계시록 3장14절-20절을 보라.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1)이 교회의 문제는 2가지였다. 하나는 적극성이 없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만에 빠져 있는 것이다. 본문을 인용하여 이 2가지 사실을 설명하라.
-첫째는, 차지도 덥지도 하는 신앙생활이다. 적당한 신앙
둘째는, 자신의 벌거벗은 것을 보지 못하고 부자라서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2)‘미지근하다’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라오디게아 옆을 지나는 물은 위쪽 에서는 매우 뜨거웠다. 그리고 라도디게아 지역을 지날 때는 상당히 미지근해졌다. 이 때의 냄새는 악취 수준이고 먹게 된다면 그야말로 토하게 된다. 그러나 이 물이 더 내려가서 완전히 식어 차게되면 좋은 물로 쓸수가 있게 된다. -여기서의 의미는, 싫다는 것도 좋다는 것도, 하겠다는 것도 말겠다는 것도 아닌 우유부단 무책임한 모습을 말한다.
3)영적인 자만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라. 라오디게아 지역은 항구도시로 중요한 상업적, 정치적 길목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도시는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이러한 부를 바탕으로 그들은 거만해졌다. 부족한 것이 없는 듯 행동했다.
4)자만은 적극성이 없는 행동과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자만을 가진 사람은 더 이상 변화와 행동하기를 거부한다. 그대로 만족하고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변화와 행동을 하려는 이들을 비난하고 정죄한다.
5)결국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미지근한 신앙 생활로 인해 주님을 어떻게 대우하고 말았는가?(20절)
-주님을 문전 박대한 결과를 가져왔다.
6)예수님을 문 밖에 세워 두었다는 말은 그분과 평안한 교제를 잘 나누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키고 있다. 교만하거나 스스로 다 된 것처럼 자족하거나, 크고 작은 죄를 범하면 주님이 비록 우리 안에 계신다고 할지라도 교제가 끊어지고 만다. 아들이 몰래 나쁜 짓을 하면 부모와의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가지고 교제의 단절이 주는 어색함과 냉랭함을 이야기하라.
-부모가 자식의 나쁜짓을 알았을 경우에도 두 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설령 부모가 그것을 모른다할지라도 자녀 스스로가 그 죄 때문에 어색함을 가지고 되고 혹시 알게 될까봐 부모를 형식적으로 대하거나 멀리하게 된다.
7)라오디게아 교인들이 주님을 다시 마음의 보좌에 모실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열심을 내서 회개해야 한다. 내 문 밖에 계신 주님을 모셔 들여야 한다.
8)당신의 마음에서 주님은 지금 어떠한 위치에 계시는가? 문 안에 계시는가? 문 밖에 계시는가?
- 맹목사는 문 안에 계십니다. 하지만 더 풍성히 누리길 원합니다.
4.빌 브라이트 박사는 예수님의 주재권을 중심으로 3가지 유형의 사람을 구별해서 그림을 그려 놓았다. 그림을 보고 설명하면서 각자 자신의 입장과 비교해 보라. (큰 원은 마음이다. 의자는 보좌요 작고 검은 점은 우리가 계획하는 여러 가지 인생사들이다. 십자가는 주님이다.)
1)비그리스도인(엡2:1-34)
“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 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 의 자녀이었더니”
-자신의 허물과 죄로 죽었고, 이세상 풍속과 공중의 권세잡은 자를 따른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다.
2)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고전3:1-3)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구원은 받아 그 마음에 주님이 함께 하시나 보좌는 여전히 내가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어린아이와 같이 영적으로 미숙한 모습을 보이고 소화력이 약하며 사람을 따라 행하는 경향이 있다.
3)성령에 속한 그리스도인(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 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나와 주님이 그 마음에 함께 있고, 그 보좌에 주님이 계시는 모습이다. 그들은 자신이 십자가에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것을 알고 믿음 안에서 예수님의 생명으로, 예수님을 위해서, 예수님에 의해서 사는 것을 기뻐한다.
변장된 축복
로버트 멍어의 책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 마지막 부분의 명의 이전은 그 주인이 누구인가를 다시 묻고 있다. 주인은 그 소유에 대한 권리 뿐만 아니라 책임을 가지고 있다. 만일 내가 주님의 것이라면 주님께서 권리자인 동시에 책임자시다.
【맹목사의 적용】
맹목사는 이번 과에서 나의 주인이신 주님을 만납니다. 나의 주인이신 주님과의 관계에서 맹목사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 씨름을 해왔습니다. 처음에는 돈이 그랬고, 세상의 쾌락, 가족에 대한 권리를 내어 놓는 것, 명예에 대한 것, 그리고 요즈음에는 이미 복으로서 주어진 것들 때문에 더 이상 어떤 댓가를 구하는 것이 어불성설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이것을 예로 들면, 시냇물이 맑기 때문에 시냇물이 어떤 상급을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시냇물은 맑음 자체로서 이미 보상을 받고 있고 맑음 그 자체가 복입니다.
맹목사는 이번 한주 동안 알파코스를 준비하고 교회에서 사역을 하는 과정에서 모세에게 주님께서 ‘네 신을 벗으라’고 하신 말씀을 적용하여 매일 주님의 주재권의 거울 앞에 자신을 세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