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성모님의 성화 앞에 섰을 때,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성모님의 얼굴에 남은 상처에 머물렀다. 오래전부터 알려진 그 상처는 그날 내게 단순한 흔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세상의 모든 아픔이 스며들어 새겨진 자국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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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마이다네크에서 보았던 전쟁의 그림자가 아직도 마음에 짙게 남아 있었기 때문일까. 성모님의 상처는 유난히 더 깊고 또렷하게 보였다. 그 상처를 바라보는 순간, 나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마치 성모님께서 지상 자녀들의 고통을 당신 얼굴에 새긴 채, 말없이 그 모든 슬픔을 짊어지고 계신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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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집과 가족을 잃은 이들, 두려움 속에 밤을 지새우는 이들, 아무 죄 없이 상처 입은 이들의 울음이 그 상처에 모두 스며있는 듯했다. 그 얼굴은 아프고 슬펐지만, 이상하게도 동시에 깊은 품처럼 느껴졌다. 상처 입으셨기에 더 가까이 다가오시는 어머니, 말없이 아파하심으로 더 깊이 위로하시는 어머니의 얼굴이었다.(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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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침묵은 그 어떤 소리보다 내게 선명히 각인되었다.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도 기도는 꺼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간의 폭력이 아무리 깊이 미치려 해도 어머니의 사랑이 먼저 그 깊은 곳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상처는 단지 아픔의 증거만이 아니라, 사랑이 머문 자리의 흔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검은 성모님의 상처에 기대어 침묵하며 두 손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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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모든 자녀들이 더 이상 전쟁 때문에 울지 않게 하소서. 무너진 마음들이 다시 일어서게 하소서. 미움이 사랑으로, 폭력이 화해로, 전쟁이 평화로 바뀌게 하소서. 그리고, 상처 입은 어머니의 얼굴 앞에서 배운 이 침묵 속 희망을, 오래도록 잊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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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이창항 신부, [생활성서] 2026년 6월호 '그 자비로운 침묵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