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 요 14:21-24절
제 목 :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일 시 : 2021. 3. 14.
요 14:21-24/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22 가룟인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도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 있었고 함께 있는 것이 부담스러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왠지 모르지만 함께 있으면 부담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오래 있어도 부담이 되지 않고 더 오래 있고 싶어지는 사람, 즉 함께 있으면 편한 사람이 있습니다. 함께 있고 싶고 함께 있으면 평안한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많은 유대민족 중에서 오직 12명을 자신의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성경은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막3:13-15/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높은 산에 오르셔서(의도가 있으셨습니다 따라올 사람만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는데 그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평상시에 눈 여겨 본 사람들이었고 개인적으로 만나서 나를 따르라고 부르셨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왜 12명의 제자들을 부르셨습니까? 14-15절을 보시면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고 했습니다.
정말 재미 있는 말씀이고, 무엇인가 깊은 진리가 숨겨져 있는 말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이 세 가지인데 그 순서가 흥미롭습니다. 1) 첫 번째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2) 두 번째는 전도도 하기 위해서입니다. 3) 세 번째는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보면 예수님은 사역이나 일보다는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저 개인의 생각으로는 내가 예수님 같으면 제자들을 부르시고 이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바른 순서인 것 같습니다. 1) 가장 먼저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주어서 2) 나가서 많은 사람을 전도를 하게 하시고 3)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저의 생각에 동의하십니까? 아마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죠? 만약 전도가 목적이고 영혼구원이 목적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이상적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정반대로 하셨습니다. 12명의 제자들을 부르셔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자신과 함께 지내면서 서로를 알아 가고 서로를 사랑하는 일부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친숙해지고 서로를 충분히 이해했을 때에 드디어 전도의 현장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전도하러 갈 때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12 제자들을 부르셔서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신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제자들을 네 그룹으로 나누시기 위해서입니다. A그룹 B그룹 C그룹 D그룹으로 나누셨습니다. 일부러 그렇게 하신 것은 아닌데 예수님과 함께 있다 보니까 저절로 그렇게 나뉘어졌습니다. 막3:16-19/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18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안인 시몬이며 19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시면 제자들이 네 그룹으로 나누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첫 번째 그룹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입니다. 2) 두 번째 그룹은 안드레, 빌립, 바돌로매입니다. 3) 세 번째 그룹은 마태, 도마,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입니다. 4) 네 번째 그룹은 다대오, 시몬, 가룟 유다입니다. 왜 이런 그룹으로 나누어졌느냐 하면 예수님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첫 번째 그룹은 예수님이 어디를 가든지 항상 같이 동행했던 제자들입니다. 함께 있으면 편한 사람들입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그룹은 필요에 따라서 함께 했던 제자들입니다. 이것을 보면 똑같은 제자라도 예수님이 함께 하고 싶어하는 제자들이 있었고, 어떤 장소에는 데리고 가지 않고 내버려 두었던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두 가지 사건입니다. 1) 첫 번째 사건은 딸이 죽은 사람의 집에 가서 딸이 죽은 방에 들어가실 때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명의 제자 외에는 아무도 데리고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방해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믿음이 없는 제자들을 데리고 갔을 경우에 예수님께서 죽은 소녀를 살리는 일을 방해했을지도 모릅니다. 말이나 행동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데리고 가서 죽은 소녀를 다시 살리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2) 두 번째 사건은 변화산 사건입니다. 변화산 위에 기도하러 가실 때에도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만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서 기도하셨습니다. 나머지 9명의 제자들은 산 밑에서 기다리게 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저의 생각으로는 9명의 제자들은 평소에 기도를 하지 않았던 제자들이라서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깊은 기도를 드리는 중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보여 주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베드로, 야고보, 요한 외에 나머지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깊은 기도를 드릴 수가 없었기 때문에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소에 항상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믿음의 제자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 중에서도 네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예수님께서 함께 있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고 함께 있으면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함께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따라서 예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 있고, 또한 가능한 예수님을 멀리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정도에 따라서 예수님과 가까울 수도 있고 멀어질 수도 있었으며,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정도에 따라서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과 멀리하고 싶은 사람으로 나뉘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사랑하거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가까이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거나 서로 무관심한 사람은 멀리하고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나를 가까이 하시게 하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 하는 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그래서 시65:4/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라고 했으며, 시73:28/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1. 예수님을 사랑하여 가까이 하면 어떤 유익과 복이 주어집니까?
1)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면 성부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될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그 사람을 사랑하셔서 그 사람에게 자신을 나타내신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시면 예수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시고 그 사람에게 자신을 나타내신다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그 증거를 볼 수 있습니다. 사도들(12제자들)의 삶을 기록한 사도행전을 보시면 예수님의 12제자들이 다 귀하게 쓰임 받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사랑했던 제자들만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 나머지 제자들은 어떤 활동을 하며, 어떻게 쓰임 받았는지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사랑했던 제자들이 가장 많이 쓰임 받고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사도행전 4장에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제9시 기도회(오후 3시)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기도하러 들어가다가 성전 문 앞에서 사람들에게 돈을 구걸하던 한 앉은뱅이 거지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하루 종일 성전 문 앞에 앉아서 사람들에게 돈을 구걸해서 그것으로 먹고 사는 불쌍한 장애인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기 위해서 성전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에도 구걸을 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앉은뱅이를 오른손으로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랬더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어서 뛰어 서서 걸으며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정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행3:5-10). 이 사건을 보면 예수님을 가장 많이 사랑했던 베드로와 요한에게 예수님은 자신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 외에도 베드로는 죽은 애니아라는 중풍병 걸린 여인을 고친 일이 있었습니다. 행9:32-35/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33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34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 대 곧 일어나니 35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다비다라는 죽은 과부를 살려 내는 일을 했습니다. 행9:36-42/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38 룻다가 욥바에서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여 39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사랑했던 야고보와 요한도 예수님이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을 사랑했던 야고보는 제자들 중에서 첫 번째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밧보섬에 유배되어 갔다가 거기에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예수님께서 그에게 마지막 시대에 되어질 일을 계시를 통해서 알려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했던 사도 바울도 낙원으로 들려 올라가서 낙원을 보고 오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자신을 나타내시고 놀라운 기적과 계시를 알려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고 했습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오셔서 거처를 함께 하십니다. 동거동락하십니다. 그 결과 20절과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납니다. 요14:20/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삼위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됩니다. 변화산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막9:1-8/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6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고 했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음성도 들었고,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모세와 엘리야까지 보게 됩니다.
3) 삼위일체 하나님과 모든 것을 공유합니다.
아버지 것이 내 것이고 내 것이 아버지의 것이 됩니다. 즉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아낌 없이 부어 주십니다. 아브라함을 보시면 거부가 되었습니다. 창24:1/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고 했으며, 창24:35-36/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시되 우양과 은금과 노비와 약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고 36 나의 주인의 부인 사라가 노년에 나의 주인에게 아들을 낳으매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 아들에게 주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창22:15-18/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모든 것을 넘치도록 부어 주십니다. 그래서 잠8:21/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가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2. 그러면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 사람이 예수님을 사랑하는지 그렇지 않는지, 또는 예수님께서 가까이 하고 싶어하는 사람인지 멀리하고 싶은 사람인지를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본문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21절에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라고 했으며, 23절에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계명, 즉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가까이 가서 입을 맞춘다던가 예수님께 선물을 사다 드린다든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가장 먼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요10:3-5/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문지기와 양의 문 비유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양이 목자이신 예수님을 정말 사랑한다면 예수님의 음성(말씀)만을 구분하여 듣고 그 응성(말씀)만을 따르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음성)이 아닌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반석에서 솟아나는 생수의 가치를 알고 생수만을 마시는 사람은 죽은 물과 썩은 물과 오염된 물을 전혀 마시지 않습니다. 사람이 만든 음료수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것처럼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예수님의 말씀만을 듣고 거기에만 순종하는 삶을 삽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로만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말씀을 지켜 행함으로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 드려야 합니다.
3.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말과 찬양으로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찬송을 부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4절을 보시면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말로 아무리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해도 그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가까이 하기 때문에 날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고, 그 음성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멀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음성을 듣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게 되면 아무 것도 받아 누릴 수가 없고 오직 고통과 저주만 따라옵니다. 왜냐하면 온갖 좋은 은사와 완전한 선물이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 오기 때문입니다. 모든 좋은 것들과 아름다운 것들과 복된 것들은 오직 예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이 받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더욱더 사랑하고, 예수님께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을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그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