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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살아 있다

작성자예예|작성시간26.06.21|조회수86 목록 댓글 5

성   경 : 히 4:12-13절

제   목 :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살아 있다

일   시 : 2026. 6. 21.

 

히브리서 4:12/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새번역은 히브리서 4:12-13/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어서, 어떤 양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밝혀냅니다. 13 하나님 앞에는 아무 피조물도 숨겨진 것이 없고, 모든 것이 그의 눈 앞에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앞에 모든 것을 드러내 놓아야 합니다./

  신구약성경책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딤후3:16-17/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영감)으로 기록된 것이라고 말함으로 성경이 오류가 없음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바울이 디모데후서를 기록할 당시에 말하고 있는 모든 성경은 구약성경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신약성경까지 합쳐져서 66권이 되었고 신구약성경 모두를 우리는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인정합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정의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에서 말씀이라는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말씀이란 로고스라고 하는데 신약성경에서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진술, 말, 언사, 포고, 격언, 선언, 강화, 연설, 가르침, 교훈, 교리, 이야기, 일, 용건, 사건, 행위, 질문, 명령, 보고, 정보, 소문, 어법, 입으로 하는 말, 이성, 고려, 계산, 해명, 설명, 관계, 원인, 근거, 기록된 말씀, 신성한 계시, 로고스, 즉 예수 그리스도, 우리 하나님 그리고 구원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뜻을 걸러 내고 오직 로고스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내용만 다루려고 합니다.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1) 먼저 사도들이 전하는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예수님의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볼 때 사도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것은 사도들이 전도할 때 그들이 전하는 말씀이 자신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고, 예수님의 말씀임을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행4:29/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라고 했으며,행6:2,7/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고 했습니다. 행18:9-11/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11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도들이 전하는 전도의 메세지는 하나님의 말씀 또는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행4:4/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고 했으며,행13:48/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했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은 곧 예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요14:24/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요5:24,요14:24,요14,17).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은 동시에 성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은 구원의 말씀이며(요14:24), 진리의 말씀입니다(요17:17) 그 결과 예수님의 말씀은 그 말씀을 믿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고(요5:24)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을 주는(요12:47이하) 이유가 되었습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이신 예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요1:1,14/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태초에 말씀이신 로고스이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내 보이시는 계시자이시며, 구원자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들이 하나님의 말씀들의 힘과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말씀(로고스)을 예수님과 동일시함으로써 말씀(로고스)=하나님, 또는 말씀(로고스)=예수님이라고 함으로 말씀을 인격화시켰습니다. 그래서 요일1:1절에서는 말씀(로고스)=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계19:13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부활 승천하시고 다시 재림하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사용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전해진 하나님 말씀전체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성경말씀전체가 곧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리고 예수님 자신이 곧 말씀이십니다. 그 결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들도 살아 있고, 동시에 말씀이신 예수님도 부활 승천하셔서 영원히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 전하는 말씀도 살아 계신 하나님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어 라고 했습니다.

  살아 있다란 자오라고 하는데 살다, 생(애), 생기있는, 살아 있는 이라는 뜻으로 죽어서 생명이 없는 것과는 정반대의 의미로 생명이 있다는 뜻입니다. 운동력이 있다란 에넬게스라고 하는데 활동적인, 움직이는, 효과적인, 능력 있는 이라는 뜻으로 죽은 물고기는 힘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물고기는 엄청 힘이 셉니다. 그래서 낚시해서 고기를 잡아 올릴 때 힘이 듭니다. 그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놀라운 창조의 힘이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거나 말씀을 선포할 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능력이 있고 활동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다양한 문제와 제목을 가지고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효과적인 기도는 말씀을 가지고 그 말씀이 나의 삶에 그대로 이루어지고, 그 말씀이 나의 말씀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붙잡고 기도하는 말씀은 살아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그 말씀이 문자 그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게 됩니다.

 

3.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약시대 모세오경이 기록되던 출애굽세대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모든 세대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효력을 가지고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여부에 따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경이 약속하신 참된 안식에 들어가는 복을 받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심판이)가 임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예리한 검과 같아서 하나님의 음성에 계속 불순종할 때 말씀은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를 여행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지 않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말라고 명령하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목이 곧고 고집이 센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아말렉과 가나안인들의 검(마카이란=칼, 전쟁, 형벌, 죽음)에 패배(敗北)하여 도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민14:41-45/모세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제 여호와의 명령을 범하느냐 이 일이 형통하지 못하리라 42 여호와께서 너희 중에 계시지 아니하니 올라가지 말라 너희의 대적 앞에서 패할까 하노라 43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너희 앞에 있으니 너희가 그 칼에 망하리라 너희가 여호와를 배반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나 44 그들이 그래도 산꼭대기로 올라갔고 여호와의 언약궤와 모세는 진영을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45 아말렉인과 산간지대에 거주하는 가나안인이 내려와 그들을 무찌르고 호르마까지 이르렀더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안에 들어 있는 악한 성품들 즉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악독(롬1:29) 등의 온갖 죄악을 예리하게 심판하는 검이 됩니다.

 

4. 이어서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했습니다.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라고 했습니다. 학자들은 이 부분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는 인간의 구조로 명명되는 삼분(설)법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다는 인간정신의 전체적인 본성을 말하는 수사학적(辭學的)인 표현이다 라고 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인간의 구조가 영과 혼과 몸이라는 삼분설임을 주장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누구보다도 영이 많이 열려 있었고, 살전5:23절에서도 영과 혼과 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을 보면 오늘날 이분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처럼 사도 바울의 영적인 수준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아마도 인간의 구조를 이분설이라고 주장하는 성경학자들은 사도 바울의 영적인 수준을 성령체험과 성령의 불세례를 받지 못한 자신들의 수준으로 낮추어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이 쓴 편지가 신약성경으로 채택되었는데 그가 이렇게까지 높은 수준의 성경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과 특별 성령의 9가지 은사를 말할 수 있었는데 그는 성령의 9가지 은사를 다 받았기 때문에 성령의 9가지 은사를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학자들은 성령의 은사 중에 방언의 은사도 받지 못했을 텐데 성령의 9가지 은사를 다 받아서 그것을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는 사도 바울의 영적인 수준을 자신들의 수준처럼 생각한다는 것은 모순이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인간의 구조를 이분설로 말할 때도 있지만 또한 삼분설로 말할 때도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대부분 이분(영혼과 육체)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때는 아직 예수님께서 오셔서 구속을 완성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악한 영들의 존재를 안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이나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인간의 구조를 이분설로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셔서 구속을 완성하셨고, 십자가에서 사탄 마귀의 머리를 깨뜨리고, 그들의 무장을 완전히 해제시켜 버렸기 때문에 신약성경에는 삼분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분설을 말하고 주장하게 되면 악한 영이 어떻게 사람 속에 들어와서 살고 있는지를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영과 혼과 육이라는 삼분설을 말함으로 악한 영들이 어떻게 사람 속에 들어오는지도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악한 영들과 사탄 마귀 귀신들은 우리의 혼(마음)과 육체 안에 들어와서 집을 짓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보편화된 지식입니다.

  그리고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라고 했습니다. 찔러란 디이크네오마이라고 하는데 꿰뚫다, 즉 관통하다 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깊은 내면을 꿰뚫어 잠재된 의식까지 들추어 내는 능력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쪼개다란 메리스모스 라고 하는데 분리, 분배, 조각,조각 나눔, 선물이라는 뜻으로 인간의 영과 혼과 육체를 나누어서 분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말씀의 능력 때문에 인간의 구조를 삼분설로 보아서 영과 혼과 육체로 나눌 수가 있고, 구분할 수 있고, 또한 악한 영들이 어디에 들어가서 집을 짓고 살고 있는지 까지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라고 했습니다.

  마음의 생각과 뜻이란 사람의 마음속에서 만들어지는 생각과 의도라는 뜻입니다. 감찰하다란 크리티코스 라고 하는데 결정하는(비판적인), 즉 구별할 수 있는, 식별할 수 있는 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 인격의 가장 깊은 곳까지 통찰할 수 있어서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의도하고 결정하는 일들까지 모두 식별할 수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간의 순종여부에 따라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안식에 들어가는 복을 받게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진노를 행하실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복이나 저주들은 모두가 인간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신 결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깨끗하고 정결한데도 저주가 머물러 있게 한다든지 마음의 더럽고 불결할 데도 복과능력을 주셔서 귀하게 쓰임 받게 한다든지 하는 그런 실수는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5.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다고 했는데 어떤 의미에서 살아 있습니까?

  두 가지 의미에서 말씀이 살아 있음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먼저 말씀이신 예수님이 지금도 살아 계신다는 뜻입니다.

요1:1-3/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동참해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말씀이신 예수님이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살아 있습니까? 부활하신 거룩하고 신령한 영으로 살아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나타나시고 보이시고 자신을 알리시고 함께 하심으로 표적과 기자가 나타나게 하시고 예수님처럼 기적을 행하는 자가 되게 하십니다. 그런 면에서 말씀이신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그 증거를 지난 번에 이미 소개했습니다. 막16:17-18절에서 믿는 자들에게 다섯 가지 표적이 따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막16:19절을 보시면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막16:20절을 보시면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말씀이신 예수님은 지금도 믿는 자 속에서 살아 계십니다.

  2) 로고스의 말씀이 레마의 말씀으로 들려지는 사람에게 말씀이신 예수님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서 일하고 계십니다.

  성경책에 기록된 로고스의 말씀을 수1:8절이나 시1:3절절이나 시119:97-100절 말씀처럼 사랑하여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들에게 수1:8절, 시1:3절, 시119:97-100절에 기록된 것처럼 그 길이 평탄하게 되고 그 사람이 하는 모든 일들이 형통하게 되며, 원수와 모든 스승과 노인보다 지혜롭고 명철하게 되어 항상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죽어서 아무런 능력도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대하는 잘못된 태도와 말씀을 무시하고 멀리하기 때문입니다.

  신구약성경 안에는 말씀을 어떤 방법으로 대하고, 어떤 방법으로 사용해야 할지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잠4:20-27절의 말씀처럼 말입니다. 잠언 4:20-27/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21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22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24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 25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26 네 발이 행할 길을 평탄하게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27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고 했으며, 새번역은 잠언 4:20-27/아이들아,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내가 이르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21 이 말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말고, 너의 마음 속 깊이 잘 간직하여라. 22 이 말은 그것을 얻는 사람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몸에 건강을 준다. 23 그 무엇보다도 너는 네 마음을 지켜라. 그 마음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24 왜곡된 말을 네 입에서 없애 버리고, 속이는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여라. 25 눈으로는 앞만 똑바로 보고, 시선은 앞으로만 곧게 두어라. 26 발로 디딜 곳을 잘 살펴라. 네 모든 길이 안전할 것이다. 27 좌로든 우로든 빗나가지 말고, 악에서 네 발길을 끊어 버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면 반드시 살아 있는 능력의 말씀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답게 순종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겉모습은 화려하고 교회도 크게 성장한 것처럼 보여도 주님의 관점에서 보면 부실공사를 한 것입니다. 그의 육체적인 건강, 물질적인 부요, 가정과 자녀들의 삶을 보게 되면 전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처럼 살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바르게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에서 행하신 삼대사역(가르치고 전파하고 병을 고치는)대로 살지 않는 것도 바로 믿는 것입니다.

  기도만 하는 것도, 말씀만 강조하는 것도, 은사만 강조하는 것도, 전도만 하는 것도 분명히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4:12/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요14:12절 말씀이 말하는 것처럼 살지 않는다면 바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도하고 가르치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세 가지가 병행되지 않는다면 주님의 제자로써 주님을 따르는 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식은 아버지를 닮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병은 누가 줍니까? 가난은 누가 줍니까? 불행과 고통은 누가 줍니까? 사탄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행복과 형통의 평안의 복은 누가 줍니까? 살아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탄 마귀가 주는 것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크기 즉 그릇이 크고 작음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큰 그릇도 만드시고 작은 그릇도 만드셨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쓰시는 그릇은 크고 작음의 문제가 아니라 깨끗함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2:20-21/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깨끗한 그릇이 되셔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아야 합니다.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고 간직하여 주야로 묵상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서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귀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그릇으로 쓰임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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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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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최수옥집사 | 작성시간 03:41 new 아멘아멘아멘
  • 작성자연심이 | 작성시간 26.06.21 아멘아멘
  • 작성자예수사랑 | 작성시간 26.06.25 new 아멘 아멘 아멘 아멘
  • 작성자믿음소망사랑 | 작성시간 11:56 new 아멘 아멘 아멘 아멘
  • 작성자오직예수 | 작성시간 26.06.2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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