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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나가서 전도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교회에 왔을 때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가이다

작성자김우곤|작성시간26.06.07|조회수34 목록 댓글 0

밖에 나가서 전도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교회에 왔을 때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가이다

 

족욕장에서 만난 분과 인사를 나누고 며칠 전 함께 파크골프를 쳤다고 했더니 기억해 주셨다. 그분은 그날 나에게 무척 젊어 보인다며 몇 년생이냐고 물어서 1954년생이라고 했더니 자기는 55년생, 남편은 53년생이라고 하면서 내가 아주 젊고 건강해 보인다고 했다. 고맙다고 하면서 함께 운동을 했는데 오늘 그 얼굴을 기억해서 인사를 하니 그날 아침 나에게 했던 자기 이야기를 기억해 주셨다.

옆으로 오라고 해서 가까이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교회 이야기가 나왔고, 자기 형제들도 교회에 나가고 있는데 자기 부부는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은 시어머니가 너무나 간곡히 기도하며 교회에 나가라고 해서 나가보았는데 가을에 있던 운동회에서 남편이 배구 선수로 시합을 하다가 다리를 다쳤단다. 교인들이 절뚝거리는 남편을 집으로 데려다 준 후에 며칠간 출근도 못했는데 정작 교회에서는 아무 연락도 없었단다. 나중에 그 교회의 교인들을 만났는데 목사님은 남편이 다친 줄을 알지도 못했다고 말해서 어이가 없었단다. 그리고 얼마 후에 교회에서 버스에 물건을 싣고 와서 여러 교인들에게 나눠주는데 자기들은 그냥 지나쳐 가버렸단다. 이미 상처를 입고 이럴 수가 있는가 하던 차에 다시 상처를 받는 일을 겪고는 다시는 그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되었단다. 그리고 자기가 살던 아파트의 계단을 청소하는 일을 할 때에 자기는 아이를 업고 힘들어도 책임감에서 하는데, 아이도 없던 여전도사는 청소를 하지 않으며,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니 돈을 줄테니가 청소를 해 달라고 해서 교회나 교인에 대해 완전히 선을 그었다고 했다.

 

전도를 하면서 가끔 생각하는 것이 이것이다. 열심히 전도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교회에 왔을 때 어떻게 대해 주느냐, 그리고 그들 눈에 어떤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잘 하느냐를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밖에 나가서 전도를 하는 시간도 필요하고, 동시에 전도를 하는 교인들이 모여서 바람직한 교인의 삶에 대해 공부하고, 자신을 성장시켜 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교회에 나와서 교인들의 삶을 볼 때에 “믿는 사람들은 역시 무엇인가 다르구나”라는 반응이 나와야 한다. 인도의 간디가 “예수는 좋다고 하겠지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좋다고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행동으로 인해 기독교는 칭찬을 받기도, 또 욕을 먹기도 한다. 밖에 나가서 하는 전도는 한 번 하면 끝날 때가 많지만, 교회에 나온 후에 하는 전도는 매 주일 계속된다. 그러므로 겉과 속이 다르면 실망을 주고 상처를 주며, 예수님으로부터도 떠나게 만들 수 있다.

 

나는 거의 20분 동안 열심히 설득과 변론을 하면서 예수님을 믿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야기했다. C.S.루이스의 ‘삼자택일’도 이야기하고, 예수님의 부활과 주일, 열두 제자와 바울 사도의 변화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했는데, 오늘은 그만하고 다음에 계속하자는 말에 시계를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보통 족욕은 20분 정도 하는데 그분은 나보다 먼저 와 있었고, 나도 25분 동안을 하고 있었으니 내가 좀 흥분했었나 보다. 그래도 다음에 계속하자는 말과, 나의 변론에 동감도 해 주는 모습에서 감사를 느끼며, 우리 믿는 자들보다 오히려 더 상식적이고, 예의를 안다는 생각에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나 역시 “제발 상식선에서만 행동하면 좋겠다”며 실망을 느끼는 상황을 겪은 사람이니까 말이다. 내가 배우기로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참으로 신사적’이라는데, 실제 생활에서는 몰상식하고 몰염치한 모습을 대할 때엔 예수님의 구원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많이 느낀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내 죄 사함 받고서 예수를 안 뒤 나의 모든 것 다 변했네”라는 찬송을 부를 때처럼 믿기 이전보다는 확실히 변화된 모습으로 살아가야 마땅하지 않을까.

 

하여간 목사님이나 교회를 쉽게 선택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도 많이 했다. 자녀의 대학 선택을 할 때도 가깝다고 보내고, 아는 사람이 있다고 보내는 것이 아니요, 점심에 순대국밥을 먹으러 갈 때도 아무 식당에나 가지 않고 비교 분석한 후에 최선의 선택을 해서 가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교회에 대하여 잘 알아보고 다시 출석해 보라고 했더니 이제 나이도 많고 끝났다고 해서 나는 나이가 많아졌으니 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여기서 “메멘토 모리(죽음을 잊지 말라)”라는 말이 기억난다.

 

고대 로마 공화정 시절의 개선식에서 유래했다는 야사가 있다.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에게 허락되는 개선식은 에트루리아의 관습에 따라 얼굴을 붉게 칠하고 네 마리의 백마가 이끄는 전차를 타며 시내를 가로지르는 카 퍼레이드를 거행하는데, 이런 대접을 한 몸에 받게 되면 당사자는 말 그대로 신으로 숭배받는 듯한 벅찬 감동에 젖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 개선식의 마차에는 인간 중에서 가장 비천하다고 할 수 있는 노예 한 명이 장군과 같이 탑승하고, 이 노예는 개선식 동안 끊임없이 “메멘토 모리(죽음을 잊지 말라)”라는 말을 속삭였다는 것이다.

 

이는 해당 개선장군에게 너무 우쭐대지 말라고 하는 경고 장치였다. 즉, 아무리 대접받는다 해도 그는 신이 아닌 인간일 뿐임을 잊지 말고 공손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경각시키는 것이다. 그냥 그런 말을 하는 정도라면 다른 사람으로도 충분히 가능할 터인데 굳이 노예를 사용하는 까닭은 비천한 존재인 노예를 같이 태움으로써 고귀한 신만이 탑승하는 신의 전차보다 그 급을 낮추기 위해서였다. 이는 아무리 영광스러운 인간이라도 신에는 미칠 수 없다는 에트루리아 특유의 종교적 장치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개선장군에게 수여되는 관에는 이런 경고 문구들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Memento mori

그대는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Memento te hominem esse

그대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Respice post te, hominem te esse memento

뒤를 돌아보라, 지금은 여기 있지만 그대 역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젊은 사람이건, 나이가 많아진 사람이건, 승전한 개선장군이건, 비천한 노예이건 모두 신이 아니라 인간이요,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공손하게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그분이 보내주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으며 살아야 한다. 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간혹 실망스러운 교인들이 있을지라도 그렇지 않은 교인들이 훨씬 많다. 목사님이나 교인들이 엉터리라고 느껴진다고 할지라도 사실은 그것으로 전부를 같다고 말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다른 목사님, 다른 교회도 알아보라. 점심 한 끼 먹을 때도 신중하게 선택을 하는데 영원한 내세를 생각하며 영혼의 문제를 생각하면서 거리가 가깝다고, 아는 사람이 있다고 쉽게 선택하는 것이 지혜롭지 못한 일이다. 정말 진지하고 신중하게 최선을 다하여 선택해야 한다. 물론 나중에는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고백할 날이 오겠지만 지금은 내 편에서 책임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 그분이 오늘의 이야기를 마음에 새기고 진지하게 생각하기를 기도하며 다음에 만나서 좀 더 진전된 이야기를 나누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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