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종교개혁 기념일에 몇 가지를 생각해 본다
1. 위키백과에서- 종교개혁기념일(宗敎改革紀念日, 독일어: Reformationstag, 영어: Reformation Day)은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95개 논제를 공포했음을 기념하는 역사적인 날이다. 루터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부패를 비판하고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고, 교황의 권위보다는 오직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며, 오직 믿음으로 칭의를 얻는 이신칭의를 주장하여 종교개혁을 시작한 것을 기념하는 날로, 율리우스력의 10월 31일에 해당한다. 일부 국가와 독일의 개신교 신자가 많은 일부 주는 이 날은 휴일이다. 종교 개혁가들을 정신을 기리기 위해 여러 나라의 개신교 교회에서는 10월 31일 직전 일요일에 종교개혁 기념예배가 진행된다. 500년이 되는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일에는 한국의 교회와 총회 주관의 행사, 신학교 특강, 그리고 신학회에 소속된 국내 모든 신학자들도 기념행사를 하였다.
2.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된 글-1517년 10월 31일 학자 마틴 루터는 펜을 들고 잉크를 찍어 95개의 논문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95개의 반박문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교회에 있는 그의 동료 형제들 가운데 자아 성찰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95개 반박문은 논쟁 이상의 것을 촉발시켰으며 교회가 회복을 넘어선 상태임을 드러냈다. 교회는 개혁이 필요했다. 교회와 세상은 결코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루터의 95개 반박문 가운데 하나는 “교회의 참된 보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라고 선포한다. 이것만으로도 종교개혁의 날의 의미가 충분하다. 교회는 복음을 망각했다. 왜냐하면 교회는 이미 오래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 겹의 전통으로 도배했기 때문이다. 단순한 전통은 종종 하나님에게로 가는 길을 얻게 하는 행위의 체계를 만든다. 바리새인들도 그랬고, 중세 로마 가톨릭도 그랬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종교개혁기념일은 자유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기쁨과 그 아름다움을 기념한다.
종교개혁기념일은 무엇인가? 이날은 어둠 속에서 복음의 빛이 터져 나온 날이다. 이날은 개신교 종교개혁이 시작된 날이었다. 이날은 마틴 루터, 존 칼빈, 존 녹스 등 많은 다른 종교개혁자들이 교회가, 신앙과 삶을 위한 유일하고 최고 권위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도록 돕고, 교회를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오직 은혜에 의한 칭의 교리로 인도하는 날이었다. 이날은 선교적 노력에 불을 붙였다. 또한 찬송가 저작과 회중 찬양으로 이어졌으며,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설교와 설교의 중심이 되게 했다. 이날은 신학적, 교회적, 문화적 변화를 축하하는 날이다.
3. 오늘이 10월 31일이고, 의미 깊은 종교개혁기념일인데 많은 교인들은 별로 의식하지 못한 채 지나가고 있는 것 같다. 어떤 교회는 1주일 동안 기념강좌를 갖는가 하면, 어떤 교회는 2~3일간 특별 집회를 갖기도 하지만, 많은 수의 교회들은 언급조차 하지 않고 지나간다. 개인적으로는 기념할 날은 기념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한다. 성탄절과 부활절과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것을 보는데, 승천일과 성령강림일과 종교개혁기념일은 특별하게 기억을 하면 좋지 않을까?
4. 종교개혁기념일을 앞두고 『로마서』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였다. 유대인과 이방인, 온 인류의 죄를 이야기한 후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한 새로운 칭의의 길을 알려 주신 책.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6-17)는 놀라운 선포로 율법에 의지하며 살면서 결코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하고 심판 아래 있게 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로움을 누리게 하시고 평안을 누리게 하시는 복음을 선언하신 하나님에 대해 알려준 책.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롬 3:24-26)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롬 5:1-2)를 아멘으로 받고 누리며 사는 복된 자가 되기를 기도한다.
5. 그런데 당시나 지금이나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자기의 수고와 노력을 더하려는 자들이 있으니, 자기 열심으로, 자기 눈물로, 자기 봉사와 헌신으로 주님의 인정을 받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혹은 여전히 “회개하라”, “자신을 살피라”만 강조하고, “주님이 이미 용서해 주셨다”, “의롭다고 했다”, “자녀와 상속자로 삼아 주셨다”, “성령께서 내주하시며 인도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은혜의 말씀은 별로 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탕자는 집에 돌아와서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눅 15:21)라고 하지만, 아버지는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눅 15:22-24)라고 말하고 모든 사람들은 잔치를 하며 즐거워하였던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나의 죄와 비참함을 바르게 깨닫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을 용서해 주시고 새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바르게 아는 것은 더욱 중요하며, 그렇게 깨닫는 자에게서 바른 감사와 헌신의 삶이 나오게 되는 것을 잊지 말자. 로마서를 읽고 또 읽고 전체를 묶어서 생각해 볼 때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칭의를 발견하게 되고, 사실은 예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구원의 모든 과정을 배우면서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라는 찬송에 동참할 수밖에 없게 된다.
6. AI에서 말하는 종교개혁의 배경과 원인-종교개혁의 배경에는 교회의 타락과 부패, 면벌부 판매 문제 등 성직자 비판과 교회의 부패에 대한 불만이 있었으며, 인쇄술 발달과 인문주의 확산 같은 사회 문화적 요인이 작용했습니다. 원인은 성경에 기반한 신앙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종교적 열망과 함께, 왕권 강화로 교황권에 도전하려는 정치적, 세속적 욕구도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계서 제도'는 중세 교회의 위계질서를 의미하며, 교황 중심의 권력 구조를 가리키는데, 종교개혁은 이 제도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교황을 중심으로 한 제도가 인간의 구원을 세속적인 권력과 제도에 종속시키는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종교개혁은 이러한 제도를 비판하고 ‘오직 성경’(Sola Scriptura)과 성경 중심의 신앙생활, 그리고 신앙을 통한 구원을 강조하며 교회를 개혁하고자 했습니다.
7. 위키백과- “다섯 솔라(Five Solas)”는 서방 기독교 종교개혁 때 처음으로 대두된 개신교의 다섯 가지 표어이며, 라틴어로 솔라(Sola)는 “오직”이라는 뜻이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반대한 개신교의 기본적인 믿음 체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따라서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사도교회와 초대교회의 신앙을 계승한 정통교회(Reformed Church)는 이 개념을 수용하고 따른다.
1) Sola Scriptura (오직 성경) : 성경은 유일신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권위 있는 말씀이며 기독교 교리의 유일한 원천으로,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문체가 명료하며 자기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성경만이 거룩한 전승은 아니고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전승도 인정하며, 교회가 권위적으로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는 기성 교회의 전통(Prima Scriptura)과는 반대된다. 그렇다고 Sola Scriptura가 기독교의 오랜 전통을 완전히 무시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다만 기독교의 모든 전통은 오직 성경의 권위 아래에 있어야 하며, 성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전통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와는 달리 기독교의 전통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보는 사상을 "Sola Verbum Dei"라고도 한다.
2) 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 자연인의 상태에 대한 입장은, 모든 인간은 죄로 인해 참된 생명력을 잃은(“죽은”) 절대적인 절망의 상태로서 죄의 종 노릇을 하고 있으며 현세에서도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만 사후의 심판에서 죄에 대한 대가로 영벌(지옥에서 받는 영원한 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인간은 스스로 벗어날 능력이 없고, 구원의 유일한 길은 십자가에서 억조창생의 죗값을 다 받고 하나님의 의를 완전히 이룬 예수 그리스도의 공효를 덧입는 것뿐이라는 것이 Solus Christus의 내용이다.
3) Sola Gratia (오직 은혜) : 예수 그리스도의 공효를 덧입혀 주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로서 하나님이 인간 쪽에 아무런 조건을 찾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믿음” 역시 하나님의 선물이며, “믿음”은 구원의 은혜를 받는 ‘통로’ 역할을 할 뿐이며 그것의 ‘대가’로 구원을 받지는 않는다고 하였다.
4) Sola Fide (오직 믿음) : 하나님이 내리시는 구원의 은혜는 오직 믿음을 통하여 받을 뿐이지 다른 어떤 것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5) 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 : 성직자의 권위가 하나님의 권위와 혼동되던 기존의 교회에 반하여 모든 영광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에게로만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구원은 하나님이 시작하고 완성하시는 일이며 거기에 인간이 참여하는 부분은 없기 때문에 모든 영광을 하나님이 받는다는 내용이다.
8. 위의 내용과 관련하여 오늘날 개신교회는 많은 부분에서 가톨릭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과연 지금 교회가 “다섯 솔라(Five Solas)”를 바르게 드러내고 있다면 그 교회는 바람직한 교회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말이나 주장만이 아니라 실질에서 증명되어야 한다. 오늘날의 교회의 예배가 종교개혁자들이 성경을 통하여 깨닫고 가르쳐 준 원리에 충실한가? 오늘날 교회의 직분이 성경에서 가르친 것에 일치하며, 개혁교회가 고수하려던 원칙에 충실한가? 계서제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는 -한편으로 유교적 영향을 받아서-너무 많은 직분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런 직분이 어느 순간에 “감투”나 “완장”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 위에서 권위를 행사하고 있지는 않은가? 과연 하나님께 바친 찬송이나 예배를 직분자가 가로채고 있지는 않는가? 하나님께 바친 헌금을 하나님의 소유로 인정하고 그의 뜻을 물어가며 책임 있게 사용하고 있는가? 교황처럼 군림하는 목사, 부목사들을 하인처럼 부리는 담임목사, 목사들을 직업상 채용한 일꾼처럼 여기는 장로들, 목사를 청빙하며 발전기금을 요구하는 당회원들, 섬기는 의식은 없이 권리만 강조하는 중진 사역자들, 직분은 집사이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많은 집사들, 성경과 규범보다는 경험과 세상 상식을 앞세우는 많은 교인들. 우리 주변에서 개혁되어지고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져야 할 것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다. 어쩌면 종교개혁의 후예가 아니라 가톨릭의 후예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염려가 된다.
9. 교회가 모이고 예배드리는 것이 중요하고, 봉사와 전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을 보면 예배와 함께 교회의 법과 질서를 바로 세우고 가르쳤고, 일반 시민을 위한 교육도 힘써서 교인으로만 아니라 건실한 시민으로 살아가도록 하기를 힘썼던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믿는 바를 신앙고백서와 요리문답으로 만들어 자녀들과 후대에게 잘 전하려고 힘썼던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건실한 가정에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와 좋은 신앙서적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우리 시대에도 그런 분위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종교개혁기념일을 보내면서 종교개혁에 관한 책도 읽어보고, 최소한 기념강좌나 설교라도 들어보며 보내는 교인들이 많으면 좋겠다. 특히 『기독교 강요』를 읽고 배우면서 가톨릭이 아니라 개혁교회의 후예인 장로교 교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