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학 58집 원고 수필1편 보냅니다.
화롯불을 지피며
유기섭
동지섣달 그믐날 밤 문풍지 사이로 새어드는 찬바람에 사그라들던 화롯불은 어머니의 손결에 다시 빨갛게 달아오른다. 항상 참아오던 궁금증 그중에서도 외가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어머니를 졸랐다. 좀처럼 이야기를 하지 않던 마디이다. 어렸을 때는 외가라는 말만 들어도 동경의 대상인데. 나에게는 마음에만 그리는 먼 이야기처럼 들렸다. 어머니는 평소 외가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다. 아예 시작도 못 하게 말머리를 돌리곤 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깊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렇게 유년 시절은 지나갔다. 어렸을 때 외가에 대한 추억은 일생 가장 잊지 못할 소중한 기억이라고들 하는데. 어머니는 아마도 어린 나이의 자식에게 아픈 기억을 심어주지 않으려는 고심이 아니었을까. 세월이 훨씬 지나 생각해보니 어머니의 그런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개 옛날에는 마을간 이웃이라 하더라도 산과 강을 건너고 잘 닦아지지 않은 자갈길, 황톳길을 걸어서 내왕하기가 쉽지 않고 시간이 오래 걸려서 하루를 거의 보내야 할 정도로 모든 사정이 각박하였다. 외가는 지금의 시각에서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이지만 아마도 이른 아침부터 어두운 밤까지 하루는 꼬박 걸어야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당시 시집온 신부가 한번 친정 나들이를 하려면 큰마음을 먹고 준비하지 않으면 되지 않을 어려운 조건들 속에서 어머니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살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삼대독자인 아버지와 혼인하여 오남일녀 육 남매를 키워내느라 옆을 바라볼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외가는 여러 사정이 겹쳐서 일찍이 많은 아픔을 겪었다고 한다. 자식 중 일부는 질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고 가세가 기울어 외가의 마을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희미한 기억이지만 외가 할아버지는 서당에서 훈장으로 마을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비의 가문을 이어가느라 애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여자 형제는 출가로 흩어지고 외가는 텅 빈 집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상한 마음을 내색하지 않고 오랜 세월 자식에게도 말하지 않은 아픔을 가슴속에 새기고 살았던 것이다.
넉넉하지 않은 가계를 꾸려나가느라 몸과 마음이 피폐하여져도 자식들에게는 언제나 의젓하고 힘 있는 어머니상을 잃지 않았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논과 밭에서 일상의 양식을 구하기에도 벅찬 살림 형편임에도 자식들에게는 배곯지 않는 식단을 꾸려나가느라 애쓴 흔적을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시대의 흐름은 하루가 다르게 밝아지고 변화하는 물결 속에서 자식들이 견뎌 나가도록 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교육밖에는 없었다고 회고하신다. 어려운 현실을 헤쳐나가는 힘의 원동력을 키워나가기 위한 자질을 심어주기 위하여 현실의 각박함도 감수하는 인내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외가를 잊고 살아야 하는 사춘기의 어린 자식들에게 올바른 정서를 키워주고 흔들리지 않는 생활 자세를 심어주기 위하여 어머니는 자신의 고단함을 낙처럼 즐겨 받아들이고 살아야 했던 것이다. 자식들은 커서 유년 시절 부모들이 쏟아부은 정성과 눈물을 잊어버릴지 몰라도 부모는 그것을 내색하지는 않지만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갈 것이다. 어려운 현실에 주저하지 않고 미래를 헤쳐나갈 힘을 키우도록 하기 위하여 가세가 쪼들려도 자식의 뒷바라지로 거뜬히 사회에 기둥이 되게 키우느라 자신의 삶은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한 번도 찾아보지 못한 외가에 대한 추억에 대하여 더 이상 어머니의 아픈 마음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오래도록 잊고 살아온 세월 동안 모든 것은 변하고 인심도 변해있지만, 어머니의 마음은 그대로이다. 외가에 대한 그리움은 가슴속 깊이 품은 채 살아가기로 했다. 부족하면 부족한 가운데서 생활의 지혜를 동원하여 자식들이 스스로 설 수 있게 힘을 키워준 많은 날의 아픔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초저녁부터 방안을 데우던 화롯불을 마지막으로 지필 때쯤이면 홰를 치며 우는 닭울음 소리에 새벽이 밝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