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의 적장자이자 중종의 이복형으로, 500년 조선 왕조 역사에서 광해군과 함께 반정으로 폐위된 후 복위되지 못하여 '조(祖)'나 '종(宗)'으로 끝나는 묘호를 영영 받지 못한 둘 뿐인 임금 중 1명이다. 휘는 '융(㦕)'.[12]
폐위되었기에 묘호와 시호가 없지만
생전에 받은 '헌천홍도경문위무대왕(憲天弘道經文緯武大王)'이라는 존호가 남아있다.[13]
광해군과 더불어 묘호를 받지 못한 군주 중 하나로서 현대 한국 대중 사이에서는 폭군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인물이기도 하다.[14]
배우자/자녀
11.왕비: 폐비 신씨
1491년 9월 22일 세자 융과 세자빈 신씨의 맏이로 태어났다. 성종이 생전에 본 첫 손주이기도 하다.
작은아버지이자 사촌형부인 중종과는 겨우 3살 차이밖에 안 나고,
작은어머니인 장경왕후와는 같은 해에 태어났다.
이는 연산군-중종 형제의 나이차가 많이 나는 데다가,
연산군이 자식을 이른 나이에 보기도 했기 때문이다.[5]
연산군의 폐위 후
다른 왕족들은 대부분 유배되거나 처형되는 등 큰 화를 입었으나,
이수억(휘신공주)은 시아버지 구수영이 중종반정의 공신이었던 덕분에
남편 구문경과 이혼하지 않고 비교적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살 수 있었습니다
112. 딸: 왕녀[19]
113.아들: 원손(元孫)[20]
114. 딸: 왕녀[21]
115. 아들: 폐세자 이고(廢世子 李𩔇)[태지2][23]
118. 여덟째:[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