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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야기

빈센트 반 고흐의 흰 장미 이야기

작성자푸른숲|작성시간09.07.21|조회수1,088 목록 댓글 0

 

 

 

 고교 동창 홈페이지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고호가 그린 모든 정물화 중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그림을 집어 내라면 나는 선뜻 이 두 폭의 장미 그림을 꼽아.

내가 이 그림들을 처음으로 본 건 이국 땅에서 여행자의 낭만에 취해 들떠 있던,

앞날의 희망과 꿈에 잔뜩 설레던 젊은 시절이었어.

날은 화창한 봄날이었고 참 기분이 좋았었지. ... 

 

화면 가득 물결치는 붓 터치, 아름답고 부드러운 색조의 활짝 핀 장미꽃 더미…  

일렁이는 즐거움으로 들여다 보다가 갤러리 상점에서 포스터를 한 장 사서 돌아와 벽에 걸었었는데...

 

<장미>는 반 고호가 쌩 레미의 요양소에서 퇴원하기 직전에 그린 그림이야. 

이 즈음은 고호가 자신의 질병을 순순히 받아들이며 평생 괴롭혀 온 내부의 열정과도 화해를 할 시기이지 않았나 싶어.  

회복과 치료의 과정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은 그에게 너무도 중요한 일과였지.

그 마지막 3주간 동안 동생 테오에게 보냈던 편지에 고호는 미친듯이 일을 했다(그림을 그렸다).

큰 꽃다발들, 보랏빛 붓꽃들, 커다란 장미 묶음들…” 라고 썼어.

일(그림)에 몰두하는 것만이 마음의 병을 이길 수 있는 길이었지.

 

풍성한 꽃다발을 자세히 들여다 봐.. 만개한 꽃이 누리는 마지막 영화...

막 시들기 시작하는 둥글둥글 접힌 꽃잎과 진한 잎새들...

사선으로 물결치는 잔잔한 초록색 배경과 대비를 이루지.

여리디 여린 새 봄 잎사귀 빛갈을 띠고 있는 연초록 배경을 한참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들에서 숲에서 아우성을 치며 새순을 밀어내고 있는 이른 봄 나무의 빛갈이 생각 나. 

 

어제와 그제 갤러리에 가서 이 그림을 다시 보면서...

요즘 이 그림을 대할 때는 처음 보았을 때의 들뜬 기쁨 같은 것과는 전혀 다른 감동을 느껴.

 

고흐는 모든 피어나는 꽃들에서 생명의 탄생과 다시 태어남에 대한 축하의 몸짓을 읽었어.

생명에는 축복이 있을 뿐, 험난하든 고달프든 일단 태어났으면 최선을 다해

삶을 껴안고 부대껴야 하는 것이 생명가진 것들의 운명이야. 

오래 오래 영화를 누리며 활짝 피는 생명도 있고 피지도 못한 채 시들시들 죽어가는 생명도 있지.

감동, 연민, 분노... 예술가 고흐가 생명에 대해 느꼈을 일체의 감정들이 이 그림에 메아리지고 있는 듯 하지 않니?

 

열 여섯 살 적부터 화상art dealer, 교사, 평신도 선교사, 등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스물 일곱에서야 화가의 길을 택한 후에도 세상과 친해 보지 못한 채 10년 후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

성격이 외곬수이고 특이한 행동들을 보여 주었지만 고흐는 가슴이 따뜻한 아주 좋은 사람이었어.

아픈 사람들을 위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불행을 자기의 불행으로 느끼는 아주 민감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었지.

삶을 너무도 사랑했고 자신에게 닥치는 모든 것을 운명으로 알고 떠안으려 했던, 그래서 고통을 받았던 천재.

화가가 되기로 작정한 후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단 10년 동안 고호는 1천 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어.

그 중 단 한 점도 팔아 보지 못한 채 쓸쓸히 죽어간 인간 고흐.. 이 장미 그림들은 그의 생애 마지막 부른 삶의 연가야.

 

페인트칠을 어찌나 두껍게 했는지 이미 완성된 그림들이었지만 마르질 않아서 병원을 떠날 때 가지고 가지 못했지.

생레미의 요양원을 떠나던 날이 5월 16일, 동생 테오에게 "이 그림들은 마르려면 족히 한 달은 걸릴 걸.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내가 떠난 후 잘 지켰다가 나 있는 곳으로 보내 줄 거야." 라고 편지를 써 보냈지.

그림들은 거의 정확히 한 달 후 6월 24일에 Auvers에 도착했는데...

그 후 한달이 채 못되어 고흐는 그 곳에서 더 이상은 지탱할 수 없는 삶을 자살로 마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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