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를 잊은 열정 *
우리 주위에는 나이를 잊은 채 무언가에 몰두하며 청춘 못지않은 에너지를 발산하는 70~80대가 적지 않다.
반면, 40~50대라 하더라도 다 산 사람처럼 무기력하게 하루를 보내는 이도 있다.
삶의 온도 차이는 단 한 가지, 열정이 있느냐, 없느냐로 갈린다.
열정이란 어떤 일에 강한 호기심과 애착을 가지고 끝까지 몰입하려는 정신의 불꽃이다.
나이가 들었어도 그 불씨가 살아 있으면, 그 사람은 여전히 청춘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일과 세상을 열정적으로 사랑한다.
그들의 내면에는 젊음의 유전자라 불리는 ‘네오테니(neoteny)’가 흐른다.
나이가 들어도 청년기의 감성과 호기심을 잃지 않는 특질이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열정, 호기심, 활달함, 배려, 용기, 성찰, 다정함 같은 ‘젊은 유전자’가 여전히 살아 있다.
그 결과 영혼은 맑고, 심신은 건강하며, 삶의 속도는 느려도 방향은 선명하다.
19세기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는 정년과 연금제도를 처음 만들었다.
1889년, 그는 정년을 65세로 정했는데 당시 독일 남성의 평균수명이 45세였다.
평균 수명보다 20년을 더한 숫자가 바로 65세였다.
그 시절 65세까지 사는 사람은 극소수였으므로 연금은 큰 재정 부담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80세 후반에 이르렀으니, 그 논리를 적용하면 정년은 적어도 90세가 되어야 한다.
다소 황당하게 들리지만, 열정이 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실제 세상에는 ‘나이를 잊은 청춘’이 얼마나 많은가.
• 김형석 교수는 100세를 넘긴 지금도 글을 쓰고 강연을 다닌다.
• 고 송해 선생은 93세에도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했다.
• 레이 크록은 53세에 맥도날드를 창업했고,
• 존 펨버턴은 55세에 코카콜라를 개발했다.
•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91세에 구겐하임 미술관을 완성했다.
• 빅토르 위고는 60세에 『레 미제라블』을 썼고,
• 톨킨은 62세에 『반지의 제왕』을 세상에 내놓았다.
• 조지 버나드 쇼는 94세까지 무대에 올랐고,
• 미켈란젤로는 71세에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을 그렸다.
• 슈바이처는 89세에도 수술을 집도했고,
• 골다 마이어는 71세에 이스라엘 수상을 지냈다.
• 괴테는 89세가 넘어 『파우스트』를 완성했다.
• 피카소는 90세가 넘어도 붓을 놓지 않았다.
이들은 모두 ‘나이를 잊은 열정’이 만들어낸 산 증거들이다.
‘열정(enthusiasm)’의 어원은 흥미롭다.
그리스어 엔테오스(en-theos), 즉 “신이 내 안에 있다”는 뜻이다.
신이 내린 듯 몰입의 경지에 오를 때 인간은 나이도, 피로도 잊는다.
영어 passion에는 ‘열정’과 함께 ‘수난’이라는 뜻이 함께 있다.
참된 열정은 기꺼이 고통을 감내하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열정이 없는 사람은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모르고, 자신이 어디에서 얼마나 멈춰 서 있는지도 모른다.
호기심이 식고, 욕망이 사라지면, 그는 이미 늙은 것이다.
반대로 열정이 살아 있는 사람은 나이와 무관하게 생기가 흐른다.
세상을 향한 관심과 배움의 의지가 영혼을 젊게 한다.
열정은 통념을 깨뜨리는 무한 긍정의 에너지이며, 의지·욕망·신념의 조화다. 열정이 없는 삶은 앙꼬 없는 찐빵이요, 음악 없는 춤과 같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국민의 신뢰를 잃은 사람들, 그들의 문제는 능력이 아니라 열정의 결핍이다.
살아 있으되 생기가 없고, 움직이되 감동이 없다.
열정이란 결국 나이를 잊은 상태에서 내면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영혼의 불꽃이다.
그런 사람은 미친 듯 몰입하지만, 그 몰입이 세상을 바꾼다.
오래 사는 것보다 중요한 건 어떻게 사느냐다.
만약 그 긴 인생에 열정이 더해진다면 — 그것이야말로 신이 인간에게 허락한 가장 풍요롭고 매혹적인 삶이 아닐까.
오늘 당신의 열정을 어디에 쏟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