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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상게(2편) 과 도마복음 제18장》 20260608 (제목 : 의상조사법성게 (義湘祖師法性偈)

작성자코크스|작성시간26.06.08|조회수39 목록 댓글 0

《법상게(제2편) 과 도마복음 제18장》

이 란은 [불성을 증득]하거나 [성령을 영접]하는데 필요한 내용들인데요.

차분히 따라 해보시기 바랍니다.(※ 중요 ※)

깨닫기 전의 목적은 마음의 것들을 알아차리고 내려놓고 버리고 맡기는 것입니다.

이 목적을 위해 앞에 알아차림 들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복 또 반복하는 것입니다.

,

고집멸도(苦集滅道) 이런 옛날식 표현들은 지금 사람들에게는 어려우니까 우리 식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전에 제가

(1)
부처님 방법은 일상생활을 하거나 시간이 나면 앉아서 조용히 내 몸(오온)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식을 구분할 줄 아시는 분들은 의식이 깨어서 해보세요.

그리고

예수님 방법은 일상생활을 하거나 시간이 나면 앉아서 조용히 내 주(主/자신) 안으로 의식을 두고 기도하고 묵상하는 마음으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식을 구분할 줄 아시는 분들은 의식이 늘 깨어서 생활해 보십시오.

그러면 느끼는 바가 있으실 겁니다.

지금은 이것만 집중해 보십시오.

(2) 번째 방법은 다음 주에 이어서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의식을 아직 구분하지 못하시는 분들은 알아차림을 많이 해보십시오.

그러면 알 수 있답니다.

수행은 의식을 모르면 제대로 할 수가 없답니다.

왜냐하면 허공에 화살을 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이 내용은 그냥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의 고통과 괴로움과 부처님 표현으로 하면 [슬픔, 비탄, 괴로움, 아쉬움, 통곡과 울음 비탄, 깊은 통곡 깊은 비탄 고통 등등] 이 일어나잖아요?(※)

이러한 것들을 알아차리라는 것입니다.

(예)
"아.. 힘들고 고통스럽다.."

기독교 수도 방법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일단은 나의 고통과 괴로움 슬픔 등을 알아차리셔야 한답니다.

아브라함의 역사가 그러했고 이스라엘 백성의 삶이 그러했고 예수님 자신도 고난과 괴로움의 표상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쪽 분들도 일단은 내가 나를 알아차리면서 내게서 일어나는 모든 고통과 괴로움 등을 알아차리는데 총력을 기울여보시기 바랍니다.

본래는 오늘 (2) 번째 방법을 해보려고 했으나 아직 첫 번째 방법이 미흡한 것 같아 다음 주로 연기하겠습니다.^^

그러니 [내 몸(오온)과 마음]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통과 괴로움 등을 먼저 알아차려보십시오.🙏🏻

쉽게 말해 내게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고통과 괴로움과 슬픔 등을 알아차리라는 것이 첫 번째로 해야 할 [※알아차림의 확립]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 되어있으면 뒤에 것들은 바퀴가 헛돌듯이 헛돌기만 하기 때문에 꽝이랍니다.

그리고 나머지 아래 내용들은 그냥 보충 설명들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

음..

오늘 내용도 본성(불성) 자리와 성령 자리를 표현한 내용인데요.

오늘은 수행자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서 부끄럽지만 제 경우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부처님이나 예수님 그리고 여러 조사들도 말씀하셨지만 이것은 꾸준히 끈기 있게 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예수님도 도마복음 제2장에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구하는 자는 찾을 때까지 구함을 그치지 말지어다."

라고 하셨겠어요?

그럼 지면 관계상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

《법상게(1편) 과 도마복음 제14장》

20260518

제목 : 법상게 (1편)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qAwZwYm3haE?si=TjOYQKJim4XxKzaM

(본문 내용)

«1»

★의상조사법성게 (義湘祖師法性偈)★

<지난 내용>

(01편)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

<오늘 내용>

(02편)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

«2»

제목 : 도마복음 제18장

(아래 하단 내용 : 9:43/54:35)

https://m.youtube.com/watch?v=8fLKlrmCvGI&pp=iggCQAE%3D

1. 따르는 자들이 예수께 가로되,

우리의 종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 우리에게 말하여 주옵소서.”

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시작을 발견하였느뇨?

그러하기 때문에 너희가 지금 종말을 구하고 있느뇨?

보아라! 시작이 있는 곳에 종말이 있을지니라.

3. 시작에 서있는 자여, 복되도다. 그이야말로 종말을 알 것이니, 그는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
.
ㅡ♡♡
.
.

(본문 해설)

오늘 내용은 [법성게 2편]과 [도마복음 제18장] 내용인데요.

지난 편에는 원효대사의 단짝 도반인 의상대사의 (01편)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라는 내용으로 여러분들을 찾아뵈었는데요.

이번에는 (제02편)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이라는 내용으로 여러분들을 찾아뵙습니다.^^

이런 내용들은 모두가 본성(불성/성령) 자리를 표현 한 내용들인데요.

최근에 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기독교 쪽 노 선배님은 의상대사의 [법성게] 내용을 잘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 책에도 성령에 대한 내용들이 많이 나오는데요.

특히 찬송가 가사에 많이 나온답니다.

가장 대표적인 표현이 [성령 충만]이라는 표현이라 할 수 있는데요.

실제로 성령을 영접하게 되면 성령이 북받쳐 오르듯 충만해진답니다.(진실)

그리고 [온유하다] [안락하다] [평온하다] [자유롭다] 같은 내용들이 모두 성령을 영접했을 때 깊이 느낄 수 있는 그런 내용들이랍니다.

제가 "깊이 느낄 수 있다"라는 표현을 썼잖아요?

진짜로 그렇답니다.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성령 체험]이라고 하는데요.

실제로 성령(불성)을 영접하게 되면 성령(불성)이 넘치고 또 넘쳐서 충만하게 된답니다.(진실)

그리고 성령의 마음으로 완전히 바뀌게 된답니다.

이것을 기독교에서는 [거듭났다] [영생을 얻었다] [요단강을 건넜다] 등으로 표현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은 실제로 성령을 영접(불성 증득) 해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짐작도 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랍니다.

왜냐하면 평생 단 한 번도 맛보지 못한 그런 온유함과 안락함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도 관리만 잘 하면 평생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고요.

그리고 엄청난 [지혜]가 열리는데요.

그래서 성경 책에서도 [지혜]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는 거랍니다.

그리고 이것은 조금도 거짓이 아니랍니다.(진실)

저도 자꾸 제 자신을 비교할 수 박에 없기 때문에 제 자랑 같아서 뭐합니만..?

저만해도 그렇답니다.

제 경우는 지금 불경이나 성경 등을 통해 현재 제 마음과 비교를 해보면서 무엇은 되었고 무엇이 아직 부족한지 등을 체크해 가면서 경전을 보거나 글을 쓰고 있답니다.(진실)

그래서 저는 남들보다 빠른 거랍니다.

예전에는 저도 이 법을 깨닫기 전에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답니다.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제 경우는 부끄러울 만큼  제 욕망과 욕구와 돈에 미쳐서 일생을 허우적거리면서 살았던 사람이랍니다.

특히 섹스에 있어서는 광적이라 할 수 있었고요.

중고등학교 때에는 동내 자체가 아리랑고개라고 읍내에서도 가장 우범지대라 학교 잘린 친구들도 많았었고요.

이런 친구들이 다들 유흥업소에서 심부름을 하다 보니까 나도 자연스럽게 어울려 다니다가 시장 입구에 있는 중앙 다방이라는 곳에서 마담 아줌마가 키도 크고 잘 생겼다 하면서 주방을 보라고 하니까?

"얼씨구나 좋다" 하면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레지 누나들과 친해지면서 춤 선생인 기둥서방들에게 춤도 배우고 잘 춘다고 하면서 가발 빌려 쓰고 마이 빌려 입고하면서 어린놈이 카바래를 들락거렸던 것인데요.

지금 생각하면 고2 짜리가 뭘 안다고 기가 찰 노릇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애 딸린 띠동갑 과부 아줌마를 만나면서 사람들 몰래 그 집에서 도시락도 싸주고 하면서 등교를 하다가 졸업을 하고 그 아줌마에게 장가를 들겠다고 어머니에게 떼를 쓰다가 마침 그때 이종사촌 큰 형님이 집에 와 있었는데 그 소리를 듣고 몽둥이를 들고 오기에 냅다 창문으로 도망을 친 적도 있었는데요.

걸리면 그 형님은 진짜로 무섭게 때리거든요.

그러다가 어머니가 다시 큰 형님을 불렀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로선 제가 반항만 하고 감당이 안 됐으니까요.

그래서 큰 형님이 집에 와서 제게 하는 말이?

"너 맞아 죽을래? 아니면 삼촌 공장에 가서 기술이라도 배울래?"

하는 바람에 그래서 영등포 소화기 공장으로 출근을 했던 것인데요.

이 일이 아니었으면 제 경우는 제비가 딱 어울렸을 그런 놈이었답니다.

춤도 제법 잘 추었고요.

그래서 공장을 다니다가 그때는 기차를 타고 출퇴근을 할 때라 대학 다니는 친구들이 은근히 저를 무시를 하기에 거기에 자극을 받고 나도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그때부터 노량진 성지학원을 퇴근길에 다니면서 나도 공부 머리가 돌아간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었는데요?

그때 알았지만 저도 신기하게도 공부를 곧잘 하더라고요??

그때 이후로 제 경우는 지금까지 거의 책을 놓아본 적이 없었답니다.

지금은 경전 책으로 바뀐 것이 다를 뿐이지요.

부모님들은 아주 늦은 나이에 어렵게 저를 본 경우라

"공부는 못해도 좋다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쪽이었기 때문에 너무 자유롭게 버르장머리 없이 컸기 때문에 그것이 저는 좀 문제였는데요.

그래서 철도 늦게 든 편이였고요.

부모님들은 이상하게 무당 때문에 그랬는지 단 하번도 공부 때문에 뭐라고 한 적은 없었거든요.

영등포에서 살 당시에 가장 유명했던 박수무당이 이 아이는 농촌에서 자라야지 서울에서 자라면 20대도 못 넘기고 맞아 죽든지 칼에 맞아 죽든지 둘 중에 하면서 그 무당 할머니가 뭐라 하는 바람에 2년 후에 서울을 떠나서 파주 농촌으로 이사를 간 것인데요.

그 대신 20대만 잘 넘기면 이 아이는 자기 스스로 뭐든지 잘 할 거라 하니까 그랬는지 평소에 저에게 부모님들은 야단도 크게 안 치셨고 매도 별로 안 드셨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저는 기가 살아서 어딜 가든 주눅 들지 않고 잘 적응하고 잘 어울리면서 살았던 경우였고요.

그래서 제 경우는 부모님들이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진짜로 잘 하는 줄 알고 기만 살았던 것인데요.

우리 때에는 많이 맞고 자랐잖아요?

그런데 저는 딱 하번 맞아본 것이?

제가 5학년 때에 아버지 지갑에서 3개월 정도 아버지가 잠잘 때 돈을 훔치다가 걸려서 맞아보곤 단 한 번도 안 맞고 자랐거든요.

그 돈으로 경민이라는 친구 하고 매일 극장 가서 어제 본 것 또 보고 하면서 자장면 사 먹어가면서 돌아다녔으니 부모님들 귀에 안 들어가고 배기겠어요?

너 이돈 어디서 났어? 그러면 쓰레기통에서 주었다고 하면 친구도 잘 믿었었고요.

그래서 아버님도 그날은 자는척하고 있다가 현장을 잡힌 것인데요.

아무튼 그때 꼼짝없이 붙잡혀서 방에 문을 걸어 잠그시고 "내가 도둑놈을 키웠다" 하시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많이 맞았답니다.

어머니는 늘 제가 잘못해도 "꽨찮다" "꽨찮다" 하시면서 저를 구해주다 보니까 그래서 어머니가 못 들어오게 방문을 걸어 잠근 것인데요.

그러다 보니까 어렸을 때에는 너무 버릇이 없게 자랐던 경우랍니다.

그래도 저는 제가 살아보니까 아이들 기는 절대로 죽여서는 안 된다고 보는데요.

왜냐하면 커서도 기만 살아있으면 죽을 때 죽더라도 무엇이든지 자기 밥벌이는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일단 기가 죽으면 겁을 잘 먹게 되고 겁을 먹으면 남들이 시키는 일은 잘할 줄 몰라도 자기 일은 아무것도 못하거든요.

제가 살면서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보니까 그렇더라는 것입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맞고 자란 아이들은 대부분은 조심성이 많고 겁이 많기 마련이거든요.

조심성 많고 겁이 많은데 무슨 큰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아이들을 잠깐 혼낼 땐 혼을 내고 사고도 좀 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면서 키우는 것이 훨씬 더 그 아이를 위해서도 좋다고 보고 있답니다.

그래서 그런지 신기했던 것은 제 경우는 뭐든지 빨리 배우고 잘 적응하는 그런 쪽이었는데요.

그렇다고 처음부터 잘 적응하는 것은 아니고요.

그러나 뭐든지 계속 반복하다 보면 익숙해지게 되고?

익숙해지다 보면 응용도 하게 되고?

응용을 하다 보면 새로운 것도 탄생된다는 것이 제 사회생활을 통해 알게 된 저만의 경험인데요?

그래서 법화경도 계속해서 반복 또 반복하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천 번 이상 사전을 뒤져가면서 보고 또 보면서 이해를 해보려고 노력했던 것이고요.

초기에는 너무 이해가 안 가다 보니까 오기가 뻗쳐서 너 죽고 나 살자 하는 식으로 그래서 가랑비에 옷 젖듯이 나중에는 법화경 앱을 다운로드해서 귀에 꽂고 생활을 했던 것인데요.

뭐든지 그렇잖아요?

제가 보기에는 이것은 무식하게 아무 생각 없이 끈기 있게 되든 안 되든 꾸준히 반복 또 반복하다 보면 될 수 박에 없다고 저는 보고 있답니다.

부처님이나 예수님 그리고 여러 조사들도 여러 곳에서 같은 말씀들을 하셨고요.

제 경우는 조금도 거짓말이 아니라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단 하루도 안 거르고 중국에 있을 때 법화경을 한 번에서 한번 반 이상을 읽고 또 해석을 해보려고 무척 애를 썼었답니다.

그 이유는 자존심 때문이기도 했고요.

제 경우는 고서(古書)를 좋아했던 경우라 그 어렵다는 종횡가(縱橫家)도 터득을 했었는데?

법화경 이놈이 뭐라고 하나도 이해가 안 가는 겁니다?

성경 책은 그래도 대강은 이해가 가잖아요?

그런데 불경 책은 하나도 이해가 안 가는 겁니다?

그래서 약도 올랐고 오기와 똥고집이 발동을 했었던 것인데요.

제 경우는 이럴 때에는 "여기서 너 죽고 나 죽자" 하고 달려드는 쪽이기 때문에 그런 마음으로 중국도 들어갔던 것이고요.

뭐든지 하다 보면 다 되게 되어있거든요.

여러분들 그것 아십니까?

이것은 제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터득한 그런 철학인데요.

[무엇이든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고 그런 마음을 먹고 있다는 것은 내가 그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고 그런 마음을 먹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것을 해낼 능력이 되기 때문에 그런 생각과 그런 마음을 먹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용기와 추진력이 문제인 것이고요.

겁을 먹거나 부담감을 가지고 있으면 주눅이 들어서 되는 일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릴 때에 아이들에게 기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요.

주눅이 들어있고 기가 죽어있는데 아무리 머리가 좋고 공부를 잘해봐야 뭐 하겠습니까?

행동으로 옮기지를 못하는데요.

그러나 기가 살아 있는 사람들은 어깨를 활짝 펴고 죽든 살든 그 길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간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혹시 용기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아십니까?

용기란 겁이 없어서 용기를 내는 것이 아니랍니다.

겁도 나고 두렵지만 그 길을 가는 것이 용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경우는 사채업을 할 때에도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으로 유명했었고요.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저는 이런 성격이 이법을 깨닫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제 경우는 뭐든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 보여도 해보려고는 하기 때문입니다.

중국도 그래서 혼자서 들어갔던 것이고요.

거래처야 가서 찾으면 되는 것이고요.

해보지도 않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 경우는 어렸을 때부터 나도 모르게 이런 것들이 몸에 밴 경우인데요.

6살 때쯤에는 신풍동에서 영등포 시장까지 혼자 걸어서 작은 숙부네 집으로 TV를 보러 간 적도 많았었고 그러면 숙모님이 깜짝 놀라십니다.

5~6살짜리가 걸어서 올 그런 거리가 아니거든요?

그래도 어떡합니까 TV가 보고 싶은데요..?

국민학교 때에는 들어가자마자 밴드부가 얼마나 멋져 보였던지 아이들과 놀다가 매일 같이 악대실에 가서 까치발로 창문을 통해 형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까 김광팔 이라는 선생님이 보고 싶으면 뒤에 있는 누나들 옆에 앉아서 보라고 해서 그래서 그때부터 구경을 하다가 누나들이 귀엽다고 과자도 나누고 하니까 밴드부에 들어가서 대고(큰 북)을 쳤던 것인데요.

동기들 중에서도 제가 제일로 빨리 밴드부를 했었고요.

제 경우는 악기가 문제가 아니라 밴드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좋았고 자랑스러웠답니다.

중학교 때에는 예쁜 레지 누나들이 보고 싶어서 다방에 들어가서 "누나 여기 커피 한 잔 주세요. 엄마가 여기서 장 볼 동안 기다리라고 했어요." 하면 나가라고 하진 않거든요.

그리고 커피 대신 우유를 따뜻이 데워서 줍니다

그러다가 며칠 후에 또 가면 예쁜 레지 누나들이

"야? 너 또 엄마가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냐? 저놈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냐..?"

하면

"네~~😁"

하면서 능청스럽게 아저씨들과 누나들이 야한 농담들을 듣고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이야기해 주면 배꼽을 잡고 웃고 하는 것이 저의 일상생활이었는데요.

당구 치는 어른들 모습도 얼마나 멋져 보였던지 하루는 중학교 때 사거리에 있는 당구장으로 슬그머니 들어가서 옆자리 앉아서 매일 보고 있으니까 어른들이 담배 심부름을 시키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당구장도 들락거렸는데요.

당구공도 옆에 앉아서 닦아주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다이가 비면 나도 쳐보기도 했고요.

그 외에도 서울에 있는 오락장으로 친구와 놀러 갔다가 배가 고프면 동내 할머니들이 마루에 앉아 놀고 있으면 "할머니 우리 배고파요, 밥 좀 주세요." 한 적도 많았고요.

그러면 그때는 웬만하면 찬밥이라도 비벼서 다 먹여 줬답니다.

그러다가 돈이 떨어지면 기차역이나 터미널 또는 정류장에서 돈을 잊어버린 것처럼 연기를 하면서 아줌마 아저씨 하면서 "돈을 잊어버렸어요? 차비 좀 빌려주세요." 하면은 그때는 해주곤 했었답니다.

그렇게 몇 번 하면 그 돈으로 친구들과 또 오락장에 가서 놀다가 기차 타고 파주로 돌아오곤 했었고요.

이러한 것들이 모두 겁은 나지만 용기라는 것입니다.

사회에 나와서도 그 용기로 큰 곳만 골라서 영업을 하니까 먹히더라 이겁니다.

중국에 가서도 누가 저를 알아주겠습니까?

스스로 알아서 찾아 들어가는 거지요?

그리고 저는 이 회사다 싶으면 무조건 찾아가서 그 회사에서 같이 먹고 노는 겁니다.

말이 좋아 석탄 딜러이지 영업사원 아닙니까?

명함 하나 들고 가서 같이 뭉개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면 친해지게 되어있답니다.

그렇게 해서 지금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지만 대련에 있는 큰 대리국을 하고 있는 채중신이라는 친구도 그렇게 해서 알게 되었고요.

항주에 있는 온주 상인의 아들인 이종이라는 친구도 그렇게 해서 친해진 것이고요.

제가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공부도 반복 또 반복하는 놈에게는 못 당하듯이 이것도 반복 또 반복하다 보면 본성(불성/성령)이라는 놈도 귀찮아서 문을 활짝 열 수박에 없다는 것입니다.

법화경도 처음에 볼 때에는 뭐가 겁이 나냐고 하시겠지만 그 대신 눈앞이 꽉 막힌 것처럼 전혀 이해도 안 가고 모르는 것을 해보려고 하는 것 자체 또한 용기라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다들 부처님, 예수님 그러면 너무 커 보이고 어떻게 이런 분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을 우리가 할 수 있을까?

하는 것 자체가 패배주의자들이나 하는 생각과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한 것이고요.

사업이나 영업도 용기가 없으면 어떻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종류나 대상은 달라도 대가리를 들이대고 기를 쓰고 하는 것은 똑같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것을 생각하고 있고 마음먹고 있다는 것은 곧 나에게 그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되기 때문에 그런 생각과 마음을 먹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용기라는 것이고요.

누가 미쳤다고 용기도 없이 그런 길을 가려고 하겠습니까?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것이 법화경을 처음 접했을 때 저는 "뭐 이런 책이 다 있나?" 했었답니다?

법화경을 처음 보는 순간 저는 기분이 싸한 것이? 제가 처음 접해보는 그런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제 경우처럼 모르고 하는 것이 좋답니다.

왜냐하면 꽨히 어설프게 알고 하면 김이 빠져서 의단(疑端)이 뭉치지 않기 때문에 고생만 한다는 것입니다.

풍선도 공기가 꽉 차야 잘 터지듯이 이것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경우는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 하고 싶은 그런 성격이라 그래서 약도 오르고 오기가 생겼던 것인데요.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분심(憤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수행을 통해 이것을 한 것은 아니지만 걸칠 것은 다 걸쳤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도 이것이 매우 궁금했고 어려운 문제였으니까요?

그래도 저는 2년 조금 넘게 시간 날 때마다 이해해 보려고 하루도 안 거르고 꾸준히 노력을 했다는 것입니다.

수행자나 수도사 분들도 그렇게 해보시라는 것이고요.

이런 성격이 이법을 깨닫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고 저는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수행이나 수도는 이렇게 매우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랍니다.

오죽하면 옛 어른들도 이 길을 일대사(一大事)라 했겠습니까?

뭐든지 한번 꽂히면 생기는 것은 없어도 항상 그것만 생각하게 되고 집착하게 되는 그런 것 말입니다?

저는 저의 그런 법화경에 대한 지독한 집착이 이법을 깨닫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보고 있답니다.

까놓고 말하면 부처님이나, 예수님, 그리고 달마대사나 경허스님도 깨닫고자 하는 지독한 열정과 집착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 같은 경우는 이것을 알리고자 하는 열정과 집착이 강했던 분이시고요.

다만 그 집착의 대상이 무엇이냐? 가 문제인 것이지 무엇이든 하고자 하는 열정과 집착이 없다면 어떻게 큰 결과를 얻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러분들도 특히 스님들이나 신부님들이나 목사님들은 불성을 증득하든 성령을 영접하는 일에 열정과 집착을 가져보라는 것입니다.

제 경우는 단순히 법화경 내용들이 이해가 안 가서 집착을 했던 경우이고요.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의문(의심)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방법은 찾으면 되는 것이고요.

제 경우는 꿈에서 방법을 찾는 경우도 아주 많았답니다.

일반 사람들은 사채업 그러면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그런 것이라고 보는데요?

아니랍니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했다간 다 철창신세가 된답니다.

그 대신 법적 안에서 여러 가지 방법들을 찾아내는 것이 사채업이랍니다.

그러한 아슬아슬한 방법들을 제가 잘 찾아냈었던 것이고요.

중국에 가서도 저는 그런 경우였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 말씀 중에?

["구하는 자는 찾을 때까지 구함을 그치지 말지어다. 찾았을 때 그는 고통스러우리라. 고통스러울 때 그는 경이로우리라. 그리하면 그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되리라."]

라는 말씀을 100% 공감하고 있는 것이고요.

세상일에 고통스럽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튼 제 경우는 어렸을 때에는 노는 쪽으로만 꽂혀있어서 그것이 문제였던 것인데요.

그래도 저는 그때는 날라리 친구들과 노는 것이 참 좋았고 그 덕분에 실컷 잘 놀았답니다.

아무튼 이랬던 놈이 갑자기 나타나서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처음에는 가까운 친인척 형님들부터 친구들에게 오해도 참 많이 받았었답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매일 지 잘났다고 혼자 나가서 여기저기 싸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형님들 입장에서는 이상한 헛소리나 하고 있으니?

"저놈이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저러나..?"

하는 그런 눈초리 말입니다?

오죽하면 저를 가장 잘 아는 큰 종손 형님과 집안 형님들도 저에게?

예전 같으면 네가 콩으로 매주를 쑨다고 해도 네 말은 안 믿었는데 최근 몇 년간 너의 언행을 보니까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다고 했겠어요.

그 정도로 성령(불성)을 영접하게 되면 마음이 완전히 바뀌기 때문에 딴 사람으로 변하게 된답니다.

그만큼 그 성령(불성)의 마음은 아주 고요하고, 평온하고, 풍요롭고, 아늑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마음자리를 "천국이요" "극락이요" 그러는 것이고요.

그리고 지금 의상대사가 지은 법성게도 모두가 이런 본성(불성/성령) 자리를 표현한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반야심경] 내용도 모두가 같은 내용들이고요.

그리고 성경 책에도 곳곳에 이런 표현들이 아주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아시고 [법성게]를 보시면 조금이나마 이해가 가실 줄 압니다.

여기서 말하는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 이란?

말 그대로

제법(諸法) 즉 모든 법은 부동(不動) 쉽게 말해 움직이지 아니하고 본래적(本來寂) 즉 본래부터 고요하다는 것입니다.

본성(불성/성령)을 증득하면 그 본성(불성/성령) 자리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정말이지 여러분들이 몰라서 그렇지 실제로도 본성(불성/성령)을 증득하면 마음이 엄청 미동도 없이 고요하답니다.(진실)

이러한 마음을 그대로 한문으로 표현한 글자가?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

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본성(불성/성령)을 영접하거나 증득하지 못하신 분들은 도저히 이것을 느낄 수도 짐작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단 한 번도 이런 마음에 있어보질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이나 예수님 말씀은?

본래부터 누구나 이러한 본성(불성/성령)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찾아서 쓰라는 것이 부처님이나 예수님의 말씀인 것이고요.

그래서 예수님도 도마복음 제1장과 제2장]인 처음부터
→→→
(제 1장)
1. 그리고 그가 말하였다. “이 말씀들의 해석을 발견하는 자는 누구든지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제 2장)
1. 예수께서 가라사대, "구하는 자는 찾을 때까지 구함을 그치지 말지어다.

2. 찾았을 때 그는 고통스러우리라.

3. 고통스러울 때 그는 경이로우리라.

4. 그리하면 그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되리라."
←←←

라고 했던 거랍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아직 몰라서 그렇지 실제로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이 몸(예수님은 육체로 표현함)은 그야말로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잘 알게 된답니다.(진실)

그리고 본성(불성/성령)이 진짜라는 것을 잘 알게 된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것을 [불생불멸]이라 하는 것이고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영생]이라 표현하는 거랍니다.

그런데 이것이 내 몸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식으로 표현하면 내 몸 안에 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자꾸 알아차림을 해 보라고 하는 것이고 내가 나를 보라고 하는 것이고 조견 오온을 해보라고 하는 것이랍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중동 사람들은 예로부터 구약부터 기도를 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방편으로 늘 내 주(主/자신) 안으로 기도를 하는 마음으로 회계하면서 의식을 내 안으로 돌려서 찾아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마복음 제2장에서

[1. 예수께서 가라사대, "구하는 자는 찾을 때까지 구함을 그치지 말지어다.]

라고 말씀하셨던 거랍니다.

그래서 본성(불성/성령)을 보고 아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한다면 이것을 직접 누리면서 생활하는 것을 (증득)이나 (영접)이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일반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고 못 누리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일반 사람들의 마음과 몸(오온)은 늘 생각이 많고 분별심이 심하기 때문에 늘 시끄럽고 어수선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모든 사람들이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을 통해 하루에도 열두 번씩 여러 가지의 번뇌 망상과 욕심, 집착, 애착, 화냄 같은 의(意)를 일으키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누구든지 그렇잖아요?

귀(耳)를 통해 무슨 소리를 들으면 기뻐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는 등의 의(意)를 일으키기도 하고,

눈(眼)을 통해 무엇을 보거나 하면 사고 싶고 가지고 싶기도 하고 그러다가 돈이 없어 못 사고 못 취하면 짜증을 내기도 하는 등의 의(意)를 일으키고도 하고요.

이렇게 일반 사람들은 [눈][귀][코][입][피부] 등을 통해 무엇을 접하게 되면 몸(오온)과 마음에서 시끄럽고 어지러운 의(意)가 일어납니다.

이러한 것들이 원인이 되어 욕심과 집착이 생겨서 여러 가지의 행(行)이 따르게 되고 이러한 행으로 인해 우리들은 여러 가지의 업(業)을 쌓는다는 것이 부처님 말씀이라면..

예수님께서는 아주 간단하게 야고보서 1장 15절에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라고 하셨던 것이랍니다.

이러한 것들을 부처님께서는 무명(無明)이라 하셨던 것이고 이 무명으로 인해 여러 가지의 인연으로 이어지면서 또 업(業/죄)을 쌓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 때문에 우리는 깨닫기 힘든 것이고 이러한 것들을 단칼에 없애버려야 하는데 그래야 깨달을 수 있는데 이것이 일반 사람들에게는 쉽지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여러 가지의 수행 방법을 통해 이러한 것들을 없애라는 것이 (수행)이고 (수도)라 하는 것이랍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비유로?

태양을 본성(불성/성령)으로 비유하고 구름을 수많은 번뇌 망상 등으로 비유해서

하늘에 태양(본성)이 떠 있는데 그 앞에 구름(번뇌 망상)을 없애게 되면 그 태양(본성)은 다시 스스로 환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주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시길..

(누가복음 11: 9~10)에서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했던 것이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예수님 성격을 아주 임팩트하고 강한 그런 성격을 가지고 계셨던 분이라고 보고 있는데요.

왜냐하면 말씀하시는 내용들 자체가 아주 강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무튼 그러니 우리 모두 불성이든 성령이든 하루빨리 찾아서 증득을 하든 영접을 하든 하자는 것입니다.

불교 이야기는 이쯤하고 예수님 말씀으로 가보겠습니다.🤗🙏🏻

(도마복음 제18장)에 나오는 예수님 말씀인데요.

[1. 따르는 자들이 예수께 가로되, 우리의 종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 우리에게 말하여 주옵소서.” 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시작을 발견하였느뇨? 그러하기 때문에 너희가 지금 종말을 구하고 있느뇨? 보아라! 시작이 있는 곳에 종말이 있을지니라. 3. 시작에 서있는 자여, 복되도다. 그이야말로 종말을 알 것이니, 그는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보통 성경에서 말하는 종말은 (재림, 최후의 심판, 새 하늘과 새 땅) 등으로 쓰이고 있는데요.

오늘 내용도 불교에서 수행을 하시는 분들은 누구나 알아들었을 그런 내용일 것인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도마복음서를 보면서 느끼는 점은 예수님이라는 분은 확실하게 성령(불성/본성) 자리를 알고 계시는 분이셨구나 하는 것을 느끼고 있는데요.

오늘 내용만 보아도 그렇답니다.

이런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이 아니랍니다.

그것도 2000년 전에 말이지요.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몸이든 세상의 모든 것들과 전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오늘 내용처럼 모든 것은 우주의 모든 것들도 처음이 있으면 끝이 있습니다.

이것을 불교에는 제법무상(諸法無常)이라 한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생겨났다가 사라지고 또 생겨났다가 사라지면서 늘 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작이 있으면 반듯이 끝이 있고 종말이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도 영원할 것 같지만 곧 소멸된답니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머나먼 세월이 흐른 뒤에 다시 이 땅에는 새로운 생명체가 탄생할 것이고 또 머나먼 세월이 흐르면 소멸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 지구의 생명도 종국에는 완전히 죽은 행성으로 남을 것이고요.

그러나 본성(불성/성령) 만큼은 불생불멸(不生不滅) 하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식으로 말하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뜻으로 영생(永生)이라 하는 것이랍니다.

우리 안에 거하고 있는 성령(불성/본성)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여호와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삼위일체(三位一體)라 하는 것이랍니다.

쉽게 말해?

성부 하나님과 성자인 예수님과 성령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는 누구나 성령이 거하고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을 하셨답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라 했던 것이랍니다.

이 말은 곧 우리도 예수님처럼 깨닫고 성령을 영접하게 되면 누구나 삼위일체가 된다는 뜻이고 우리도 영생을 얻을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반듯이 이러한 사실들을 믿고 예수님 가르침 대로 사셔야 한답니다.

이런 점을 아시고 오늘 내용을 보시면 이해가 잘 가실 줄 압니다.

,

그런데 오늘 예수님 말씀은 성령(불성/본성)은 시작도 끝도 없는 그런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내용은 한 제자가 예수님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1. 따르는 자들이 예수께 가로되, 우리의 종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 우리에게 말하여 주옵소서"

이 말은 곧 우리의 육체의 종말을 묻는 질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지금 우리의 육체가 아닌 우리의 성령 하나님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랍니다.

왜냐하면 이 육체는 섞어 없어질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지금 우리들에게..

[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시작을 발견하였느뇨? 그러하기 때문에 너희가 지금 종말을 구하고 있느뇨? 보아라! 시작이 있는 곳에 종말이 있을지니라.]

라고 대답했던 것이랍니다.

이 말은 곧 예수님께서 잘 써먹는 역설법이라는 것입니다.

(역설법 뜻)
*표면적으로는 모순되거나 부조리하게 보이지만 그 진술 너머에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는 수사법*

쉽게 말해 지금 예수님께서는 우리 안에 거하고 있는 성령 하나님(불성/본성)은 시작도 끝도 없는 그런 불생불멸, 영생 한 것인데?

["지금 너희들은 어디서 종말을 구하고 있느뇨?"]

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보아라! 시작이 있는 곳에 종말이 있을지니라.]

그래서 네 안에 성령(불성)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곳에 시작이 있다면 종말도 있을 거라는 것이고요.

바로 이 부분이 역설법이라는 것이고요.

쉽게 말해 이 말은 곧 성령(불성) 자리는 시작도 끝도 없는 그런 영생(영원히 존재하는) 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찌 너희들은 지금 시작도 모르는 놈들이 종말을 묻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지금?

[3. 시작에 서있는 자여, 복되도다. 그이야말로 종말을 알 것이니, 그는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라고 하셨던 거랍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지금 시작에 서있는 자들 즉 지금 성령을 영접하는 일에 서있는 사람들은 복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곧 시작과 종말을 알게 된다는 뜻이고 그는 죽음을 맛보지 않을 거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이 엄청나게 중요한 내용이랍니다.

왜냐하면 성령(불성/본성)을 깨닫고 성령을 영접하게 되면 이 육체는 그냥 성령(불성/본성)을 감싸고 있는 거죽 대기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진실)

그래서 "거듭났다" 또는 "환생했다" 같은 표현을 쓰는 것이고요.

이것은 조금도 거짓말이 아니랍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도 실제로 성령(불성/본성)을 깨닫고 증득을 하든 영접을 하게 되면 누구나 분명하게 이러한 사실들을 알 수가 있는 그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여러분들은 먼저 성령(불성/본성)을 깨닫고 증득(영접)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먼저 여러분들이 하셔야 할 일은?

성령(불성/본성)이 내 안에 거하고 있다는 것을 믿으셔야 한답니다.

그리고 늘 주(主/자신) 안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령(불성/본성)을 찾으려고 노력을 하셔야 한답니다.

왜냐하면 성령(불성/본성)은 내 안에 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기독교든 불교든 밖으로만 의식이 가있고 밖으로만 기복(祈福)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초보자분들은 이렇게 해보십시오?^^

(1)
부처님 방법은 일상생활을 하거나 시간이 나면 앉아서 조용히 내 몸(오온)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식을 구분할 줄 아시는 분들은 의식이 깨어서 해보세요.

그리고

예수님 방법은 일상생활을 하거나 시간이 나면 앉아서 조용히 내 주(主/자신) 안으로 의식을 두고 기도하고 묵상하는 마음으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식을 구분할 줄 아시는 분들은 의식이 늘 깨어서 생활해 보십시오.

그러면 느끼는 바가 있으실 겁니다.

지금은 이것만 집중해 보십시오.

(2) 번째 방법은 이것이 익숙해지면(알아차림의 확립) 다음에 이어서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지난 6윌 2일에는 제가 운영하고 카페에 아주 중요한 질문 내용이 들어왔는데요.

이 자리를 빌려서 감사드립니다.🙏🏻🙏🏻🙏🏻

이분은 분명히 수행을 하시는 분으로 보고 있답니다.

왜냐하면 알아차림 수행을 하다 보면 공통적인 곳에서 질문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질문 내용만 들어보아도 "아, 이분은 수행자다 아니다"가 금방 파악이 되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이런 질문들은 바로바로 답을 해주어야 이분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래서 오늘은 바로 답변을 드려보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쓸 수 있는 지면이 너무 부족해서 이런 중요한 질문들은 자세히 설명을 드리자면 몇 번에 나누어서 매주에 거쳐서 연속해서 한 단원씩 나누어서 설명을 드릴 수 박에 없는데요.

이런 점을 이해하시고 좀 귀찮더라도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전체 질문 내용입니다.)

[법사님(공무연기님)은 의식이 깨어서 알아차리고 조견오온을 하고 내려놓아라 말씀을 하신다. 

나는 그 말씀에서 의식이 깨어 있으라는 말씀을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 
잠을 자지 않으면 깨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럼 저절로 깨어 있는 것인데 또 의식이 깨어 있으라 말씀하신다. 
그래서 내가 참으로 모르는 것이 있음을 느낀다. 
생각을 정리해서 나름대로 정의를 내려본다. 
의식이 깨어 있으라는 말씀은 내 마음과 행동이 순간적 충동에 움직이지 마라는 말씀이시리라. 
비추어보고 관조해 보고 정업 正業을 행하라는 말씀이시리라. 
어디에 비출것이고 무엇을 관조할 것인가. 
나의 본성, 불성, 진아에 비추어야 한다. 
본성, 불성, 진아를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비출 수 있나? 
진아의 성품과 현재의 내 마음 상태를 비출 수 있다. 
진아의 성품은 사랑, 행복, 만족스러움등 임을 들어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화가나고 질투를 하고 옹졸한 생각을 하고 탐욕스러운 어리석은 것들은 진아의 성품이 아니다. 
이런것들은 무상하다. 진아의 성품은 시공간을 초월한다. 
내 마음 상태가 진아의 성품에 맞지 않음을 알아차리고 내려놓음으로 스스로의 바른 행동을 하는 것이 의식이 깨어 있는 것이 아닐까? 

법사님의 가르침을 바랍니다. ]

(답변 1)


[법사님(공무연기님)은 의식이 깨어서 알아차리고 조견오온을 하고 내려놓아라 말씀을 하신다.]

지금 이 내용만 해도 하루 종일 이야기를 해도 모자랄 그런 내용인데요.

질문 중에서?

[조견오온을 하고 내려놓아라]

라는 표현은 약간 잘못 이해하신 내용이랍니다.

왜냐하면 [조견오온]과 [내려놓고 버리는 방법]은 전혀 다른 방법의 소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조견오온]은 '조견오온'을 통해 소멸 시키는 방법이라면 내려놓고 버리기는 마음을 직접 상대로 하는 소멸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하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고요.

그래서 부처님도 [몸(오온)과 마음]을 관찰하라고 하셨던 것이랍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내려놓고 버리는 방법]은 내 의지대로 마음의 것들을 밖으로 밀어서 [내려놓고 버리는 방법]이라면..

(조견오온)은 [내 몸(오온)과 마음]을 관찰하면서 소멸시키는 방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소멸의 목적은 같으나 수행 방법은 약간 틀리다는 것입니다.

먼저 [조견오온]을 간단히 설명드리면?

내 마음에 무엇이 일어나거나 하면..

예를 들면

[화가 일어났거나?], [즐거움이 일어났거나?], [즐거움이 일어났거나?], [괴로움이 일어났거나?], [고통이 일어났거나?], [시간이나 무엇에 쫓기고 있거나, 또는 서둘고 있거나?]

할 때에 내 몸(오온)과 마음을 서로 비교 관찰해 보라는 것이 [조견오온(위파사나)]이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화가 났거나? 특히 시간에 쫓기고 있을 때..?

내 몸(오온)을 관찰해 보시면 반듯이 100% 내 몸(오온)에서 스스로 일어나고 있는 (육근) 또는 (심장)이나 (가슴) 또는 (신경) 계통에서 스스로 일어나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러한 몸(오온)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그대로 거울과 같은 마음에 비치다 보니까?

일반 사람들은 마치 거울 속에 자기 얼굴이 있는 것처럼 보이듯이.!

자기 마음이 화를 내거나 쫓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내 몸(오온)이 화를 내고 있거나 쫓기고 있는 것인데 자기 마음이 화를 내고 있거나 쫓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를 [몸(오온)과 마음]을 분리해서 관찰해 해보라는 것이 부처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중요: 몸과 마음을 분리해서 보는 것이 중요함, 왜냐하면 그러다 보면 마음은 본래 평온한 것이거나 하는 것을 알게 됨)

마음은 아주 멀쩡한데 몸(오온)이 혼자서 자율신경으로 인해 지랄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님 말씀은 그 지랄을 하고 있는 몸(오온)은 무상한 것이기 때문에 무상을 사유하면서 그 지랄하고 있는 몸(오온)을 바라보고 있으면 곧 변해서 소멸한다는 것이 부처님 말씀이랍니다.

실제로 해보면 신기하게도 잘 된다는 것이고요.

그리고 아주 독한 놈을 만났을 때에는 의식과 생각을 그 불타는 곳(집)에 두지 말로 다른 곳에 두라는 것입니다.

의식을 화두에 두면 그것이 간화선이 되는 것이고

의식을 몸(오온)이나 현재 이 순간에 두면 그것이 위파사나가 되는 것이고

의식을 마음에 두면 그것이 조사선이 되는 것이고

의식을 내 주(主/자신) 안에 두고 회계하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생활하는 것이 기도수행인 것이고요.

,

그리고 내려놓고 버리라는 내용이나 주님께 맡기라는 내용들은 마음을 상대로 그렇게 하라는 뜻이랍니다.

이것이 제가 했던 조사선(祖師禪)이라 하는 것이고요.

[조사선]은 (주리반다가)나 (흑지범지)나 (혜가)처럼 직접 마음을 상대로 하는 것이랍니다.

내려놓고 버리는 것 또한 마음을 상대로 하는 것이고요.

그러나 [조견오온]은 몸(오온)을 상대로 하는 것이고요.

다만 의식을 분간할 줄 아는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의식이 깨어서 같이 해보라는 것인데요.

그러면 훨씬 잘 된다는 것이고요.

그런데 문제는 이상하게도 저도 상담을 받아보면 의식을 분간 못하시는 분들이 아주 많았다는 것입니다?

지금 깨어있는데 더 이상 어떻게 의식이 깨어있으라고 하느냐?라는 얘기들도 많았고요.

의식을 생각으로 아시는 분들도 많았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중생들의 이러한 면을 이미 아시고 방편으로 [알아차림]을 하라고 하셨던 것이랍니다.

왜냐하면 이 알아차림이 완벽히 해결되면 부처님 표현으로 하면 [알아차림이 확립]되면 굳이 의식이 깨어있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더라도 의식이 깨어있는 것과 같은 효과보다 훨씬 더 좋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알아차리고 있는 그 자체가 본성(불성/성령) 자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경허선사도 어린 만공의 머리를 주장자로 톡 때리면서 "아야..? 하는 바로 그놈이 무엇이냐?" 하셨던 것이고요.

쉽게 말해 의식을 구분할 줄 아시는 분들은 바로 의식이 깨어서 하시면 되고 그렇지 못하신 분들은 알아차림으로 하시면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알아차림 자체가 의식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답니다.

다만 의식이 무엇인지 느끼는 분들은 예수님이나 제 경우처럼 늘 의식만 깨어서 생활하고 있으면 되기 때문에 일부러 알아차림을 하고 말고 할 것도 없어서 편리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되는 쪽으로 해보십시오.🤗🙏🏻

그러다 보면 알아차림이 확립되어 갈 때쯤에는 "의식이 이것이구나?" 하는 것도 자연히 알게 된답니다.

왜냐하면 [알아차림] 자체가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내용은 지면 관계상 다음 주에 이어서 해보겠습니다.🙏🏻

,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꼭 건강관리도 잘 하시면서 알아차림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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