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코르넬리아 (Cornelia)」-

작성자뽕수|작성시간10.07.01|조회수85 목록 댓글 1

 

 

로마의 「코르넬리아 (Cornelia)」

 

친정(親庭)은 로마 사회에서 5대 명문(名門)중에서도 첫손 꼽히는 코르넬리우스 Cornelius가(家)요, 남편Gracchus은 최고 관직(官職)인 집정관(執政官 consul)이라면 그 화려한 명성(名聲)은 비길 데가 없을 것이다.

 

결혼하여 20년에 12명의 자녀를 출산(出産)했으나  9명은 유아(幼兒)시절에 잃고 두 아들 - 티베리우스와 가이우스 - 과 외동딸을 둔 미망인(未亡人) 코르넬리아 (Cornelia).-

 

명문가(名文家)의 사내들이 청혼(請婚)이 줄을 이었다.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王朝)에서는 왕비(王妃)로 맞아들이고 싶다는 청혼(請婚)도 들어왔다.

코르넬리아 는 남편이 죽은(BC 153년) 뒤에 일체 청혼을 물리치고 자녀 교육에 헌신(獻身)하였다. 가정교사(家庭敎師)로 그리스 학자를 초빙(招聘)하고 하인(下人)들이 즐비하였지만 결코 자식을 돌보는 일에 등한시(等閑視)하지 않았다.

 

「자식(子息)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자랄 뿐만 아니라 어머니가 맡아보는 밥상머리에서도 자란다.」는 명언(名言)을 명실공히 실천한 현모양처(賢母良妻)의 전형(典型)이었다.

 

로마 상류층(上流層) 귀부인들의 모임에서 모두가 장신구(裝身具)와 옷차림을 자랑하고 뽐내는데 그녀는 두 아들을 품에 안고 나타나 자신이 갖고있는 유일한 「두개의 보석(寶石)」이라고 말하는 코르넬리아 ,

 

두 아들이 장성하여 차례로 호민관(護民官)이 되어 로마 비정(秕政)을 개혁(改革)하여 민중(民衆)을 살리려하다가 비명(非命)에 죽었다. 그러나 모친인 코르넬리아 (Cornelia)와 두 아들의 청고(淸高)한 명성은 인류의 역사에 찬연히 빛나는 것이다.

 

부호(富豪)들의 가정에서 과연 그 집 주부(主婦)가 수(數) 많은 하인들을 제켜놓고 자식들의 밥상머리를 돌봐주고 챙겨주는 열성(熱誠)과 헌신(獻身)을 베풀 수 있겠는가?

 

율리우스 카이사르(시저)의 어머니인 「아우렐리아(Aurelia)」와 코르넬리아 (Cornelia)는 현모양처의 귀감(龜鑑)이다.

또한 훌륭한 어머니 밑에서 훌륭한 자식이 나오는 것은 자명(自明)한 이치다.

 

어머니

                        -김 초혜-

 

한몸이었다 서로 갈려 다른 몸 되었는데

주고 아프게 받고 모자라게 나뉘일 줄 어이 알았으리

쓴 것만 알아 쓴 줄 모르는 어머니 단 것만 익혀 단 줄 모르는 자식

한몸으로 돌아가 서로 바뀌어 태어나면 어떠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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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차여사 | 작성시간 10.07.04 인생의 지침서가 될 수 있는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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